서배 할배39(작성자; 손진길)
오경덕 선생이 내남 덕천의 천석꾼 최사권의 사랑채 옆방에서 손병희와 함께 일주일간 머무는 사이에 서배 아재 손상훈과 덕천 서당의 신학문 선생인 장인식은 매일 저녁에 그 집에 들른다. 그리고 밤새도록 선비 최사권과 함께 오경덕 선생은 물론 손병희 선생과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들이 그렇게 오래 이야기를 나눈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잠정적으로 내리고 있다; 조선의 근대화와 산업화를 위해서는 올바른 방향설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왕실과 조정이 주도하는 그러한 형식의 근대화는 백성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여 일본이나 구미의 열강과 장차 경쟁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왕실과 조정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백성들이 스스로 나라의 주인의식을 가지고 조국의 근대화와 산업화에 나서야만 한다는 것이다.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서는 신학문을 가르치는 학교를 만들어야 하고 구미의 선진문물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학생들에게 제공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낙후가 된 조선의 의료체제를 과학화하고 선진화하기 위해서는 병원을 설치하고 의사를 길러야 한다. 나아가서 조선의 부자들과 지주들이 돈을 모아 신문과 잡지를 발간하고 백성들에게 애족사상과 민주사상을 고취해야 한다.
조선의 산업화를 위해서는 산업선진국으로부터 자본과 기술을 도입해야 한다. 그리고 농업자본을 산업자본과 상업자본으로 상당히 전환하여 공장을 세우고 경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일들을 수행하자면 무엇보다도 지주와 선비들이 청국이나 일본에 가서 그들이 구미의 선진문물을 어떻게 흡수하여 근대화와 산업화를 하고 있는지를 시찰해야만 한다.
김춘엽과 안성기는 외동 서배 마을에 살고 있기 때문에 7일째가 되자 비로소 먼 거리를 걸어와서 내남 덕천의 사랑방모임에 참석을 한다. 그러자 장인식 선생이 사랑방모임에서 모두들 일주일간 토론하여 얻은 잠정적인 결론을 그 두사람에게 설명을 해준다.
선비 최사권과 손상훈 그리고 장인식은 그 두사람의 반응이 궁금하다. 그리고 오경덕과 손병희도 그것이 궁금한 모양이다. 그때 김춘엽과 안성기가 크게 고개를 끄떡인다. 그리고 두 사람이 동시에 말한다; “좋습니다. 그 내용대로만 실천이 된다면 조선의 앞날도 지금처럼 암담하지만은 않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가 있는가? 하는 것이겠지요…”.
그 말을 들은 손병희 선생이 앞으로 나선다; “저는 제가 먼저 우선 청국을 비밀리에 방문하고자 합니다. 그 모양은 망명의 형식이 되겠지요. 지난 1894년 말에 동학농민혁명이 실패로 끝나자 청국으로 피신한 동지들이 그곳에 상당수가 있습니다. 그들의 도움을 받아 그곳에 정착하여 상당기간 청국이 어떻게 서양의 문물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손병희 선생은 좌중을 둘러보고서 다시 말한다; “그리고 저는 여러 동지들도 그렇게 하셔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국의 근대화와 산업화라고 하는 과제는 저 혼자에게만 주어진 숙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제 시대는 농업에서 공업으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장차 농업자본이 공업자본으로 변화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들의 눈으로 청국이나 일본의 산업화된 변화부터 현지에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랑방에서 가장 연장자인 선비 최사권이 무겁게 입을 연다; “제가 한 십년만 젊었으면 오죽이나 좋겠습니까? 제 나이 벌써 63살이나 되니 여러분들과 함께 외국시찰을 하기에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이곳에서 주선하는 일은 제가 맡겠습니다. 당장은 손병희 선생께서 청국을 다녀올 수 있도록 제가 재정적인 측면을 한번 은밀하게 알아보겠습니다. 며칠만 제게 말미를 주시지요”.
선비 최사권이 다음날 찾아간 곳은 교리 최부자의 가주인 최현식이다. 그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은 최사권은 자신의 사재를 털어서 돈을 보탠다. 그 모습을 보고서 서배 아재 손상훈과 김춘엽도 거금을 내놓는다. 그것을 오경덕이 있는 자리에서 손병희 선생에게 건네자 그가 한마디를 한다; “이 돈이면 동학농민군 100명을 일년간 먹이고 입힐 수 있는 거금입니다. 이 돈을 받았으니 저는 비밀리에 청국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혹시 오경덕 선생을 통하여 저를 찾으시려면 저의 정식 가명인 이상헌 선비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손병희 선생은 남의 도움을 받으면 그냥 있지를 못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참으로 중요한 한마디를 선비 최사권과 손상훈 그리고 김춘엽이 있는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금 고종은 동학의 씨를 말리려고 합니다. 그 방법이 호남과 충청권에서 동학운동에 참여한 적이 있는 집안의 토지를 모조리 조사하는 것입니다. 저희 교도들이 전란 중에 죽고 그 토지가 자식에게 상속이 되어 있지 않으면 그것을 몰수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문중의 이름으로 되어 있어도 그것을 추적하여 국가의 것으로 만들고 말지요”.
그 사례를 가지고 손병희 선생이 장차 조선에서 발생할 일에 대하여 예견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고종의 조정은 지금 토지의 소유권을 근대화한다고 말하면서 개인소유로 등록이 되어 있지 않으면 그것을 국가의 것으로 그냥 가져가고자 합니다 동학교도들의 것을 몰수하면서 그렇게 재미를 보았기에 이제는 전국으로 그 작업을 확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만약 문중의 것으로 되어 있거나 죽은 사람의 명의로 그냥 남아 있게 되면 국가가 몰수합니다. 그 점을 아시고 미리 개인명의로 등기를 모두 바꾸어 놓으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장차 여러분들의 논과 밭을 지키는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이야기이다. 지주인 최사권과 손상훈 그리고 김춘엽이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그들은 자신들의 논과 밭을 그때부터 개인명의로 전부 정리를 해버린다. 그 덕분에 10년후에 있게 되는 동양척식주식회사의 횡포로부터 피해를 별로 입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손병희 선생은 자신이 받은 돈 이상의 보답을 해주고 간 것이다. 그는 그만큼 미리 세상을 보는 혜안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라고 하겠다.
오경덕 선생은 손병희 선생을 모시고 서해안으로 떠나고자 길을 나선다. 그러면서 사랑방 동지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5년만에 갑자기 방문하여 많은 신세만 지고 떠납니다. 저는 손병희 선생을 서쪽의 항구까지 모신 다음에 고향 충청도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훗날 때가 되면 다시 들러 인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그때까지 여러 동지들께서도 모두 강녕하시기를 바랍니다”.
오경덕 선생의 말이 묘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그는 마음속에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훗날 다시 찾아와서 인사를 드리겠다고 하니 그것은 무엇을 염두에 두고 있는 인사말일까? 선비 최사권과 서배 아재 손상훈 그리고 김춘엽과 신학문 선생이며 동향인 장인식과 안성기는 그 점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아니하여 그냥 마음속에 담아 두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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