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룡전37(작성자; 손진길)
벌써1252년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고 있다. 개경의 서촌에 있는 청도관에서는 참으로 오래간만에 들린 도학스님 곧 사조인 청객 김성곤과 그의 직계제자인 김재룡 부부를 환영하는 잔치가 한창이다.
관장인 관비호가 이제는 나이가 많아 수제자에게 관장 자리를 넘겨주고 있어서 그런지 시간이 많다. 그래서 그가 사조인 도학스님 옆에 붙어서 좋은 말동무가 되고 있다. 그 자리에는 특별히 도학스님의 동생인 신선 김경수가 참석하고 있다.
아룡이는 잔치가 어느 정도 파하자 아내 최사월과 함께 객주 경종성의 저택으로 돌아온다. 이제는 무인이 아니라 상인으로 지내는 것이 더 편한 것만 같다. 그렇지만 아직 한가지 볼일이 더 남아 있다.
그래서 다음날 아룡이 부부는 경노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강화도 맞은 편 내륙 백마산 옆에 자리를 잡고 있는 승천부에 들린다.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김보정 장군을 만나기 위한 것이다.
아직 50대인 김보정 장군은 이제 무신이라기보다는 문신이다. 그는 외교적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고려의 국왕인 고종의 신임이 두텁다. 그래서 몽골군이 재침하는 경우 이제는 전쟁이 아니라 외교적인 화해를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아룡 부부가 김보정 장군과 인사한 다음에 함께 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시작한다. 먼저 아룡이 질문한다; “최우의 집안에서는 서장자인 최항이 권력을 승계하였다고 하는데 강화도의 형편은 어떠합니까?... “.
김 장군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한다; “과거 최우 장군과 같은 노련미가 없지요. 그는 젊어서 그런지 아니면 경륜이 없어서 그런지 변덕이 심하고 신경질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있어요. 따라서 조정에서는 가급적 그를 보좌하고 있는 김준이나 무활 그리고 문사 필우와 같은 인물과 논의하면서 국정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
최항이 권력을 승계한지 3년이 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뚜렷한 정책이 하나도 없는 모양이다. 다행히 몽골제국의 귀위크 칸이 1248년에 별세하고 황후인 오굴 가이미슈의 섭정을 3년간 거친 후에 새로운 대칸으로 귀위크의 사촌인 몽케가 1251년에야 즉위하였기 때문에 몽골군이 그 사이에 내침하지 아니하고 있다. 그 덕을 고려의 무신정권이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여몽전쟁이 소강 상태이므로 아룡이 부부는 상인으로서의 업무에 충실하고자 한다. 그래서 개경과 벽란도를 오가면서 객주 경종성을 도와 상단의 일을 꼼꼼하게 처리한다. 그렇게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고 새해 1253년이 밝아온다. 그러자 정월달에 갑자기 몽골군이 대거 고려를 침입한다. 그것이 이름하여 몽골군의 제5차 침입이다.
몽케 칸이 몽골제국에서 대칸으로서의 입지를 굳히고 나자 숙부인 예케를 사령관으로 삼아 고려를 강하게 들이친 것이다. 그 어느때보다도 대군이다. 그들은 파죽지세로 충주까지 밀고 내려간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충주성을 지키고 있던 섭장군 김윤후와 백성들이 그들을 막아내고 있다.
몽골군 사령관인 예케가 한달이나 충주성을 공격하였지만 허사이다. 그래서 그는 개경으로 올라오고 군사를 남겨서 계속 충주성을 공격하라고 지시한다. 화가 난 예케는 눈에 보이는 대로 고려의 패잔병은 물론 마을의 장정들과 처녀들까지 포로로 삼아 북송하기를 시작한다.
너무 많은 고려사람들이 몽골군의 포로가 되어 북으로 끌려가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아룡이 부부는 마냥 마음 편하게 상인으로 일하고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떨치고 일어난다. 금애랑을 비롯한 낭자군 12명과 함께 포로를 북송하고 있는 몽골군을 기습한 것이다.
아룡이 진노하자 참으로 그의 무공이 무섭다. 말을 달리면서 검을 휘두르고 있는데 그가 내력의 8할이나 검에 불어넣어서 그런지 20장 이내가 모조리 초토화가 되고 만다. 그 앞에 있는 군마와 몽골군들이 전부 검기에 볏단처럼 베어져 쓰러지고 있다. 그것은 마치 거센 태풍을 만난 약한 나무가지와 같다.
1,000명의 몽골군이 3,000명이나 되는 고려사람들을 포로로 끌고 가다가 아룡의 별동부대의 습격을 받아 그들 대부분이 현장에서 죽고 겨우 수십명만이 기적적으로 도망치고 만다. 아룡이 부부는 포로로 잡혀 있던 고려사람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고자 한다. 그러나 그 가운데 1,000명정도가 귀향을 거부하고 있다.
이상하게 생각하여 아룡이 물어본다; “그대들은 어찌하여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지 않는가?”. 들려오는 대답이 엉뚱하다; “이미 몽골군에 의하여 고향이 불타버리고 부모와 처자식이 죽고 말았습니다. 이 원통함을 풀지 않고는 고향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저희들에게 그 무예를 가르쳐주십시오… “.
그 말을 듣자 아룡이 낭패를 느낀다. 그래서 그들에게 말한다; “당신들은 혹시 승병장 김윤후 장군의 거처를 알고 있는가? 그를 찾아가면 부대에 편성하고 무예를 가르쳐줄 것이다. 내가 편지를 써줄 것이니 그렇게 하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
그 말을 들은 장정 가운데 한사람이 용감하게 손을 들고서 발언을 신청한다. 아룡이 고개를 끄떡이자 그가 말한다; “우리는 승병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냥 몽골군과 끝까지 싸우는 농민군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천거하여 주십시오… “.
맞는 말이다. 그래서 아룡이 사형인 김윤후에게 보내는 서신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첨언한다; “이들은 포로 출신들이라 몽골군에 대한 원한이 깊습니다. 따라서 최후의 일인까지 서로 신의를 지키며 끝까지 몽골군과 싸우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비를 베푸는 승병이 되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을 위하여 가칭 ‘신의군’이라는 별동부대를 편성해주시고 무예사범을 붙여 주기를 앙망합니다. 사제 아룡 배”.
그 서신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자들이 대부분인데 그 가운데 300명 정도가 움직이지 아니하고 있다. 아룡이 그 이유를 알지 못하여 물어본다; “그대들은 어찌하여 의병이 되고 싶지 아니한 것이요?... “. 그 말을 듣자 그중 나이가 있어 보이는 사람이 대답한다; “저희들은 여러가지 기술을 가진 장인들입니다. 그러니 무예를 배워서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가진 기술을 사용하여 조국을 강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
그 말을 듣자 아룡이 크게 고개를 끄떡인다. 그래서 그들을 인솔하여 경종성의 상단으로 데리고 온다. 아룡이 부부가 낭자군들과 함께 갑자기 3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데리고 오자 객주 경종성이 깜짝 놀란다.
아룡이 간략하게 사정설명을 한다. 그러자 경종성이 ‘하하’라고 웃으면서 대답한다; “그들은 하늘이 김재룡 당신에게 내려준 상급인 모양이요. 그들을 데리고 오키나와에 가서 고려촌을 건설하도록 하세요. 그리고… “.
어리둥절해 하는 아룡이 부부에게 경노인이 말한다; “그들로 하여금 재주를 사용하여 오키나와 섬에 고려촌을 건설하는 한편 여러 나라에 팔 수 있는 물건을 만들도록 하세요. 아울러… “.
경종성 노인이 아룡이의 눈을 똑바로 보고서 말한다; “또한 가정을 꾸리게 하여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도록 하세요. 이제는 김재룡 당신이 오키나와 고려촌의 촌장입니다. 나아가서 그대는 장차 고려의 피난민을 많이 수용할 수 있는 채비를 그곳에 갖추어야 합니다. 나는 하늘에서 그 길을 그대에게 열어주고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
그 말을 듣자 아룡이 웃으면서 말한다; “어르신, 잘 알겠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당장은 300명의 새식구를 그곳으로 이주하기 위해서 적어도 3척의 큰 배가 필요합니다. 준비가 되겠습니까?... “
그 말을 들은 객주 경종성이 대답한다; “우리 무역선과 상단의 재물은 그 일에 사용하라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준비가 되는 대로 바로 출발하도록 합시다”.
아룡이 부부는 1253년 여름에 경종성 노인과 함께 낭자군을 데리고 3척의 무역선으로 오키나와로 향한다. 물론 300명이나 되는 장인들이 그 배에 타고 있다. 그 사이에 아룡이 부부와 낭자군은 그 사람들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한다.
그 결과 그들의 직업군이 다양하다. 도공과 목공, 세공과 기와공, 그리고 석수와 화가, 나아가서 푸줏간 및 방앗간 기술자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것을 보고서 경종성 노인과 아룡이 매우 좋아한다. 고려촌을 건설하는데 꼭 필요한 인력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룡이 부부가 그들 가운데 눈여겨보고 있는 어린아이가 둘 있다. 하나는 15살이 되는 사내아이이고 또 하나는12살이 되는 계집아이이다. 그들은 남매간인데 전쟁통에 기와공장을 운영하던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다고 한다.
한눈에 보아도 똑똑하게 생겼다. 그래서 아룡이 부부가 그 이름을 물어본다. 이세준과 이세희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아룡이 배안에서 그 남매에게 말한다; “너희들은 어른도 없이 남매가 함께 이 배에 타고 있다. 이제 우리는 멀리 항해를 할 것이다. 우리가 가고 있는 곳은… “.
아룡이 다정하게 말을 걸자 남매가 귀를 기울인다. 아룡이 알기 쉽게 설명한다; “마치 강화도처럼 작은 섬이다. 그렇지만 환경이 전혀 다르다. 전쟁이 없어서 그곳은 좋지만 날씨가 고려보다 훨씬 덮다. 우리는 그곳에 피난민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고려촌을 만들려고 한다. 너희들의 생각은 어떠하냐?... “.
이세준이 아룡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고서 대답한다; “저희들은 전쟁이 싫어요. 그 전쟁바람에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저희들의 기와공장이 폐허가 되고 말았어요. 평화를 누리고 재주껏 살 수만 있다고 하면 어느 곳이라도 좋아요… “.
그 말을 듣자 아룡은 가슴이 아프다. 그래서 선뜻 제안한다; “그래, 알겠다. 그런데 너희들은 아직 10대들이다. 미성년자들이지… 그러니 보호자가 필요해. 너희들이 원한다면 내가 너희 남매의 보호자가 되어 주마. 나를 너희들은 촌장이라고 부르고 싶니? 아니면 이제부터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니?... “.
그 말을 듣자 세준과 세희가 갑자기 눈물을 흘린다. 그들이 엉엉 울면서 말한다; “머나먼 외국에 나가서 사는데 저희들은 부모님이 안 계셔요. 그러니 저희들을 고아로 버려 두지 마시고 자녀로 삼아 주세요. 저희들이 성심성의껏 부모님을 모시고 효도를 다할게요… “.
그것도 인연인가 보다. 그래서 아룡이 최사월에게 말한다. 사월이가 그들 남매를 품에 안고서 말한다; “그래, 이제부터 내가 너희 남매의 어머니이다. 너희들은 나의 아들과 딸이다. 그러니 그렇게 알고 이제부터 우리 함께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하자꾸나. 내 아들 세준아, 그리고 내 딸 세희야… “.
물론 최사월은 세준과 세희를 자신의 배가 아프게 낳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그 남매를 낳고 있다. 그때부터 10년 세월을 하루같이 오키나와 섬에서 세준과 세희를 키우며 양육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월이 남매에게 무예와 학문을 가르친다. 그것을 보고서 아룡이 행복함을 느끼고 있다.
그 사이에 금애랑을 위시한 12명의 낭자들도 300명의 피난민 가운데 미혼남자들을 찾아서 사귀기 시작한다. 그 결과 12쌍의 부부가 탄생한다. 그것을 보고서 아룡이 부부는 물론 경종성 노인이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른다.
아룡이는 1년 후에 고려의 개경에 다시 들린다. 그때 그는 전례없이 많은 고려사람들이 몽골군에게 끌려가는 것을 본다. 몽케 칸이 자랄타이 사령관을 정동원수에 임명하고 대군을 주어 1254년 윤달 7월에 대대적으로 고려를 공격하게 한 것이다. 그것이 소위 몽골군의 제6차 고려침입이다. 그들 침략군의 임무가 세가지이다;
첫째, 고려의 국왕이 강화도에서 내륙으로 나오고 몽골제국의 수도에 와서 대칸에게 머리를 조아리도록 만드는 것이다.
둘째, 고려사람들을 많이 잡아서 몽골제국으로 끌고 오라는 것이다. 몽골인과 비슷하게 생긴 고려사람들을 그들은 하인으로 부리고 싶은 것이다.
셋째, 1234년 대금을 정복하고 얻은 수군의 장비를 이번에 한번 시험해보고 싶은 것이다. 강화도를 공격하는데 그 장비가 효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목적이 무엇이든지 간에 아룡은 상관이 없다. 다만 6개월만에 20만명이 넘는 고려사람을 잡아서 북송하고 있는 그들을 미워할 따름이다. 그래서 그는 신의군의 도움을 받아서 함께 몽골군을 공격한다.
그 결과 대승을 거둔다. 그들이 구한 수만명의 포로들이 상당수 신의군에 합세한다. 그리고 일부 600명 정도가 아룡과 경종성 노인의 도움으로 오키나와 섬에 정착하게 된다. 그렇게 한 많은 1254년이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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