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 할배(손진길 소설) 96

서배 할배36(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36(작성자; 손진길) 1895년 4월 17일 시모노세키에서 청일간에 종전협정이 체결이 됨으로써 청일전쟁은 공식적으로 끝난다. 그러나 러시아가 일본의 해상에서 무력시위를 하면서 불란서 및 독일과 함께 일본에 압력을 가해 오자 일본이 이른바 ‘3국간섭’에 굴복을 하게 된다. 그 결과 일본은 그해 5월에 청국과의 강화협정으로 얻게 된 요동반도를 도로 청나라에게 반환하고 전쟁배상금을 7분의 1에 가까운 수준으로 감액하고 마는 것이다. 그 사건이 조선의 왕실 뿐만 아니라 조선의 백성들에게 국제정세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가지게 한다. 청나라보다는 일본이 강하지만 일본보다는 러시아가 주도하는 연합세력이 더 강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역학관계를 잘 활용하면 조선에 대한 일본의 압력을 물리칠 수도 있을..

서배 할배35(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35(작성자; 손진길) 서배 마을의 서당에서 생도들에게 17년 동안이나 신학문을 가르치고 있는 선생이 순흥 안씨인 안성기이다. 그의 부모님이 여전히 정정하시고 부산 동래에 살고 계신다. 그러므로 그는 시간이 나면 일년에 두어 차례 부모님이 계시는 부산지역을 방문하고 있다. 1856년생인 그는 서배 아재 손상훈보다 5살이나 연하이다. 그러나 상당히 영리하고 세상을 보는 눈이 날카롭다. 돌이켜보면 1877년초에 신학문 선생을 초빙하고자 서배 아재 손상훈이 재종 매형인 최사권과 친구 김춘엽을 데리고 동래 봉천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고경 오씨인 오경덕, 인동 장씨인 장인식, 그리고 순흥 안씨인 안성기 등 세 사람의 선을 보았다. 당시 20대 초반인 그 세 사람 가운데 김춘엽이 자신의 고향 서배..

서배 할배34(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34(작성자; 손진길) 1894년 8월초 음력으로는 7월 1일에 일본이 청국에 대하여 선전포고를 하자 조선에서 청일전쟁이 발생한다. 그러나 그 전쟁은 사실 그 전인 음력 6월 23일에 벌써 시작이 된 것이다. 왜냐하면, 청국의 함대가 호위하면서 영국의 수송선을 빌려서 육군 1,200명을 아산만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을 일본의 군대가 풍도에서 모두 격침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그 수송선에 타고 있던 청국의 군인이 전원 익사를 하고 만다. 그것을 보고서 이미 아산만을 통하여 조선에 들어와 있던 청국의 군사 2,800명이 일본의 군대를 무찌르고자 하였으나 성환전투에서 대패를 한다. 그 보고를 받은 청국의 북양대신이며 총독인 이홍장이 음력 7월 1일에 역시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서 전면전에 돌입..

서배 할배33(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33(작성자; 손진길) 9. 외세 배격의 민란을 외세의 힘으로 막다. 1893년 봄부터 충청도 보은에 수많은 동학교도들이 모여서 교주 최제우의 신원을 회복해 달라고 조정에 탄원하는 한편 일본과 서양세력을 농민들의 힘으로 모두 물리치자고 백성들을 선동하고 있다는 소식이 월성 내남까지 들려오고 있다. 그들은 대표자들을 뽑아 한양으로 올라가서 궁궐 앞에서도 상소를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한 소문을 듣게 된 안심서당의 신학문 선생인 오경덕이 안절부절이다. 왜냐하면, 부산 동래에 살고 계시던 그의 부모님이 충청도 보은지역으로 이주를 하여 그곳에서 살고 계시기 때문이다. 일찍이 1850년대 후반에 부모님이 충청도 북부의 제천에서 살고 계시다가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신학교에서 잠시 신학문을 접한 바가 있다..

서배 할배32(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32(작성자; 손진길) 일본공사는 1884년 12월에 발생한 갑신정변에 있어서 거사의 주동자인 김옥균과 사전에 은밀하게 밀약을 맺고 자신의 군사 150명까지 빌려준 바가 있다. 그러나 그는 청나라 군사 1500명에 의하여 그 거사가 실패로 돌아가자 재빠르게 흔적지우기를 시작한다. 일본군대를 철수하고 거사의 주모자들을 전부 일본으로 도피시킨 것이다. 그 다음 즉각적으로 조선의 조정에 압력을 가하여 그 정변의 과정에서 왕실의 안전을 지키고 있던 일본군대가 피해를 입었으니 배상을 하라고 한다. 정변으로 혼이 난 고종은 일본공사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한성조약을 맺고 일본에게 그 정변에 가담한 일체의 책임을 묻지를 못하고 만다. 영악한 일본공사는 1885년 4월에 청나라 공관과 조선주둔 군대의 책임자에..

서배 할배31(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31(작성자; 손진길) 내남 너븐들의 천석꾼 지주 손성규가 6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는 소문이 내남은 물론 멀리 경주 읍내까지 널리 퍼지고 있다. 많은 친지들이 초상집을 찾아와서 조문을 한다. 먼 거리에서 오는 조문객을 생각한다면 오일장으로 하는 것이 좋겠지만 그렇게 초상을 오래 치를 수가 없다. 막 농번기가 시작이 되는 4월 22일에 별세를 하였기에 지주 손상훈은 농사준비에 바쁜 내남 사람들의 형편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4월 24일에 삼일장으로 부친의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그리고 장지도 비교적 가까운 박달 도진마을의 선산으로 정했다. 그 소식을 어떻게 빨리 전해 들었는지 경주 교리 최부자 집의 가주인 최현식이 4월 24일 발인이 되기 전에 오전 일찍 조문을 왔다. 그는 지주 손상훈보다 3살..

서배 할배30(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30(작성자; 손진길) 8. 천석꾼 손성규의 죽음과 상실의 시대 농업소득과 상업소득을 비교하면 농업소득이 열위이다. 그리고 농업소득은 기타 산업의 제조업소득과 비교를 하더라도 크게 뒤떨어진다. 그 때문에 서구에서는 비교우위가 높은 산업으로 계속 이행을 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서구에서는 농업소득을 얻고자 토지를 중시하던 중세의 봉건시대가 교역을 중시하는 중상주의시대로 옮겨가고 마침내 제조업의 혁신으로 산업근대화의 시대를 이루고 마는 것이다. 그 제조업의 혁신이 유럽의 섬나라 영국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는데 그들이 증기기관과 공작기계를 발명하여 공장제 대규모 생산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그것을 보고서 유럽대륙의 주요국들은 영국의 산업혁명을 수입하여 자신들도 부강한 나라를 만들고자 한다. 따라서 서구에서..

서배 할배29(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29(작성자; 손진길) 며칠 후 손성곤이 사촌 형이며 너븐들의 대지주인 손성규의 집을 방문한다. 그는 대문을 들어설 때부터 싱글벙글이다. 한낮에 방문을 하였는지라 사랑방을 차지하고 있는 가주 손성규만이 집을 지키고 있는 시간이다. 손성곤은 사랑방문 앞에서 자신이 찾아 왔음을 고한다; “형님, 저 성곤입니다. 안에 계십니까?”. 방문 앞 디딤돌 위에 남자 신발이 한 켤레 놓여 있는 것을 보고서도 그는 먼저 자신이 왔음을 알린다. 가주 손성규가 반가운 얼굴로 방문을 열면서 말한다; “어서 오시게. 여름철 대낮이라 날이 무척 더운데 어떻게 이렇게 찾아왔는가? 빨리 들어 오시게. 방안이 시원해”. 손성곤은 방에 들어오자 마자 말문을 연다; “형님, 좋은 소식 두가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 말을 들은 ..

서배 할배28(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28(작성자; 손진길) 1884년 8월 1일 사돈 손성규를 만나고 집에 온 훈장 이덕화는 집사람 김옥심부터 찾는다. 그리고 내일 사돈과 함께 경주 오일장을 가면서 사정리에 있는 돌공장을 들르기로 했다고 말한다. 안사돈의 묘소에 상석을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아내 김옥심이 기뻐한다. 갑자기 안사돈이 별세를 하고 나자 초상을 치른 바깥사돈이 집에 틀어박혀서 일체 대문 밖 출입을 하지 아니하고 있다고 하여 훈장집에서는 그동안 내외간에 걱정이 컸기 때문이다. 다음날 훈장 이덕화가 아침식사를 일찍 마치고 너븐들로 사돈 손성규의 집을 찾아온다. 가주 손성규도 행장을 차리고 있다가 사돈을 맞이한다. 잘 다녀 오시라고 인사를 하고 있는 손상훈 내외의 얼굴에도 모처럼 화색이 돈..

서배 할배27(작성자; 손진길)

서배 할배27(작성자; 손진길) 부인의 초상을 치르고 3주가 되도록 가주 손성규가 사랑방에서 꼼짝하지 아니하고 있다. 아들 손상훈 내외가 안채의 옆방에 고인이 된 모친 이숙임의 영정을 상위에 두고 매일 조석으로 상식을 올리고 있는데 그 자리에 남편인 손성규가 한번도 참석을 하지 아니한다. 그 뿐만 아니라 그는 일체 대문을 나서는 법이 없다. 때는 한여름으로 들어서는 7월 중순이라 농촌에서는 농사일이 바쁘다. 지주 손성규는 그 즈음이면 자기 소유의 논에서 벼가 잘 자라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상신과 안심 그리고 박달의 농경지를 누비던 사람이다. 그런데 7월 9일에 삼일장으로 부인상을 치르고 나서는 일체 내남의 농경지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자신들의 농사일이 바쁘지만 이웃에 살고 있는 사촌인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