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 할배(손진길 소설)

서배 할배23(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9. 17. 02:00

서배 할배23(작성자; 손진길)

 

해가 바뀌어 1875년이 되었다. 2월 음력설이 되자 내남 상신과 안심 그리고 박달에서는 시골 양반들이 차례를 지낸다고 부산하다. 시집온지 4달밖에 안되는 이채령은 설날 아침에 일찍 남편 손상훈과 함께 시부모님께 세배를 드린 다음 부엌에서 시어머니 이숙임을 도와 차례상을 차린다고 바쁘다.

금년 설날에는 가주 손성규가 조상에게 차례를 드리는 자리에서 특별히 며느리 이채령이를 보고서 시증조부 내외와 시조부 내외에게 재배를 하라고 말한다.  그것은 시집을 온 며느리가 처음으로 조상에게 절을 하는 것이다. 부지런한 가주 손성규는 아침에 일찍 차례를 드린 다음 아들 손상훈이를 데리고 상신 뒷산에 올라간다. 그곳에 조부 손사설의 묘와 부모님의 산소가 있기 때문이다.

성묘를 마친 다음에는 아들 손상훈에게 이채령이를 데리고 양삼마을에 가서 장인 내외가 지내는 처가의 차례에 참석을 하라고 말한다. 가주 손성규가 며칠 전 사돈 이덕화를 경주 오일장에서 만나 그러한 순서로 설날 일정을 진행했으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여 둘은 합의가 되어 있는 모양이다. 왜냐하면, 훈장 이덕화가 사위 손상훈이 도착을 하자 비로소 차례상을 차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날 이채령은 새엄마 김옥심과 함께 친정의 차례상을 차리면서 즐거워한다. 매년 자기가 준비하던 것을 금년부터는 새엄마가 하게 되니 그것이 신기하고도 즐거운 모양이다. 그런데 차례가 끝나자 훈장 이덕화가 사위인 손상훈에게 말한다; “자네 나와 함께 한 이틀 일정으로 경주 읍내와 외동 서배 마을을 다녀오면 어떻겠나?”.

손상훈은 장인 이덕화의 의도가 경주 읍내에 있는 김옥심의 친정과 외동 서배 마을에 있는 부모님의 산소를 찾아보고자 하는데 사위를 데리고 가고 싶은 것으로 이해를 한다. 그래서 눈치 빠르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 집사람 채령이를 데리고 함께 간다고 하면 저는 좋습니다”. 그 말을 듣고 훈장 이덕화는 허허라고 웃고 김옥심은 입을 가리고 웃는다.

기어코 이덕화가 웃으며 사위에게 한 소리를 한다; “그럼 채령이를 빼놓고 갈 줄 알았느냐? 걱정도 팔자구나. 상훈이 네가 혼자 가겠다고 우겨도 내가 채령이를 데리고 가려고 벌써 생각을 하고 있다. 하하하…”. 손상훈과 이채령이가 금슬이 참 좋은 것으로 보여서 훈장 이덕화는 흐뭇하기 그지없다. 이덕화는 주위를 둘러 보면서 모두에게 말한다; “오전 늦게 차례를 지냈으니 아예 식사를 든든히 하고 경주 읍내로 출발을 하도록 하자. 가는 걸음에 너븐들에 들러서 사돈에게 동행을 하실 의사가 있는지도 여쭈어 보자꾸나”.

그날 경주로 가는 일행이 늘어났다. 지주 손성규가 부인 이숙임과 함께 가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주까지 가는 길이 즐거우면서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바깥사돈끼리 이야기가 많고 안사돈끼리도 이야기가 끊이지를 않으니 걸음이 느리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경주 읍내에 있는 김옥심의 오빠 집에 도착하니 시간이 오후 4시나 되었다.

김종민 내외와 모친 그리고 김춘엽 내외는 정초에 6명의 손님이 갑자기 찾아왔는데도 전혀 놀라지를 않는다. 손님의 정체가 사위 내외와 사돈 내외 그리고 딸의 사위 내외이니 모두가 귀한 손님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즐겁게 환영을 하면서 저녁상을 크게 차린다. 그리고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면서 아예 돼지고기 안주와 함께 술상까지 내어온다.

그렇게 경주 읍내에서 하룻밤을 유숙하고 나자 다음날 아침에는 김종민 내외와 김춘엽 내외가 함께 서배 마을로 가겠다고 나선다. 그래서 외동 서배 마을을 찾아가는 일행이 10명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서배 마을에 있는 김춘엽의 집에서 일단 피곤한 다리를 좀 쉬었다. 집에 돌아온 김춘엽의 처 이가연이 동무 이채령과 함께 급히 부엌으로 들어가서 설날 음식 싸온 것을 가지고 술상을 차려서 내온다.

아예 점심식사를 한 다음 지주 손성규 내외는 그 집에서 좀더 쉬기로 하고 나머지 사람들을 성묘에 나섰다. 몇달 전에 손상훈 내외는 성묘를 한 적이 있어서 그 산소들이 별로 낯설지가 않다. 그런데 김옥심은 이채령의 생모의 산소에 재배를 하면서 산 사람에게 말하듯이 다짐을 한다; “제가 부족하지만 성심성의껏 채령이 아버지를 잘 모시고 또한 채령이의 좋은 친정 엄마가 되겠습니다. 지켜보아 주시고 잘 돌보아 주세요. 감사합니다”.

성묘가 끝난 다음에 이덕화 내외와 손상훈 내외가 김춘엽의 집으로 돌아오니 벌써 김종민 내외가 성묘를 마치고 돌아와서 지주 손성규 내외와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그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져서 그날 늦은 오후부터  김종민과 손성규 그리고 이덕화가 사랑방을 차지하고서 밤 늦도록 이야기를 나눈다. 그와 달리 안채 옆방을 차지하고 있는 부인들 곧 이숙임과 정해옥 그리고 김옥심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피곤하지 잠이 들고 만다.

그런데 안방에서는 이가연과 이채령이 무엇이 그리 재미가 있는지 깔깔깔웃음소리가 그치지를 않는다. 그에 비하면 사랑채 옆방을 차지하고 있는 김춘엽과 손상훈은 그 분위기가 무겁다. 그들의 화제가 심각한 것이기 때문이다. 25세가 된 그들은 조선의 장래가 어떻게 될지에 관하여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그러나 식견과 경륜이 부족하여 마치 구름을 잡는 것과 같다. 따라서 그들은 내일 내남 덕천으로 선비 최사권을 한번 찾아가보자고 합의를 한다.

다음날 아무 예고도 없이 불쑥 손상훈 내외와 김춘엽 내외가 최사권의 집을 방문하고 있다. 작년 12월초에 그들이 방문한 후 2달 남짓 지난 시점이다. 마침 출타를 하지 아니하고 있는 최사권이 참으로 반가워한다. 그리고 손예린은 이채령과 이가연을 안방으로 몰아넣고 얼른 사랑방에 상을 차려준 다음 작은 상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간다. 정초부터 함께 실컷 재잘재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사랑방을 차지하고 있는 남자 3사람은 식사를 한 다음 정종과 막걸리를 연거푸 나누어 마시면서 그 분위기가 자꾸만 무거워진다. 손상훈과 김춘엽이 선비 최사권에게 조정의 개화파 대신들이 어떻게 개화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보느냐고 물었기 때문이다.

선비 최사권은 자신이 경주 교리의 향교를 방문하여 들은 이야기와 한양에서 경주 최부자집을 방문한 벼슬아치에게서 들은 최신 소식을 전해준다. 물론 많은 소식 가운데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합당한 견해를 간추려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조정에서는 어느 나라와 가장 먼저 국교를 맺는 것이 좋은지에 관하여 갑론을박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유럽의 강대국들과 일본 그리고 러시아와 미국이 모두 조선의 조정에 개방과 통상을 요구하면서 국교를 수립할 것을 요청하고 있는데 조선이 어느 나라와 먼저 관계를 맺는 것이 유리한가? 하는 것이다.

둘째, 선비 최사권은 아마도 그 대상이 일본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만약 상대국이 조선을 차지하겠다고 침략을 할 경우 일본을 상대하는 것이 가장 유리하기 때문이다. 300년 전에 일본이 대규모로 조선을 침략한 적이 있는데 그때 조선은 명나라와 함께 그들을 물리친 경험이 있다. 그러므로 일본이 야욕을 드러낸다고 하더라도 청나라의 도움을 받아 함께 막아내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타의 나라들은 그 힘이 청나라보다 강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함부로 그들에게 나라의 문을 열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설명을 들은 손상훈과 김춘엽은 아찔한 생각이 든다. 나라의 문을 연다고 하는 것이 서구의 발전된 문명을 받아 들이는 측면에서는 꼭 필요한 것이지만 자칫 그들이 조선을 점령하고자 하는 욕심을 부리게 되면 조선이 망할 위기에 봉착하기 때문이다. 결국 조선의 힘이 약한 것이 문제이다. 자립 자주 자강의 토대가 마련이 되어 있지 아니하면 외세는 항상 위험한 존재이다.

어디 나라만 그러한가? 개인과 가문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하는 것이 죄악이다. 자손들이 외세의 종 노릇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선과 청나라를 제외하고 바깥세상이 그렇게 힘이 세어지고 발전하고 있는 동안에 과연 조선의 조정은 무엇을 한 것일까? 미래에 대한 아무런 대비가 없이 그저 세도정치에 매어 달려서 자신들 가문의 부와 권력만을 추구한 것이 아닌가? 그 지나간 60년 세월이 참으로 애석하고 비통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하도 답답하여 손상훈과 김춘엽이 선비 최사권에게 묻는다. 최사권은 우선 한숨부터 쉰다. 그 점에 대해서는 앞으로 발생하는 조정의 정책을 보고서 다시 논의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당장 조선의 경제를 발전시키고 국력을 강하게 만들 그러한 비책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먼저 개화를 한 일본에게서 배워야 할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날 그들은 그러한 이야기를 나누고 일박을 하고서 헤어진다. 그런데 그들이 나눈 이야기에서 별로 벗어나지 아니하는 조선의 개화정책이 다음해에 나타나게 된다. 그것이 이름하여 1876년에 일본과 맺게 되는 강화도조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