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룡전(작성자; 손진길)

소설 아룡전38(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0. 6. 9. 05:43

소설 아룡전38(작성자; 손진길)

 

12635월에 아룡이 부부가 오키나와 섬에서 쌍돛단배를 타고서 고려의 벽란도로 들어온다. 물론 그 배는 무역선이므로 그들이 오키나와에서 구입하고 생산한 물건이 가득 실려 있다. 일단 벽란도에 있는 경종성 상단의 창고에 대부분의 물건을 저장하고 일부는 마차로 개경까지 싣고 온다. 그것들은 개경의 상점에서 팔기 위한 것이다.

그렇게 급한 일처리를 하고서 그들 부부는 경종성의 저택으로 향한다. 벌써 동갑인 아룡 부부의 나이가 63세이다. 그들보다 25살이 연상인 경종성 부부가 88세이다. 그 가운데 고려 제일의 무역상이며 객주인 경종성 노인이 그만 병이 들어서 자리보전을 하고 있다. 그래서 아룡이 부부가 급히 병문안을 한다.

부친의 병세가 위중하여 그 옆에서 밤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아들 경하선과 며느리 김옥정이 아룡이 부부를 보자 일어서서 인사를 한다. 그들은 부친을 대신하여 상단의 일을 도맡아서 처리하기에 눈코 뜰 새가 없이 바쁘다. 하지만 바쁜 와중에도 저녁부터 밤새도록 병상을 지키고 있다. 그만큼 부친의 병세가 위중한 것이다.

누워있는 경종성이 눈으로 아룡이 부부를 맞이하고 있는데 그 옆에서 부인인 하유경이 대신 인사하면서 침착하게 말한다; “남편이 많이 편찮으시기 전에 미리 유언장을 마련했어요. 그 사본을 김재룡 부부에게 주라고 말했지요. 한번 읽어 보시지요… “.

아룡은 경종성 노인이 많이 위중한 것을 보고서 말없이 객주 부인 하유경으로부터 그 유언장 사본을 받아서 읽어본다. 역시 경종성의 수결이 되어 있는 유언장 사본이다. 아룡의 눈에 익숙한 필체이며 수결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내용이 다음과 같다; “오키나와에 있는 상점과 객점 그리고 고려촌에 관한 모든 권리를 김재룡 부부에게 준다. 그리고 기타 재산에 대해서는 아내 하유경, 아들 경하선, 고려촌장 김재룡에게 똑같은 지분을 나누어 주는 것이니 이후 3인이 합의하여 상단을 운영하도록 하라”.

김재룡이 그 내용을 읽고서 엄청 놀라고 있는 것을 보고서 하유경이 미소를 띄면서 말한다; “저의 남편이지만 객주 어르신은 제가 어찌할 수 없는 특이한 분이십니다. 그 분의 눈에는 고려가 보이고 세계가 보이고 있으며 또한 미래가 보이고 있지요. 그래서 그와 같은 유언장을 만든 것이지요. 우리들에게도 똑같은 내용의 유언장 사본을 주셨고요. 그러니 앞으로 우리 3인이 합의하여 이 상단을 이끌어가도록 합시다… “.

뛰어난 상재를 지니고 사람의 운명과 나라의 미래를 보고 있는 고려의 천재가 사실 경종성 노인이다. 평생을 그의 반려자로 살아오면서 하유경이 그 유언장의 의미를 십분 이해하고 있다. 그 뜻은 경종성만큼이나 뛰어난 수재인 김재룡의 도움을 받아야 경종성 상단이 더욱 발전할 수가 있다고 하는 믿음인 것이다.

만약 부인 하유경이나 독자인 경하선이 욕심을 부리게 되면 경종성 상단이 거덜이 날 것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김재룡의 도움을 받아서 상단을 여러 배로 키우느냐? 아니면 탐욕을 부리다가 전부 말아 먹느냐?의 갈림길에서 전자를 선택하고 있는 현명한 사람들이 고려제일의 부자인 경종성의 가족들이다.

그 의미를 알기에 김재룡이 조용하게 말한다; “무슨 뜻인지 제가 알겠습니다. 객주 어르신의 기대에 그리고 두 분의 믿음에 금이 가지 아니하도록 제가 상단을 키우고 고려를 위하여 크게 기여하도록 열과 성을 다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자 병석의 경종성이 희미한 미소를 띄운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팔을 움직여서 한손에는 아룡이의 손을 잡고 또 한손에는 하나 뿐인 아들 경하선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 그의 눈은 아내 하유경을 바라보고 있다.

다음 순간 아주 희미한 소리가 들려온다; “한사람은 내가 낳은 아들이고 또 한사람은 내가 얻은 아들이다... 내가 다 못한 일을 두사람이 힘을 합쳐서 훌륭하게 이루어 주기를 바란다... 나의 아내는 내 뜻을 알고 도와줄 것이다나는 이제 갈 때가 되었으니너희들은 나머지 인생을 잘 살아 주기를여보 사랑해요… “.

띄엄띄엄 힘들게 말하고 있는 6마디가 사람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그들이 오열하고 있는 가운데 고려의 천재 한사람이 88세를 일기로 자택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있다. 장례는 오일장으로 지낸다. 친지들이 많아서 그들의 문상을 받느라고 삼일장이 아니고 오일장인 것이다.

아룡은 경종성의 말처럼 그의 뜻을 이어받고 있는 또 한사람의 아들과 같다. 그래서 경하선과 함께 상주 노릇을 한다. 묘소는 선산이 있는 벽란도의 뒷산이다. 일찍이 경종성은 벽란도에서 자라 그곳에서 성장하면서 무역에 관한 꿈을 크게 키웠다. 특히 부친이 작은 상단을 운영하고 있었기에 일찍부터 그의 상재가 빛을 발한 것이다.

하지만 경종성은 재산 불리기에만 매몰된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가졌으며 재물을 어떻게 올바르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자신만큼이나 뛰어난 인물인 김재룡을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하고서 슬며시 영입을 했다.

전쟁의 신이 되어 전장을 헤매고 있던 아룡이 인생에 대한 허무를 느끼고 방황하고 있을 때에 그를 끌어당겨서 또다른 넓은 세상을 보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를 무역상으로 키우는 한편 전란중인 고려를 위하여 또다른 고려를 남쪽 섬에 세우도록 인도한 것이다.    

장례식이 거의 끝나가자 아룡이 경하선과 그의 모친인 하유경에게 말한다; “저는 주로 오키나와의 고려촌에서 지내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타 상단의 운영에 대해서는 세세하게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경하선이 책임지고 운영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다만 어르신의 유지에 따라 저에게도 일단의 책임이 있으니 어려운 일이 있으면 제게 기별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능력이 닿는 한 조력할 것입니다… “.

그 말을 듣자 하유경이 먼저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어르신의 뜻이 바로 그것이었군요. 다소 섭섭해 하는 저에게 허허라고 웃으면서 앞으로 김재룡이 하는 것을 두고 보시게라고 말씀하시더니참으로 두사람은 재물에 묶여서 지내는 사람들이 아니군요. 그러한 자에게 재물보다 더 큰 뜻이 주어지는 모양입니다… “.

그때 경하선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으면서 김재룡에게 말한다; “저는 독자입니다. 그러나 이제 보니 독자가 아니군요. 아버지께서 또 다른 아들을 장자로 만들어 주셨군요. 그러니 제가 그 뜻을 따라 친형으로 모시겠습니다 .아우의 절을 받아 주세요… “. 그리고 절을 한다. 그러자 김재룡이 마주 절을 한다.

그 다음에 대뜸 아룡이 그 옆에 조용히 앉아 있는 김옥정에게 말한다; “이제부터 제수씨라고 부르겠습니다. 친정 오라버니 김보정 장군은 잘 계십니까? 어디에 가면 만날 수가 있습니까?... “.

그 말을 듣자 김옥정이 대답한다; “지금은 강화도에 있는 궁궐에서 국왕을 모시고 인사를 처리하는 이부상서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편하게 만나자면 승천부에서 강화도에 기별하시고 그곳 육지에서 만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

아룡이 그 말의 의미를 알아 들었다. 그 오라버니에 그 여동생이다. 두사람이 만나는 것을 강화도에서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벌써 말하고 있는 신중함이다. 그래서 아룡이 고개를 크게 끄떡이면서 그대로 실행한다.

승천부의 밀실에서 아룡이를 만나자 김보정이 그렇게 기뻐한다. 그는 여동생을 통하여 그동안 김재룡이 오키나와에서 어떠한 일들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눈치이다. 하지만 전혀 내색하지 아니하고 편하게 아룡이를 대하고 있다.

먼저 아룡이 질문한다; “제가 개경에 와서 들어보니 무신정권과 궁궐에서 지난 십년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래 어떻게 지내십니까?... “. 그 말을 듣자 김보정이 아룡에게 도움이 되도록 많은 이야기를 해준다. 그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시기심으로 많은 사람을 죽이는 등 공포정치를 했던 최항1257년에 죽고 그의 아들인 최의가 그 뒤를 이었다. 그러나 그도 선친처럼 처음에만 재물을 풀어서 민심을 얻고 나중에는 백성들의 재물을 약탈하고 폭정을 일삼았다. 그때문에  1258년에 별장 김준, 낭장 임연, 대사성 유경 등이 아별초를 동원하여 최의의 저택을 습격하였다.

그 변란으로 최의가 죽고 4대를 이어온 최씨의 무신정권이 마감되었다. 그러나 무신정권이 끝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김준이 무신정권의 새로운 실력자가 되어 강화도에서 왕권을 견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김준은 그 정책이 상당히 유연하다. 그는 여몽전쟁으로 백성들이 받고 있는 고통을 줄이고자 강경책보다는 유화적인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1254년에 몽골군의 제6차 침입으로 20만명이 넘는 고려사람들이 포로가 되어 몽골제국으로 끌려가고 말았다. 그 때문에 북송과정에서 도망친 자들이 중심이 되어 끝까지 몽골군과 싸우겠다는 신의군이 구성되기도 했다. 하지만 고려의 군사력으로 몽골군의 침입을 온전히 막지를 못했다. 그 때문에 몽골제국의 대칸인 몽케가 제마음대로 12553월부터 12593월까지 3차례나  몽골군을 보내어 고려의 강토를 유린했다.

그들의 요구조건은 한결같이 두가지이다; 하나는, 강화도를 버리고 개경으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고려의 국왕이 이제는 무신정권의 수장을 데리고 함께 몽골제국의 수도로 들어와서 항복하라는 것이다. 계속되는 몽골군의 내침에 견디지 못한 고종이 마침내 태자인 왕전을 대신 몽골의 수도로 보내는 것으로 타협하고 지루한 여몽전쟁을 1259년에 끝낸 것이다.

셋째로, 12596월에 김보정 장군이 태자 왕전을 호위하여 함께 몽골제국의 수도인 카라코룸을 방문했다. 그러나 대칸인 몽케가 마침 병환 중에 있었으며 그를 알현하기 전에 그만 8월에 죽고 말았다. 따라서 태자 왕전은 대칸 대신에 몽케의 동생인 쿠빌라이를 만나서 고려의 항복의사를 전했다. 훗날 원종이 되는 태자 왕전은 당시 나이가 40세이고 쿠빌라이의 나이가 44세였다. 40대인 두사람은 이야기를 나눈 후 서로 의기가 투합하여 의형제처럼 가깝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태자 왕전은 앞으로 쿠빌라이가 대칸이 되는데 고려의 항복이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자 쿠빌라이는 태자 왕전을 동생처럼 생각할 것이니 자신을 도와주고 앞으로 고려의 국왕이 되라고 말했다. 그리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자신이 대칸이 되어 많이 도와주겠다고도 약속했다.

넷째로, 그런데 참으로 묘하게도 12597월에 고려의 고종이 갑자기 승하하였다는 소식을 뒤늦게 태자 왕전이 8월이 지나서야 카라코룸에서 듣게 된다. 그는 즉시 귀국하여 1260년초에 고려의 국왕으로 즉위한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왕전이 아니라 왕식으로 바꾸고 같은 해인 1260년에 몽골제국의 제5대 대칸이 된 쿠빌라이의 도움을 얻어서 고려를 새롭게 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고려의 최고실력자인 김준이 강화도를 버리고 개경으로 가는 것을 적극 반대하고 있다. 김준과 그의 측근의 판단으로는 개경으로 들어가게 되면 쿠빌라이의 비호를 받고 있는 신왕 원종의 세력이 커지는 한편 최우의 사병에서 출발한 자신들 무신정권의 세력이 쇠퇴할 것임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범의 아가리에 자신들의 머리를 집어넣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다섯째로, 원종은 쿠빌라이 대칸에게 먼저 양해를 구하면서 두가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나는, 자신의 왕비가 그 옛날 최우의 외동딸이었던 최송이가 김약선과 결혼하여 낳은 딸임을 내세워서 자신이 최우의 사병이었던 지금의 김준 세력과 무관하지가 않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자신의 태자를 몽골제국으로 보낼 것이며 쿠빌라이 대칸의 딸과 혼인하게 하여 결혼동맹으로 양국사이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원종의 정책이 효력을 발휘하여 지금 국왕과 무신정권 사이 그리고 고려와 몽골 사이에 큰 위기가 지나가고 더 이상 몽골군의 내침이 없다는 것이다.

 이부상서인 김보정 대신의 긴 설명이 끝나자 아룡이가 한마디를 한다; “장군의 충심과 헌신이 고려의 위기를 타개하는데 큰 힘이 되고 있군요. 이제 실질적으로는 9차례에 걸친 몽골군의 고려침략이 끝나고 있으니 모든 것이 장군의 공입니다... “.

그 다음 참으로 겸손한 아룡이의 말이 이어진다; “저 같은 장사치가 안심하고 무역업에 종사할 수 있게 되었으니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아무쪼록 김준무활 등은 저의 사형들이며 그래도 합리적인 사람들이니 앞으로 선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그 말을 듣자 김보정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대답한다; “자신을 한갓 장사치라고 표현하시니 제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아룡님에 대해서는 제가 누이동생 편으로 벌써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

김보정이 아룡이를 쳐다보면서 말을 잇는다; “고려의 최고 부자인 경종성 옹이 자신의 후계자로 선택한 사람이면 그 인품과 식견이 어떠하다는 것을 넉넉하게 짐작할 수가 있지요. 아무쪼록 이제는 정상적인 왕정국가로 첫걸음을 떼고 있는 저희들을 많이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그 말을 듣자 아룡이 깊숙이 허리를 굽혀서 하직인사를 한다. 동년배인 김보정 이부상서도 깊이 허리를 굽혀서 맞절을 한다. 그들이 서로를 인정하면서 헤어지고 있는 그날 백마산의 모습이 더욱 정답게 느껴진다. 그렇게 고려에서 1263년의 봄이 어느덧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