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 할배(손진길 소설) 96

서배 할배16(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16(작성자; 손진길) 춘삼월이면 남쪽에서부터 꽃이 피어 북상을 한다. 경주 월성지역에도 4월이 되면 벚꽃이 만개하기를 시작한다. 그러면 청춘남녀들이 경주 인근의 고적지에서 만나 꽃구경을 하면서 사랑의 밀어를 속삭인다. 조선의 유교문화가 지배하고 있는 고종시대라고 하지만 그러한 청춘남녀의 만남은 역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경주 안압지와 반월성 그리고 계림숲과 첨성대는 서로 멀지 아니한 위치에 사이 좋게 자리를 잡고 있다. 따라서 봄이 되면 많은 상춘객들과 관광객들이 경주를 방문하여 그 네 군데의 고적지를 차례로 돌면서 꽃구경을 하고 있다. 그 무리 가운데 금년 4월에는 손상훈과 이채령이 들어 있다. 4월 17일은 경주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다. 그날 지주 손성규는 아들 상훈이를 데리고 웃시장을 ..

서배 할배15(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15(작성자; 손진길) 훈장 이덕화는 그날 30년만에 만난 죽마고우 김종민의 식당에서 대취를 했다. 좀체 꼿꼿한 선비 이덕화에게서 볼 수 없는 일이다. 하나밖에 없는 딸을 가을걷이가 끝나면 천석꾼 집에 며느리로 시집 보낼 수 있게 되었는데 어째서 이덕화가 그날은 마냥 술에 취하고자 하는가? 기쁘고 행복한 생각이 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난 10년간 상처를 하고 혼자서 딸 하나를 키워온 그 세월에 대한 허무함이 한없는 쓸쓸함으로 밀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딸 채령이가 없는 집에서 혼자 어떻게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 할지 생각하니 그 앞길이 아득하기 때문이다. 김종민은 자신이 경영하고 있는 돼지국밥 집에서 자꾸만 취해가는 동무 이덕화를 바라보고 있다. 그의 모친은 단지 선비 이덕화가 홀로 산 세..

서배 할배14(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14(작성자; 손진길) 4. 천년의 고도에서 피어나는 그들의 사랑 3월2일 훈장 이덕화와 함께 경주 오일장을 가는 길에 지주 손성규는 사정리에 자리를 잡고 있는 석수장이의 돌공장을 찾았다. 경주의 인근 월성지역에서 생산이 된 좋은 화강석이 즐비했다. 그 가운데 고인이 된 숙부 손익채의 묘소에 어울리는 크기의 상석 견본을 발견하고 새것 하나를 주문했다. 석수장이들의 솜씨가 대단한 모양이다. 생각보다 빠른 시일내 주문한 물건이 준비가 된다고 한다. 따라서 손성규는 훈장 이덕화에게 7일날 오일장에 자신과 함께 석물공장을 다시 방문할 수가 있는지를 묻는다. 이덕화는 마치 그러한 제의를 기다리고나 있었다는 것처럼 시원하게 좋다고 답변을 한다. 숙부의 49제가 끝나는 3월 28일까지는 26일이나 남아 있다..

서배 할배13(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13(작성자; 손진길) 그날 집에 돌아온 가주 손성규는 아내인 월성 이씨 이숙임에게 아들 손상훈이 벌써 마음에 두고 있는 처녀가 있다는 사실을 상세하게 말해 준다. 훈장 이덕화의 집에서 발생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듣게 된 손상훈의 모친인 이숙임은 그 얼굴 빛이 밝아지고 있다. 이숙임은 외아들인 손상훈이 그동안 24살이나 되도록 먼저 결혼이야기를 꺼내지 아니하고 있기에 은근히 마음속으로 걱정이 되었다. 혹시 장가를 갈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고 염려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쓸데 없는 기우에 불과하다. 훈장 이덕화의 딸이 마음에 들어서 그 집을 자주 출입하고 있다고 하니 한시름 덜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또 다른 걱정이 이숙임의 마음에 찾아오고 있다. 훈장의 딸인 이채령이 어떠한 성..

서배 할배12(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12(작성자; 손진길) 훈장 이덕화는 자신의 사랑방 문을 벌컷 열었다가 그 자리에서 얼어 붙고 말았다. 상상조차 하지를 못한 인물이 그 방안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 손상훈의 부친인 내남 너븐들의 천석꾼 지주 손성규가 그 방에서 자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지주 손성규가 양삼마을에 살고 있는 이덕화 자신의 사랑방을 예고도 없이 방문하리라는 사실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더구나 그 방안에는 자신의 딸과 손상훈이 함께 앉아 있지를 않는가? 지주 손성규는 훈장 이덕화가 방안의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자신이 그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경악을 하는 장면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는 마음속에 집히는 바가 있다. 분명히 훈장의 딸 이채령은 손성규 자신이 보기에도 아름다운 처녀이다. 24살이나..

서배 할배11(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11(작성자; 손진길) 2월 7일에 장례를 지냈으므로 49제가 되는 날 곧 3월 28일에 철상을 하게 된다. 그날 오늘날의 지명으로 말하자면, 울주군 두서면 산지에 자리를 잡고 있는 고인의 묘소를 상주들이 찾아 가서 49제가 끝났음을 고한다. 역사적으로, 1874년 당시 고종 시대에는 두서면이 울주가 아니라 경주에 속하고 있는 외남면이다. 그러므로 조천의 최부자 가문에서는 조상들의 묘를 외남면의 동쪽에 쓰고 있다. 그리고 내남 월성 손씨의 문중에서는 고 손익채의 묘를 외남면의 서쪽에 쓰고 있다. 손익채의 장남의 집안이 그곳 내남 구왕골에 살고 있어서 그렇게 산소를 정한 것이다. 그런데 일본이 조선을 침탈하게 되면서 가능하면 고도 경주를 축소하고자 한다. 따라서 조선에 통감부를 설치한 그 이듬해 ..

서배 할배10(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10(작성자; 손진길) 초상이 나면 장례절차는 세가지 과정을 거친다. 예나 지금이나 그 과정은 거의 같다; 첫째가 염을 하고 입관을 한다. 둘째가 발인이다. 운구를 하여 장지로 가는 것이다. 셋째가 하관 및 매관 그리고 그 뒷처리이다. 오늘날과 크게 다른 점 하나가 조선시대에 있는데 그것은 유교의 가르침에 따라 49일 동안 돌아가신 분에게 상식을 올리는 것이다. 상 위에 영정을 놓고 그 앞에 조석으로 식사를 차린다. 함께 자고 일어나며 식사를 하고 살아가던 그 기억을 가족들이 쉽게 잊지 못하기 때문에 그냥 생전에 하던 대로 돌아가신 어른에게 따로 밥상을 차려 드리는 것이다. 그대로 내버려두면 그 상식은 몇 년이 갈지 모른다. 따라서 49일만 그렇게 하고 철상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것이 49..

서배 할배9(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9(작성자; 손진길) 3. 너븐들의 초상과 49제 1874년 2월달에 내남 상신 곧 너븐들에서 큰 초상이 난다. 너븐들과 안심 그리고 박달 마을에 흩어져서 살고 있는 월성 손씨들이 하나같이 너븐들의 대 지주인 손성규의 사촌형 손성신의 집으로 몰려들고 있다. 천석꾼 손성규의 마지막 윗대 어른인 큰 숙부 손익채가 너븐들 차남의 집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81세에 향년을 맞이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모든 일가들이 모여서 함께 그 초상을 치르고자 분주하다. 그 일에 앞장을 서고 있는 내남 월성 손씨의 가주인 손성규도 마음이 바쁘다. 따라서 한동안 경주 오일장에 나가지를 못하고 있다. 그때문에 손성규는 서당의 훈장인 이덕화와의 약속 곧 다음 번 경주 오일장에서 다시 만나자고 하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고..

서배 할배8(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8(작성자; 손진길) 교리 최부자 집의 사랑채에서 식객으로 있는 서배 마을의 선비 이종흠이 하인의 전갈을 받고 그 집의 주인인 최만희의 사랑방으로 건너오고 있다. 최만희는 그를 잘 알고 있지만 손성규로서는 초면이다. 언뜻 보기에 손성규 자신과 비슷한 나이로 보이고 선비다운 지적인 모습의 풍채를 지니고 있다. 식객인 그는 사랑방에 자리를 잡으면서 먼저 가주인 최만희에게 절부터 한다. 나이는 최만희가 아래이겠지만 이종흠 자신이 신세를 지고 있는 집의 가장이 최만희이므로 절부터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모습이 진실되어 보인다. 그만큼 최만희가 여러 식객들에게 인심이 후하고 진심으로 존경을 받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자 최만희가 반절로 그에게 마주 인사를 하면서 입을 열고 있다; “저의 옆자리에 ..

서배 할배7(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7(작성자; 손진길) 경주 오일장에서 우연히 내남 안심의 훈장선생 이덕화 선비를 만난 지주 손성규는 그와 헤어지자 마자 급히 발걸음을 경주 교리로 향하고 있다. 경주 남천내 북쪽 언덕에 자리를 잡고 있는 교동 마을에는 향교 옆에 교리 최부자의 기와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손성규는 그곳에서 만석꾼의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최부자의 가주인 최만희를 만나보고자 하는 것이다. 최만희는 내남 이조에 살고 있는 최세구의 아들이다. 최세구는 최세린의 친동생인데 그들의 부친이 최기영이고 조부가 그 유명한 최언경이다. 최언경은 워낙 총명하여 조천 최부자의 가주인 9촌 숙부 최종률의 양자가 되었다. 그리고 과감하게 경주 교리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재산을 두배로 늘려서 만석꾼이 된 인물이다. 그후 그의 장자인 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