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 할배(손진길 소설)

서배 할배17(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9. 16. 08:21

서배 할배17(작성자; 손진길)

 

때는 18746월 중순이다. 바쁜 모내기철이 끝나고 논에서는 벼가 자라기를 시작하고 있다. 내남의 농부들이 한숨을 돌리고 있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던 모내기가 일단은 끝났기 때문이다.

가쁜 숨을 돌리고 있는 그 틈을 보아 손상훈은 내남 구왕골에 살고 있는 큰 당숙의 집을 찾아가고 있다. 그의 목적은 부친보다 9년이나 연상인 큰 당숙 손성구에게 문안인사를 드리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사실 자신과 동갑인 재종 손형을 만나고자 하는 것이다.

2달 전에 경주에서 내남으로 오는 길에 손상훈은 6촌간인 손형의 바로 위의 누나 손예진과 그의 남편인 최사권을 우연히 조우했다. 그때 내남 덕천의 천석꾼의 아들인 최사권이 자신의 손 아래 처남 손형과 함께 자기 집에 한번 놀러 오라고 초청을 한 것이다.

손상훈은 동갑인 손형의 집을 찾아가는 것이 조금은 쑥스럽다. 그 이유는 몇 해 전에 손형이 벌써 결혼을 하고 슬하에 딸 하나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엄밀하게 따지면 손형이 11월생이므로 자신보다 몇 달 연하이다. 그런데 벌써 딸 자식을 보고 있다. 그러니 노총각인 자신이 결혼을 한 동갑내기 재종 형제의 집을 찾아간다고 하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를 데리고 자형인 최사권의 집을 방문하자면 어쩔 도리가 없다.

손상훈이 먼저 사랑방에서 큰 당숙 손성구에게 문안인사를 드리고 나오는 것을 보고 손형이 그를 놀리고 있다; “허허, 노총각 오래간만이야. 이거 형 집에 찾아오니 기분이 어떤가?”. 손상훈은 손형이 그를 놀리더라도 어쩔 수가 없다. 그는 제 나이에 결혼을 했고 손상훈 자신은 수년간 결혼이 늦어지고 있으니 놀릴 만도 한 것이다.

조선의 고종시대에는 24살이나 먹은 노총각이 별로 많지가 않다. 그렇지만 면전에 대고 자신을 놀리고 있으니 손상훈의 말이 곱지가 않다; “그래 손형아, 제수씨는 계시는가?”. 손형도 지지 않는다; “여보게 상훈이, 내가 결혼을 먼저 했으니 형님이 아닌가? 제수씨가 아니라 형수라고 한번 불러보게나…”.

농담 진담 반의 언쟁을 부엌에서 들었는지 손형의 아내인 경주 최씨 최인옥이 부엌문을 열고 나오면서 얼른 재치 있게 인사를 한다; “아이구, 너븐들 아주버님께서 오셨군요. 오래간만입니다”. 참으로 총명하고 기지가 있는 최인옥이다. 그 인사말을 듣고서 손상훈도 그냥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형수님, 오래간만에 뵙겠습니다. 무고하셨지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손형이 머슥하여 한마디를 한다; “허허, 형님이 결혼이 늦어지니 동생으로 처신도 하는구만. 그러니 빨리 장가를 가세요. 3달 맏이 형님…”. 손상훈이 내심 혼자서 생각한다; ‘손형이가 그래도 자신이 동생인 것은 잘 알고 있구만. 나도 빨리 이채령이와 결혼식을 올려야지…’.

그날 손상훈은 손형을 데리고 덕천에 있는 자형 최사권의 집을 찾아갔다. 손형도 2살 위의 누나 손예진과 많이 친했기 때문에 그 집을 방문하는 것을 좋아하고 있다. 마침 최사권이 집에 있다가 참으로 반갑게 손아래 처남인 손형과 재종 처남인 손상훈을 반긴다. 사람 사귀기를 좋아하는 활달한 선비 최사권의 면모가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

손예진도 동생들이 왔는지라 맛있는 것을 많이 챙겨주려고 한다. 최사권의 집안이 덕천에 있는 천석꾼의 부자 집안이라 떡이며 꿀이며 유과며 먹을 것이 풍성하다. 그런데 최사권은 월성 최씨이지만 경주 최씨로 불리기를 좋아한다. 그 이유는 월성 최씨의 부자집이라고 하면 경주와 월성사람들이 교리 최부자 집안을 먼저 손에 꼽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집안도 천석꾼 부자인데 그렇게 후순위로 밀리고 있는 것을 그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사실 내남 이조와 덕천 일대에는 옛날부터 월성 최씨들이 많이 살고 있다. 그들의 조상은 전부 신라말의 대학자이며 현인인 최치원이다. 경주 최씨 역시 그 시조가 최치원이다. 그러므로 경주 최씨나 월성 최씨나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성 내남 이조에서 큰 부자로 성장하여 경주 교리로 이주한 최국선의 후손들을 월성 최씨라고 부르고 있다. 그것은 다분히 경주읍에 오래 살고 있던 경주 최씨들이 자존심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이조 바로 서쪽 마을 덕천에 살고 있는 최사권의 집안도 마찬가지이다. 괜히 같은 월성 최씨이지만 이제 경북에서 유일하게 만석꾼이 된 최국선의 집안을 생각하면 자격지심이 드는 것이다. 따라서 스스로 자신들은 경주 최씨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남 사람들은 그들을 정확하게 월성 최씨라고 부르고 있다. 사실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산소를 쓰는 문제에 있어서도 최사권의 집안과 조천 최부자는 다르다. 조천 최부자는 조선시대에 외남면 동쪽산지에 묘를 섰다. 반면에 기타 월성 최씨들은 그 서쪽산지에 묘를 썼다. 따라서 1906년에 경주 월성 외남면이 울주의 두북면이 되고 더구나 1910년 조선총독부에 의하여 울주군 두북면이 신작로를 사이에 두고 두동면과 두서면으로 갈라지고 나자 그 산지의 지명이 판이하게 달라진다.

조천 최부자의 선영은 두동면에 있게 되고 기타 월성 최씨들의 묘소는 두서면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남 구왕골에 살고 있는 손성구가 부친 손익채의 무덤을 울주군 두서면의 산지에 쓰고 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의 셋째 사위가 최사권이기 때문이다.

최사권은 교리 최부자의 10대 가주가 된 최만희와도 친하지만 그 부친인 최세구와도 친분이 있다. 나이로 따지면 최사권은 최만희보다 조금 적고 최세구보다는 월등히 한 세대나 차이가 난다. 그렇지만 경주 최씨와 월성 최씨의 문중에서는 그의 비중이 상당하다. 왜냐하면, 경주 일대의 유림에서 최사권은 인지도가 높은 젊은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최사권은 내남 덕천에 살고 있는데 그 동쪽 이조 부락에 최세구가 살고 있다. 최세구는 교리 최부자의 9대 가주인 친형 최세린을 도와서 일찍부터 이조의 논과 밭을 관리했다. 그의 아들 최만희가 최세린의 양자가 되고 15세에 제10대 가주가 되자 교리 최부자의 살림을 대신 관리를 한 인물이다. 마치 그는 고종시대의 대원군과 같은 입장이다.

그러한 최세구가 최씨 문중의 일을 젊은 이웃인 최사권과 논의를 많이 하고 있다. 그만큼 최사권의 학식과 경륜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물론 경주 교리에 살고 있는 최만희도 대단한 인물이다. 20여세가 넘어서자 더 이상 생부 최세구가 가르칠 것이 없다. 따라서 최만희는 25세쯤 되었을 때부터 경주 일원에서 그의 수완을 칭송하는 소리가 자자하다.

그렇지만 내남 이조에 살기를 고집하고 있는 그의 부친 최세구는 문중의 일을 젊은 선비 최사권과 논의하는 것이 더 편한 것이다. 그 이유는 최사권의 가문을 활용하여 전체 월성 최씨와 하나의 목소리를 만들어낼 수가 있고 또한 경주 최씨와의 협조도 원활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신임을 최세구로부터 얻고 있는 최사권인지라 내남의 지역사회에서 그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그러므로 처조부의 무덤을 두서면에 쓰는 것 정도는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는 처가의 일이라고 하면 언제나 발벗고 나선다. 그 이유는 자신보다 13살이나 연하인 예쁜 아내 손예진을 참으로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남 손형의 혼사에 있어서도 자신의 일가 형님인 최사길의 딸이며 재녀인 최인옥을 적극 며느리감으로 추천하여 혼인을 성사시킨 바도 있다.

그러한 월성 최씨의 숨은 실력자 최사권의 도움을 훗날 손상훈이 많이 받게 된다. 당장은 재종 자형인 최사권의 달콤한 사랑이야기를 듣고서 자신이 이채령을 어떻게 연인으로 잘 상대해야 하는지를 배우게 된다. 간간이 남자들의 대화 가운데 6촌 누나 손예진이 끼어 들어서 여자의 입장에서 훈수를 한다. 손상훈은 그들 부부의 연예담이 참으로 흥미롭고 유익하다. 하지만 이미 결혼을 하여 딸자식까지 두고 있는 손형은 그 옆에서 마냥 하품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