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룡전39(작성자; 손진길)
1263년 여름에 아룡이 부부는 개경에서의 일을 끝내고 류구의 오키나와에 있는 고려촌에 돌아온다. 이제 25살이 된 청년 세준이와 22살의 세희가 부모님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아룡이 부부가 고려촌에 없으면 촌장업무를 대신하고 있는 제자 이용준과 낭자군 출신의 십부장 금애랑이 또한 마중을 나온다.
오래간만에 아룡이 부부가 양아들 세준과 양딸 세희와 함께 가족끼리 저녁식사를 즐긴다. 그때 세준이가 부모님께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희가 부모님이 아니 계시는 동안에 중산(中山) 집안으로부터 청혼을 받았어요. 그 집의 장남인 중산다로가 세희를 연모하여 보낸 청혼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
그 말을 듣자 아룡이 먼저 말한다; “흠, 벌써 세희가 혼인을 할 나이가 되었구나. 그래 중산다로와는 어떻게 알게 된 것인가?... “. 얌전하지만 단단한 구석이 있는 처녀가 세희이다. 그러한 딸의 성격과 몸 가짐을 익히 알고 있기에 아룡이 물어본다.
그러자 그녀가 대답한다; “제가 오라버니와 함께 그 집에 기와 굽는 기술을 전수하고 있었어요. 그때 그 집의 장자인 중산다로가 인부들과 함께 그 기술을 습득하기에 열심이었지요. 수업과 실습 중에 저를 자꾸만 보더니 그러한 청혼을 보낸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
그 말을 듣더니 최사월이 갑자기 ‘푸흣’ 소리 내어 웃으면서 말한다; “세희야, 네가 말하는 모양을 보아하니, 이 에미가 생각하기에는, 너도 그 총각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구나. 그러니 그렇게 다소곳하게 대답을 잘하고 있는 것이지?... “.
그 말을 듣고 있는 세희의 얼굴색이 갑자기 붉어지고 있다. 그것을 보더니 세준이가 말한다; “사실 제가 보기에도 중산다로는 꽤 좋은 친구입니다. 세희에게도 무척 친절하고요. 그는 머리도 좋아요. 장차 그 집안을 일으켜 세울 장자이지요. 그가 좋은 신부감을 찾은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그 말을 듣자 아룡이 세준에게 말한다; “그와 너는 혹시 친구 사이이냐? 네가 세희를 소개한 것이 아니냐?... 그 집안은 어떠한 가문이지?... “. 세준이가 정확하게 답변한다; “아버지, 그 집안은 지금 오키나와에 있는 가장 유력한 가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중산씨의 본가이지요. 그리고 중산다로가 그 종손입니다. 그는 나와 동갑내기입니다. 물론 성격이 좋은 친구이지요… “.
아룡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세준이 네가 보기에 좋은 친구라고 하니 나도 안심이 된다. 그런데 역시 혼사는 당사자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지 않겠니?... 그래, 세희 너의 의견은 무엇이냐? 그와 혼인하고 싶은 것이냐? 아니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냐?... 이 애비는 전적으로 너의 의사에 따르고자 한다… “.
그 말을 듣자 세희가 아룡의 얼굴을 한번 본 다음에 모친 사월이를 보면서 대답한다; “중산다로라고 하면 제가 그에게 시집가서 그 집안을 훌륭하게 세울 수가 있을 것 같아요. 우리 고려촌의 기술과 그 집안의 명망을 합친다고 하면 하나의 왕국도 세울 수가 있을 것으로 저는 생각해요. 그러니 우리 고려촌의 장래를 위해서도 저는 그곳으로 시집가고 싶어요… “.
그 말을 듣자 아룡이 신중하게 한마디를 한다; “세희야, 이 애비는 너의 행복이 우선이다. 포부와 야망은 그 다음의 문제이지... 그리고 애비를 위하는 너의 마음도 두번째이지, 너의 혼사에 있어서 첫번째는 아니다. 그러므로 내가 정확하게 물어보마. 세희 너는 중산다로를 연모하고 있는 것이냐?... “.
세희는 그 말을 듣자 부친 김재룡이 참으로 감사하다고 생각이 된다. 그래서 솔직하게 대답한다; “아버지, 저도 그 사람을 좋아하고 있어요. 그러니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저를 그 집으로 시집을 보내어 주세요. 그리고 장차 제가 우리 고려촌의 여러가지 기술을 그 집안에 전수하는 것을 허락하여 주세요”.
그 말을 들은 아룡이 고개를 크게 끄떡이면서 대답한다; “알겠다. 그러면 그 집안의 장자인 중산다로와 세희 너의 혼사를 진행하도록 하겠다. 이번 가을에는 혼례식을 올릴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준이 너도 배필감을 정해서 나에게 말을 해다오… “.
아룡이 부부는 중산 집안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그해 가을에 고려촌장의 딸인 김세희와 오키나와 섬의 중앙에서 가장 큰 위세를 떨치고 있는 중산 집안의 장남인 중산다로의 혼례식이 거행된다. 두 민족이 만났지만 그동안 아룡이 식구와 고려촌의 사람들이 현지인들의 말을 배웠기에 의사소통에 별로 어려움이 없다.
다음해 봄에는 아들 세준이가 장가를 간다. 상대자는 1254년 가을에 고려에서 건너온 도공 장기욱의 장녀 장옥란이다. 당시 몽골군에 의하여 장기욱의 가족이 모두 포로가 되어 북송이 되고 있었다. 그때 아룡이 부부가 신의군과 더불어 몽골군을 급습하여 그들을 구해내고 오키나와로 데려온 것이다.
아룡이 부부는 26세인 김세준이 진심으로 사귀고 있는 22세의 처녀 장옥란을 며느리로 맞이한다. 부친의 뒤를 이어 도공으로 기술이 상당한 그녀는 굉장히 총명해 보인다. 이제 64세인 최사월은 며느리 장옥란이 마음에 드는지 그녀를 총애한다.
아룡이 부부는 정기적으로 2년에 한차례 고려의 개경에 들리고 있다. 오키나와에서 구입한 동남아와 서남아의 산물 및 서방세계의 산물을 고려에 팔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의동생인 경하선 부부와 상단의 운영에 관하여 상의하기 위한 것이다.
지난 1260년에 고려의 원종이 즉위한 이후 몽골군의 침입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벽란도와 개경이 번영을 누리고 있다. 특히 해외무역이 왕성하다. 그 바람에 경하선의 상단도 성수기를 맞이하고 있다. 아룡이 부부가 오키나와에서 아시아와 유럽의 산물을 싼값에 사서 넘겨주니 그것이 이익이 큰 것이다.
그렇게 지내고 있는 동안 아룡이가 1272년에 재상이 된 김보정을 승천부에서 만나서 축하한다. 그때 재상 김보정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준다;
첫째로, 지난 1268년에 임연이 김준을 암살하는 것을 자신이 막지 못하여 아룡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당시 왕당파들이 임연을 이용하여 김준을 암살해버리면 무신정권이 당장 무너질 것으로 판단했는 모양인데 사실은 그것이 아니다. 그들은 김준의 자리를 노리고 있는 임연의 탐욕을 보지 못했다.
그 결과 무신정권의 실세가 된 임연이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고 있는 원종을 폐위시키는 만행까지 저질렀다고 한다. 그래서 원종은 베이징에 머물고 있는 몽골제국의 대칸 쿠빌라이를 찾아가서 호소했다. 그 덕택에 원종은 대칸의 명령으로 복위가 되고 임연은 화병으로 그만 죽고 말았다.
둘째로, 임연이 병사하자 그의 아들인 임유무가 권력을 세습했지만 그릇이 되지를 못했다. 그 결과 난폭한 그를 왕당파와 합세한 장군들이 해치워버리고 1270년에 원종이 강화도를 벗어나서 개경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이제는 명실공히 고려에서 무신정권이 막을 내린 것이다. 이제 모든 고려의 국정은 국왕이 책임을 지고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원종은 황폐하게 된 고려를 되살리고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로, 1271년에 몽골제국의 대칸인 쿠빌라이가 갑자기 나라의 이름을 ‘원’(元)이라고 바꾸고 자신을 황제라고 칭하고 있다. 그 이유는 1260년 쿠빌라이가 몽골제국의 대칸으로 결정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균열이 재발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대칸이 되고자 경쟁한 자가 아리크부카였는데 그는 유목민의 전통을 중시하는 자들의 지지를 얻고 있었다.
반면에 쿠빌라이는 농경을 중시하는 새로운 세대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경쟁의 결과 결국 남송과의 전쟁에서 탁월했던 쿠빌라이가 대칸이 되었다. 그런데 10년이 지나 1270년이 되자 이번에는 전통주의자들이 카이두를 내세워서 쿠빌라이에게 도전하고 있다.
유목민들이 지배하고 있는 제국이 3개인데 모두 북방에 있는 것들이다. 말하자면, 킵차크 한국, 자카타이 한국, 그리고 오고타이 한국이다. 그 반면에 쿠빌라이를 지지하고 있는 것은 그의 동생 훌라구가 지배하고 있는 일 한국 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대칸인 쿠빌라이의 명령이 북방 3한국에 먹히지 아니하고 있다.
따라서 쿠빌라이는 1271년에 그들을 버리고 자신이 다스리고 있는 영토에 새로운 제국 ‘원’을 세우고 수도를 아예 베이징으로 정한 것이다. 그때부터 쿠빌라이는 남송을 정벌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그는 중원을 모두 차지하여 원제국을 크게 확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넷째로, 쿠빌라이가 원제국을 확장하고자 하는 낌새를 알고서 고려내에 자생하고 있는 사대주의세력들이 고려를 원제국의 하나로 복속하여 달라고 하는 은밀한 주청을 원의 조정에 올리고 있다. 개경으로 천도한 원종은 그러한 세력과 싸우느라고 지금 정신이 없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원종은 쿠빌라이의 딸과 결혼한 태자를 앞세워서 원나라의 조정에서 그 일을 적극 무마하고 있다. 그 결과 쿠빌라이 황제는 앞으로 고려국의 태자가 원나라 황제의 딸이나 친왕의 딸과 결혼하는 것을 조건으로 고려의 국체와 문화를 보전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와 같은 이야기를 전하면서 고려의 재상인 김보정이 원나라에 지나치게 아부하고 있는 반민족주의자들에 대하여 크게 속이 상해 있다. 그러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룡이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그것은 지금 삼별초가 진도에 이어서 제주도에서 대몽항쟁을 계속하고 있는데 그는 그것이 궁금한 것이다.
그 가운데에는 자신의 사제들과 그들의 제자들이 포함이 되어 있다. 아룡이는 그들의 일부만이라도 구출하여 오키나와로 데리고 가고 싶다. 어떻게 하면 그들을 구출할 수가 있을까?
그러한 속셈을 가지고 아룡이 재상인 김보정에게 슬쩍 물어본다; “대감, 제주도까지 밀려나 있는 삼별초의 잔존세력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 김보정이 즉시 대답한다; “현재 고려의 군사만으로는 그들을 토벌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의 항몽의식이 대단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
김보정이 조용히 아룡이를 한번 쳐다보고서 넌지시 말한다; “몽골군들이 그 전쟁을 끝장내고자 벼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내년 1273년이 되면 그들이 수군을 동원하여 대대적으로 토벌에 나설 것입니다... “.
그 다음에 재상 김보정이 자신의 심정을 말한다; “내년이면 삼별초가 사라지게 되겠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삼별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그들의 항몽정신은 실로 위대한 것이지만 그것이 백성들의 고난을 계속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김보정은 진심으로 가슴이 아픈 모양이다. 몽골군에 의하여 고려의 무장들이 소탕되고 마는 것이니 그럴 것이다. 하기야 그도 고려의 장군 출신이 아닌가?... 김보정은 끝장을 보고야 마는 몽골군의 집요함에 거듭 치가 떨리는 모양이다. 그래서 은근히 아룡에게 그러한 고급정보를 슬쩍 말해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룡은 김보정의 태도로 보아 자신이 슬며시 제주도에서 삼별초에게 도망할 구석을 제공한다고 하더라도 뒤탈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1273년 4월에 아룡의 무역선이 여러 척 오키나와를 출발하여 일부러 제주도 남단 서귀포에 정박한다. 그리고 아룡이 부부가 낭자군들과 더불어 전장을 찾아간다.
바야흐로 몽골군과 고려군들이 연합하여 삼별초의 마지막 숨통을 조이고 있다. 삼별초의 수가 줄어들어 1천명도 되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을 보고서 아룡이의 부대는 몽골군에게 쫓기고 있는 삼별초를 구하기 위하여 맹렬하게 몽골군을 급습한다.
삽시간에 몽골군 1천명이 도륙이 된다. 아룡이와 그의 별동대가 손속에 일체 사정을 두지 아니한 결과이다. 누가 전쟁의 신을 막을 수 있겠는가? 그날 아룡 일행이 구출하여 제주도를 탈출시킨 삼별초의 수가 500명이나 된다.
그들을 이끌고 아룡의 부대가 서귀포로 넘어가서 범선에 태우고 출발한다. 제주도에서 춘풍을 타고 계속 남진하면 오키나와이다. 그해 오키나와의 고려촌에는 삼별초 출신 500명이 한꺼번에 합류하게 된다.
그들에게 아룡이 말한다; “이제 한반도에 있는 고려국을 잊어버리고 여기 류구에서 새로운 고려를 세우도록 하세요. 새로운 고려는 이곳에서 해양왕국으로 번성할 수가 있습니다... “.
삼별초 출신들을 쳐다보면서 아룡이 강조한다; “오키나와 섬은 인구가 40만명 남짓 되는 적은 섬이지만 그래도 동남아와 서남아 등지로 배를 타고 나아가면 많은 땅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대항해의 꿈을 가지시고 아무쪼록 새나라를 건설하시기 바랍니다”.
아룡의 말을 듣고 삼별초 출신들이 분루를 삼킨다. 그후 그들은 고려촌을 확장하고 무역업을 확장하는데 참으로 열심이다. 그들은 고려촌에 고려의 문화와 생활양식을 그대로 살리며 보존한다. 그들의 노력이 언제까지 계속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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