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 할배32(작성자; 손진길)
일본공사는 1884년 12월에 발생한 갑신정변에 있어서 거사의 주동자인 김옥균과 사전에 은밀하게 밀약을 맺고 자신의 군사 150명까지 빌려준 바가 있다. 그러나 그는 청나라 군사 1500명에 의하여 그 거사가 실패로 돌아가자 재빠르게 흔적지우기를 시작한다. 일본군대를 철수하고 거사의 주모자들을 전부 일본으로 도피시킨 것이다.
그 다음 즉각적으로 조선의 조정에 압력을 가하여 그 정변의 과정에서 왕실의 안전을 지키고 있던 일본군대가 피해를 입었으니 배상을 하라고 한다. 정변으로 혼이 난 고종은 일본공사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한성조약을 맺고 일본에게 그 정변에 가담한 일체의 책임을 묻지를 못하고 만다.
영악한 일본공사는 1885년 4월에 청나라 공관과 조선주둔 군대의 책임자에게 교묘하게 제안을 한다. 두나라의 군대가 한양에 함께 주둔을 하고 있으면 어떠한 불상사가 발생할지 모르니 철군을 하고 필요하면 동시에 한양에 재진출을 하는 것이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청나라의 입장에서는 작년에 베트남 북부지역에서 불란서와의 전쟁에서 패하고 국내에서도 서구의 군사력에 밀리고 있는 형편이라 조선에서 군사를 많이 빼내야 한다. 그래서 얼른 찬성을 하고 만다. 그것이 ‘텐진 조약’인데 그로 말미암아 일본은 조선에 대하여 청나라만큼의 내정간섭과 군사적 개입을 할 수가 있는 당당한 권리를 얻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조선은 청과 일본이라고 하는 대국 둘을 섬겨야만 하는 고달픈 처지가 되고 만다. 그러나 현실이 그러하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습성이라고 하는 것이 쉽게 바뀌지를 않는다. 청나라는 1882년 임오군란 때 텐진에 붙들어간 흥선대원군을 1885년 8월에 한양으로 돌려보내고 이어서 9월에는 원세개를 조선 주재 관리로 파견을 하였는데 그때부터 대원군을 따르는 자들과 민씨 일족들이 원세개에게 잘 보이려고 서로 경쟁을 하는 것이다.
청나라가 서구세력에게 연패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평가하지를 못하고 전통적인 사대주의사상으로 일관하고 있는 한심한 조선의 정치인들이다. 따라서 원세개는 융숭한 대접을 받으면서 조선의 조정에 조그마한 선물을 준다. 예를 들면, 제물포로 들어오는 외국의 물품에 대하여 조선이 독자적으로 관세를 거둘 수가 있는 권리 정도이다. 그것은 당연히 주권을 가진 나라가 행사하는 권리인데 그것조차 청나라가 인정을 해주었다고 하여 감사를 하고 있는 자들이 바로 얼빠진 조선의 대신들이다.
그러므로 청나라에서 별로 높지도 아니한 벼슬을 가지고 있는 원세개 정도의 인물이 한양에서 일약 상국의 사신 노릇을 톡톡하게 하고 있다. 참으로 세상은 크게 변하고 있는데 조선만 변하지 아니하고 고래의 사대주의 사조에 푹 빠져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한 형편이니 독자적으로 산업근대화 정책을 추진할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를 못한 것이다.
김홍집 내각이 성립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러한 노력이 없다. 그저 제도적인 변화만 시도를 하고 외국과 간단한 교섭 정도만 하지 경제건설을 할 수 있는 경륜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7년의 세월을 낭비하자 지방에서부터 백성들이 대중집회를 열고서 조선의 조정에 압력을 가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1892년 12월에 동학의 제2대 교주인 최시형이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의 신원을 회복해달라고 지방인 공주와 삼례 등지에서 대중집회를 열고 중앙의 조정에 압력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조선에서는 예로부터 민란의 조짐으로 여겨 엄격하게 금하고 있는 백성들의 집단적인 행동이다. 그러나 최시형은 1864년에 억울하게 대원군의 지시로 대구감영에서 참형이 된 교주 최제우의 신원을 회복해주고 그 명예를 되찾아 주고 싶은 것이다.
30년 가까이 최시형이 동학을 퍼뜨린 결과 전국적으로 그 세력이 엄청나게 불어났다. 민씨 일족과 대원군이 서로 싸우면서 국정을 혼란의 와중으로 끌어가고 있으며 매관매직이 성행하고 있는 것을 보고서 민초들은 불만이 커져서 동학을 편들고 있다. 그러므로 조정에서도 자신들의 요구를 쉽게 무시할 수 없을 것으로 최시형이 판단한 것이다.
더구나 조선이 1882년에 미국과 수교를 하고 1884년까지 서구의 열강들과도 수교를 하자 그때부터 조선을 선교대상지로 삼아 구미의 선교사들이 많이 들어와서 기독교를 전파하고 있다.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두가지이다; 하나는, 선교사들이 선진문물을 가지고 들어오니 그것을 배우자고 하는 개화론자들이다. 또 하나는, 조선의 전통적인 유불선의 가르침과 대적을 하고 있는 사상이므로 그것을 받아들이게 되면 조선의 전통적인 가치가 무너지고 조선이 몰락하게 된다고 우려하고 있는 선비와 백성들이다.
그러한 갈등의 시대에 조선의 백성들은 일찍이 최제우가 집대성한 동학사상을 주목한 것이다. 동학에서 가르치고 있는 시천주와 인내천 사상이 유불선은 물론 서학까지 망라할 수 있는 사상체계라고 생각하게 된다. 따라서 조선의 조정이 이끌어가지 못하는 그 시대를 백성들은 동학사상을 가지고 대처를 하자고 뜻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조선의 왕실과 조정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백성들이 커다란 상실감을 느끼고 있던 그 시대에 전통적인 유불선에서 출발하여 서학까지 상대할 수 있는 동학의 정신세계를 포교하고 있으니 그것이 시류를 타고 있다. 그 정도가 아니다. 조선의 권력자들에게 크게 실망한 백성들은 그러한 한심한 조정을 뒤집어엎고서 이제는 새로운 세상 평등한 세상을 한번 만들어보자고 하는 일종의 혁명이념으로 동학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위험천만한 시대가 손상훈이 내남 너븐들의 새로운 지주가 되자 그의 앞에 다가오고 있다. 그 높은 파고를 지주 손상훈은 어떻게 타고 넘어 자신의 재산과 가족을 지킬 수가 있을까? 그것은 지주 손상훈에게만 다가오는 시험이 아니고 그 시대 곧 1890년대를 살아가고 있는 조선의 모든 지주와 선비들에게 닥치고 있는 고난이다.
조선의 왕실의 위엄이 그들보다 강한 외세에 의하여 무너지고 조정의 권위도 현명하게 외세에 대처하지를 못하여 땅에 떨어지고 있는 그 시절에 분노한 백성들이 엉뚱하게 동학의 교조 신원운동이라고 하는 집단행동에 합세하여 ‘더 이상 못 살겠다 한번 갈아보자’고 외치면서 실력행사로 나아가고자 하고 있으니 그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러한 소식을 지방에서 듣고 있는 선비와 지주들이 밤잠을 설치게 된다.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고 주장하는 동학의 혁명이념이 좋아 보이기는 하지만 과연 이조 500년간 고수해오고 있는 신분체계와 권력체제를 조선의 왕실과 조정이 바꾸려고 할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조선의 군대가 그러한 움직임을 분쇄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 점에 대하여 1893년부터 다시 내남 덕천 천석꾼 최사권의 사랑방에 모이고 있는 6사람이 엄청 토론을 하고 있다. 손상훈과 김춘엽, 또한 신학문을 서당에서 가르치고 있는 안심의 오경덕과 서배의 안성기 그리고 덕천의 장인식이 그들이다.
그들이 잠정적으로 얻은 결론은 조선의 조정에서 대국인 청의 군대를 요청하고 민란을 진압할 것으로 본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사대주의로 일관하며 백성들을 외세를 끌어들여 죽이고자 하는 조선의 왕을 그들은 버릴 것이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가? 그 해답은 그들이 살아가는 그 시대와 후세들 앞에 반드시 나타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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