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 할배(손진길 소설) 96

서배 할배26(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26(작성자; 손진길) 7. 소망과 좌절의 시대 1884년은 조선의 역사에 있어서나 내남 너븐들의 천석꾼 지주 손성규의 집안에 있어서나 잊을 수가 없는 해이다. 왜냐하면, 그해에 한양에서는 갑신정변이 발생하고 내남 손성규의 집에서는 안방마님 이숙임이 별세를 하기 때문이다. 순서로 따지면 이숙임 여사의 별세가 먼저이다. 그해 7월 7일에 세상을 떠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김옥균이 주도한 갑신정변은 그해 12월에 발생하므로 나중인 것이다. 김옥균은 나중에 ‘서배 할배’로 불리게 되는 손상훈과 같은 1851년생이다. 그는 고관인 김병기의 양자인데 어릴 때부터 대단히 총명했다. 김옥균은 1870년을 전후하여 개화사상가인 박규수의 사랑방에 출입하면서 조선의 근대화에 대한 소망을 가지게 된다. 그는 22..

서배 할배25(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25(작성자; 손진길) 1876년에 강화도조약이 조선과 일본 사이에 체결이 되고 조선의 부산항과 원산항 그리고 제물포항에 일본의 상선이 출입하기를 시작한다. 그 결과 그 세 항구의 인근에 왜인들의 집과 점포가 서서히 들어서게 된다. 그 가운데 일본과 가장 가까운 부산항 주변의 왜인촌이 가장 번성하고 있다. 그 다음해에 손상훈은 부친 손성규의 허락을 얻어 부산지역을 방문한다. 그 이유는 그가 1876년 가을부터 경주 일원에서 서구의 학문을 서당의 생도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선생을 구해보았으나 허사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서양의 문물에 대하여 알고 있는 조선의 사람이 그토록 없는 것일까? 참으로 답답한 가운데 손상훈은 그해를 보내게 된다. 그러한 사위의 처지를 딱하게 여긴 훈장 이덕화가 어느 날 경주..

서배 할배24(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24(작성자; 손진길) 조선의 조정이 1876년 2월에 일본과 강화도에서 조약을 맺었다는 소식을 들은 경주의 유생들이 교리의 향교에 모여서 그것을 화제로 하여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그 내용을 듣고 깊은 사색을 통하여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선비 최사권이 한번은 자신의 집을 방문한 손상훈과 김춘엽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첫째, 일본이 당장 요구하고 있는 것은 자신들의 선박이 출입하여 상품을 실어 나르고 일본인들이 맘대로 물건을 팔 수 있는 항구를 여러 개 열어 달라고 하는 것과 자신들의 큰 선박이 안전하게 조선의 연안을 통행할 수 있도록 조선의 연안선과 연해를 동시에 탐사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둘째, 조정에서는 그들의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면 조선침략의 길을 열어주는 것과 진..

서배 할배23(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23(작성자; 손진길) 해가 바뀌어 1875년이 되었다. 2월 음력설이 되자 내남 상신과 안심 그리고 박달에서는 시골 양반들이 차례를 지낸다고 부산하다. 시집온지 4달밖에 안되는 이채령은 설날 아침에 일찍 남편 손상훈과 함께 시부모님께 세배를 드린 다음 부엌에서 시어머니 이숙임을 도와 차례상을 차린다고 바쁘다. 금년 설날에는 가주 손성규가 조상에게 차례를 드리는 자리에서 특별히 며느리 이채령이를 보고서 시증조부 내외와 시조부 내외에게 재배를 하라고 말한다. 그것은 시집을 온 며느리가 처음으로 조상에게 절을 하는 것이다. 부지런한 가주 손성규는 아침에 일찍 차례를 드린 다음 아들 손상훈이를 데리고 상신 뒷산에 올라간다. 그곳에 조부 손사설의 묘와 부모님의 산소가 있기 때문이다. 성묘를 마친 다음에..

서배 할배22(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22(작성자; 손진길) 6. 나라의 문을 여는 조선과 젊은 그들 한달 후 외동 서배 마을에 살고 있는 김춘엽이 부부동반으로 내남 너븐들과 양삼마을을 방문했다. 김춘엽은 양삼마을로 시집을 간 고모 김옥심이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하여 방문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아내인 이가연은 자신의 일가이며 어릴 적 친구인 이채령이 보고 싶어 너븐들을 방문하고 싶어한 것이다. 김춘엽 부부는 먼저 양삼마을부터 들른다. 서당 근처에 있는 훈장 댁은 그 동네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집인지라 찾기가 수월하다. 마침 부엌에서 점심식사 준비를 하고 있던 김옥심이 깜짝 놀라면서 그들을 반긴다. 친정 조카내외가 오래간만에 방문을 했으니 반갑기 그지없다. 얼른 안방으로 들어가자고 하면서 사랑방문을 열고서 남편 이덕화를 찾는..

서배 할배21(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21(작성자; 손진길) 10월 15일에 혼인을 한 새 신랑 손상훈은 열흘이 지난 26일에 새 신부 이채령을 데리고 처가 나들이에 나선다. 열흘동안 자신의 며느리가 된 이채령에게 시집살이의 요령에 대하여 이것저것을 가르쳐본 시어머니 이숙임은 상당히 만족하고 있다. 친정에서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자 9살때부터 10년동안 부친의 삼시 세끼를 챙기며 집안 살림을 살았다고 하더니 과연 똑똑하고 야무진 것이다. 천석꾼 살림을 도맡아서 살고 있는 안방마님 이숙임은 그 살림솜씨가 알뜰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시집온 이후 30년 세월을 오로지 개간일에만 매어 달리고 있는 남편 손성규를 뒷바라지하면서 세 자녀를 낳아 기르고 억척같이 집안살림을 살아온 철의 여인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시어머니..

서배 할배20(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20(작성자; 손진길) 첫날밤을 지낸 신랑 손상훈은 신부 이채령과 함께 아침에 부모님께 문안의 절을 올리는 것으로 평범하게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있다. 다만 평상시와 다른 점 하나가 있다. 그것은 부친 손성규를 따라 신랑신부가 너븐들 뒷산에 자리를 잡고 있는 증조부인 손사설과 조부인 손성익의 묘소에 참배를 다녀온 것이다. 새 신랑과 새 신부에 대해서도 그렇게 간소하게 혼례를 치르고 다음날부터 새 생활을 시작하도록 지주 손성규가 조치를 하고 있다. 허례허식을 별로 찾아볼 수가 없는 지주 손성규의 일상이다. 그 점을 일찍 시집을 간 손상훈의 누나 두 사람이 익숙하게 알고 있다. 따라서 그녀들은 모두 첫날 혼례식만 구경하고 부모님께 인사를 드린 후 남편들과 함께 시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부터 시어머니..

서배 할배19(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19(작성자; 손진길) 5. 너븐들의 큰 잔치와 간소한 혼례식 내남 상신을 예로부터 ‘광석’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 이유는 산기슭에 넓은 고인돌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가 문자로 기록되기 이전 선사시대에 그러한 고인돌이 생겨났다고 하니 참으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부락이 광석마을이다. 그 광석마을의 인근 안심에는 암각화가 새겨진 고대인들의 큰 바위가 역시 자리를 잡고 있어 상신과 안심 그리고 박달이 얼마나 오래된 자연 부락인지를 증거하고 있다. 역사학자들은 고인돌의 용도가 주로 고대인들의 지도자인 권력자의 무덤이라고 말한다. 자연부락 공동체의 지도자가 죽게 되면 그 무덤을 만들기 위하여 부락민들이 일체 단결하여 산에서 그 큰 바위를 굴려서 들판으로 옮겨온 것으로 풀이를 하고 있다. ..

서배 할배18(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18(작성자; 손진길) 이 세상에 흘러가는 세월만큼 정확하고 공평한 것이 없다. 누구에게는 빨리 지나가고 누구에게는 천천히 지나가는 법이 없다. 그리고 사람이 의식하든지 아니하든지 간에 상관이 없이 시간은 또박또박 정확한 발걸음으로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그렇지만 훈장 이덕화와 그의 딸 채령이, 그리고 이덕화의 연인이 된 김옥심과 이채령의 신랑감인 손상훈의 경우는 다른 것 같다. 그들은 내남의 농부들이 한여름 뙤약볕 아래 논바닥에서 하루 해가 참으로 길다고 한숨을 내쉬면서 농사일에 정신이 없을 때에 그 반대로 하루가 어떻게 그렇게 빨리 지나가고 있느냐는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인생의 황금과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이가 든 연인이 훈장 이덕화와 김옥심이고 또한 젊은 연인이 ..

서배 할배17(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17(작성자; 손진길) 때는 1874년 6월 중순이다. 바쁜 모내기철이 끝나고 논에서는 벼가 자라기를 시작하고 있다. 내남의 농부들이 한숨을 돌리고 있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던 모내기가 일단은 끝났기 때문이다. 가쁜 숨을 돌리고 있는 그 틈을 보아 손상훈은 내남 구왕골에 살고 있는 큰 당숙의 집을 찾아가고 있다. 그의 목적은 부친보다 9년이나 연상인 큰 당숙 손성구에게 문안인사를 드리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사실 자신과 동갑인 재종 손형을 만나고자 하는 것이다. 2달 전에 경주에서 내남으로 오는 길에 손상훈은 6촌간인 손형의 바로 위의 누나 손예진과 그의 남편인 최사권을 우연히 조우했다. 그때 내남 덕천의 천석꾼의 아들인 최사권이 자신의 손 아래 처남 손형과 함께 자기 집에 한번 놀러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