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 할배(손진길 소설)

서배 할배21(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9. 17. 01:56

서배 할배21(작성자; 손진길)

 

1015일에 혼인을 한 새 신랑 손상훈은 열흘이 지난 26일에 새 신부 이채령을 데리고 처가 나들이에 나선다. 열흘동안 자신의 며느리가 된 이채령에게 시집살이의 요령에 대하여 이것저것을 가르쳐본 시어머니 이숙임은 상당히 만족하고 있다. 친정에서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자 9살때부터 10년동안 부친의 삼시 세끼를 챙기며 집안 살림을 살았다고 하더니 과연 똑똑하고 야무진 것이다.

천석꾼 살림을 도맡아서 살고 있는 안방마님 이숙임은 그 살림솜씨가 알뜰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시집온 이후 30년 세월을 오로지 개간일에만 매어 달리고 있는 남편 손성규를 뒷바라지하면서 세 자녀를 낳아 기르고 억척같이 집안살림을 살아온 철의 여인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시어머니가 인정을 한 며느리 이채령이니 그 신랑인 손상훈이 기뻐할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은 이숙임 여사가  싸준 음식보따리를 들고서 즐겁게 이웃 양삼마을로 가서 훈장 이덕화의 삽짝문을 들어선다. 마침 사랑방의 문을 열어 놓고 책을 읽고 있던 선비 이덕화의 눈에 그들이 들어온다.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디딤돌 위의 신발을 신었는지 안 신었는지도 모르게 댓바람에 마당으로 나선다. 먼저 딸 이채령의 손부터 잡는다. 이덕화는 딸의 눈을 쳐다보면서 말을 못하고 한참을 뻔히 그냥 서있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십년 세월을 타향인 양삼마을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아온 단 두 사람의 혈육이 아닌가. 그 외동딸이 시집을 가서 이제 열흘이 지나 처음 친정나들이를 온 것이니 말이다. 미처 말로 풀어내지 못하는 그 진한 혈육의 정이 서로의 시선을 통하여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서 손상훈이 고개를 숙이며 대신 말을 한다; “장인어른, 저 상훈이 입니다. 처음으로 처가에 온 사위를 마냥 마당에 세워 두실 것입니까? 그러면 여기서 큰절을 올릴까요?”.

훈장 이덕화가 그제서야 사위 손상훈을 돌아본다. 그리고 환한 얼굴로 말을 건넨다; “잘 왔네 사위. 당연히 사랑방에 들어가서 절을 해야지. 먼저 채령이를 데리고 사랑방으로 들어가게. 내가 집사람을 찾아서 함께 들어갈 터이니…”. 마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 소동을 김옥심은 부엌에서 벌써부터 귀로 듣고 있다. 그러나 선뜻 나서지를 못하고 있다. 자신도 훈장 이덕화와 혼례를 치른지 아직 열흘이 되지도 않는 몸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낌새를 훈장 이덕화가 벌써 알고 있다. 그래서 두사람이 사랑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서 얼른 부엌으로 들어간다. 김옥심은 37살이 되도록 청상과부로 살아온 자신이 갑자기 딸도 생기고 이제는 사위의 큰절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당황스럽다. 훈장 이덕화와 재혼을 했으니 당연한 신분의 변화인데도 그것이 갑자기 적응하기에는 쉽지가 않다. 우선 얼굴부터 붉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한 김옥심의 입장을 훈장 이덕화는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그는 이 좋은 날 딸 이채령이 이제는 애비 걱정을 하지 아니하고 편하게 시집살이를 할 수 있도록 자신이 김옥심과 재혼을 하여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따라서 조용히 김옥심의 손을 잡으며 말을 한다; “옥심이, 내가 당신 좋아하는 것 알지. 내 딸 채령이도 당신을 좋아해. 이제 딸 채령이를 잘 보살펴 달라고 사위 손상훈의 큰절을 받고 친정부모가 당부를 해야 해. 옥심이 당신은 내 아내이자 채령이의 친정 엄마이고 손상훈의 장모야. 나하고 사랑방으로 함께 들어가자고…”.

김옥심은 남편 이덕화가 손을 잡아 끌기 때문에 다과상이라도 보아서 들어가려고 하던 생각을 접고 함께 사랑방으로 들어간다. 그 방에 앉아 있던 손상훈과 이채령이 얼른 일어서서 두사람을 맞이한다. 이덕화와 김옥심이 좌정을 하자 두사람이 큰절부터 드린다. 훈장 이덕화가 먼저 말을 한다; “편히들 앉게. 이제는 내가 홀몸이 아니야. 지난 17일날 내게도 아내가 생겼거든. 상훈이는 장모에 대하여 궁금한 것이 있으면 이 시간에 마음껏 물어보게나. 하하하…”. 환하게 웃으면서 겸연쩍어 하는 김옥심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있는 훈장 이덕화이다.

그 자리에 앉아 있던 김옥심이 갑자기 몸을 일으키면서 말한다; “여보, 처음으로 처가나들이 온 사위에게 무엇 마실 것이라도 좀 주고서 말을 시켜야지 어떻게 그렇게 맨입에 말하게 하세요? 제가 금방 부엌에서 다과라도 챙겨 올께요”. 훈장 이덕화가 그 말에 금방 응수를 한다; “, 사위사랑은 장모라고 하더니 당장 사위 앞에서 남편에게 야단부터 치시는구만. 알았으니 빨리 한 상 차려오세요”.

그 모습을 보고서 이채령이가 뒤에 놓아둔 음식보따리를 집어 들면서 말한다; “어머니, 제가 시집에서 가져온 음식이 여기 있습니다. 부엌에 가지고 가서 다과상을 제가 차려올 터이니 그냥 앉아 계십시오”. 이채령이 자연스럽게 어머니라고 불러주자 김옥심은 고마운 생각이 먼저 든다. 그래서 말을 한다; “딸이 처음으로 친정나들이를 왔으면 편히 쉬다가 가도록 해야지, 어떻게 친정 엄마가 딸에게 부엌일을 시키겠나? 그대로 앉아 있는 것이 도리야”. 이채령이 고분고분하게 순종을 한다. 그 모습을 보고서 훈장 이덕화가 훈훈하게 웃고 있다.

다과상이 들어오자 평소 못 보던 맛난 음식들이 많이 차려져 있는 것을 보고서 훈장 이덕화가 한마디를 한다; “허허, 우리 채령이가 시집에서 귀여움을 많이 받고 있구나. 내가 맛있게 먹을 터이니 시어머님께 감사하다고 전해다오”. 그러자 아내 바보인 손상훈이 말을 한다; “그럼요, 우리 채령이가 얼마나 잘하고 있는데요. 제가 다 기분이 좋답니다”. 그 말을 듣고 이덕화가 허허라고 웃는다. 장모가 된 김옥심도 금슬이 좋은 두사람을 보고서 슬며시 고개를 끄떡인다.

그날 손상훈과 이채령은 재혼을 한 훈장 이덕화와 김옥심의 사이 좋은 모습을 보고서 마음속으로 큰 위안을 받았다. 이채령은 자신이 시집을 가고 나면 부친의 수발을 누가 들어 주어야 할지를 몰라서 걱정이 많았는데 그렇게 두 분이 오붓하게 잘 지내시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기분이 좋다.

손상훈이 처가를 나설 때에 장인 이덕화가 슬며시 그에게만 작은 소리로 당부의 말씀을 한다; “시간이 나면 잊지 말고 채령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외동 서배 마을을 함께 다녀오게나. 그곳에는 채령이 조부모 및 생모의 산소가 있네. 그리고 새 장모의 조카가 되는 김춘엽 부부도 그곳에 살고 있다네. 자네와는 나이도 비슷하니 좋은 친구가 될게야”.

그 당부의 말씀을 손상훈이 잊지 않고 있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서 모친에게 장인의 인사말씀을 전할 때에 슬쩍 그것도 자연스럽게 그 부탁을 하려고 한다; “어머니, 잘 다녀 왔습니다. 그런데 챙겨 주신 음식이 맛있다고 장인어른이 참 좋아하시던데요”. 이숙임 여사가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입에 맞으셨다니 다행이다. 그러면 고단할 터이니 채령이와 함께 좀 쉬도록 하려무나”.

손상훈이 갑자기 생각이 난 듯이 슬며시 그 부탁의 말씀을 모친에게 꺼내고 있다; “, 어머니, 제가 언제 시간을 내어 채령이를 데리고 외동 서배 마을에 한번 다녀오면 안될까요? 그곳에 처조부모님의 산소가 있다고 하는데요…”. 이숙임 여사가 동의를 한다; “옳은 말이야. 수일 내로 한번 함께 다녀오도록 해라. 그것이 자손이 된 도리이지. 알겠다. 그때는 내가 챙겨줄 터이니 술과 안주를 싸가지고 가서 상석에 차려드리도록 해라”. 아들이 어렵게 꺼낸 말에 참으로 좋은 답을 주시는 자상한 이숙임 여사이다.

그 말씀 그대로 일주일 후에 손상훈 부부는 외동 서배 마을을 찾아가고 있다. 경주 읍내에서 불국사와 울산으로 가는 길을 따라가면 괘릉 근방에 있는 서배 마을까지는 30리 길이나 된다. 그러나 내남에서 남산의 남쪽 자락을 타고 동쪽으로 바로 빠져 나가면 서배 마을이 훨씬 가깝다.

서배 마을은 그 본래 이름이 섶 마을이다. 여기서의 섶을 지고 불에 뛰어 든다고 하는 그 짚단인 이 아니고 물가 가장자리라는 말이다. 여러 시내가 흐르고 시냇물이 풍성하므로 그 지역을 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크게 두개의 방천이 있다. 그래서 상섶 마을하섶 마을로 불리고 있다.

손상훈은 상섶으로 가서 주민들에게 물어 처조부모의 묘와 이채령의 생모의 산소를 찾았다. 이채령이와 함께 조상들의 묘에 절을 하면서 자신들이 부부가 되었음을 고했다. 그리고 상석에 차린 음식으로 산소 부근에 고시내를 하고 음복을 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동네에 들러 김춘엽이 살고 있는 집을 찾았다.

경주 김씨와 김해 김씨 그리고 인주 이씨가 더불어 사이 좋게 살아가고 있는 양반마을이라 나그네에게 무척 친절하다. 따라서 금방 그 집을 찾을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처음 방문하는 집이라 조심스럽게 삽짝문 앞에 서서 큰소리로 주인을 불렀다; “주인장 계십니까?”. 마침 주인내외가 집에 있다가 두사람을 보고서 일순간 어리둥절한다. 생전 처음보는 남녀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고모인 김옥심이 혼례를 올릴 때에 내남 상신을 방문하여 축하를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때 하객이 너무 많았기에 누가 누구인지 지금은 전혀 식별하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서 손상훈이 자신과 이채령에 관하여 자세하게 설명을 한다. 김춘엽이 고개를 끄떡이는데 그 옆에 서있던 김춘엽의 아내 이가연이 갑자기 탄성을 지른다; “그러면 네가 이덕화 숙부의 딸 이채령이 아니냐? 어릴 적 내 동무 채령이가 맞지? 채령아”.

그 소리를 듣고 이채령도 깜짝 놀라며 다음 순간 큰소리로 말한다; “맞아 내가 채령이야. 그러면 너는 내 동무이고 일가인 이가연이겠구나!”  자신의 이름을 채령이가 기억을 해내자 이가연이 너무 기뻐서 왈칵 채령이를 껴안는다. 그러면서 울먹이면서 말을 꺼낸다; “채령이가 맞구나. 내 어릴 적 소꿉친구 채령이가 맞아. 내가 부인 티가 나서 네가 먼저 못 알아본 모양이구나. 내 아버지가 바로 이종흠 선비야. 네 아버지는 이덕흠 선비이고. 우리 모두 인주 이씨이지”.

두 여인이 어릴 적 동무이며 일가라는 사실을 알고서 김춘엽은 손상훈 부부가 남이 아니라고 여긴다. 더구나 지금 그들은 고모 김옥심의 딸과 사위가 아닌가? 남이 아니고 말고그래서 김춘엽 부부는 점심식사를 차리면서 반주를 겸하여 내온다. 손상훈 부부는 그날 김춘엽 부부의 환대를 얼마나 잘 받았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들에게 다음에 내남 너븐들로 자신들을 한번 찾아오라고 초대를 한다.

그날 김춘엽은 자신이 어째서 경주 읍내에 살고 계시는 부모님을 떠나 고향 서배 마을에 분가를 했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고향인 서배 마을에 부모님이 사둔 논밭이 많아서 그것을 가까이에서 관리하기 위한 것이다. 둘째, 자신이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이다. 개인적으로 경주 김씨인 자신의 집안이 괘릉에 잠들어 있는 신라 제38대 원성왕의 후손들이다. 물론 더 멀리는 신라 제17대 내물왕의 자손이다. 왜냐하면, 원성왕이 내물왕의 12세손이기 때문이다.

김춘엽은 자신들의 직계조상인 원성왕이 경주 읍내에서 30리나 떨어진 이곳 물 많은 고장에 묻히게 되자 그의 후손들이 섶 마을에 모여서 살게 된 것이라고 설명을 한다. 그 말을 들으면서 손상훈은 자신들 곧 월성 손씨들이 내남에 많이 모여 살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조상들이 그곳에 묻혀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있다. 그러므로 고향산천을 잘 지키는 것이 효도라는 생각을 거듭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