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 할배80(작성자; 손진길)
장인식 교장의 첫마디가 다음과 같다; “저는 다행스럽게도 지난 3월 하순에 부산으로 저를 은밀하게 찾아온 오경덕 선생의 도움으로 3.1만세운동의 시작과 그 다음 수순에 대한 중요한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 점을 먼저 말씀 드린 다음에 제 나름대로 수집한 정보를 분석한 결과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러자 지난 1월달에 벌서 오경덕 선생을 만나본 내남의 서배 할배 손상훈과 이채령 그리고 경주 읍내의 김춘엽과 이가연은 고개를 끄떡인다. 그 모습을 보고서 이번에는 안성기 교장이 보충설명을 한다; “물론 지난 3월 하순에 오경덕 선생이 부산으로 와서 장인식 교장 뿐만 아니라 저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잠시 쉰 다음에 안교장이 이어서 말한다; “그때 저도 필요한 정보를 오경덕 선생으로부터 얻었습니다마는 그래도 장인식 교장이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리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장인식 교장이 그 정보를 바탕으로 하여 개인적으로 더 많은 연구를 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때 오경덕 선생은 내남의 서배 할배를 먼저 만나서 저희들이 부산으로 이사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더군요…”.
이번에는 서배 할배 손상훈이 크게 고개를 끄떡인다. 그러자 장인식 교장이 다음과 같이 발표를 한다; “첫째로, 오경덕 선생이 한성에서 권동진 선생을 만나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그 두사람이 정세판단을 했다고 하는데 그 내용을 간략하게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지난 1910년 한일합방이 있은 다음부터 일제는 조선을 식민지로 삼고 일본군대의 헌병을 경찰로 동원하여 무자비한 탄압을 하면서 엄청난 수탈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조선의 좋은 나무를 거의 베어가고 모든 지하자원을 수탈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리고 쌀은 생산이 되는 즉시 일본으로 실어 갑니다. 그에 따라 조선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지요…”;
참고로, 곡창지대 호남에서 생산이 된 쌀을 일본으로 가져가고자 군산항에 모아 두고 있는 사진이 다음과 같다;
그리고 조선의 목재를 벌목 운반하는 차량의 궤도가 다음과 같다;
끝으로, 조선의 자원을 수탈하는 한편 일본의 무기와 병력을 신속하게 만주와 중국으로 이동하기 위하여 일본제국이 조선에 이미 설치한 철도와 향후계획이 아래 지도와 같다;
장교장이 숨을 한번 돌리고 다시 이어서 말한다; “둘째, 유럽에서는 1914년부터 열강들 사이에 편을 갈라서 크게 전쟁을 했는데 그것이 ‘세계 제1차 대전’이라고 불리고 있지요. 그 전쟁이 1918년에 끝이 났는데 그 원인은 독일이 유목민인 게르만 족의 통일을 이루고 그 힘이 엄청나게 강해졌기 때문에 그것을 주변의 국가들이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장교장이 이어서 설명을 한다; “또 하나의 원인은 후발산업국인 독일도 민족의 통일을 이루고 그 힘이 강해졌으므로 이제는 선진산업국인 영국과 불란서가 선점하고 있는 식민지를 다시 분배하자고 나선 것이지요. 그러므로 그것은 근대화를 이룬 산업국들이 필연적으로 벌이게 되는 식민지 쟁탈전입니다. 그러한 전쟁이 나중에는 중국에서 일본제국과 서구의 열강 사이에 다시 발생을 하게 되겠지요…”.
잠시 말을 끊었다가 장교장이 이어서 설명을 한다; “전쟁의 결과 독일이 지고 영국과 불란서 등 연합국이 승리를 얻기는 했지만 유럽에서 그들의 피해가 엄청납니다. 따라서 식민지를 통제하는 그들의 군사력이 그만큼 약해진 것이지요. 그러한 형편이므로 그들이 지배하고 있는 식민지에서 민족해방전쟁이 발발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 영향을 이제 조선의 백성들이 ‘민족자결주의 원칙’이라는 사상으로 크게 받고 있는 것이지요”.
장인식 교장이 더 중요한 이야기를 이제 하고자 한다; “셋째, 만주에서 온 오경덕 선생과 군사전문가인 권동진 선생이 평가하기로는 1919년이 민족해방전쟁을 시작하기에는 딱 좋은 시점인데 다만 한가지 우려가 되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동양에서 유일하게 산업선진국이 되어 있는 군사대국 일본제국이 제1차세계대전의 피해를 전혀 입지를 않았기 때문이지요”. 참고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징집된 주요국의 병사의 수가 다음과 같은데 유럽의 영국과 불란서 등은 총력전이지만 아시아의 일본과 아메리카의 미국은 그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 그 점에 대한 장교장의 설명이 이어진다; “그러므로 세계대전의 결과 그 힘이 빠져 있는 영국, 불란서, 독일 등을 상대하는 것과 생생한 일본제국의 군대를 상대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그에 따라 정면승부는 개죽음이 될 것이므로 오선생과 권선생은 비폭력적인 저항의 방법으로 만세시위를 기획한 것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현명한 방법의 선택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좌중의 인사들이 모두 고개를 크게 끄떡이고 있다. 그 말을 들으니 지난 3월달의 만세운동이 어째서 그렇게 비폭력적인 평화시위로 일어난 것인지 비로서 그 깊은 이유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장교장이 설명을 계속한다; “두번째로, 3월 1일부터 전국적인 만세시위를 전개한 결과 몇 가지 중요한 변화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두가지 측면에서 말씀을 드릴 수가 있습니다”.
이제는 3.1만세운동의 결과에 대한 분석이다. 모두들 장교장의 입을 쳐다본다; “첫째, 3.1만세시위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일본제국과 조선의 민족지도자들의 견해가 크게 다릅니다. 일본에서 발행이 되고 있는 신문들은 조선의 만세시위를 작은 소동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근거로서는 2천만 조선인들 가운데 만세시위에 가담한 자가 14만명에 불과하다는 것이지요”.
그것은 좀 아닌 것 같다. 모두들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자 장교장이 설명을 계속한다; “조선의 민족지도자들의 견해는 다릅니다. 예를 들어 평양의 경우 전체 시민의 4할 이상이 만세운동에 나선 것이지요. 그러므로 전국적으로 적어도 200만명 이상으로 그 수가 엄청납니다. 더구나 양적인 측면보다는 질적인 측면이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금번의 만세시위가 조선백성들에게 ‘우리도 뭉치면 큰 역사를 만들어낼 수가 있다’고 하는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었기 때문이지요”;
장교장이 두번째 이야기를 한다; “둘째, 조선백성의 한결같은 민족독립의 염원과 그 저력을 금번 만세시위로 확인한 결과 이제는 해외에서 임시정부가 시작이 되고 의병이 아니라 독립군이 구성이 되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조선의 군주제를 버리고 이제는 조선의 백성들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민주공화제 독립정부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참으로 마음에 드는 소리이다. 그래서 모두들 눈이 초롱초롱하다. 그 눈망울을 보면서 장교장이 그 다음 설명을 한다; “또 하나는, 조선의 왕정국가를 수복하자고 하는 국권운동과 의병활동을 접고 이제는 완전히 새로운 조선백성들 자신들의 독립국가를 건설하는 독립군을 만들어 일제와 무력투쟁을 전개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조선 땅에서 군비를 마련할 방도가 없으므로 독립군의 활동은 제한적입니다. 그러나 일본제국이 유럽의 독일처럼 다른 산업선진국과 식민지전쟁을 벌인다고 하면 그 결과는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쌍방이 모두 피해가 막심할 때에는 조선의 독립군이 큰 힘을 발휘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전략이다. 모두들 이해가 된다. 조선 독립의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고 그것은 유럽전쟁의 경우에 비추어보면 희망적이다. 그래서 자신들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 있다. 장인식 교장도 자신의 설명이 그렇게 설득력이 있는 것을 알게 되자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고개를 숙이면서 감사의 뜻을 표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안성기 교장이 한마디를 한다; “상해에 임시정부가 수립이 되고 있다고 하는데 그에 대한 최근의 소식이 뭐 없습니까?”;
장인식 교장이 즉시 답을 한다; “6월 현재, 다음 세가지 사실을 말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여러분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일제에 맞서 이제는 조직적인 독립운동이 가능하도록 우선 급한대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상해에 수립한 것입니다. 지난 4월 11일에 임시적인 제헌의회에 해당하는 ‘임시의정원’을 구성하고 각도 대의원 30명이 모여서 임시헌장 10개조를 채택함으로써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을 대외적으로 천명한 것이지요”;
잠시 쉬었다가 이어서 말한다; “둘째, 임시정부의 각료 명단이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이동녕이 임시의정원 의장을 맡았지요. 그리고 이승만이 내각의 국무총리이고 안창호가 내무총장, 김규식이 외무총장인데 그들 3사람은 모두 미국에서 유학을 한 인물들입니다. 다음으로 독립운동 명문가 출신인 이시영이 법무총장이고 조선의 무관출신인 이동휘가 군무총장입니다. 그리고 러시아에서 활약하고 있는 의병장 출신인 최재형이 재무총장이고 러시아에서 조선인들의 대통령이라고 불리고 있는 문창범이 교통총장이지요”;
그 다음의 사항에 대하여 장인식 교장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셋째, 상해임시정부는 장차 정식으로 헌법을 만들고 미국처럼 대통령이 국가의 원수가 되는 민주공화정을 수립하고자 합니다.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그곳에서 생활을 한 적이 있는 이승만, 김규식, 안창호 등이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만주와 러시아 연해주 등지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민족지도자들이 어느 정도 그 방향에 호응을 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장인식 교장이 그러한 언급까지 하고 있는 것을 보니 아직 그것은 미래에 속하는 일이다. 미래지사야 어떻게 인간이 다 알 것인가? 그저 착실하게 하루하루를 의미가 있게 살아가면서 다가오는 미래를 나름대로 대비할 따름이다.
그러한 결론을 얻고 있는 그날 성동 사랑방모임을 서배 할배 손상훈은 잊지를 못하고 오래 기억하게 된다. 모처럼 옛날 덕천 사랑방모임의 구성원인 4부부가 한자리에 모여서 서로의 생각을 많이 나누고 토론의 열매를 풍성하게 얻은 진실로 좋은 날이 바로 1919년 6월의 그날이기 때문이다.
'서배 할배(손진길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배 할배82(작성자; 손진길) (0) | 2021.09.26 |
---|---|
서배 할배81(작성자; 손진길) (0) | 2021.09.26 |
서배 할배79(작성자; 손진길) (0) | 2021.09.25 |
서배 할배78(작성자; 손진길) (0) | 2021.09.25 |
서배 할배77(작성자; 손진길) (0) | 2021.09.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