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 할배10(작성자; 손진길)
초상이 나면 장례절차는 세가지 과정을 거친다. 예나 지금이나 그 과정은 거의 같다; 첫째가 염을 하고 입관을 한다. 둘째가 발인이다. 운구를 하여 장지로 가는 것이다. 셋째가 하관 및 매관 그리고 그 뒷처리이다.
오늘날과 크게 다른 점 하나가 조선시대에 있는데 그것은 유교의 가르침에 따라 49일 동안 돌아가신 분에게 상식을 올리는 것이다. 상 위에 영정을 놓고 그 앞에 조석으로 식사를 차린다. 함께 자고 일어나며 식사를 하고 살아가던 그 기억을 가족들이 쉽게 잊지 못하기 때문에 그냥 생전에 하던 대로 돌아가신 어른에게 따로 밥상을 차려 드리는 것이다.
그대로 내버려두면 그 상식은 몇 년이 갈지 모른다. 따라서 49일만 그렇게 하고 철상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것이 49제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출발은 7일씩 7번이 지나고 50일째 되는 날에 비로소 시작이 된다.
유교에서 말하고 있는 그 개념이 히브리인들의 제사규정과 같다. 처음 초실절인 일요일에 그때 먼저 익은 열매를 바치고 칠칠절이 지나 오순절이 되면 두번째 초실절인 일요일에 그 다음 익은 다른 열매들을 바치기 때문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7이 완전수인데 그것이 7번 지나가고 있으니 그제서야 완전한 새로운 시대가 출범할 수가 있는 것이다.
유교에서는 본래 부모의 상을 당하면 사대부들이 시묘살이 3년을 치르는 것을 진정한 효도라고 말한다. 그러나 내남 너븐들에서 박달에 이르는 거랑가의 자갈밭을 전부 개간하여 경작지를 마련한 천석꾼 손성규의 집안에서는 그렇게 시묘살이 3년을 고집할 여유가 없다. 양반이 벼슬이 아니므로 녹봉이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나서서 열심히 농사를 지어야 먹고 살 수가 있다. 따라서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해서는 49제만 드리고 철상을 하는 것으로 마을의 규약을 정하고 있다.
너븐들에 살고 있는 사촌형 손성신의 집에서 49일 동안 선친 손익채에게 바치는 상식을 조석으로 올리고 있다. 그러므로 그 이웃에 살고 있는 그의 친동생 손성곤은 물론 내남 월성 손씨 문중의 가주인 천석꾼 손성규도 가능하면 그 자리에 참석을 하고 있다. 멀리 떨어진 내남 구왕리에 살고 있는 장남 손성구는 따로 49일 동안 상식을 올리겠다고 말하고서 너븐들로 오지를 않는다.
가주 손성규는 숙부인 손익채와의 사이가 각별했다. 그리고 이웃에 살고 있는 종형 손성신과 종제 손성곤과의 관계도 각별하다. 그 이유는 손성규의 친형인 손성벽이 동생과는 나이도 차이가 많이 나지만 일찍 백부 손선익의 양자가 되어 친가를 떠났으며 더구나 일찍 죽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손성규는 그만 외아들이 되고 말았다. 자신의 아들도 손상훈 하나 뿐이다.
재산은 열심히 개간을 하여 그의 대에 천석꾼이 되었지만 인간적으로는 외로운 사람이다. 따라서 이웃하여 살고 있는 숙부 손익채를 의지하고 또한 그 소생인 사촌 2사람과 친한 것이다. 특히 손성규의 부친 손성익과 숙부 손익채는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유일한 친형제이다. 그러므로 손성규는 손익채의 아들들이 진짜 가까운 사촌들인 것이다. 그에 따라 평소 문중의 일은 물론이고 소작을 주는 일에 있어서도 그들의 의견을 많이 참조하고 있다.
49일 동안 조석으로 상식을 올리고 있으므로 가주 손성규가 종형 손성신의 집을 자주 방문하고 있다. 그 집에서 종형인 손성신은 물론 종제인 손성곤과 함께 세 사람이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있다. 돌아가신 분의 이야기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농사일을 비롯하여 손상훈의 결혼문제까지 논의를 하고 있다.
그런데 손성규는 자신보다 1살 연하인 사촌 손성곤을 볼 때마다 기이한 생각이 든다. 그는 내남 너븐들에서 유일하게 두 아내를 거느리고 한집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손성곤은 자신보다 6살이나 어린 본부인 김해 김씨와 살면서 아들 손찬과 손상걸까지 얻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중에 본부인 김씨보다 12살이나 어린 여자 월성 이씨를 두번째 부인으로 취한 것이다.
다행히 두번째 부인에게서는 아들이 없으므로 집안에서 재산 문제를 가지고 두 부인 사이에 싸울 일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러나 한집에 두 아내가 살고 있으니 보기가 좋지 못하다. 더구나 가주인 손성규는 1부 1처제를 고수하고 있는 고지식한 인물이다. 그러므로 종제 손성곤의 처신이 그렇게 마음에 드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손성곤의 아들인 손찬과 손상걸에 대해서는 각별하다.
손찬은 손성규 자신의 외아들인 손상훈보다 2살 연하이다. 그런데 22살이나 된 손찬도 아직 미장가이므로 그 부친 손성곤이 마땅한 신부감을 찾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손찬의 2살 아래 동생인 손상걸은 조부인 손익채의 명에 의하여 대가 끊어진 종가의 대를 잇도록 그 집에 양자로 들어갔다. 그 집이 바로 손사설의 장남 손선익의 집안이다.
일찍이 장자 손선익에게 아들이 없자 부친인 손사설은 차남인 손성익의 장남 손성벽을 손선익의 양자로 삼아 종손이 되게 했다. 그 손성벽의 동생이 가주 손성규인 것이다. 그런데 손성벽마저 아들이 없이 일찍 죽고 말았기에 종가의 대가 끊어진 것이다. 그것을 손선익의 이복동생인 손익채가 자신의 손자 손상걸을 그 집에 양자로 주어 대를 겨우 잇게 한 것이다.
가주 손성규의 입장에서는 그가 살고 있는 너븐들에서 이제 가까운 친척이 사촌 손성신과 손성곤이다. 그리고 그의 독자인 손상훈에게 있어서는 손성신의 아들인 손섭과 손성곤의 아들인 손찬 뿐이다. 손섭과 손찬은 사촌이며 손찬이 2살위다. 그러므로 재종간인 손상훈이 제일 위이고 2살 아래가 손찬이며 또 2살 아래가 손섭이 된다.
먼 훗날 손섭에게서는 아들이 손영호 하나 뿐이다. 그러나 손찬은 아들이 둘이다. 그러므로 훗날 아들이 없는 서배 할배 손상훈이 7촌 조카에게서 양자를 구할 때에 손찬의 차남 손영주를 취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먼 훗날의 이야기이고 당장은 손성신의 집에서 49일 동안 상식을 올리면서 그들이 모여서 하는 화제는 단연 손상훈과 손찬의 배필을 찾는 것이다.
조선의 나이로 손상훈이 24살이고 손찬이 22살이다. 그 나이가 되도록 결혼을 미루고 있는 것은 순전히 그들이 거랑가의 땅을 논으로 일구는 개간사업에 그동안 전적으로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가주 손성규가 천석꾼이 되고 그의 사촌들도 먹고 살 만하게 되었으니 괜찮은 가문에서 며느리를 구하는 것이 현안문제인 것이다.
부친 손성규가 사촌 손성신의 집을 자주 찾아 보는 동안에 손상훈은 양삼 마을에 살고 있는 훈장 이덕화의 집을 더 뻔질나게 드나들고 있다. 제자인 손상훈의 문안을 받으면서 훈장 이덕화는 빨리 지주 손성규를 만나야 되겠다고 생각을 한다. 그러나 49제가 끝날 때까지는 어렵다. 아직 철상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손성규가 자식의 결혼문제를 외부인사에게 입밖으로 꺼내고자 하겠는가?
훈장 이덕화가 파악하고 있는 지주 손성규의 성품은 굉장히 정직하면서도 고지식한 양반이다. 하지만 진취적이고 시대의 흐름을 읽고 판단하고자 하는 직관력이 뛰어난 인물이다. 시골에서 천석꾼으로 썩고 있기에는 아까운 인물로 보인다. 하지만 집안의 숙원사업인 개간일에 50평생을 매어 달리다 보니까 그만 학문을 닦을 넉넉한 시간을 얻지 못한 것이다.
그 대신에 지주 손성규는 외아들 손상훈의 시야를 넓혀주고 세상을 보고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해주기를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고종 시대이므로 장차 조선의 운명이 어떻게 변화할 지 모르는 전환기에 들어서고 있다. 시골의 천석꾼이라고 하더라도 그 재산을 지키기가 옛날처럼 쉽지는 아니할 것이다.
그러므로 개방과 개혁의 시대의 특징을 미리 알고 그에 대응할 수 있는 식견과 경륜이 필요하다. 그것을 지주 손성규는 은근히 훈장 이덕화에게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 기대를 생각하면서 이덕화는 자신의 딸을 마음에 두고 있는 손상훈을 어떻게 지도하여 가주 손성규의 기대에 부응하게 할 수 있을지 그 문제를 깊이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여러 모로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에 49일의 시간은 선비 이덕화에게나 지주 손성규에게나 공평하게 빨리 흘러가고 있다. 그들이 다시 경주 오일장에서 만나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과연 어떠한 일의 진척이 경주 오일장에서 이루어질 것인가?
그러한 이덕화와 손성규의 만남의 약속과는 상관 없이 손상훈은 스승이신 이덕화의 집을 드나들면서 그의 가르침을 받고 있다. 이덕화는 자신이 10년 전에 한양을 방문하였을 때에 그곳에서 듣고 배운 바를 제자인 손상훈에게 전수하는데 신경을 쓰고 있다. 그의 주장은 지금까지의 조선과는 너무나 다른 시대가 곧 전개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청나라가 서구 열강에게 져서 그들의 침탈을 당하고 있으므로 멀지 않아 조선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는 조선왕실로서는 마치 망망대해에 일엽편주가 위태롭게 떠 있는 형국과 같다. 그 영향은 당장은 개화와 개방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의 대문을 여는 것으로 시작이 되겠지만 서구의 문물과 군사력이 들어오게 되면 조선의 강토는 청나라처럼 변하고 말 것이다. 그들을 견제하고 스스로 지킬 힘이 없는 조선은 개화도 제힘으로 하지 못한 채 재물을 빼앗기고 그들의 지배를 받게 되지 않겠는가?
그 영향은 한양에서부터 지방으로 파급이 될 것이며 시골인 내남이라고 하더라도 예외가 되지 아니할 것이라고 훈장 이덕화는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말을 들으면서 손상훈은 자신의 지혜와 능력이 참으로 미약하다고 생각한다. 스승이신 이덕화는 그렇게 느끼고 깨닫는데 그칠 수가 있지만 자신은 천석지기 살림을 그러한 시대적인 변화 가운데서 지켜 나가야 하는데 그 일을 장차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훈장 이덕화의 가르침이 끝나고 다과를 내오는 그의 딸과의 만남은 달콤하기 그지 없지만 손상훈은 장래의 문제가 여전히 큰 숙제로 남아 있다. 따라서 많은 생각을 하면서 그 49일 동안을 지내고 있다. 그에게도 시간은 거침없이 공평하게 자꾸만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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