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 할배44(작성자; 손진길)
12. 그들이 동경에서 보고 들은 것들;
그 날은 오문자의 남편 박철이 쌀가게를 평소보다 일찍 닫고 집으로 온다. 25년만에 만난 고향 후배 장인식과 안성기의 근황이 궁금한 것이다. 그리고 그 두사람과 함께 자기 집을 방문하고 있는 일행들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처남인 오경덕을 통하여 미리 이야기를 들은 것이 조금 있지만 그것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는 것이다.
박철은 혼자서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오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와 아내 오문자 사이에는 외동딸 박미자가 있는데 그녀와 함께 집으로 오고 있다. 동경 시내에서 작은 회사의 경리로 일하고 있는 그녀가 마침 일찍 퇴근을 하고 쌀가게로 왔기에 부친 박철과 함께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그날 따라 오문자는 일찍 저녁상을 차리고 있다. 2층에 짐을 푼 10명의 손님들은 그날 점심식사도 오문자가 차린 음식으로 잘 먹었는데 이제 또 저녁밥상을 받게 된 것이다. 모두들 아래층 식당에 모여 저녁식사를 하려고 하는데 때맞추어 그 집의 가장인 박철이 외동딸 박미자와 함께 들어선 것이다.
아직 수저를 들기 전인지라 손님 10명이 모두들 식탁에서 일어나 주인장인 박철을 맞이한다. 박철은 무엇이 황송한 지 손을 저으면서 “아이쿠, 저 때문에 식사를 시작도 못하시고 모두들 일어서시니 송구합니다”라고 말한다. 연장자인 선비 최사권이 그 말을 받는다; “허허, 주인장이 아직 퇴근도 하지 않았는데 저녁밥상을 먼저 받고 있는 저희들이 염치가 없지요. 어서 오십시오, 같이 식사를 하시면서 말씀들을 나누도록 하십시다”.
박철이 딸과 함께 재빨리 손을 씻고 와서 식탁에 앉는다. 마주 자리에 앉은 손님들에게 자신의 딸을 소개한다; “집사람과 저는 결혼한지 30년이나 되지만 슬하에는 딸 박미자 하나밖에 없습니다. 시내 작은 회사에 경리로 출근하고 있지요. 1883년생이니 금년에 18세, 조선의 나이로는 19살입니다”.
부친이 소개를 하자 박미자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좌중에 모인 손님들에게 얌전하게 고개를 숙여 절을 한다. 언뜻 보기에 키가 큰 편이고 얼굴이 갸름한 것이 미인형이다. 그리고 직장에서 입는 경리복을 입고 있어서 그런지 신여성의 티가 난다. 그 모습을 보고서 안성기 선생이 먼저 말을 꺼낸다; “박철 형님, 오문자 누나, 딸 하나밖에 없다고 하더니 오늘 따님을 보니 훤칠하게 인물이 좋아 열 아들 부럽지가 않겠습니다. 하하…”.
오문자가 밥상을 차리다가 말고 한마디를 한다; “미자가 오늘 숙부 안성기의 눈에 잘 보였는가 보다… 미자야, 그분 안성기 선생과 그 바로 옆에 앉아 계신 장인식 선생이 충청도와 일본 후쿠오카에서 나와 너의 아버지와 한 동네에서 오래 살았던 귀한 인연이 있는 분들이시다”. 그 말을 듣고 박미자가 더욱 공손하게 안성기와 장인식에게 고개를 숙인다.
그것이 인연이 될 수도 있는 모양이다. 그날 함께 식사를 하면서 안성기와 그의 부인 이다연은 박미자가 미혼이라는 소리를 듣고 자세히 그 모습을 보고 그 행동거지를 눈 여겨 본다. 월성 외동 서배 마을 자기들의 집에는 아직 결혼하지 아니한 차남 안용운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문자와 그 남편 박철에게 은근히 미자와 용운이를 한번 선을 보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을 한다.
안성기 내외는 오사카에서 오경자가 장인식 내외에게 말한 내용을 잘 알고 있다. 오늘날에는 시절이 좋아져서 사진을 먼저 보고 당사자가 마음에 들면 현해탄을 건너와서 혼사가 가능하다는 말을 오경자로부터 들은 바가 있기에 박철 내외에게 그렇게 제의를 한 것이다. 그랬더니 박철과 오문자가 선뜻 좋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귀국을 할 때 박미자의 사진을 몇 장 가지고 가서 아들 안용운에게 보여 준다.
안용운은 사진으로 본 박미자가 마음에 드는지 스스로 경주 읍내에 가서 그 비싼 사진을 몇 장 찍어 가지고 일본 동경으로 부치고 온다. 그해 말까지 박미자와 안용운은 편지를 주고 받더니 이듬해 봄이 되자 안용운이 박미자가 보고 싶다고 일본 동경으로 들어가고 만다. 그리고 한달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결혼 날짜를 조선의 부모에게 알려온다. 두 부부는 허둥지둥 일본 동경으로 가서 결혼식만 겨우 참석을 하게 된다.
그날 안성기가 이제 사돈이 된 동네 형님 박철에게 한 말이 다음과 같다; “신부보다 한 살이나 적은 용운이가 부모도 버리고 형님 댁에 데릴사위로 들어갔으니 박미자가 참으로 마음에 드는가 봅니다. 저희들은 아들이 둘이나 있으니 철이 형님께서는 너무 미안해 마시고 아무쪼록 용운이를 친아들로 여기시고 여기서 잘 살도록 도와주십시오. 저희 내외는 아들을 형님께 맡기고 안심하고 조선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박철이 고개를 끄떡인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오문자가 한마디를 한다; “바깥사돈과 안사돈께서는 다음에 시간이 되시면 일본 동경에 다시 한번 오십시오. 그에 필요한 모든 것은 저희 내외가 다음에 준비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고맙게도 귀한 아드님을 저희 딸 미자에게 배필로 주셨으니 저희 부부는 이 가게를 훗날 딸과 사위에게 넘겨주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저희들은 벌써 합의를 했습니다”.
일본에는 전통적으로 데릴사위제도가 있고 가문의 사업과 비결도 사위를 양자로 삼아 그렇게 대를 이어가게 하고 있으므로 십대때부터 쭉 일본에서 살아온 박철과 오문자 부부는 그러한 제도에 익숙한 모양이다. 그렇지만 조선의 유교문화에서는 그것이 희귀한 일인지라 안성기와 이다연이 상당히 신기하게 여기고 있다.
그와 같은 기가 막힌 인연이 1901년 늦여름에 동경을 방문하고 있는 덕천 사랑방모임의 선비들과 그곳에 살고 있는 오경덕의 누나 오문자의 집에서 시작이 되고 있다. 그날 저녁식사를 하면서 박철은 옛날 동네 동생인 안성기와 장인식 그리고 그 두사람과 친한 선비 최사권 및 서배 아재 손상훈과 지주 김춘엽 또한 그 5선비의 부인들에게 자신들이 살아온 동경에서의 30년 세월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다.
모두를 회포를 푼다고 일본의 사께 정종을 여러 병 나누어 마셨다. 서로 기분이 얼큰하게 좋아져서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즐겁다. 그러한 분위기인지라 박철은 1872년에 22살의 나이로 20살인 신부 오문자와 함께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동경에 와서 고생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들 젊은 부부는 10년간 동경의 변두리에서 야채장사를 했다. 그 다음 10년 동안에는 약간 변두리를 벗어난 지역에 가게를 얻어 과일장사를 했다.
20년간 참으로 열심히 일을 하여 지금의 쌀가게를 차리고 저택을 구입했다. 이제는 쌀가게를 운영한지 10년이나 되어 자리를 확실하게 잡았다고 한다. 고생 끝에 낙이라고 하더니 그 말은 일본의 수도인 동경에서도 통하더라고 말한다. 참으로 장한 부부이다. 오사카에 살고 있는 그 동생 오경자 부부도 대단하지만 오문자 부부도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이다.
남편 박철이 신나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오문자가 찔끔찔끔 눈물을 흘린다. 문화도 말도 전부 낯이 선 타국 일본 땅에서 십대를 보내고 20대가 되어서는 남편 박철과 함께 일본의 수도인 동경에서 자리를 잡기 위하여 고생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아서 장인식 선생과 안성기 선생도 콧날이 시큰하다. 그리고 오경덕 선생은 누나와 매형이 고생을 한 이야기인지라 같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매형인 박철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자 오경덕이 좌중을 둘러보면서 내일부터의 일정에 대하여 말한다; “내일부터 이틀 정도 먼저 동경의 문물과 근대적인 모습을 이해할 수 있도록 관광과 시찰을 하는 일정을 추진하겠습니다. 그 다음 이틀 동안은 하루는 손병희 선생을 만나고 또 다른 하루는 다른 조선의 개화인사를 동경에서 만나도록 주선하겠습니다”.
잠시 숨을 고른 오경덕이 한가지를 모두에게 당부한다; “참고로 잊어버리기 전에 미리 주의사항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 일본에서는 동학 제3대 젊은 교주인 손병희 선생의 이름자를 꺼내지 마시라는 것입니다. 그 대신에 조선 충청도에서 온 지주 이상헌이라고 하는 가짜 신분으로 그분을 호칭하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하여 부득이한 일이니 미리 양해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좌중이 고개를 끄떡이며 일제히 알아 들었다는 표시를 하자 오경덕이 안심을 하고서 계속 말한다; “일본 동경에는 조선에서 망명을 온 개화파 인사들이 상당수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일본의 선진문물을 계속 연구하고 있는 조선의 선각자분들도 있습니다. 그 중에 한 분을 만난 다음에 새로운 안목을 얻어서 한 이틀 정도 동경을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하루나 이틀 정도 이 집에 머무시면서 서로 느끼고 배운 바를 토론하고 나누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상당히 좋은 일정이다. 일본의 근대화의 상징인 그들의 수도 동경이 도대체 어떤 모습으로 조선에서 온 시골 선비들의 눈에 비치게 될 것인가? 그리고 부인들의 눈에는 또한 어떠한 감명을 줄 것인가?
일본의 지방의 큰 도시인 오사카와는 또다른 모습을 그 수도 도쿄에서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장차 그들 10명의 조선에서 온 방문단이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동경에서의 경험이 어떠한 통찰력을 주게 될지 아직 아무도 모르지만 그들의 일정은 그렇게 숨가쁘게 진행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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