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 할배(손진길 소설)

서배 할배22(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9. 17. 01:58

서배 할배22(작성자; 손진길)

 

6. 나라의 문을 여는 조선과 젊은 그들

 

  한달 후 외동 서배 마을에 살고 있는 김춘엽이 부부동반으로 내남 너븐들과 양삼마을을 방문했다. 김춘엽은 양삼마을로 시집을 간 고모 김옥심이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하여 방문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아내인 이가연은 자신의 일가이며 어릴 적 친구인 이채령이 보고 싶어 너븐들을 방문하고 싶어한 것이다.

  김춘엽 부부는 먼저 양삼마을부터 들른다. 서당 근처에 있는 훈장 댁은 그 동네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집인지라 찾기가 수월하다. 마침 부엌에서 점심식사 준비를 하고 있던 김옥심이 깜짝 놀라면서 그들을 반긴다. 친정 조카내외가 오래간만에 방문을 했으니 반갑기 그지없다.

  얼른 안방으로 들어가자고 하면서 사랑방문을 열고서 남편 이덕화를 찾는다. 12월 초순이지만 한낮에는 햇볕이 따사롭다. 그 따뜻한 햇빛을 창호지 사이로 느꼈는지 어느 사이에 책을 읽던 선비 이덕화가 그 자리에서 낮잠이 들어 있다. 그는 아내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기지개를 켠다. 그리고 김춘엽 부부가 방문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면서 안방으로 향한다.

김춘엽 부부가 고모와 고모부에게 절을 하자 고모 내외도 반절을 한다. 그리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지난 1017일에 혼례를 올리고 정식으로 재혼을 한 김옥심은 한달 남짓 만에 친정 조카내외를 맞이하게 되니 엄청 반갑다. 따라서 얼른 다과를 내오면서 경주 읍내에서 식당을 경영하고 있는 오라버니 내외와 모친의 안부를 묻는다.

김춘엽은 청상과부가 되어 친정 오빠의 국밥집에서 오래 일을 돕던 고모가 이렇게 팔자를 고쳐 고모부 이덕화 선비와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겹도록 고맙다. 그리고 훈장 이덕화가 남이 아니고 자신의 부친인 김종민의 절친이며 자신의 아내 이가연의 일가이니 더 가까운 정을 느끼게 된다. 더구나 그들 모두는 외동 서배 마을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고향사람들이 아닌가!

현재 서배 마을에 살고 있는 김춘엽 부부는 그곳 출신이라고 하면 혈육만큼이나 가까운 애정을 느끼고 있다. 김춘엽 부부는 그러한 동향인의 정을 너븐들에 가서 이채령이를 만났을 때에 다시 나누고 있다. 안채에 있는 신방에서 그들을 맞이한 이채령이는 이가연이의 손을 꼭 잡고 놓으려고 하지를 않으려고 한다. 이가연도 마치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좋아한다. 그 모습을 보고서 손상훈과 김춘엽은 그 두사람을 앞으로 자주 만나게 해주어야 하겠다고 생각을 한다.

그날 김춘엽 부부는 내남 너븐들의 천석꾼인 손성규 부부에게 문안인사를 드렸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서 김춘엽은 조선의 농삿꾼의 강인함을 느끼고 있다. 손상훈의 부친이 50평생을 거랑가의 돌밭을 경작지로 개간하는 일에 고스란히 바쳤다고 하더니 그 흔적이 그들의 모습에서 역력하다. 그 모습은 30년 세월을 경주 읍내에서 한결같이 돼지국밥 집을 운영하고 있는 자신의 부모님에게서도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손상훈은 김춘엽에게 먼 길을 왔으니 오늘은 여기서 일박을 하고 내일 길을 떠나라고 강권한다. 김춘엽이 못이기는 척하고 동의를 한다. 그것은 밤새도록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이채령이와 이가연이를 위한 특별한 배려이다. 마치 친자매처럼 그렇게 서로를 좋아하니 최소한 일박이일로 실컷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손상훈은 이왕 내남에 온 김에 이웃마을 덕천에 함께 들러 자신이 존경하는 재종 매형인 선비 최사권이를 한번 만나보자고 제의한다. 그 이유는 선비 최사권이 자신들보다는 15년 정도 연상인데 그 식견이 참으로 대단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경주 유림에서도 알아주는 학문이 깊은 젊은 지도자라고 손상훈이 말한다. 김춘엽도 흥미가 생긴다. 그래서 좋다고 한다.

역사의식이 깊은 김춘엽의 생각에는 지금의 조선은 장차 그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시기이다. 고종 11년의 조정은 민비를 중심으로 나라의 정책을 결정하고 있는 개화파들이 이제는 청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들과 국교를 가지려고 그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그에 대한 경주 유림의 생각은 무엇일까? 그 점을 역사를 좋아하는 김춘엽은 최사권에게서 듣고 싶은 것이다.

그동안 장인인 이덕화 선비를 통하여 개화사상이 무엇인지 그리고 동학사상이 무엇인지를 배운 바가 있는 손상훈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다음날 부부동반으로 최사권과 손예진 부부의 집을 갑자기 방문하고 있다. 어차피 외동 서배 마을로 가자면 너븐들에서 덕천과 이조를 거쳐서 가야 하므로 그것이 순로이다.

12월초 농한기인지라 덕천의 천석꾼 최사권의 집안도 그렇게 바쁜 일이 없다. 그러므로 손상훈 부부와 김춘엽 부부가 깜짝 방문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조금도 싫어하는 기색이 없다. 그렇게 농한기에는 서로가 깜짝 방문을 하고 또한 손님대접을 한다. 그렇게 서로가 만나서 그동안의 지방소식을 함께 나누는 것이 시골 사람들이 긴 농한기를 살아가는 솔솔한 재미이다.

최사권 부부를 만난 손상훈이 동행한 김춘엽 부부를 그들에게 소개한다. 그들은 서로 초면이기에 먼저 손상훈이 알기 쉽게 김춘엽을 자신의 사형이라고 소개를 한다. 김춘엽의 고모인 김옥심이 안심의 훈장인 이덕화에게 재가를 하였으니 그럴 것도 같다.

그 소리를 듣고서 최사권이 빙그레 웃는다. 그 촌수가 좀 복잡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사형도 되지만 또 어떻게 보면 손상훈의 장모의 친정 조카가 되니  바로 사형은 아닌 것도 같다. 그런데 손예진은 재종 올케가 된 이채령이를 보고서 너무 좋아한다. 그리고 이채령이의 일가이면서 소꿉친구라는 이가연과도 벌써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여자들은 두세사람만 모여도 그렇게 금방 친해지고 재잘재잘 할말이 많은 모양이다.

그날 김춘엽은 15년이나 연상인 선비 최사권에게 조선의 역사와 그 장래에 대하여 질문을 하고 있다. 역사를 좋아하는 신라 원성왕의 직계라고 하더니 역시 그 질문이 대단하다. 선비 최사권은 갑자기 심각해 진다. 그리고 신중하게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힌다;

첫째, 자신은 지금까지 한학을 중심으로 학문을 해왔는데 이제는 조선 주변의 상황을 보니 회의가 든다는 것이다. 한학은 청나라와 조선의 학문인데 그 배움만으로는 열강이 대두하고 있는 지금의 국제정세에 대응하지를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대국인 청나라의 황제가 서구의 세력이 들어오는 것을 막지 못했는데 조선의 왕이 어떻게 그것을 막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므로 흥선대원군이 척사를 부르짖으며 서구의 군함에 대포를 쏘고 쇄국정책을 강행한 것도 전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피력하고 있다.

셋째, 결국 나라의 문을 열 수밖에 없는데 그 다음이 문제라는 것이다. 스스로 대등하게 열국과 상대할 수 있는 역량이 전혀 없이 나라의 문을 열게 되니 그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그것이 고민이다. 자신은 동쪽의 일본이 6년 전에 먼저 나라의 문을 열고 서구의 문물을 받아 들였는데 그 추이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관심이 간다는 것이다. 그 선례를 참조하면 조선이 가야하는 길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선비 최사권의 식견은 손상훈과 김춘엽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고리타분한 한학만을 고수하고 있는 선비인 줄 알았는데 전혀 그 중심은 그것이 아닌 것이다. 자신의 가문과 조선의 장래를 열강의 침탈의 역사 가운데 어떻게 지키고 앞날을 개척할 것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젊은 손상훈과 김춘엽은 가급적 선비 최사권을 자주 만나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토론하는 자리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무언의 합의를 한다. 그들의 생각을 최사권에게 밝혔더니 그도 좋다고 찬성을 한다. 그렇게 훗날 세사람의 친교가 깊어지게 되는 계기가 우연히 마련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