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 할배11(작성자; 손진길)
2월 7일에 장례를 지냈으므로 49제가 되는 날 곧 3월 28일에 철상을 하게 된다. 그날 오늘날의 지명으로 말하자면, 울주군 두서면 산지에 자리를 잡고 있는 고인의 묘소를 상주들이 찾아 가서 49제가 끝났음을 고한다.
역사적으로, 1874년 당시 고종 시대에는 두서면이 울주가 아니라 경주에 속하고 있는 외남면이다. 그러므로 조천의 최부자 가문에서는 조상들의 묘를 외남면의 동쪽에 쓰고 있다. 그리고 내남 월성 손씨의 문중에서는 고 손익채의 묘를 외남면의 서쪽에 쓰고 있다. 손익채의 장남의 집안이 그곳 내남 구왕골에 살고 있어서 그렇게 산소를 정한 것이다.
그런데 일본이 조선을 침탈하게 되면서 가능하면 고도 경주를 축소하고자 한다. 따라서 조선에 통감부를 설치한 그 이듬해 1906년에 경주의 남쪽에 있는 외남면을 울주군에 주고 그 이름을 두북면으로 바꾸어 버린다. 그리고 1910년 한일합방을 하고 나서는 경주 언양간 신작로가 개통이 된 것을 계기로 하여 아예 울주군 두북면을 두서면과 두동면으로 분리하고 만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조천 최부자의 선산이 울주군 두동면에 있고 기타 월성 최씨와 경주 최씨의 묘소 그리고 월성 손씨의 묘소 일부가 울주군 두서면에 있다. 위와 같은 역사적인 행정지역의 변천을 알게 되면 어째서 경주와 월성사람들의 묘가 울주군 두동면과 두서면에 자리를 잡고 있는지를 쉽게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가주인 손성규와 상주인 손성구 등 3형제는 49제 철상을 하기 전에 해야만 하는 일이 하나 있다. 그것은 고인의 묘소에 상석을 마련하여 설치하는 일이다. 49제를 마치고 철상을 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집에서 고인에게 밥상을 차리는 상식을 하지 아니하고 절기를 따라 묘소에 잠들어 계시는 조상에게 따로 상을 차려드리게 된다. 그러므로 양반가문에서는 묘소 앞에 상석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상석을 마련하자면 두가지 작업을 해야 한다; 하나는, 석수장이가 작업을 하는 곳을 찾아가서 석물을 고르는 것이다. 또 하나는, 상석에 들어갈 글자를 선비가 글로 적어야 한다. 색깔이 나는 붓으로 잘 보이도록 한자를 기품이 있게 적어 주어야 석수장이가 돌 위에 음각으로 새길 수가 있는 것이다.
경주와 내남 지역에서는 질이 좋은 화강석이 많이 생산이 되므로 석물을 주문하는 일은 돌공장을 찾아가면 크게 어렵지 아니하다. 그러나 상석에 글자를 보기 좋게 붓으로 쓰는 작업은 쉽지가 않다. 소문난 명필은 아니더라도 한자를 잘 쓰는 선비가 그 작업을 해주어야 한다.
따라서 가주인 손성규가 3월 1일에 일부러 너븐들에서 안심의 양삼마을까지 걸음을 하여 훈장 이덕화가 살고 있는 집을 방문하고 있다. 사전 예고도 없이 찾아가는 길이다. 삽짝문을 들어서면서 손성규가 큰 소리로 주인장을 찾는다; “훈장 어른 안에 계십니까? 잠깐 어르신을 뵙고자 합니다”.
그런데 사랑방에서 나오는 젊은이가 있다. 40대인 훈장 이덕화가 아니라 20대인 손성규 자신의 아들인 손상훈이다. 그 갑작스러운 대면에 가주 손성규가 깜짝 놀란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손상훈은 당황한 빛이 역력하다. 그는 훈장이며 스승인 이덕화 선비와 함께 말씀을 나눈 다음 그 집 딸이 다과를 내왔기에 그것을 먹으면서 훈장의 딸과 함께 사랑방에 앉아 있던 참이다.
훈장 이덕화는 평소와 같이 둘만의 시간을 주고자 잠시 집을 떠나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시간에 문간에서 서당 훈장을 찾는 음성이 들린 것이다. 손상훈은 부친의 음성과 비슷하다고 느끼면서도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느냐고 생각하고서 무심코 방문을 열고 대문간으로 나온 것이다.
그러나 그 설마가 사람을 잡고 있다. 부친 손성규의 얼굴에는 외아들 손상훈이 어째서 그 방에서 나오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손상훈이 조선의 나이로 금년에 24살이다. 그는 17세에 벌써 서당을 마쳤다. 그런데 너븐들에서 양삼마을까지 일부러 와서 훈장 선생의 사랑방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손성규가 힐끗 보긴 했지만 그 사랑방의 디딤돌 위에는 여자의 신발이 한 쌍 놓여져 있다. 훈장 이덕화는 어디로 가고 손상훈이 그 방에서 여자와 함께 있다가 자신을 마중하러 나오고 있는 것인가?
부친의 기색을 살핀 손상훈은 이제 어쩔 수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조심스럽게 입을 떼고 있다; “어서 오십시오. 아버지 저 상훈입니다. 오늘 제가 스승이신 훈장선생님을 뵙고서 가르침을 받고자 일부러 양삼 마을에 왔습니다. 장시간 스승님의 강론을 들은 후에 잠시 훈장님의 영애가 가지고 온 다과를 대접받고 있는 중입니다. 스승님께서는 잠시 사랑방을 비우시고 계십니다. 제가 훈장 어르신을 찾아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은 충분한 설명이 아니다; “아무리 다과 대접을 받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남녀가 유별한데 노총각이 처녀와 함께 다른 사람이 없는 방에서 단 둘이 다과를 나눌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 정도의 예법은 알고도 남을 선비 이덕화가 어째서 그러한 틈을 보이고 있다는 말인가?” 속으로 손성규는 의심이 크게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속이 깊고 신중하기 이를 데가 없는 천석꾼 손성규이다. 그는 그러한 의문을 안으로만 갈무리한 채 일체 밖으로 드러내지 아니하고 있다. 그의 아들 손상훈은 아직도 그렇게 속이 깊은 아버지의 실상을 전부 모르고 있다. 부친이 내품을 하지 아니하고 있을 뿐인데 그것을 모르고 저으기 안심을 한다.
손상훈은 부친 손성규의 얼굴에서 표정의 변화가 크게 없자 다소 안심을 하면서 한가지 결심을 한다; ‘이왕 아버지께서 이곳까지 오셨으니 차제에 훈장의 딸 얼굴이라도 한번 보시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그래서 상훈은 아버지 손성규를 모른 체하고 사랑방으로 인도하고 있다. 손성규도 훈장의 딸이 어떤 인물인지 한번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못이기는 체하고 그 방으로 들어선다.
방밖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부자간의 대화를 훈장의 딸은 숨을 죽이고 듣고 있다. 그녀의 이름은 이채령이다. 벌써 19세인 그녀는 어머니가 없는 집안에서 살림을 도맡아 살고 있는 당찬 처녀이다. 그렇지만 손상훈의 부친이 방으로 들어오신다고 하니 긴장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
한순간 당황했지만 이제는 굳은 결심을 하고서 다소곳이 그 자리에서 일어나 손상훈의 부친을 맞을 준비를 한다. 방으로 들어선 지주 손성규는 그녀의 용모부터 빠르게 파악을 하고자 한다. 작은 키도 아니고 그렇게 큰 키도 아니다. 용모가 단정해 보인다. 그리고 열 명 가운데 하나 만날 수 있는 전통적인 미인형이다. 그 정도이면 아들 손상훈이 마음에 들어 할 만 하다고 하는 어줍지 아니한 생각마저 든다.
손성규가 좌정을 하자 한쪽에 서있던 이채령이 조용히 큰절을 올리고 있다. 마치 처음 시집을 온 새색시가 시어른에게 올리는 큰절과 같다. 손성규는 그 절을 담담하게 받고 있다. 그녀가 자리에 앉기를 기다려서 한마디를 하고 있다; “훈장 어른의 과년한 따님을 처음 뵙게 되는 군요. 아직 부친으로부터 따님에 대한 말씀을 듣지를 못하여 무어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 아들 상훈이와 말씀을 나누는 터수라고 하므로 허물 없이 대하겠습니다”.
예의를 갖추어 말씀하시는 것이지만 이채령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그 무엇이 담겨 있다. 노총각과 과년한 처녀가 한방에서 나온다고 하여 야단을 치시는 것이 아니라 훈장 이덕화의 따님과 교제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므로 저으기 안심을 하시는 눈치이다. 이채령은 일순간 부친을 신뢰하고 계시는 지주 손성규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따라서 그녀는 참으로 조심스럽게 그러나 당차게 손성규 어른에게 한 말씀을 올리고 있다; “어릴 때부터 남녀칠세부동석이라고 배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잠시 자리를 비우시고 제자이신 자제분께서 멍하니 앉아 계시기에 주제넘게 다과를 내오면서 잠시 지체를 하였습니다. 제 잘못이니 언짢게 생각하지 말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아들 손상훈을 감싸주는 듯한 언변이다. 손성규는 일순 그녀가 보통 처녀가 아니라고 하는 인상을 받고 있다. 모친을 일찍 여의고 부친과 함께 살림을 꾸려 나간 세월이 길어서 그런지 대담하고도 당찬 구석이 있는 것이다. 그 정도 강단이 있다고 하면 천석꾼의 살림살이도 가능하지 않을까? 손성규는 내심 그런 생각까지 들고 있는 자신이 낯설기만 하다.
나이 50에 아직 며느리를 보지 못하여 그런가? 어째서 훈장의 딸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고 있는 것인가? 지주인 손성규는 자신의 속마음을 들키지 아니하려고 이채령에게서 얼굴을 돌려 아들을 바라본다; “그래 훈장선생님으로부터 무엇을 배웠느냐?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좀 터득하게 된 것이냐?”. 손상훈은 머뭇거리지 아니하고 답변을 한다; “네,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시대가 돌아가는 이치에 대하여 많이 깨닫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게 부자간에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랑방 한 켠에서 이채령이 여전히 다소곳이 앉아 있다. 부친 이덕화 훈장이 자리를 비우고 있으므로 그녀마저 손님만을 두고서 그 방을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손상훈도 이채령과 부친만을 남겨 두고서 훌쩍 훈장 이덕화를 찾으러 갈 수가 없어서 그냥 그 방에 머물고 있다. 그렇게 어색한 시간이 10여분 지나자 바깥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린다.
이덕화 선비는 동네를 잠시 한바퀴 돌고서 집으로 돌아오다가 사랑채 디딤돌에 남자의 신발이 두 켤레 놓여 있는 것을 보고서 깜짝 놀라고 있다. 분명히 제자인 손상훈과 자신의 딸 두 사람만을 사랑방에 남겨 두고서 잠시 자리를 비웠는데 그 사이에 도대체 누가 그 방에 들어가 있다는 말인가? 이덕화는 너무도 궁금하여 급히 그 방으로 접근을 하면서 먼저 헛기침 소리부터 계속하여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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