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 할배20(작성자; 손진길)
첫날밤을 지낸 신랑 손상훈은 신부 이채령과 함께 아침에 부모님께 문안의 절을 올리는 것으로 평범하게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있다. 다만 평상시와 다른 점 하나가 있다. 그것은 부친 손성규를 따라 신랑신부가 너븐들 뒷산에 자리를 잡고 있는 증조부인 손사설과 조부인 손성익의 묘소에 참배를 다녀온 것이다.
새 신랑과 새 신부에 대해서도 그렇게 간소하게 혼례를 치르고 다음날부터 새 생활을 시작하도록 지주 손성규가 조치를 하고 있다. 허례허식을 별로 찾아볼 수가 없는 지주 손성규의 일상이다. 그 점을 일찍 시집을 간 손상훈의 누나 두 사람이 익숙하게 알고 있다. 따라서 그녀들은 모두 첫날 혼례식만 구경하고 부모님께 인사를 드린 후 남편들과 함께 시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부터 시어머니 이숙임은 며느리 이채령에 대하여 신부수업을 시작한다. 본래는 며느리가 시집을 오기 전에 친정어머니로부터 신부수업을 착실하게 받아서 와야 하지만 이채령의 경우에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친정어머니가 10년전에 작고를 하고 아니 계셨기 때문이다.
천석꾼 살림을 살고 있는 안방마님 이숙임은 신부수업 첫날에는 이채령에게 시집의 가옥의 구조부터 설명을 한다. 전체적으로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곳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에는 안방에 큰 부엌이 딸려 있는데 그 사이에 상을 들여 놓을 수 있는 작은 문이 하나 있다. 그리고 안방에 일자로 연결이 되어 있는 옆방이 세 개나 된다. 이숙임의 슬하에 두 딸과 아들 하나가 있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방을 하나씩 준 것으로 보인다.
사랑채는 안채와 약간 떨어져서 직각으로 건축이 되어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니은 자’ 형태의 큰 기와집이다. 사랑채에는 사랑방이 있고 그 옆으로 두개의 방이 더 있다. 가주인 손성규가 사랑방을 사용하고 손님으로 남자분들이 많이 오면 그 옆방들을 사용하는 것이다. 물론 여자 손님들이 오면 안방 마님인 이숙임이 안방이나 그 옆방을 사용하여 손님을 대접하고 있다.
사랑방에 군불을 떼기 위하여 아궁이를 별도로 만들어 두고 있는데 그 위에는 큰 가마솥이 얹혀져 있다. 그것은 물을 데우고 또한 쇠죽을 쑤기 위한 것이다. 편리하게 그 옆에 외양간이 붙어 있다. 그리고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약간 떨어져서 뒷간이 있으며 그 옆에 퇴비를 만드는 장소가 별도로 만들어져 있다.
신부인 이채령이가 자신의 집에서는 일찍이 보지 못한 큰 곳간이 시집에 있다. 사랑채에서 마주 보이는 위치에 일자로 지어져 있는 곳간의 규모가 상당하다. 천석꾼의 집안이므로 그곳에 쌓아 두어야 하는 곡식의 양이 천 가마니에 이를 것으로 보면 그 규모를 능히 짐작할 수가 있다. 그리고 안채의 부엌에서 크게 멀지 아니한 지점에 우물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 우물은 깊고도 넓다. 그러므로 큰 살림을 살기에도 충분한 양의 우물물을 두레박으로 길어 올릴 수가 있다. 물론 집안의 빨래는 우물가에서 하는 것이 아니다. 집을 벗어나 오른쪽으로 논이 있는 곳으로 나서면 전답이 끝난 지점에 큰 시내가 흘러가고 있다. 그곳에 큰 돌이 여럿 놓여 있는 곳이 빨래터이다. 그 뒤에는 작은 언덕이 있고 나무들이 자라고 있어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다.
집을 나서서 왼쪽으로 진행하면 그곳에 더 넓은 전답이 펼쳐지고 있다. 그곳 전답이 끝나는 지점에는 작은 시내가 흐르고 있으며 군데 군데 시냇물을 모으고 있는 여러 개의 보가 설치되어 있다. 보의 주위에는 양쪽으로 나무를 심어 작은 숲을 이루도록 만들고 있다. 그 이유는 한여름이 되면 저녁에 동네사람들이 그 보에 와서 시원하게 목간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바깥에서 그 보가 직접 보이지 아니하도록 조치한 것이다. 물론 남녀노소가 따로 이용할 수 있도록 큰 보가 4개나 뚝뚝 떨어져서 위치하고 있다.
특히 집의 뒤쪽에는 제법 큰 규모의 텃밭이 자리를 잡고 있다. 부식용 야채를 그곳에서 키우고 있다. 그러므로 부인들이 신경을 써서 식물을 키우고 김을 매는 곳이 바로 그 채전밭이다. 10월 중순이라 그곳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이 별로 없다. 이제 김장을 하기 위하여 밭에 남겨두고 있는 배추와 무우 정도이다.
그렇지만 이숙임 마님은 새 며느리 이채령에게 자신의 채전밭을 자랑스럽게 보여준다. 그곳에서 그녀가 직접 키운 야채로 그동안 부식을 해결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키우고 있는 배추와 무우로 다음달이면 김장을 할 것이다. 이미 그곳에서 키운 고추와 콩으로 고춧가루를 만들어 두고 메주를 쑤었다. 그리고 들깨와 참깨도 수확하여 넉넉하게 들기름과 참기름도 짜 두고 있다. 그렇게 살림솜씨가 알뜰한 마님 이숙임이다.
시어머니의 설명을 들으면서 이채령은 자신의 집에서는 일찍이 보지 못한 그 큰 곳간의 규모에 놀랐다. 그리고 채전밭도 엄청 넓다. 그 넓은 채전밭을 시어머니가 홀로 경작을 했다고 하니 대단한 농사꾼이다. 더구나 이채령의 친정아버지는 훈장이므로 친정집은 작고 외양간이 없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외양간도 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그만큼 많은 것이다. 남편이 외아들이므로 하나뿐인 며느리 자신이 시어머니를 도와 그 일을 모두 감당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새 신부 이채령은 각오를 단단히 다지면서 열심히 시어머니로부터 일을 배우고 있다.
시어머니 이숙임은 며느리 이채령이 다부진 성격임을 알고 있다. 일을 가르쳐보니 빨리 배우고 또한 집안일에 능숙하다. 혼자서 10년간 친정아버지를 모시고 살림을 살아온 경험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 하지만 여전히 천석꾼 지주집의 살림을 살기에는 배워야 할 것이 많다. 명절 때와 제사가 있을 때에는 어떻게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지 그리고 일가들이 찾아오면 어떻게 상을 보아야 하는지를 모두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이채령이 시어머니 이숙임보다 나은 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친정아버지가 훈장이며 선비이기 때문에 일찍부터 한문을 배워서 학식이 상당한 것이다. 그리고 언문으로 된 서적도 많이 읽었는지 꽤 유식하다. 안방마님 이숙임은 이제 시대가 개화기로 접어들려고 하므로 여성들도 유식하고 학문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채령을 며느리로 맞이한 것이 시대에 맞는 좋은 일이라고 여긴다.
시집온지 열흘쯤 지났을 때에 이숙임 마님이 며느리 이채령에게 조용히 말을 한다; “새 아기야, 시집온지 열흘이 지났으니 새 신랑과 함께 친정나들이를 다녀오도록 해라. 새엄마가 들어왔는데 아직 이야기도 제대로 나누지 못했지 않느냐? 내가 네 신랑에게 말을 할 터이니 내일이라도 하루 다녀오도록 해라. 친정나들이에 필요한 것은 내가 오늘 미리 준비를 해 두마”. 참으로 자상하고 배려가 깊은 시어머니 이숙임이다.
그날 밤 부엌일을 모두 끝낸 후에 이채령이 남편 손상훈의 품에 안겨서 내일 친정나들이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모처럼 하루 허락을 받고 친정에 다녀올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은 지 모른다. 더구나 시어머니가 준비하여 주신다는 넉넉한 먹거리를 가지고 가게 되었으니 마음이 뿌듯한 것이다. 손상훈도 사랑하는 이채령이와 함께 훈장선생님 내외를 찾아 뵐 수 있게 되니 그것이 마냥 좋다.
이제는 장인이며 장모이다. 내일 찾아가면 자신들에게 어떤 말씀을 해 주실 것인가? 그리고 장모님이 되신 김옥심은 어떤 성품의 분이실까? 당장 내일 방문하여 절을 하고 말씀을 나누어 보면 잘 알겠지만 당장은 궁금한 손상훈이다. 밤늦도록 신부 이채령이 참으로 좋아라고 하니 자신이 괜히 기분이 좋다. 흔히 ‘자식 바보’가 있다고 하더니 손상훈이야 말로 ‘아내 바보’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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