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 할배79(작성자; 손진길)
1919년 4월말에 서배 할배 손상훈은 부인 이채령과 함께 경주 읍내 성동에 있는 김춘엽의 저택을 찾아간다. 옛날 사랑방모임의 인사들이 이제는 그들 두 가정밖에 남아 있지 아니하다. 그러므로 5가정이 내남 덕천 최사권 선비의 사랑방에서 2달마다 정기집회를 가지고 열띤 토론을 전개하던 그 시절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손상훈 부부와 김춘엽 부부가 그저 서로의 관심사를 간단하게 나누고 친선을 도모하는 정도의 모임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날 김춘엽이 참으로 반가운 소식을 전하고 있다; “부산에 살고 있는 장인식 교장과 안성기 교장이 부부동반으로 6월달 사랑방모임에 한번 참석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부산에서 경주까지 기차를 타고 오면 그렇게 멀지가 않다고 말하고 있군요”;
그 말을 듣고서 서배 할배 손상훈과 이채령의 얼굴이 환해 진다. 1919년 3월달에 전국적으로 만세시위가 터지고 한달이 지나가고 있지만 그 자세한 내막을 시골에서는 모르고 있다. 단지 손상훈은 오경덕 선생이 미리 언급을 해준 바가 있어서 조금 더 알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사건의 정확한 배경과 국내외에 미친 영향에 관해서는 자세하게 알 수가 없다. 조선총독부가 조선의 언론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교장과 안교장이 오게 되면 다를 것이다. 그들은 일본에 딸과 아들이 자리를 잡고 있으므로 필요한 정보를 얻어서 파악을 하고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 달 후의 사랑방모임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그러한 좋은 소식을 먼저 전한 다음에 김춘엽이 여전히 기분 좋은 목소리로 말한다; “여보게 서배 할배, 그것 말고도 오늘은 좋은 소식이 둘이나 더 있다네. 자네도 알다시피 내 손자인 김호길이 벌써 25살이야. 그가 말하기를 외동소학교의 교장인 이영수의 딸과 진지하게 사귀고 있는데 금년에 결혼을 하고 싶다는 거야. 그래서 우리 부부가 금년에 손주며느리를 보게 생겼어”.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그래서 손상훈 부부가 진심으로 축하를 한다. 그 다음 손상훈이 궁금하여 묻는다; “여보게 김선비. 그렇다면 나머지 또 하나의 좋은 소식은 무언가?”. 김춘엽이 ‘끌끌’ 웃으면서 말한다; “서배 할배 자네의 사돈이 며느리를 보게 생겼어. 그것이 또 하나 좋은 소식이지. 자네 며느리의 남동생인 정한욱이 금년에 26살이야”.
아직 손상훈과 이채령이 사돈으로부터 듣지를 못한 소식이다. 그래서 김춘엽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그래서 김호길이 보다 몇달이라도 먼저 정한욱을 장가보내기 위하여 교리 최부자 집안에 매파를 보내어 참한 처자를 물색하고 있다네. 그런데 그 집안에서도 경주 김씨 왕족인 우리 집안을 높이 보아 좋은 처녀를 정한욱의 배필로 주기로 했네”;
김춘엽이 호기롭게 말하는 것을 보니 거의 성사가 된 모양이다. 그는 확실하지 않은 이야기를 입에서 꺼내는 법이 없는 신중한 성격의 선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상훈이 말한다; “그렇다면, 1살 연상인 정한욱의 혼례가 먼저이겠구만… 어느 달로 잡고 있는가?”.
딱 부러지게 묻고 있는 손상훈에게 김춘엽이 내심을 말한다; “자네 사돈부부도 환갑 진갑을 넘긴 나이야. 그러니 빨리 며느리를 보아 식당운영을 맡기려고 하네. 그러므로 혼사야 빠르면 빠를 수록 좋지. 금년 7월경에 혼례를 치르고 내 손주는 9월경에 결혼을 시켰으면 좋겠다고 의논을 하고 있는 중이네. 그러니 서배 할배는 축의금이나 두둑하게 준비하도록 하시게. 하하하…”.
김춘엽이 참으로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손주 며느리도 보고 또한 같은 집에 살고 있는 여동생 부부가 며느리를 보게 된다고 하니 말이다. 그래서 서배 할배가 진심으로 다시 한번 축하의 인사를 한다; “여보게 김춘엽 선비, 정말로 갑절로 축하를 드리네. 자네 집안에 금년에 그렇게 좋은 일들이 겹치게 되니 내 마음이 참으로 좋네. 조선의 정세가 만세시위로 어지럽지만 그래도 이렇게 웃을 일이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런데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한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이 그 뒤에 꼬리를 물고 따라오고 나쁜 일이 그 다음에는 좋은 일을 물고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생은 끝까지 살아보아야 그 끝을 안다고들 말하고 있다. 김춘엽 선비네 집의 일이 그러하다. 1919년 한해는 두 번의 결혼식이 있어 손주 며느리와 조카며느리를 맞이하여 온 집안이 갑절로 기뻐한 해이다.
그런데 다음해 1920년 6월이 되자 김춘엽의 노모께서 세상을 떠나신다. 1834년생이므로 조선나이로 87세이다. 그 당시로서는 참으로 장수를 하신 것이다. 그것도 밤에 잠이 드셨다가 깨지를 아니하시고 그대로 돌아가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웃에서는 참으로 곱게 돌아가시고 ‘호상’이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어른의 초상을 치르게 된 상주들 입장에서는 그것이 아니다.
마지막 남은 어른께서 별세를 하셨으니 그 슬픔이 각별하다. 갑자기 자신들이 고아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그래서 고희가 된 김춘엽이 상주가 되어 슬퍼한다. 그 옆에서는 65세의 할머니 이가연이 시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한다. 그날 내남 너븐들에서 경주 읍내까지 30리길을 걸어간 서배 할배 손상훈과 부인 이채령이 조문을 한다.
그리고 37세의 손영주는 며칠간 처의 외조모가 되는 어른의 초상이므로 문상객들을 접대하는 일로 바쁘다. 손영주의 처인 정애라는 친정집에 오지를 못하고 있다. 임신을 하여 배가 너무 불러 있어 운신에 힘이 들기 때문이다. 그녀가 없어도 도우는 일손이 많아서 초상을 치르는데 별로 어려움이 없다.
장지는 역시 외동 서배 마을의 선산이다. 십년전에 김춘엽이 선친의 산소를 정할 때에 그 옆에 모친의 산소로 쓰기 위하여 가묘를 만들어 두었다. 그러므로 삼일만에 경주에서 일찍 발인하여 그곳으로 운구를 한다;
가묘 자리를 파고서 그 무덤에 매관을 하고 그날은 서배 마을에 살고 있는 아들 김영식의 집에서 하루를 쉬도록 한다.
1920년 8월 20일이 되자 서배 할배 집에 경사가 난다. 며느리 정애라가 두번째 아들을 낳은 것이다. 산모의 배가 많이 불렀더니 아들을 낳고 보니 얼마나 덩치가 크고 튼실한지 모른다. 그 모습을 보고서 서배 할배 손상훈이 ‘손수상’이라고 이름을 짓는다. 두번째 아들을 얻었으니 손영주의 집안에 ‘풍요와 번성’이 있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렇게 1919년과 1920년에 내남과 경주에서는 서배 할배 손상훈의 집안과 김춘엽의 집안에 좋은 일과 궂은 일이 번갈아 발생하고 있지만 조선의 정세는 그것이 아니다. 1919년 3.1만세운동에서 비롯된 민족독립의 움직임이 해외에서 상해임시정부의 수립을 발생시키고 있으며 만주에서는 독립군들의 활동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그에 따라 조선총독부는 무조건 일본의 군대를 헌병으로 동원하여 조선의 백성을 총칼로 억압하는 형식에서 벗어나 그 전략을 한층 유연하게 펴고 있다. 겉으로는 부드러운 문화정책을 펴는 척하면서 내부적으로는 조선인들의 마음을 독립정신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내선일체’로 일본인과 하나가 되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더 좋다고 교묘하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일련의 사태에 대하여 서배 할배 손상훈 부부와 김춘엽 부부가 나름대로 깊은 이해를 얻게 된 것은 역시 1919년 6월에 경주 성동 김춘엽의 사랑방모임에 참석한 장인식 교장과 안성기 교장의 설명이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날 안성기 교장이 먼저 발표에 나섰다.
안성기는 다음과 같이 말문을 열고 있다; “저는 동경에 살고 있는 아들 안용운을 통하여 일본의 자료를 많이 얻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의 신문에 실려 있는 기사와 사설들을 두루 읽고서 제 나름대로 분석을 해보고 있지요. 그 가운데 먼저 말씀을 드려야만 하는 중요한 두가지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 일동들이 궁금해 한다.
안성기가 설명을 한다; “하나는, 1911년에 신해혁명이 발생하여 중국에서 청왕조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청국이 없어지고 그 나라의 주인은 혁명을 주도한 세력이라고 볼 수가 있는데 그것이 꼭 그렇지가 않습니다. 혁명의 지도자인 손문이 천하통일을 못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청왕조를 무너뜨리는 대단한 혁명을 했는데 어째서 그러한가?’ 그러한 좌중의 궁금증에 대하여 안성기는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다; “청국의 군대를 지휘하고 있는 장군들이 전국에 흩어져서 주둔을 하고 있는데 그들이 청왕조가 사라지자 이제는 지역을 분할하여 스스로 왕처럼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들을 이름하여 ‘군벌’이라고 말하지요”;
그것참 신기한 일이다. 모두들 안성기의 설명에 귀를 기울인다; “신해혁명의 중심인물인 중국인들의 지도자 손문은 전국에 할거하고 있는 군벌들을 쳐부수지 아니하는 한 중국을 통일할 수가 없다고 판단합니다. 따라서 시급하게 무관학교를 만들고 제자들을 지휘관으로 키워냈습니다. 그 결과 대단한 수제자가 나타났는데 그가 바로 장개석입니다”;
안성기의 설명이 이어진다; “장개석은 군대를 조직하여 각 지방의 군벌들을 쳐부수기 시작합니다. 그의 통일전쟁을 돕기 위하여 중국의 부자인 지주와 상인들이 군비를 감당하고 있지요. 장개석의 군대가 가는 길에 그들의 이익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장개석의 군대가 승리를 거두고 있는 것을 싫어하는 세력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동이 어리둥절해 한다. 그러자 안성기가 그 점을 설명한다; “신해혁명은 시민들의 힘으로 청의 왕조를 무너뜨린 것입니다. 이제 시민들의 군대가 중국을 통일하고 그 힘이 강해진다고 하면 서양 제국주의자들이 중국에서 이권을 내놓고 떠나야 할 형편입니다. 그러므로 외세는 장개석을 돕는 것이 아니라 은밀하게 지방의 군벌들을 지원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때서야 좌중의 선비들과 그 부인들이 ‘아 그렇구나’하고 이해를 한다. 그러자 안성기가 그 다음 주제를 말한다; “또 하나의 중요한 사건은 1917년 러시아의 수도인 모스코바에서 발생한 피의 혁명입니다. 노동자와 농민들이 공산주의사상을 가진 지식인들의 주장에 크게 호응하여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성공합니다. 세계 역사상 초유의 일이지요. 러시아의 황제인 ‘짜르’는 목이 달아나고 그 나라의 주인이 공산당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모두들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의아해하면서 안성기의 입을 쳐다본다. 그러자 안성기가 신이 나서 설명을 한다; “그것은 소작농들이 지주를 몰아내고 그 땅의 주인이 되며 노동자들이 자본가를 없애고 자신들이 회사와 공장의 주인이 되는 그러한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혁명입니다. 따라서 노동자와 소작농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공산주의 지식인들이 공산당을 만들고 자신들이 당간부가 되어서 그러한 정책을 강력하게 실천하고 있지요. 그러한 정치체제가 러시아에서 출범을 하자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이 그 혁명을 무효로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때서야 모두들 크게 고개를 끄떡인다. 그렇지만, ‘그 두가지 사건이 자신들에게 무슨 영향이 있다는 말인가?’ 그 점이 궁금하다. 안성기 교장이 그 점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러시아 공산당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외국에 수출하여 자신들을 지지하는 세력을 형성하고자 합니다. 그 대상이 자본주의제국의 지배를 벗어나고자 몸부림을 치고 있는 가난한 식민지의 백성들, 특히 외세를 물리치고 민족의 독립을 쟁취하고자 투쟁하고 하는 민족 지도자들이지요”.
좌중의 인사들이 어느 정도 이해를 하자 안성기가 본론으로 들어간다; “조선의 민족지도자들은 두가지의 꿈을 꾸고 있습니다; 하나는, 청왕조가 사라지자 장개석이 군대를 만들어 지방의 군벌을 쳐부수고 천하통일을 도모하듯이 그렇게 조선에서도 이씨왕조가 사라졌으므로 이제는 민족주의자들이 군대를 만들어 외세를 쳐부수고 독립을 쟁취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능할지는 몰라도 일단은 만세시위를 통하여 조선백성들의 호응도를 한번 점검해본 것이지요”.
그 다음은 무엇일까? 안성기가 설명을 계속한다; “또 하나는, 러시아에서 발생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연구하여 그 방법대로 실천하면 한성에서 일제의 조선총독부를 쳐부수고 조선인민의 혁명을 완수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일본제국이 과거에 청국과 러시아와 전쟁을 하듯이 그렇게 강대국과 전쟁을 하여 그 힘이 약화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때가 과연 언제일까요? 저로서는 가늠하기가 어렵습니다”.
안성기 교장의 설명을 그 정도 듣고 나니 ‘3.1만세운동’은 그러한 전략으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전술이라고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3.1만세시위’를 계획한 자들은 누구이며 그들이 그 다음에 하고자 하는 일들은 과연 무엇일까? 궁금한 그 주제에 대해서는 발표자를 바꾸어 이제는 장인식 교장이 스스로 연구한 바를 설명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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