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 할배(손진길 소설)

서배 할배35(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9. 17. 23:07

서배 할배35(작성자; 손진길)

 

서배 마을의 서당에서 생도들에게 17년 동안이나 신학문을 가르치고 있는 선생이 순흥 안씨인 안성기이다. 그의 부모님이 여전히 정정하시고 부산 동래에 살고 계신다. 그러므로 그는 시간이 나면 일년에 두어 차례 부모님이 계시는 부산지역을 방문하고 있다. 1856년생인 그는 서배 아재 손상훈보다 5살이나 연하이다. 그러나 상당히 영리하고 세상을 보는 눈이 날카롭다.

돌이켜보면 1877년초에 신학문 선생을 초빙하고자 서배 아재 손상훈이 재종 매형인 최사권과 친구 김춘엽을 데리고 동래 봉천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고경 오씨인 오경덕, 인동 장씨인 장인식, 그리고 순흥 안씨인 안성기 등 세 사람의 선을 보았다. 당시 20대 초반인 그 세 사람 가운데 김춘엽이 자신의 고향 서배 마을의 서당에 모시고 갔으면 좋겠다고 먼저 점을 찍은 선생이 바로 안성기이다. 안성기는 후보자 3사람 가운데 가장 나이가 적었다. 1856년생이기 때문이다.

한 살 차이인 그들 3사람이지만 연장자는 1854년생인 장인식이고 그 다음이 1855년생인 오경덕이다. 그러므로 동갑인 손상훈과 김춘엽 보다 15살이나 연상인 선비 최사권이 그 3사람의 선생 후보자 가운데 최연장자인 장인식을 내남 덕천에 있는 자신의 서당에 모시고 가겠다고 말했다. 자연히 손상훈은 오경덕 선생을 내남 양삼마을의 서당에 신학문 선생으로 모신 것이다.

그때 김춘엽은 첫눈에 안성기가 나이는 제일 어리지만 아주 머리가 좋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있다. 당시 조선 나이로 22살인 안성기는 10살에 부모님을 따라 일본으로 들어갔으며 그곳에서 10년간 신학문을 배우고 1876년 말에 역시 부모님과 함께 부산 동래로 돌아와서 살고 있었다. 선생 안성기가 신학문에도 뛰어날 뿐만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이 탁월하다는 사실을 김춘엽은 자기 집에 그를 기숙을 시키면서 거듭 확인하게 된다.

그러한 인물이 자신의 집안에 계속 남아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서배 마을에 부모님이 사둔 많은 논밭을 관리하고 있는 김춘엽과 이가연 부부는 신학문 선생인 안성기를 참으로 좋아했으며 그를 자신들의 집안과 인연을 맺도록 해주고 싶었다. 따라서 이가연이 적극적으로 나서 자신의 여동생 이다연과 선을 보도록 주선했다. 사람의 인연이란 묘한 것이어서 한번 선을 본 두사람이 서로 좋다고 한다. 일사천리로 일이 성사가 되어서 안성기는 김춘엽의 아래 동서가 되고 그 옆집에서 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안성기는 시간만 나면 돌아 다니기를 좋아한다.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부산 지역은 물론 때로는 자신이 어린시절을 보낸 충청도까지 가서 아직도 그곳에 살고 있는 친지들을 방문하고 오는 것이다. 그러한 안성기인지라 동학농민군들이 전라도와 충청도에서 궐기를 하자 그 진원지와 전투지역을 사후에 직접 방문하여 보고 싶어한다.

음력으로 1894년 12월에 공주 외곽 우금치 지역에서의 전투를 마지막으로 전봉준이 직접 이끄는 동학농민군 1만명은 수백명만 살아남고 모두 전사를 하고 말았다. 전력이 완전히 소진이 된 동학농민군의 지도자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몇 달 후에 안성기는 기어코 그 전투가 발생했던 지역까지 방문을 하고서 돌아온다.  

그렇게 답사를 하고 돌아온 안성기가 덕천 최사권의 사랑방모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일본군 2,000명이 전봉준이 총지휘하는 동학농민군 연합세력 2만명을 짚단처럼 쓰러뜨리고 만 이유는 두가지로 파악이 됩니다; 하나가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최신 미국제 연발사격용 총입니다. 또 하나는, 일본군 2,000명 뿐만 아니라 한양에서 내려온 조선의 신식군대 3,200명까지 그들 일본군 장교들이 지휘를 했는데 그들의 전술이 참으로 탁월했기 때문입니다”.

그 말을 듣고서 안성기의 손위 동서인 김춘엽이 크게 궁금하여 질문을 한다; “안성기 자네가 말하고 있는 것은 미국제 최신형 총기를 일본군대가 도입하여 사용하였다는 것인데 그 성능이 도대체 어느 정도인가?”.

안성기는 갑자기 치를 부르르 떨면서 답을 한다; “요행히 공주 지역 가까이에서 그 전투에 참여하고 살아남은 생존자를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여러 개의 총을 겹쳐 놓은 것처럼 큰 연발사격용 총인데 그것은 단번에 여러 발의 총알을 발사하며 그것도 쉬는 시간이 없이 계속 발사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총 하나만 있으면 언덕으로 기어오르고 있는 조선의 농민군을 순식간에 100명이나 쓰러뜨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의 말을 듣자 마자 그 사랑방에 모여 있는 나머지 4사람이 큰 충격을 받고 있다. 일본은 벌써 조선을 집어 삼키려고 만반의 준비를 군사적으로 끝낸 상태임이 틀림없다. 그들은 조정에서 산업근대화를 하는 한편 군부에서는 군인이 사용하는 무기체계를 완전히 최신식으로 바꾸고 있다. 미국으로부터 그러한 최신형 연발사격용 총을 도입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그러한 것이다.

참고로, 그들이 머리속으로 그려보고 있는 그 총이 오늘날 기관총의 원형인데 정확하게는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고 있는 미국제 개틀링 기관총이다. 미국의 남북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하여 의사인 개틀링이 발명한 회전식 기관총이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그림을 제시하면 그 모습이 다음과 같다;

  안성기의 설명이 계속이 된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동학농민군이 기껏 보유하고 있는 것이 화승총인데 그것은 1분에 2발 정도 쏠 수가 있습니다. 그에 비해서 일본군과 조선의 신식군대 도합 5,200명이 사용하고 있는 장총은 1분에 12발이나 발사가 됩니다. 그것도 화승총의 사정거리가 100보인데 적들의 장총은 400보 내지 500보나 됩니다. 그러니 그 전투의 결과는 보나마나인 것입니다”.

안성기의 답사보고를 들으면서 손상훈과 김춘엽 그리고 최사권과 장인식은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고 있다; “산업근대화라고 하는 것이 참으로 무서운 것이구나. 공장에서 기계로 민수용 상품을 대량생산하는데 그치지 아니하고 최신식 무기까지 만들어 내고 있구나. 일본은 국내에서 장총을 생산할 뿐만 아니라 조선을 식민지로 삼기 위하여 벌써 최신식 미국제 기관총까지 도입하여 전장에서 사용을 하고 있다. 그러한 막강한 전력을 갖추고 있는 일본을 조선의 농민군은 물론이고 청국의 군대도 이기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미국이라고 하는 나라는 천국으로 인도하는 그리스도교만 전파를 하는 줄 알았더니 이제 보니 수많은 사람을 살해하는 무기까지 팔아먹고 있는 무서운 나라이구나”.  

자신의 설명을 듣고 사랑방 동지들의 고개가 크게 끄떡이는 것을 보고서 안성기는 그 다음해 1895년 여름방학에는 사비를 털어서 한양까지 방문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돌아온다. 그렇게 시간과 돈을 들인 그의 이야기는 참으로 경주 월성 시골 사람인 사랑방 동지들을 놀라게 하기에 족한 것이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기 때문이다; 첫째, 일본의 육군은 1894년말까지 조선에서 청국의 군대를 모두 무찌르고 압록강을 건너 만주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일본의 해군은 1895년 2월에 산동반도를 공격하여 청국의 북양함대를 박살내고 3월초에는 요동반도에 있는 청국의 함대까지 궤멸시켜 완벽하게 황해의 제해권을 장악했다는 것이다. 셋째, 그러므로 일본의 육군이 이제는 산동에서 천진으로 진격하고 있으며 요동에서 북경으로 전진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일본의 승승장구를 보면서 유럽의 영국과 불란서 그리고 독일과 러시아가 견제에 나서고 또한 미국이 일본에게 청국의 종전협상을 받아 들이라고 압력을 넣게 된다. 그대로 내버려두면 일본의 군대가 청국을 점령하고 자신들이 청나라에서 차지하고 있는 각종 이권과 교역시장을 잃을 것을 우려한 것이다. 그런데 일본이 미국의 말을 듣지 아니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일본이 최신무기를 사오는 대상국이 바로 미국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일본의 시모노세키에서 엄청난 배상금을 청국이 일본에 지불하는 한편 요동반도와 대만 섬 그리고 남쪽의 팽호 열도를 일본에게 주는 조건으로 종전협정이 성립이 된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을 한다. 얼지 않는 항구를 찾아서 남하를 계속하고 있는 러시아가 갑자기 군함을 일본 고베 앞바다에 보내어 무력시위를 하면서 동맹국인 불란서의 힘을 빌리고 역시 후발선진국인 독일과 합작하여 일본에 엄청난 압력을 행사한 것이다.

그들 3국은 일본에게 요동을 청국에 돌려주고 전쟁배상금을 2억냥에서 3천만냥으로 엄청나게 줄이라고 요구한 것이다. 일본은 청국의 1년 예산의 2.5배에 해당하는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받고 요동반도를 차지하여 청국으로 진출하는 단단한 발판을 얻게 되기 때문에 아쉽지만 종전협정에 서명을 하였는데 갑자기 그 유리한 조건이 사라지고자 한다. 그러나 어쩔 수가 없다. 아직 일본군대의 무력이 그들 3국의 연합된 힘을 당할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 년 후 들리는 후문에 따르면 러시아와 독일 그리고 불란서와 영국 등은 청국으로부터 그 대가를 톡톡하게 받아내고 있다. 그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던 청국의 땅을 차제에 조차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러시아는 요동반도 남부를 조차한다. 그것으로 부동항을 황해에서 얻게 된 것이다. 영국은 산동반도의 동쪽인 위해위지역을 차지하고 독일은 산동반도의 남쪽인 청도 지역을 조차한다. 그곳은 모두 북경과 천진으로 들어가는 가장 좋은 항구들인 것이다. 불란서는 광주만을 조차하게 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훗날 덕천 사랑방모임의 인사들은 탄식을 한다; “세상에 공짜가 없구나. 완전한 선의로 약하고 억울한 나라를 도와주는 국가는 국제사회에서 존재하지를 않는다. 그렇게 두려운 약육강식의 국제사회에서 조선의 앞날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조선에 살고 있는 자신들의 가족과 자신들의 재산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참으로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저 힘이 없는 조선의 백성들은 세월이 지나갈수록 그 가슴이 더욱 답답해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