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 할배24(작성자; 손진길)
조선의 조정이 1876년 2월에 일본과 강화도에서 조약을 맺었다는 소식을 들은 경주의 유생들이 교리의 향교에 모여서 그것을 화제로 하여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그 내용을 듣고 깊은 사색을 통하여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선비 최사권이 한번은 자신의 집을 방문한 손상훈과 김춘엽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첫째, 일본이 당장 요구하고 있는 것은 자신들의 선박이 출입하여 상품을 실어 나르고 일본인들이 맘대로 물건을 팔 수 있는 항구를 여러 개 열어 달라고 하는 것과 자신들의 큰 선박이 안전하게 조선의 연안을 통행할 수 있도록 조선의 연안선과 연해를 동시에 탐사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둘째, 조정에서는 그들의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면 조선침략의 길을 열어주는 것과 진배가 없다고 판단하여 개항하는 항구의 수를 선진문물의 수입에 꼭 필요한 최소한으로 제한하고 조선 연안의 측량을 불허하고자 노력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본은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아니하면 작년에 발생한 ‘운요호’ 군함의 침입사건과 같은 불행한 사건이 재발할 수도 있다고 위협을 하는 한편 자신들이 습득한 서양의 선진기술을 일체 전수해주지 아니할 것이라고 주장하므로 어쩔 수 없이 조선의 조정은 상당한 양보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셋째, 그 결과 일본과 가까운 항구로서 부산포, 그리고 조선의 북쪽으로 접근하기 용이한 원산항, 더구나 한양으로 바로 들어올 수 있는 제물포까지 일본의 요구에 따라 개항이 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일본에 수신사를 수차 보내는 조건으로 조선의 연안을 측량할 수 있는 권리를 일본에 준 것인데 선비 최사권은 그 점이 마음에 크게 걸린다고 한다.
넷째, 최사권이 염려하고 있는 것은 약 300년 전에 일본이 이순신 장군에게 바다에서 크게 패전한 이유가 조선의 서해의 급류와 그 연안선의 굴곡 그리고 조수간만의 차이를 잘 몰라서였는데 이번에는 그 잘못을 시정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훗날 조선을 침략하겠다는 야욕을 벌써 드러내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일본을 통하여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조선의 개화파 조정이 그것을 허락하였으니 앞으로 어떻게 대비해야 할 것인가?
선비 최사권의 정세분석을 듣고서 사랑방에 모여 있던 손상훈과 김춘엽이 ‘후’하고 한숨을 내쉰다. 양국간의 조약이라고 하는 것이 자기 좋은대로만 체결할 수는 없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어떻게 그렇게 조선침략의 야욕이 엿보이는 요구를 거침없이 밀어붙일 수가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째서 조선의 조정은 무기력하게 받아 들일 수밖에 없는지 그 현실이 심히 안타까운 것이다.
그 모습을 보니 조선의 백성들이 조정만 믿고 있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도 있겠다고 하는 생각이 든다. 조정이 앞장을 서서 서구의 선진문물을 수입하여 강성한 조선을 만드는 것이 그렇게 위험천만한 방책이라고 한다면 백성들이 무력한 청나라만 의지하고 있는 사대주의의 긴 잠에서 깨어나 이제는 나름대로 그 대비를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렇다면, 그들 세 집안이 자신들의 힘으로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그것을 찾아서 실천을 해보자고 그들은 의견을 모으고 있다.
며칠 후 손상훈은 부친 손성규에게 선비 최사권의 사랑방에서 나눈 이야기를 요약하여 설명을 드린다. 가주 손성규 역시 염려가 크다. 그러므로 손상훈이 다음과 같이 부친 손성규에게 말씀드린다; “아버지, 평소 아버지께서 매년 수확이 되는 천석 가운데 백석만 사용을 하고 나머지 900석은 투자를 하자고 말씀하셨는데 그 일부 투자를 우선적으로 조선의 장래를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 어떨까요?”.
아들의 의도가 정확하게 무엇인지 궁금하여 손성규가 질문을 한다; “어디 좋은 생각이라도 있는 것이냐?”. 손상훈이 자신의 생각을 말씀드린다; “서양의 문물을 효과적으로 도입하고 그것을 활용하여 조선을 강성한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그러므로 양삼에 있는 서당에서 한학만 가르치지 말고 서양의 문물을 함께 가르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아들의 말을 듣고서 가주 손성규가 고개를 크게 끄떡인다. 그래서 찬성을 표한다; “옳은 말이야, 그것은 우리 집안이 할 수가 있는 일이지. 상훈이 너는 구체적인 계획을 한번 세워보도록 해라. 서당에서 서양의 문물을 함께 가르치자면 당장 선생이 필요하지 않겠느냐?”. 그것은 서당을 일종의 신식학교로 만드는 작업이다. 그 작업이 시범적으로 내남 양삼마을에서부터 이루어지고자 한다.
사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다. 월급을 주고 그런 일에 적합한 선생을 구하면 된다. 서양의 말과 일본말을 생도들에게 가르치고 서양의 문물을 흡수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가장 기초적인 서양의 학문을 그들에게 가르치면 된다. 문제는 그러한 선생을 구하는 일이다. 과연 어디에 그러한 인재가 있을까? 손상훈은 그러한 선생을 구하기 위하여 경주 읍내에 자주 발걸음을 하게 된다.
그와 같은 일은 선비 최사권과 김춘엽에게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들은 모두 같은 생각이다. 자신들의 사재를 털어서 근대교육을 서당에서 함께 생도들에게 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한 움직임이 고리타분하다고 치부하는 유교의 본거지 시골의 양반촌에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하여 발생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흥미로운 일이다.
먼 훗날 일본이 조선을 집어삼키고 보니 기이하게도 일부 서당에서 근대식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시골 양반촌에서 보게 된다. 따라서 그 가까운 곳에 우선적으로 일본식의 보통학교를 세우게 된다. 그들은 서양의 말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일본말만 가르치고자 한다. 한마디로, 조선사람들을 어릴 때부터 일본제국에 충성하는 신민으로 만들고자 보통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한 것이다.
손상훈과 김춘엽은 선비 최사권의 사랑방에서 두 달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고 있다. 개항 이후에 조선의 근대화가 어떻게 진행이 되고 있는지 전답을 많이 소유하고 있는 집안의 자제들인 그들은 관심이 큰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나누고 있는 화제가 그해 4월에는 김기수를 대표로 한 수신사가 일본에 가서 근대문물을 시찰하고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4년의 세월이 지나자 김홍집을 대표로 하는 제2차 수신사가 일본을 시찰하고 돌아온다. 그때 김홍집은 청나라 사람이 쓴 ‘조선책략’이라고 하는 문서를 구해가지고 온다. 그 문서는 일본에 주재하고 있는 청의 외교관인 황준헌이 일부러 김홍집을 만나 전해준 것이다. 개인의 의견이라고 주장하지만 그 내용은 그것이 아니다. 청나라가 조선에게 일본만 상대하여 서구의 선진문물을 받아 들이는 어리석은 외교노선을 수정하는 것이 좋다고 은근히 권고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해 3월에 조선의 지방 유생들까지 ‘조선책략’의 내용을 알게 되는데 그 이유는 조정에서 그 서적을 읽어보라고 지방에 하달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문서를 공개한 목적은 조정에서 유림의 의견을 들어보고 모종의 정책을 수립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선비 최사권은 그 ‘조선책략’의 주내용이 크게 세가지라고 말한다; 첫째, 조선은 청나라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 중요하며 둘째, 미국과 수교를 하여 일본을 견제할 필요가 있고 셋째, 얼지 않는 항구를 찾아 남하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러시아를 경계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문제가 되는 것은 러시아와 미국에 대하여 주장하고 있는 내용이 유생들의 생각과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은 1871년 신미년에 조선을 침략하여 백성들을 학살한 나쁜 나라이지만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한번도 조선을 침략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설명을 들으면서 손상훈과 김춘엽도 깊은 생각을 하게 된다. 어째서 청나라가 자신들의 외교관의 사견임을 전제로 하여 그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전통적으로 명나라나 청나라는 오랑캐를 가지고 오랑캐를 견제하는 ‘이이제이’의 술책을 잘 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러한 정책을 사용하라고 조선의 조정에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서양의 문물을 손쉽게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일본과 수교를 하는 것이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야욕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미국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는 견해이다.
또한 어째서 청나라는 남하하는 러시아에게 큰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역사적으로 명나라나 청나라가 러시아와 전쟁을 치른 적이 별로 없다. 그 이유는 러시아가 힘이 약해서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서양문물을 먼저 받아 들인 러시아가 강성해지자 남하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무지하게 겁내고 있는 청나라의 현실이다. 청나라는 서구의 침탈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로부터 청나라 왕조를 지키기에도 급급하다. 청나라의 실정이 그러하므로 그들은 이제 러시아의 남하를 막을 수 있는 힘이 없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조선의 힘이라도 빌리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손상훈과 김춘엽 그리고 선비 최사권은 그러한 점에 생각이 미치자 이제는 정말 청나라가 ‘종이 호랑이’가 되고 말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고 있다. 장차 청나라를 의지하고서는 아무런 개화정책을 추진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청나라의 군대를 가지고 일본을 막을 수도 없다. 어떻게 할 것인가?
역시 해답은 미국과 유럽의 열강들과 모두 수교하여 서로 견제하도록 하는 방법이 최선이다. 그들 세 사람이 토론하여 그러한 결론에 다다르고 있을 때에 실제로 1782년 4월에 조선의 조정이 그 정책을 시행한다. 결국에는 조선이 미국을 비롯하여 유럽의 여러 나라와 수교를 한 것이다. 장차 조선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러한 주제를 가지고 선비 최사권 집 사랑방 모임은 끊임없이 계속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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