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6년 설교문(손진길 목사)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1-21)(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5. 4. 25. 17:17

제목;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2:1-21)

설교일; 주후 2026 3 15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25425일 금요일 ANZAC Day작성)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큰 축복 하나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패밀리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이 없이 누구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 앞에 나아가서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과 칭의의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새로운 거듭난 영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이 몇 가지의 놀라운 조치를 취해 주십니다;

(1)  첫째, 죄인이 의인으로 변화가 되었기에 성도들에게 거룩한 하나님의 영을 임재하게 하십니다. 그 옛날 예루살렘에서 오순절에 이루어진 성령님의 강림이 오늘날에도 성도들에게 있게 됩니다. 따라서 오늘날에도 성령님께서 성도들의 속사람속에 성전을 만들어 내주 역사하시게 되면 비록 아직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만 성도들에게 영적인 삶이 시작되게 됩니다. , 말씀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그것을 실천하고자 아버지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하는 역사가 성도들에게 발생된다는 것입니다.

(2)  둘째, 예수님의 약속 그대로 성도들을 고아처럼 그냥 버려 두지 아니하십니다(14:18-20). 창조주이신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영적으로 성도들에게 임재하십니다. 이미 성령님께서 성도들의 심령속에 성전을 마련해 두셨기에 주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영적으로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그 결과 성도들은 아직 천국에 들어가지 아니하였지만 영적으로는 벌써 삼위일체 하나님과 동행하는 놀라운 성도의 삶을 자신의 거듭난 삶으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3)  셋째, 그와 같은 영적인 삶을 성도들에게 허용해주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바라고 있는 것 두가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거듭난 자를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영생의 하나님나라로 맞아 들이고자 하는 것입니다(6:39-40). 또 하나는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동안에 지상명령을 힘있게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자 하시는 것입니다(24:44-49, 1:8). , 세상 끝까지 나아가서 복음을 전하는 이른바 사도 바울처럼 이방인사도로 살아가게 만들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4)  넷째, 그와 같은 이방인사도의 직분은 혼자서 실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해 주십니다;

1)    먼저,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이 각각 사도 바울의 선교여행에 강력하게 역사하십니다. 예를 들면, 목숨이 위험할 때에는 아버지의 영이 믿음을 북돋우어 주십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부활의 영으로 임재하여 계시면서 성도들에게 죽더라도 영생의 부활의 몸을 입고 승천할 수 있으니 겁내지 말라고 믿음을 굳건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8:11). 예수 그리스도의 영은 공생애 당시의 체험을 성도들에게 나누어 주십니다(16:7). 예수님께서 받으신 그 이상의 고난은 없는 것이기에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영으로부터 큰 위로와 고난을 이기는 비결을 얻는 것입니다(16:32-33). 성령님께서는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1:8, 16:6).

2)    다음으로, 성도들은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으로 살아가고 있는 여러 지체들과 함께 지상명령을 수행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도들의 믿음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개인적으로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성도의 영적인 믿음의 삶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 여러 형제들과 함께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공동체적인 동역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모신 형제들이며 하나의 가족입니다.

(5)  다섯째, 사도 바울은 로마서 제8장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영적으로 동행하고 있는 성도들의 영적인 삶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한 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복음을 생활화하는 성도들의 삶에 대하여 제12장에서부터 기록하면서 본문에서는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들과 하나의 유기체이며 가족이라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1)    그와 같은 사도 바울의 유기체이론은 먼저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과 피조물인 사람들 사이에 마치 부자관계(父子關係)와 같은 유기체로서의 관계가 성립되어 있다는 사실에서부터 비롯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으로 그리고 각각 지체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2)    그와 같은 측면에서 토기장이의 주권을 가지고 계시는 창조주 여호와께서 어째서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아니하는 그릇을 당장 부수어 버리지 아니하시고 인내로써 관용하시며 긍휼을 베풀고 계시는지 그 이유가 이해됩니다(9:21-24). 그것은 어버이의 내리사랑인 자식사랑과 같은 것입니다.

3)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살아가게 되는 성도들도 서로 인내와 관용 그리고 긍휼과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와 같은 형제사랑으로 각 지체가 수행하고 있는 기능의 차이를 바라보고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용납하라는 것입니다(12:3-5). 그와 같은 사도 바울의 설명이 본문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에 대한 구절풀이에 들어가겠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아울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지금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의 핵심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사도 바울이 이 서신의 수신자인 로마교회의 성도들은 물론 사본을 회람하게 될 모든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겸손하게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에 대하여 권면의 말씀을 주고자 하는 것임),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16:24, 예수 그리스도가 사도들에게 제자도를 가르쳐 주신 그대로 초대교회의 성도들도 대속의 삶을 살아가야 된다는 것임).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영이신 하나님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법에 따라 예배하는 인생살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임, 8:1-4, 4:24).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이 세상에서 얻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과 지혜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마음을 (그리스도의 생애와 교훈에 비추어) 새롭게 함으로 (진리의 보혜사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24:49, 1:8, 14:16-20)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3:4) 기뻐하시고(22:42-44)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6:33, 18:29-30) 3. 내게 주신 (영생의 구원과 말씀의)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권면)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그리스도 안에서 종의 법도를 지키며, 17:10, 5:30)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진리의 보혜사 성령님이 은혜로 깨닫게 해주는 그 범위 안에서) 지혜롭게 생각하라(자신의 고집을 버리고 주님의 뜻을 받아들여서 실행하라). 4.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5. 이와 같이(4절에서 설명한 그대로 우리 몸의 구조와 기능이 그러하듯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머리가 되신 주님이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각 지체에게 명령하시는 그대로 성도들이 성실하게 실천하면 되는 것임) 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말씀의 해석에 속하는)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 (봉사에 속하는)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성경선생으로서)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 (권사로서)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물질로 섬기는)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치리와 감독을 맡은)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중보기도에 힘써는)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9. (22:12,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실천하는 이웃)사랑에는 (17:1, 하나님의 눈앞에서 실천하는 신앙생활이므로)거짓이 없나니 (죄악과 사망의 법으로 사람을 지배하는, 8:2) (의 영들, 6:12)을 미워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모든 피조물의 생명을 살리고 돌보는, 3:4, 8:18-22) 선에 속하라(18:19). 10. (교회 안팎에서)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11. (신앙생활과 사회생활에서도 두루)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라) 12. (영생의 천국을 바라보고)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짧은 인생 가운데 등장하는) 환난 중에 참으며 (고난을 이길 힘을 달라는) 기도에 항상 힘쓰며(22:39-46), 13. (넉넉하게 주시는 은혜에 감사하며, 6:30-3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12:1-13); 다음과 같이 둘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지금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의 핵심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사도 바울이 이 서신의 수신자인 로마교회의 성도들은 물론 사본을 회람하게 될 모든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겸손하게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에 대하여 권면의 말씀을 주고자 하는 것임),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16:24, 예수 그리스도가 사도들에게 제자도를 가르쳐 주신 그대로 초대교회의 성도들도 대속의 삶을 살아가야 된다는 것임).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영이신 하나님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법에 따라 예배하는 인생살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임, 8:1-4, 4:24).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이 세상에서 얻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과 지혜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마음을 (그리스도의 생애와 교훈에 비추어) 새롭게 함으로 (진리의 보혜사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24:49, 1:8, 14:16-20)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3:4) 기뻐하시고(22:42-44)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6:33, 18:29-30) 3. 내게 주신 (영생의 구원과 말씀의)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권면)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그리스도 안에서 종의 법도를 지키며, 17:10, 5:30)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진리의 보혜사 성령님이 은혜로 깨닫게 해주는 그 범위 안에서) 지혜롭게 생각하라(자신의 고집을 버리고 주님의 뜻을 받아들여서 실행하라). 4.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5. 이와 같이(4절에서 설명한 그대로 우리 몸의 구조와 기능이 그러하듯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머리가 되신 주님이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각 지체에게 명령하시는 그대로 성도들이 성실하게 실천하면 되는 것임)“(12:1-5); 알기 쉽게 문답형식으로 살펴봅니다;

1)    첫째,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성도들은 주님처럼 어떠한 공생애를 살아가야만 한다고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가요?”(12:1-2). 먼저 랍비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받은 영적인 충격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봅니다; 사도 바울은 그가 랍비 사울 시절 율법의 의로 의인이 되고 구원을 얻게 되는 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다메섹 도상에서 커다란 영적인 체험으로 근본적으로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영광과 형상이 자신에게 영적으로 나타나 사람의 음성으로 말을 전해 왔는데 그 내용이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9:4b)라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2)    그동안 사울은 유일하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기기 위하여 청소년 시절부터 히브리정경과 전승들 그리고 바리새파의 주석까지 철저하게 공부하여 남들보다 일찍 25세에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랍비가 된 인물입니다. 그러한 랍비 사울 앞에 하나님의 영광과 형상이 나타나 사람의 음성으로 사울이 도리어 여호와를 박해하였다고 말하고 있으니 그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그러한 다메섹 도상의 영적인 체험이 주후 34년경이라고 한다면 랍비 사울이 고향 다소 성으로 찾아온 바나바의 권유로 시리아 안디옥 교회의 성경선생으로 초빙된 때는 10년이 지난 주후 44년경입니다(11:25-26).

3)    그렇다면 사울은 잠시 아라비아 하나님의 산에 다녀온 것 외에는 10년 동안이나 다소에 칩거하면서 유대교가 말하고 있는 여호와의 정체성과 그 구원론에 대하여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를 히브리경전을 가지고 자신의 다메섹 도상에서의 영적인 체험과 비교하면서 계속 묵상하고 그 답을 찾고자 노력한 것입니다(1:11-24). 그 결과 사울은 유대교가 말하고 있는 신론과  인간론, 그리고 구원론과 선교론이 모두 잘못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깨달음이 사울의 복음의 핵심이며(16:25) 그것을 이방인 세계에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전파하기 위하여 사도 바울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1:1-6);

4)    참고로, 갈라디아서 제2장의 내용은 주후 47년경 시리안 안디옥 교회가 바나바와 사울을 서방선교사로 파송하자 제1차 선교를 마친 그들이 주후 49년경 예루살렘 총회에 한가지 청원을 하고 그 때문에 예루살렘을 방문한 내용입니다. 그 청원의 내용은 사도행전 제15장에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이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유대교적인 율법과 할례를 너무 강요하지 아니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점을 후속사도인 바나바와 바울이 예루살렘 총회에서 토론하고 결론을 내주기를 청원한 것입니다.

5)    둘째, “사울이 깨달은 유대교적인 율법생활의 잘못은 무엇이며 그리스도의 복음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하나,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그러한 산술적인 하나의 하나님이 아니고 이른바 3 1체의 신비를 보여주고 계시는 창조주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비와 그 존재의 차원을 피조물인 인간이 재단하고 함부로 제한하는 것은 그 자체가 창조주 하나님을 피조물처럼 생각하고 있는 불신앙입니다.

6)    , 피조물의 관념을 뛰어넘고 있는 그러한 여호와의 정체에 대한 신비를 유대교인들이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산술적으로 한 분 뿐이신 여호와께 절대 충성한다고 하면서 그리스도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아니하고 더구나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창조주의 권능으로 무덤 속에서 3일만에 부활시킨 것을 거짓말이라고 여긴 것입니다(8:11).

7)    , 유대교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지적은 한마디로, 바리새인들이 백성들에게 외식적인 율법생활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으니 그것으로는 여호와 앞에서 의인이 될 수도 없고 구원을 얻을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18:9-14). 외식적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는 율법생활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마음속을 들여다보시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것입니다(7:6-9).

8)    , 율법 생활이란 사람들 앞에서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진심으로 실천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지 아니하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결코 의롭다고 하는 인정을 얻을 수가 없으며 구원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17:1). 다섯, 사람들이 하나님에 의하여 의롭다고 여김을 받으며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9)    그러한 삶의 모범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를 통하여 복음사역의 모범으로, 그리고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는 모범으로 이미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제자로 예수님처럼 살아가게 되면(16:24, 28:18-20) 죽더라도 3일 후에 영의 몸으로 부활하여 하나님나라로 승천하여 들어가게 되는 영광을 얻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22:28-30, 8:11, 3:10-14, 고전15:20-25).

10)  셋째,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주님처럼 어떠한 공생애를 살아가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는가요?”(12:1-2). 본문입니다;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2:1-2); 다음과 같이 쉽게 풀이해보고자 합니다;

11)  하나, 성도는 자신의 뜻을 성취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인생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의 삶이란 자신의 육신적인 욕망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영이신 하나님을 경배하며 그 말씀의 뜻을 실천하는 도구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12:1). 그와 같은 모범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의 모습으로 보여주시고 있으며 사도 바울도 그 모습을 본받아 이방인 사도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고전11:1a). 그러므로 초대교회의 성도들도 사도 바울의 복음전파의 삶을 보고서 역시 그러한 삶을 살아 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고전11:1b).

12)  , 사도 바울은 선민 유대인 사회이거나 이방인 사회이거나 모두 다음과 같은 삶의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①하나님의 선한 뜻을 분별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뜻대로 악한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②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인생이 아니라 자신들이 기뻐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③하나님의 뜻을 온전하게 이해하여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불완전하게 이해하여 대충 행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13)  넷째,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은 무엇인가요?” 다음과 같이 그 핵심을 말할 수가 있습니다(12:2); ①하나, 하나님은 모든 생명을 살리고자 하시는 선한 뜻과 능력을 행사하시는데 사람들은 창조주의 뜻을 모르고 자신들만 살고자 하여 이기적으로 다른 사람과 피조물을 희생시키는 삶의 방식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②둘, 다른 생명과 피조물을 자신처럼 사랑하고 그 생명을 살리자면 자신의 희생이 불가피합니다. 그와 같은 희생을 감수하는 성도를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14)  ③셋,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선민만이 아니라 모든 이방인까지 구원하여 영생의 하나님나라에서 함께 하나님의 복을 누리도록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그러한 수고에 대한 보상은 현세적으로 그리고 내세적으로 온전히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기적으로 그리고 현세적으로 자신들의 복락만을 누리고자 다른 사람들과 민족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습니다. ④넷, 그 모든 잘못을 고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치유함을 받고 변화를 얻어야만 하는 것이다.

15)  다섯째,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자면 어찌해야만 하는 것일까요?”(12:3-5). 먼저 하나님 보시기에 완전한 인생을 살고 가신 예수님처럼 성도들이 그렇게 살아갈 수가 있는지를 생각해봅니다. 한마디로,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인류의 역사 가운데 유일하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인생을 살아가신 것입니다(3:13-17). 따라서 20세기 초반의 미국의 신학자인 라인홀드 니버는 그것을 불가능한 가능성”(impossible possibility)이 인류의 역사 가운데 단 한번 성취가 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조금 풀이를 해봅니다;

16)  하나, 사람들은 모든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육신을 입고서 제한적인 시간과 공간속에 갇혀서 살아가고 있는 피조물인 인간들이 어떻게 시공간을 뛰어 넘어서 모든 생물체의 형편을 두루 살피고 그 모두를 돌보며 생명을 살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입니다. , 이 세상의 재화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이 많이 가지게 되면 다른 사람은 그만큼 적게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따라서 남에게 많이 주기 위하여 자신이 적게 가지고자 하는 선택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17)  , 하나님께서 약속하고 계신 것은 현세적인 것이 아니라 모두 내세에 관한 것이며 먼 미래에 관한 것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당장 현실문제가 심각한데 어떻게 내세의 문제에 매달려서 현실을 외면하고 살아갈 것입니까? 따라서 현세와 내세를 모두 말하고 있는 온전한 하나님의 뜻과 그 상급을 사람들이 완전히 따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18)  여섯째, “어떻게 하면 예수님처럼 성도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는 가요?”(12:3-5). 본문입니다; “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4.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12:3-5); 사도 바울이 엄청난 영적 생활의 비밀에 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19)  하나, 성육신하여 스스로 인생을 살아 보시고 육신을 가지고 아버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실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여 이제 영의 몸을 입으시고 승천하여 지금 영적으로 성도들의 주인이신 주님으로 성령님과 함께 임재하여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그 사실을 알고서 주님의 지체로서 살아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20)  , 육신을 지니고 있는 성도들 대신에 그 머리가 되신 주님께서 시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형편을 살피시고 모든 피조물을 돌보시며 그 생명을 전부 살릴 수 있는 방안을 성도들에게 말씀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의 뜻을 따라 영적으로 민감하게 살아가게 되면 성도들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성취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21)  , 이기적인 사람이므로 성도들도 자신을 희생하고 남을 살리고자 하는 선택을 하기가 정말 힘이 들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성도들이 자신의 육신을 이기고 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십니다. 구체적으로, 말씀에 대한 깨달음과 성령님의 강한 능력으로 자신의 육신을 이기는 힘을 공급하여 주시는 것입니다(8:1-6).

22)  , 성도들이 예수님처럼 복음전파의 공생애를 살아가고 대속의 삶을 살아가게 되면 부활의 몸을 입고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다고 하는 소망을 내세의 것이 아니라 현세에 느끼고 확신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그 방법이 31체 하나님의 영이 성도들에게 임하여 내주 역사하시는 놀라운 능력이 현세에서도 나타나는 것입니다;

23)  현실적으로,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영과 아버지 하나님의 부활의 영 그리고 성령님께서 내주하여 성도들과 한 몸이 되어 살아가고 계시는 것입니다(8:9-15). 그것이 불완전한 육신을 가진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온전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8:1-4). 요컨대, 성도들은 자신의 판단이 완전한 것이라고 하는 생각을 버리고 겸손하게 자신의 판단의 기초를 그리스도의 교훈과 그 삶의 모범에 두고 성령님의 영적인 도우심을 받아 주님의 지체로서 살아가는 것이 구원을 얻는 신앙생활인 것입니다(12:3-5).

(2)  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말씀의 해석에 속하는)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 (봉사에 속하는)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성경선생으로서)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 (권사로서)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물질로 섬기는)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치리와 감독을 맡은)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중보기도에 힘써는)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9. (22:12,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실천하는 이웃)사랑에는 (17:1, 하나님의 눈앞에서 실천하는 신앙생활이므로)거짓이 없나니 (죄악과 사망의 법으로 사람을 지배하는, 8:2) (의 영들, 6:12)을 미워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모든 피조물의 생명을 살리고 돌보는, 3:4, 8:18-22) 선에 속하라(18:19). 10. (교회 안팎에서)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11. (신앙생활과 사회생활에서도 두루)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라) 12. (영생의 천국을 바라보고)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짧은 인생 가운데 등장하는) 환난 중에 참으며 (고난을 이길 힘을 달라는) 기도에 항상 힘쓰며(22:39-46), 13. (넉넉하게 주시는 은혜에 감사하며, 6:30-3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12:6-13); 이것 역시 문답형식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첫째,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무엇을 보고서 어떠한 은혜로운 은사를 나누어 주시는 것일까요?”(12:6-8). 구체적으로, 성도들이 신앙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교회에 있어서 그 머리가 주님이라고 한다면 그 지체가 되고 있는 성도들이 공통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일은 무엇이며 또한 전문적으로 분담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12:6-8). 먼저 본문의 말씀입니다; “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12:6-8);

2)    본문에서 거론하고 있는 7가지의 일이 모두 주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는 은사이지만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두가지 종류로 구분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공통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일인데 그것이 다음 4가지입니다; ①예언, ②구제, ③다스리는 일, ④긍휼을 베푸는 일 등입니다. 또 하나는 다음과 같이 전문적으로 분담되고 있는 3가지의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①섬기는 일, ②가르치는 일, ③위로하는 일 등입니다. 왜냐하면, 어린 자를 섬기는 은사를 받은 자가 섬기는 일을 담당하고, 가르치는 은사를 받은 자가 가르치는 일을 담당하고, 위로하는 은사를 받은 자가 위로하는 일을 담당하는 것이 옳기 때문입니다.

3)    둘째,성도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보이지만 특별한 은사가 필요한 일은 무엇인가요?”(12:6-8). 공통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일이 다음 4가지입니다; ①예언, ②구제, ③다스리는 일, ④긍휼을 베푸는 일 등입니다. 그러한 일들은 모든 성도들이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 할 수 있는 분량이 다르다고 하는 사실을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①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②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③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④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12:6, 8).

4)    따라서 다음과 같이 풀이가 됩니다; 하나, 믿음의 분수를 뛰어넘어 예언을 하게 되면 자신에게나 믿음의 공동체에 해악을 미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 자신의 생활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자가 그 여력으로 구제하는 일에 나설 수가 있는 것이지 자신의 일도 옳게 처리하지 못하는 자가 구제하는 일에 나선다고 하면 가까운 자들에게 피해를 끼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5)    , 다스리는 자는 관련자들의 형편과 처지를 모두 살피고 올바른 판결을 해야 하므로 얼마나 부지런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만약 게으른 자가 다스리는 일을 담당하게 되면 십중팔구 관련자들의 사정을 올바로 헤아리지 못하여 엉뚱한 판결을 하고 마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치인이나 지도자들은 참으로 부지런한 성품의 소유자여야만 합니다. , 남을 불쌍하게 여긴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희생을 감수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일은 자원하는 자가 즐거움으로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6)    셋째, “성도들이 실천해야만 하는 사랑의 종류들은 어떠한 것인가요?”(12:9-10). 먼저 십계명이 말하고 있는 내용을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두가지 사랑으로 정리하여 말씀하시는지를 생각해봅니다(20:1-17, 12:30-31).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여호와의 십계명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12:30-31).

7)    출애굽기 제20장에 모세가 기록하고 있는 여호와의 십계명은 다음과 같이 두가지 사랑으로 구분이 되고 있습니다; 첫째, 1계명부터 제4계명까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둘째, 5계명부터 제10계명까지는 이웃사랑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요약하여 말씀하신 뜻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 사랑이 피조물에 대한 사랑으로 반드시 나타난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가 창조주이시므로 여호와를 사랑하는 자는 창조주를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피조물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지 아니할 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8)    넷째,사도 바울은 그 두가지의 사랑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 가요?”(12:9-10). 본문입니다; “9.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12:9-10). 풀이를 해봅니다; 하나, 악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한 생명을 해치는 것입니다. 반면에 선이라고 하는 것은 그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3:4).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는 반드시 그 생명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살리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상대방의 생명을 해치고자 하면 그것은 거짓 사랑이며 사탄의 마음입니다.

9)    ,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모든 피조물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고자 하는 자는 우선 부모님이 함께 태어나게 하신 형제들을 사랑하지 아니할 도리가 없습니다. 자신의 형제도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가 모든 피조물을 사랑한다고 역설하는 것은 거짓말이기 때문입니다. , 육신적인 형제관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이치는 영적인 형제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나 성도들의 공동체 내에서 서로 형제를 미워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며 사탄에게 속한 자입니다.

10)  다섯째, “성도들의 열심과 소망과 봉사는 무엇과 관련이 되고 있는 것인가요?”(12:11-13) 먼저 본문입니다; “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12:11-13); 풀이를 해봅니다;

11)  하나, 사도 바울은 진작에 부지런한 성품은 다스리는 자의 덕목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2:8a). 그런데 본문에서 다스리는 자는 반드시 먼저 열심히 주님을 섬기는 자여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2:11). 왜냐하면, 다스리는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13:1).

12)  , 즐거움이라고 하는 것은 긍휼을 베푸는 자의 덕목입니다(12:8b). 성도가 상대방을 불쌍하게 생각하여 자신의 것을 손해보고 희생하는데 그것을 즐거워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주님께서 대신 채워 주시는 소망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12:12a).

13)  , 하나님 사랑이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나야만 한다고 사도 바울도 예수님처럼 진작에 말하고 있습니다(12:9-10). 그렇지만 그러한 성도의 삶은 참으로 힘이 들며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간구해야만 합니다.

14)  특히 사도 바울은 구체적으로, 다음 3가지가 기도의 내용이 된다고 시사하고 있습니다; ①환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할 것. ②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할 수 있도록 경제적인 넉넉함을 달라고 기도할 것. ③대접을 받는 것이 아니라 먼저 대접할 수 있도록 그러한 마음과 여건을 만들어 달라고 기도할 것 등입니다(12:12-13).   

둘째로, “14.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그리스도의 복음을 압축하고 있는 말씀임, 5:43-48)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그 결과 그 옛날 고센 땅에서 히브리인 이스라엘 자손들을 압제한 전력이 있는 세상제국 애굽의 후손들에게도 그리스도의 만민구원의 복음의 기지가 되는 여호와의 역사섭리가 임하게 되는 것임, 19:18-25, 9:16, 9:17). 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지극히 당연한 권면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어려운 것임. 그 이유는 사돈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픈 못된 심보를 카인처럼 가지고 있기 때문임, 4:5-7). 16.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겸손하며, 14:10),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자신의 지혜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가르쳐 주시고 또한 주님께서 본을 보여주신 지혜임을 그 종의 입장에서 말하라는 것임, 17:10, 1:1). 17.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모든 피조물의 생명을 살리고 돌보고자 하는 것이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이며 아가페 사랑임, 12:39, 3:4, 12:30-31, 10:33-37, 3:16, 8:18-23). 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그리스도가 하나님 앞에 우리를 위한 화목의 제물이 되었음을 기억하고 그와 같이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라는 것임, 16:24, 19, 5:10, 6:4). 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보응할 때에 대속의 십자가로 보응하시는 여호와의 역사섭리를 기억하라는 것임, 32:34, 3:13-17)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32:35). 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5:44)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마치 숯불에 머리를 데인 것처럼 자신의 죄가 자꾸만 생각나서 통곡하며 여호와께 돌아오는  회개의 기회가 있을 것임, 65:1-2, 10:20-21).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진짜 원수인 죄와 사망의 법을 지배하는 악한 영을 쫓아내면 우리가 원수같이 여기는 그 사람도 회개하고 영생의 구원을 얻어 하나님나라에 함께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는 것임, 8:2, 6:12, 6:5-7, 8:21, 12:39, 3:4-10, 11:20)”(12:14-21); 역시 문답형식으로 알기 쉽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첫째, “성도들은 공동체생활과 사회생활을 어떻게 해야만 하는 가요?”(12:14-16). 본문의 말씀입니다; “14.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16.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12:14-16); 다음과 같이 풀이해봅니다;

1)   하나, 성도들이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3가지 자세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12:14-15); ①성도와 교회를 박해한다고 하여 상대방을 저주하지 말고 오히려 불쌍히 여겨서 그들을 변화시키고 구원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하나님께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②사회적으로 즐거운 일이 발생하면 그것을 함께 축하하고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남이 잘 되는 것을 함부로 시기하거나 상대방이 잘하고 있는 일을 제멋대로 비난하는 일을 삼가하라는 것입니다. ③사회적으로 불행을 당하여 울고 있는 자들과 마음을 같이하여 함께 기도하고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도들이 좋은 사회의 이웃이 되는 방법입니다.

2)   , 신앙공동체나 교회생활에 있어서 성도가 지녀야 하는 마음가짐을 사도 바울은 다음 4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12:16);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는 왕따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동역의 삶이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는 다른 성도들을 하찮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자 역시 주님의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는 다른 성도를 이해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는 상대방의 말을 듣기를 먼저하고 자신의 의견은 나중에 말하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성경말씀에 비추어 하나님의 지혜를 풀어서 말할 것이며 세상적인 지혜를 가지고 상대방을 설득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  둘째, “선으로 악을 이기는 성도의 삶의 비결은 무엇인가요?”(12:17-21). 먼저 바리새인들의 유대교적인 가르침과 예수님의 기독교적인 가르침이 근본적으로 어떻게 다른 지 그 차이점을 살펴봅니다(5:43-48). 마태복음 본문입니다;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 주심이라.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5:43-48); 간략하게 풀이를 해봅니다;

1)   하나, 예수님께서는 선민 유대인들이 율법선생인 랍비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43.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5:43). 그것은 선민 이스라엘 사회 안에서는 서로 이웃을 사랑하지만 주변의 이방인들에 대해서는 선민 이스라엘을 해치는 원수로 알고 그들을 멸망시켜 달라고 여호와께 간구하여야 한다고 그렇게 배웠다는 것입니다(19:18). 그것이 선민만의 구원 사상이며 그들의 정치적인 메시아 사상입니다. 전통적인 유대인들의 율법해석과 사고방식이 실제로 그러합니다.

2)   ,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바리새인들의 율법 해석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의 뜻과 어긋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①하나님의 복음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는 자들의 여호와 말씀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서 비롯되고 있는 가르침입니다. 일찍이 시내 산 언약에서 언급하고 있는 그대로 선민들은 여호와 앞에서 제사장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야 합니다(19:4-6). 그 말의 의미는 한마디로 선민들과 성도들은 자신들을 박해하고 있는 원수와 같은 자들을 불쌍하게 여기고 그들에게도 복음을 깨닫고 성도로 살아갈 수 있게 해 달라고 여호와께 중보의 기도를 드리며 또한 회개하는 이방인들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5:44).

3)   ②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박해자이거나 박해를 당하고 있는 자들이거나 모두가 구원의 대상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리스도를 만나고 자신들의 죄를 회개할 때까지 생존권을 보장하고 자연의 섭리를 보장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5:45). ③성도들이 그리스도처럼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대속의 삶을 살아가게 되면 그것으로 성도들이 영생의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5:46-48).

(3)  셋째, “사도 바울은 선으로 악을 이기는 구체적인 성도의 방법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요?”(12:18-21). 본문 말씀입니다; “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 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12:18-21); 풀이를 해봅니다;

1)   하나,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12:18);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제물로 삼아 속죄와 화목의 제사를 드리셨기 때문에 성도들은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게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억지로 되지 아니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로 맡기라는 것입니다.

2)   ,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12:19); 죄와 죽음의 권세를 행사하려고 하고 있는 사탄과 악한 영들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처벌하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32:35, 19:19-21, 20:1-3, 9-10) 그 약속을 믿고서 성도들은 그 처벌을 여호와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12:19);

피조물인 사람들은 악한 영들의 상대가 되지 못하고 연약한 존재들이기 때문에(2:7) 직접 악한 영들과 상대하여 인간의 지혜와 능력으로 싸워서 이기겠다고 시도하게 되면 큰 낭패를 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악한 영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전투에 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6:12-20).

3)   ,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 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12:20-21);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악한 영들이 지배하고 있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믿는 사람들을 해방시키고자 하십니다(8:2). 그 말씀은 구원이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속죄의 제사를 믿는 사람들의 심령속에서 악한 영들을 도려내어 영벌에 처해버리고 그 사람을 구해낸다는 것입니다(3:15, 8:21, 9:12-17). 요컨대, 진짜 원수는 악한 영들이며 사람들은 모두 구원의 대상입니다. 그에 따라 성도들은 원수와 같은 사람들을 구원의 대상으로 긍휼하게 여기고  그들에게 선의로 대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과 주님의 인류구원에 동참하는 성도들의 할 일입니다.

4)   환언하자면, 생명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심판에 사람들을 맡겨드리고 오로지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제사장나라 거룩한 중보자로 살아가는 자들이 바로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성도들입니다(19:6, 16:24, 28:18-20). 비록 원수 같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을 보살피고 인간대접을 해주게 되면(25:21) 그들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너무 부끄러워서 더 빨리 뉘우치고 속히 회개의 마당으로 나아오는 하나님의 역사가 발생하는 것입니다(12:20). 요컨대, 그것이 선으로 악을 이기는 성도의 삶의 비결입니다(12:21);

결론적으로, 사도 바울의 유기체 이론은 사실 고대 왕정국가에서 많이 설파가 되던 내용입니다. 왕정국가의 머리는 왕입니다. 백성들은 그 손발이며 지체입니다. 머리가 없으면 몸이 움직이지 못하며 판단도 할 수가 없습니다. 머리가 판단을 하고 명령을 내릴 때에 지체들이 움직여져서 하나의 통일된 행동을 합니다. 그렇게 왕정국가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살아 움직이게 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세상적인 왕정국가의 유기체 이론을 상당히 다르게 응용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각 지체를 살리기 위하여 먼저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성도들을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맞아 들이심으로부터 하나의 유기체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지체의 아픔을 아시고 사랑하십니다. 일찍이 그 지체를 살리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신 구원자이십니다.

그에 따라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고 하나의 유기체로서 살아가고 있는 신앙공동체에 있어서는 성도들의 마음가짐이 왕정국가의 백성들과는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그저 왕이 머리이며 왕정국가의 주인이기 때문에 그 종이 되고 습관적으로 모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와 달리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그 사랑과 구원이 감격스러운 것이기에 남은 평생 그 사랑의 빚을 갚아가는 지체로서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컨대, 그것은 왕정국가라는 조직체가 아니라 하나의 사랑의 패밀리라는 특별한 유기체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그와 같은 구원의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고서 그 지체로서 형제를 사랑하며 충실한 성도의 삶을 끝까지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