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 할배(손진길 소설)

서배 할배34(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9. 17. 23:04

서배 할배34(작성자; 손진길)

 

18948월초 음력으로는 71일에 일본이 청국에 대하여 선전포고를 하자 조선에서 청일전쟁이 발생한다. 그러나 그 전쟁은 사실 그 전인 음력 623일에 벌써 시작이 된 것이다. 왜냐하면, 청국의 함대가 호위하면서 영국의 수송선을 빌려서 육군 1,200명을 아산만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을 일본의 군대가 풍도에서 모두 격침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그 수송선에 타고 있던 청국의 군인이 전원 익사를 하고 만다.

그것을 보고서 이미 아산만을 통하여 조선에 들어와 있던 청국의 군사 2,800명이 일본의 군대를 무찌르고자 하였으나 성환전투에서 대패를 한다. 그 보고를 받은 청국의 북양대신이며 총독인 이홍장이 음력 71일에 역시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서 전면전에 돌입한다. 그러나 청나라의 육군과 해군은 음력 8월에 일본의 군대에게 전부 패배를 맛보고 만다. 청국의 육군 14,000명은 평양전투에서 일군에게 대패하여 압록강으로 후퇴를 하고 해군은 황해에서 패하여 요동으로 퇴각을 한다.

그러나 일본은 차제에 조선을 식민지로 삼을 뿐만 아니라 만주와 청국까지 진출하여 그곳의 지하자원을 차지하는 한편 일본에서 생산한 공업제품의 주요시장으로 삼으려고 한다. 그러한 사실을 뒤늦게 눈치 챈 이홍장이 적극적으로 일본군대의 북상과 서진을 막으려고 노력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일본의 해군이 양력으로 다음해 2월에 산동반도를, 3월에는 요동반도를 공격하여 청국의 북양함대를 박살내고 제해권을 장악하고 말기 때문이다.

제해권을 장악하자 마자 일본의 육군이 요동을 통하여 청국의 수도인 북경으로 그리고 산동을 통하여 천진으로 진격하고 있다. 다급해진 청국이 일본에게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물고 일부 영토를 떼어 주는 조건으로 종전협정을 맺고자 서두른다. 일본은 그 협정을 맺지 않으려고 하지만 일본의 영향력이 중국으로 크게 진출하는 것을 우려한 영국, 불란서, 독일, 러시아, 미국 등 열강의 압력으로 종전협정에 서명을 한다.

양력으로 1895417일에 미국의 도움을 받은 청국이 일본의 시모노세끼에서 겨우 종전협정을 맺는데 성공하게 되는데 그 내용이 청국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비참한 것이다; 첫째, 조선에 대한 청국의 전통적인 특권을 일체 주장하지 않는다. 그러한 내용이 조선은 완전무결한 자주 독립국임을 청국이 인정한다라고 하는 묘한 미사여구 속에 그대로 들어 있는 것이다. 둘째, 요동반도와 대만 그리고 남쪽의 팽호 열도를 일본에 할양한다. 셋째, 청국의 일년 예산의 2.5배에 해당하는 2억냥 또는3억엔을 일본에게 지불한다. 넷째, 청국은 일본에게 서구열강과 동등한 통상의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 등이다.

수백 년 동안 조선을 자신들의 속국 내지 보호국으로 삼으며 조선의 왕과 조정 그리고 백성들에게 완벽하게 대국인 상국으로 군림을 했던 청국이 일본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종주국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는 그 장면을 찍은 역사적인 사진이 얼마나 초라한 지 모른다. 사람들이 만든 패권의 말로가 그 한 장의 빛 바랜 사진속에 그대로 담기어 있기에 후세에 교훈으로 삼고자 아래에 첨부를 해본다;

그와 같은 내용은 2달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선비 최사권의 사랑방모임에 참석하고 있는 천석꾼 최사권을 비롯하여 서배 아재 손상훈과 김춘엽 그리고 신학문 선생인 장인식과 안성기 등이 소문만 듣고서도 능히 이해를 할 수가 있다. 그러나 1894년 청일전쟁의 와중에 다시 발생하고 있는 동학농민군과 일본군과의 전쟁에 대해서는 의아한 생각을 금할 수가 없다. 우선 그 전쟁의 양상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청국과 일본이 조선을 자신들의 전쟁마당으로 삼고 있다. 그 전장에서 양국의 군인들만 죽고 있는 것이 아니다. 죄 없는 조선의 백성들이 그들의 전쟁에 휘말려서 희생이 되고 있다. 무거운 대포를 밀게 하거나 탄약 등을 지게로 져서 나르도록 조선의 장정들을 함부로 징용하여 죽음의 전쟁터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선인들의 마을에 들어가서 식량을 빼앗고 가축을 잡아먹고 있다. 그러한 피해는 기록으로 남지도 아니하고 있다.

둘째, 조선이 전통적으로 상국으로 섬기고 있는 청국의 군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백성들의 반감이 덜하다. 그렇지만 300년 전에 조선을 침략했던 일본의 군대가 다시 쳐들어와서 그와 같은 횡포를 일삼고 있으므로 민초들의 증오가 대단하다. 그러한 사태에 직면하여 음력으로 18949월에 전봉준이 일본세력을 물리치자고 외치면서 동학농민군을 재정비하여 전투에 돌입한다.

이상과 같은 내용은 덕천 사랑방모임에 모인 5명이 충분히 이해를 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에게 의아한 대목이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다; 첫째, 동학농민군들이 일본세력을 조선에서 몰아내고자 총궐기를 하고 목숨을 바쳐 전투를 하는 마당에 어째서 관군들이 일본군대를 지원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둘째, 그 결과 공주 전투와 우금치 전투에서 2만을 헤아리는 조선의 농민군들이 5,200명의 일본 신식군대 및 조선의 관군들과 최후까지 싸웠으나 엄청난 희생을 내고 패하고 말았다. 그 피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하는 것이다.

조정에서는 동학농민군들이 순수하게 외세만을 척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한양으로 북진하여 왕실을 없애고자 하므로 조선과 왕실의 보전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그와 달리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농민군들은 그들과 일본과의 전쟁에 조선의 왕실과 조정이 백성들을 버리고 일본의 편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외세를 끌어들여 백성들을 말살하는 그러한 왕실과 조정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장차 조선의 백성들은 왕실과 조정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과 강토를 지키기 위하여 의로운 전쟁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자신들을 의병이라고 칭하고 조선의 백성들이 살아 있는 한 대대로 일본과 싸우고자 다짐을 하고 있다. 그러한 동학농민군들의 절규에 따라 호남에서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의병들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일련의 사태를 소문으로 접하면서 덕천 사랑방 모임의 동지들은 그 마음이 착잡하다. 이제는 조선의 왕실과 조정이 백성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다. 민란을 관군의 힘으로 진압하지 못하여 청국의 군대를 끌어들인 그 순간부터 역사가 비틀어지고 있다. 일본의 신식군대 2,000명의 연발사격용 총 앞에 인산인해로 쓰러져가고 있는 조선 백성들의 원한에 찬 부르짖음이 그들의 귀에 들리는 것만 같다.

장차 그 피의 희생에 대한 대가를 조선의 왕실은 어떻게 치르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지금까지 수백 년 동안 소작농들의 피와 땀을 먹고서 자신들만 배불리 살아가고 있는 지주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다행스럽게도 내남 덕천의 천석꾼인 최사권의 집안은 내남의 경주 최씨인 일가들이 그들의 전답을 소작하고 있으므로 소작료를 싸게 하고 있다. 그것은 내남 상신과 안심 그리고 박달의 월성 손씨 일가들을 중심으로 소작을 주고 있는 너븐들의 지주 손상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주들은 그렇지가 않다. 타성에게 소작을 주면서 많은 소작료를 받고 있다. 그들의 장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호남에서 불어오는 그 분노하는 소작인들의 함성이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는데 과연 그 파고를 뛰어넘을 수가 있을까? 그러한 의문을 지울 수가 없는데 189412월에 동학농민혁명은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만다. 우금치 전투에서 치명상을 입은 전봉준과 그의 군대는 뿔뿔이 흩어지고 모두가 도망자 신세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조정에서 주모자들에게 엄청난 상금을 내걸자 밀고자가 속출한다. 따라서 피신 중에 있던 전봉준을 비롯한 주동자들이 줄줄이 잡혀서 고문과 함께 심문을 받은 후 처형장으로 끌려가고 만다. 일본군의 입장에서도 그렇게 빨리 동학농민군과의 전쟁을 끝내고 싶어한다. 2,000명의 군대를 계속 호남 땅에 묶어 놓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군대를 청국의 요동반도와 산동반도로 이동하여 북경과 천진으로 진격하는 일이 급한 것이다.

1894년말까지 그와 같은 일련의 사건의 전개를 듣고서 덕천 사랑방모임에서는 자신들의 분석과 예상대로 전쟁이 결말이 나고 있음을 알고서 모두들 고개를 끄떡인다. 그러나 조선의 미래에 대해서는 조금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그 이유는 두가지 사실 때문이다;

첫째, 일본의 군사력이 그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고 있기 때문이다. 벌써 압록강까지 청국의 군대를 몰아내고 있다. 일본의 군대는 그 정도에서 멈추지를 아니하고 있다. 아예 만주를 거쳐서 청국의 수도까지 밀고 들어가려고 한다. 조선 뿐만 아니라 청나라까지 위험한 것이다.

둘째, 한때 호남지역을 장악한 동학교도들과 농민들이 스스로 집강소를 설치하여 그들이 원하는 개혁을 한 바가 있는 것이다. 그 내용은 주로 지주의 몫을 줄이고 소작인들의 몫을 늘리는 것이다. 그 밖에 탐관오리의 숙청과 상인들의 횡포 방지, 그리고 미곡의 해외유출을 막도록 한다는 것 등이다. 그러한 선례가 이제는 전국으로 파급이 되고 있다. 그 영향을 조선의 지주들과 양반들이 어떻게 흡수하고 극복할 것인가?

서배 아재 손상훈은 자신의 앞에 다가오고 있는 미래가 그 어느때보다도 크고 높은 파도로 느껴지고 있다. 그러한 험난한 시대를 그가 가족들을 위하여 그리고 내남의 일가들의 문중을 위하여 헤쳐가야만 한다. 과연 자신에게 그만한 능력과 지혜가 있을 것일까? 무엇보다도 장인어른의 지혜와 매형 최사권의 도움이 절실하다. 그리고 일본에서 10년이나 생활을 한 바가 있는 신식선생 장인식과 안성기의 경험도 그에게 필요한 것이다. 서배 아재 손상훈은 그들이 자신의 옆에 있음을 참으로 감사하게 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