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룡전24(작성자; 손진길)
그날 저녁에 최사월이 맛있는 음식을 대접한다. 그것을 먹으면서 송혜진이 말한다; “늘 숨어서만 살아오다가 오늘에서야 사제들에게 내 정체를 밝히고 편하게 식사를 하게 되는군요... 꿈만 같습니다”.
그 말을 듣자 아룡은 사저인 송혜진이 참으로 가련하다는 생각이 든다. 종진국에서 백부장으로 일하던 그녀가 나라가 망하자 심양으로 가서 숨어서 살았다. 그리고 고려의 개경으로 들어와서도 오랜 세월 혈혈단신으로 수하들의 뒤를 돌보면서 지냈다. 이제서야 아룡이 부부를 만나서 동문의 정을 나누면서 편하게 식사하고 있는 것이다.
나라가 망하면 저렇게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마는 것인가?... 아룡은 조국인 고려를 몽골제국으로부터 반드시 지켜내고자 하는 마음이 더 단단하여 지고 있다. 그렇게 개경의 가을밤이 소리없이 깊어 가고 있다.
열흘이 지나자 아룡이 부부가 개경의 서문밖에 있는 두문동 산지의 숨어 있는 공터에서 사저인 송혜진을 만난다. 그곳에는 20명의 낭자군이 자신들의 자녀를 한 명씩 데리고 모여 있다. 자녀들의 나이가 20세 정도로 보인다.
송혜진의 부하로서 개경에 함께 들어와서 지난 1195년부터 27년 세월을 살아온 낭자군들은 버젓한 가정을 이루었으며 이제는 모두가 50대 후반이다. 그녀들은 하나같이 자녀들을 낳아 집안에서 은밀하게 어려서부터 내공과 외공술을 가르친 것이다.
그녀들은 백부장인 송혜진을 사부로 모시고서 야율종진왕의 절기를 배웠기에 아룡이 부부에게 사숙의 예를 올리고 있다. 나이가 많은 사질 20명을 맞이하게 되니 아룡이 다소 어색하다. 하지만 동문의 기강이 엄격해야 장차 무예집단을 질서 있게 이끌어 나갈 것이므로 사양하지 아니하고 응대하고 있다.
그 다음에는 20명의 청년들의 비무를 진행하고자 한다. 그 가운데에는 8명의 쳐녀가 포함되어 있다. 아들이 없는 가정에서는 딸들에게 대신 무예를 가르친 것이다. 따라서 최사월이 낭자들의 비무를 책임지고 진행하고 있다.
목검을 가지고 벌어진 일대일 대결에서 서로가 그동안 갈고 닦은 무예실력을 선보이고 있다. 아룡과 사월이 뿐만 아니라 송혜진과 그녀의 수하 20명이 정확하게 젊은이들의 실력을 평가하기 위하여 애를 쓰고 있다.
그 가운데 무예가 가장 고강한 아룡은 자신의 내공을 운행하면서 슬며시 내기와 외기를 하나로 만들어 비무를 하고 있는 두사람에게 쏘아 보내고 있다. 그 이유는 대결하고 있는 두사람의 내력의 정도를 측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아룡은 16살에 벌써 상단의 기가 하늘로 통하는 소위 통천을 하고 자연의 기를 받아들였으며 이듬해 17살에는 자신의 내기와 하늘의 외기를 혼합하여 하나로 운행하는 놀라운 성취를 얻은 기재이다. 백 년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하다는 그 놀라운 경지에 올라선 인물이 아룡인 것이다.
따라서 아룡은 은밀하게 시합중인 두사람의 전신 내력의 크기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내력의 수준까지를 정확하게 평가하고 있다. 그것도 전혀 당사자나 외부인이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한 아룡의 무예수준을 그의 사부인 도학스님만은 눈치를 채고 있다. 그래서 야율종진왕의 제자인 청객 김성곤이 벌써 감탄한 바가 있다; “옛날 종진국을 세운 사부 서우진왕의 무예를 다시 보고 있는 것만 같다. 우리 고려의 홍복이구나!... “.
그 결과 아룡은 12명의 남자 청년 가운데 두 명을 따로 가려내고 있다. 나머지 10명은 그 무예실력이 비슷비슷한데 단 두 명이 특출하기 때문이다. 그 두사람에게 재차 비무를 지시한다. 두 청년이 용호상박의 대결을 펼친다.
10여 수가 진행이 되자 아룡이 시합을 중지시킨다. 그리고 질문한다; “두사람의 이름이 무엇인가?”. 두 청년이 씩씩하게 대답한다; “저는 명수입니다”. “저는 강철입니다”. 그 말을 듣자 아룡이 말한다; “명수와 강철이구나 그러면 이번에는 두사람이 나를 상대하여 2대1로 비무를 해보자꾸나… “.
두사람이 깜짝 놀란다. 명수가 21살이고 강철이 20살이다. 두사람은 이삼 년 전부터 적수를 찾을 수가 없을 정도로 무예가 고강하다. 그런데 아무리 사숙이라고는 하지만 자신들보다 별로 나이가 많아 보이지 아니하는 아룡이 갑자기 2대1로 비무를 하자고 제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벌써 8명이 대결을 펼친 처녀들의 비무가 전부 끝난 상태이다. 그러므로 8명의 낭자들과 아룡의 아내인 사월이 그리고 송혜진과 그녀의 수하인 20명의 중년부인들의 눈이 하나같이 아룡을 바라보면서 의아하게 빛나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2대1의 승부가 펼쳐진다. 목검으로 공격하지만 명수와 강철의 공격이 예리하다. 한사람은 왼쪽에서, 다른 한사람은 오른쪽에서 쳐들어오는데 그 기세가 대단하다. 그것을 보고서 모두들 놀라고 있다. 그렇지만 아룡이는 태평하다.
아룡이 자신의 목검을 슬쩍 한바퀴 돌린다. 그러자 그 목검에서 은은한 기운이 펼쳐진다. 그 기운이 신묘하게도 맹렬한 명수와 강철의 공격을 무산시키고 마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바람을 빨아들이는 것과 같다. 어떻게 상대방의 기세를 모조리 흡수하고 마는 것인가?...
그런 상태로 12합이 전개가 된다. 명수와 강철은 자신들이 배운 야율종진왕의 절기 가운데 가장 강력한 기술을 사용하여 그것도 자신들의 전신의 내력을 부어서 결사적으로 공격을 가한다. 그러나 그것 역시 허사이다.
두사람은 허망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속으로 생각한다; “세상에, 무예의 신인 야율종진왕의 비기가 맥을 쓰지 못하는 경지의 무공이라니?... 이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저 아룡이라고 하는 사숙은 도대체 인간인가? 신인가?... “.
대결을 벌인 명수와 강철만이 아니다. 최사월과 송예진 그리고 20명의 낭자군 출신 부인들이 줄줄이 경악하여 도무지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녀들은 비로소 오늘에서야 하늘위에 하늘이 있다는 사실을 똑똑하게 목격하게 된 것이다.
형편이 그러하니 나머지 18명의 젊은이들이 아무 말을 하지 못하고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있다. 그들의 귀에 아룡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오늘 그대들에게 나의 무예의 일부분을 공개했어요. 그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무예수련에는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
아룡이 심각한 표정으로 서있는 여러 사람들을 한번 둘러본 다음에 다시 말한다; “하나의 무예가 완성이 되면 그 다음 단계의 무예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사전에 알게 되면 겸손한 자세로 매일같이 수련을 게을리할 수가 없습니다”.
잠시 숨을 쉬고서 아룡이 계속 말한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경지의 무예를 지닌 무사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여러분들은 나와 함께 그들 진정한 고수들을 상대하기 위하여 의미 있는 첫걸음을 떼어야 합니다. 나는 이제부터 여러분들과 함께 그 일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
아룡이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고 있다; “그렇게 수련을 쌓아가다가 보면 몽골군이 쳐들어오더라도 우리가 일당백으로 그들을 넉넉하게 막아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우리 고려의 귀족으로서 종진국을 건설했던 사조 야율종진왕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일이라고 지금 생각하고 있습니다… “.
그 다음에 아룡이 20명의 젊은이들에게 하나의 제안을 하고 있다; “나는 방금 선을 보여준 나의 절기를 그대들에게 전수할 생각이요. 그 이유는 내가 고안하여 사용하고 있는 이 절기는 허초와 실초를 구별하여 대응하는 것과 상대방의 실초를 허초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이중의 효과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
아룡이 주위를 돌아보니 모두들 눈을 반짝이고 있다. 그래서 아룡이 싱긋 웃으면서 말한다; “이 수법을 사용하게 되면 두가지 효과가 있어요; 하나는, 내력을 많이 사용하지 아니하고도 넉넉하게 상대의 공격을 막아낼 수가 있다는 것이요. 그리고… “.
이제 중요한 대목을 아룡이 말하고 있다; “또 하나는, 몽골군의 장기가 빨리 달리는 말위에서 강궁을 쏘아 대는 것인데 그것에 대처할 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내가 그러한 특혜를 줄 것이니 앞으로 나와 함께 야별초에 참여하여 몽골군과 싸울 준비를 하도록 합시다”.
그 말을 듣자 20명의 청춘남녀들이 ‘와아’하고 함성을 지른다. 그것을 보고서 아룡이 말한다; ‘내가 그대들이 대련하는 것을 보니 명수와 강철의 무예가 가장 뛰어나더군요. 그래서 나는 두사람을 각각 십부장으로 세우고자 하오. 그리고 낭자군에 대한 십부장은 이제 오십부장인 최사월이 임명할 것이요”.
그 말을 들은 최사월이 앞으로 나와서 말한다; “8명의 대련결과를 분석한 결과 나는 금애랑을 십부장으로 세우고자 합니다. 그 이유는 그녀가 가장 상수이기 때문이지요. 이의가 있는 낭자는 지금 말해 주세요… “.
그 말을 듣자 나머지 7명의 처녀무사들이 모두 고개를 끄떡이고 있다. 그래서 명수와 강철은 각각 5명의 남자무사들을 거느리는 십부장이 되고, 금애랑은 7명의 낭자군을 거느리는 십부장이 되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송예진과 20명의 중년부인들이 한꺼번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1222년 늦가을에 최우 장군의 저택에 있는 연무장에서 야별초 선발을 위한 무술대회가 열린다. 그 자리에는 방문을 보고서 신청한 무사들 1,000여명과 아룡과 백주환이 천거한 인물 150명 정도가 대결을 벌인다.
다행히 아룡이 천거한 20명의 젊은 남녀무사가 모두 합격한다. 그것을 보고서 취객 조하준이 그들을 전부 오십부장인 아룡의 수하에 둔다. 그리고 백주환이 천거한 인물 가운데 80명 정도가 합격한다. 그들을 오십부장인 백주환이 별동부대로 지휘하게 된다.
기타 선발이 된 인물들은 대부분 청도관 출신과 기강태의 수하들이다. 그들 300명을 취객 조하선이 직접 지휘하게 된다. 그렇게 야별초가 구성이 되자 취객 조하준이 한참 생각한다. 그 결과 그가 하나의 결정을 내린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다; “아룡 오십부장은 부하의 수가 너무 적습니다. 그러므로 장차 실력자를 초청하여 그 수를 100명으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그 권한을 드립니다. 그리고 백주환 오십부장도 차후 20명을 더 선발하여 100명으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그 권한 역시 드리겠습니다”.
취객의 결론이 다음과 같다; “그러면 일단 우리 야별초가 500명으로 구성이 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제가 최우 장군님께 그렇게 보고를 드리고 충분한 재정지원을 받겠습니다. 아무쪼록 몽골군의 남침에 대비하는데 차질이 없도록 훈련에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아룡이 보니 취객 조하준이 상당히 지도력이 있고 합리적이다. 그래서 그는 좋은 사형을 또 한사람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여 가슴이 뿌듯하다. 그때부터 아룡은 최사월과 함께 20명의 젊은이들을 훈련시키기에 바쁘다.
그는 그 일만 하는 것이 아니다. 개경과 그 주위를 3년간 돌아다니면서 무예가 뛰어난 청년이거나 아니면 소질이 있어 보이는 청소년을 선발하고 있다. 그 가운데 아룡이 발탁한 인물이 41명이다. 특이한 것은 그 중 10명이 14세를 전후한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아룡은 10명의 아이들을 모두 자신의 제자로 삼는다. 그리고 3년간 내공술을 가르치면서 수련을 계속하게 한다. 집중적으로 지도한 결과 상당한 경지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도와주어도 아룡 자신이 터득한 통천의 경지에 이르지는 못하고 있다.
그 다음 3년간 그들 10명의 제자에게 외공술을 가르친다. 그 결과 1228년이 되자 20살 약관의 나이에 상승무예를 지닌 제자 10명을 아룡이 수하로 두게 된다. 그들 가운데 훗날 고려의 역사에 크게 이름을 올린 자들이 다수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 사이에 두가지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하나는, 1227년에 파주골의 암자에서 도학스님이 길러낸 제자 17명이 개경에 올라온 것이다. 도학스님이 그들 곧 소도와 그의 사제 16명을 데리고 와서 아룡에게 얼마나 자랑하는지 모른다.
크게 웃으면서 도학스님이 말한다; “아룡아, 소도를 비롯한 나의 제자 17명이 인재들이다. 능히 고려국의 국방에 대들보가 될 수 있는 자질이 있으니 네가 그 앞길을 사형된 입장에서 잘 열어 주기를 바란다. 나는 다시 파주골로 내려가고자 한다”.
아룡은 그들 17명의 사제들을 야별초 자신의 부대에 합류를 시킨다. 그 결과 남자무사가 70명이고 여자무사가 30명이다. 여자무사가 30명으로 늘어난 이유는 그동안 최사월이 22명의 여자무사를 더 모집하였기 때문이다.
최사월은 매우 바쁘다. 격일로 그녀는 최우 장군의 저택에서 100명의 낭자군을 통솔하면서 근무한다. 그리고 쉬는 날에는 야별초에서 30명의 낭자군을 또 지휘한다. 그녀가 바쁠 때에는 남편인 아룡이 30명의 낭자군을 대신 지휘하기도 한다.
아룡은 자신이 지휘하고 있는 70명의 야별초의 성분을 4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첫째, 명수와 강철이 지휘하고 있는 12명. 둘째, 개경일원에서 추가로 모집한 31명. 셋째, 파주골 암자에서 올라온 소도를 비롯한 17명. 넷째, 아룡이 직접 길러낸 10명 등이다.
그렇다면 그 사이에 발생한 또 하나의 사건은 무엇일까? 그것은 1225년에 발생한 것으로서 장차 고려의 운명을 좌우하는 큰 사건이다. 이제부터 그 사건에 대하여 알아볼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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