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 할매(손진길 소설)

봉천 할매7(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9. 29. 12:29

봉천 할매7(작성자; 손진길)

 

1933년 6월 하순 최지훈이 돌아가고 난 후에 손영주는 노모 이채령에게 문안을 하고 혼담관계를 말씀드린다. 그러자 이채령이 말한다; “그 청년은 손해선이와 꼭 결혼을 하고 싶은 모양이지. 그렇지만 그 모친이 성정이 까다롭다고 하니 편모 슬하에 외동인지라 참으로 좋은 혼처는 아니라고 하겠군”.

그러자 손영주가 말한다; “해선이 나이가 올해 21살입니다. 금년에 시집을 보내면 딱 좋겠는데 아직 다른 곳에서는 혼담이 들어오지 않고 있습니다. 어머니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요?”. 이채령이 답을 한다; “당사자의 결심이 가장 중요하겠지. 내가 어미에게서 듣기로는 해선이도 크게 탐탁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군. 애비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데?...”.

손영주가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저는 별다른 변화가 없는 한 시간을 끌지 말고 우리가 받아들일 의향이 없다고 일찍 통보를 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 청년도 나이가 26세나 되는 노총각이니 빨리 다른 곳에 혼처를 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채령이 시원하게 답한다; “그래 애비 말이 맞아. 혼사라고 하는 것이 백퍼센트 좋다고 하는 경우에도 시집살이가 힘들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처음부터 편모슬하에 외동, 게다가 시어머니 될 사람이 성정이 까다롭다고 하면 그 시집살이가 혹독할 것이야. 어떻게 그런 곳에 해선이를 보낼 수가 있겠는가?...”;

그날 저녁에 손영주가 아내 정애라가 있는 자리에서 당사자인 손해선에게 최씨 총각이 당일 방문한 이야기를 상세하게 전해 준다. 그리고 해선이의 생각을 묻는다. 해선이는 부모님의 의견에 따르겠다고 다소곳이 말한다. 그러자 봉천 아지매 정애라의 의견이 신기하게도 모친 이채령이의 의견과 일치를 한다.

그것을 보고서 다음날이라도 노곡에 살고 있는 매파를 통하여 자신들의 의견을 전해주고자 한다. 바쁜 농사철이 다시 시작이 되고 있지만 손영주가 노곡까지 그 매파를 찾아가서 성실하게 자신들의 종합의견을 말해준다. 그것은 성의를 보였다고는 하지만 한마디로 퇴짜인 것이다. 그렇게 처리를 하고 6월말까지 편하게 농사일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손영주이다.

근래 조선총독부가 수세를 많이 인상하고 비료 등 농자재 값은 올리는 반면에 수매가는 크게 낮추고 있어 농사를 지어도 적자를 보고 있다. 따라서 지주들이 그 부담을 소작농에게 전가하여 적자를 메꾸고 있는데 손영주는 그렇게 하지를 못한다. 밥을 굶고 있는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그의 성품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러한 형편이므로 농사를 지어도 재미가 없다. 이웃에서는 부농이라고 하지만 추수를 해보아야 매년 적자이니 그 적자를 메꾸는 방법이 농지를 조금씩 처분하는 길 뿐이다. 그런데 그 처분의 량이 자꾸만 많아진다. 그만큼 농지 값이 바닥을 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정말 ‘농자천하지대본’이 아닌 세상이다.

1931년에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고 그 다음해에 괴뢰정부 ‘만주국’을 세우고 이제는 중국대륙으로 전선을 확대하고 있으므로 해가 갈수록 농민들의 고혈을 빠는 그 악독한 농정이 점점 도를 더하고 있다. 무슨 이런 고약한 경우가 다 있을까?...

마음 같아서는 농지를 전부 처분하고 고향을 떠나고 싶어도 그것마저 안된다. 부락마다 공출량을 할당하고 일종의 부락공동책임으로 산미증산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웃 몰래 전가족이 야반도주라도 하지 아니하는 한 무조건 농사를 열심히 지어야만 한다. 그래야 쌀을 공출로 바치고 그 대신에 만주에서 수입한 잡곡으로 강냉이 죽을 쑤어서 먹을 수가 있는 세상이다;

그렇게 고약한 시대 1933년 7월 농번기에 갑자기 손영주의 집에 두동에 살고 있는 최지훈이 그의 모친과 함께 방문을 한다. 손영주가 깜짝 놀라서 사랑방으로 아내 정애라를 불러서 함께 그 모자를 만난다. 그 자리에서 자신의 이름을 ‘강신녀’라고 밝힌 최지훈의 모친이 자신의 결심을 밝힌다.

그녀가 먼저 다음과 같이 말문을 연다; “제가 며느리를 보면 까탈스러울 것 같아서 그런지 멀쩡한 저희 아들에게 혼인을 하겠다고 나서는 처녀가 없습니다. 편모슬하의 외동은 그렇게 결혼하기가 힘이 드는가 봅니다. 그런데 저희 집안은 3대가 외동으로 내려오다가 보니까 손이 귀합니다. 따라서 제 아들놈을 빨리 장가를 보내고 손자를 보고 싶은 것이 제 마음입니다”.

그 다음에는 울먹거리는 음성으로 그녀가 말을 잇는다; “그러므로 이 댁에서 따님을 저의 집 며느리로 주시면 제가 무조건 아들과 며느리의 뜻을 따라 잘 대접할 것이니 조금도 염려하지를 마시고 이번 혼사를 성립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이 늙은이가 이렇게 머리를 조아려서 간청을 드립니다”. 그 음성이 간곡하기 그지없다.

그 읍소 앞에 손영주와 정애라도 당장 할말이 없다. 그래서 두 모자의 뜻을 알았으니 날씨도 더운데 일단 돌아가시라고 정중하게 권한다. 그러자 최지훈의 모친 강신녀가 이왕 온 김에 당사자인 손해선과 그 조모님을 좀 만나보고 갔으면 좋겠다고 떼를 쓴다.

하지만 아무리 간청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할 수는 없다. 나이가 든 그녀를 처녀 손해선이 바로 상대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언뜻 보기에 강신녀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여인이다. 그 말솜씨와 읍소 앞에 순진한 처녀 손해선은 백 번 넘어가고 말 것이다. 그래서 손영주가 먼저 안채로 가서 모친 이채령에게 사정을 말씀드린다. 이채령은 친히 그녀를 만나겠다고 한다.

그날 나이 50인 강신녀가 78세의 이채령을 만난다. 강신녀는 자신이 우겨서 만나는 자리인지라 이채령 앞에서 예의범절을 칼같이 지키면서 말한다; “어려우시겠지만 손녀분을 저희 집 며느리로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시어머니 노릇을 하지않고 딸자식처럼 대하고 그저 아들 부부의 뜻대로 매사 따를 것을 약속 드립니다. 부디 제 청을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거듭 부탁을 드리고 저는 일어서겠습니다”;

강신녀가 다시 절을 하고 일어설 때까지 이채령이 굳게 입을 다물고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그러다가 딱 한마디를 한다; “두동에서 여기까지 먼 길을 오셨는데, 아드님의 혼사를 위하여 모친의 정성이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그 뜻을 잘 알았으니 제가 손녀에게 그대로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편히 돌아들 가십시오”. 

그날 저녁에 이채령이가 손녀 손해선을 불러서 말한다; “해선아, 오늘 최지훈 총각과 그 모친이 다녀간 사실을 알고 있느냐?”. 손해선이 다소곳이 말한다; “네, 할머니 어머니로부터 상세하게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채령이 확실하게 묻는다; “결혼은 해선이 네가 하는 것이다. 시집살이도 네가 하는 것이고. 그래 네 생각은 어떠하냐?”. 손해선이 묻는다; “할머니, 그 집 모친이 그렇게 읍소를 했다고는 하지만 그 약속이 확실하게 지켜질까요?”.

이채령이 웃으면서 말한다; “해선이 너는 성격이 무른 것 같으면서도 그렇지가 않은 면이 있구나. 그래, 네가 보기에는 그 모친이 그 약속을 지킬 것으로 보이느냐?”. 손해선이 답한다; “당장은 급하니까 그렇겠지만 일단 자기집 며느리가 되고 나면 어디 끝까지 그렇겠어요. 제가 마음에 안 들면 다른 트집을 잡을 수가 있겠지요”.

이채령이 역시 웃으면서 말한다; “그래, 네 말이 맞다. 하지만 다른 것을 탈로 잡지는 못할 것이다. 네가 그 집에서 아들을 낳는다면 말이다. 어쨌든 돌려서 생각을 해본다면 시누이가 없어서 그것은 좋겠구나. 그리고 결혼도 하기 전에 시어머니 되실 분이 먼저 항복을 하고서 들어오고 있으니 말이다. 그것은 남편 될 사람의 마음이 해선이 너에게 상당히 기울어져 있다는 뜻이겠지…”.  

손해선이 배시시 웃으면서 말한다; “할머니 말씀은 그러면 제가 아들만 낳는다면 그 집에서는 고부간에 큰 갈등은 없을 것으로 보시는 것이지요?”. 이채령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손녀에게 말한다; “그래 결혼도 하기 전에 시어머니 될 사람이 아들의 혼사를 위하여 그렇게까지 읍소를 하는 경우가 분명히 흔하지는 않을 것이야. 그러니 그렇게 생각이 된다. 이 할미는…”.

그렇게 말하고 나간 손해선은 이틀이 지나자 부모에게 그곳으로 시집을 가겠다고 말한다. 손영주와 정애라는 진작에 모친으로부터 손해선이 그러한 뜻을 은근히 비쳤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기에 ‘알았다고’ 고개를 끄떡인다. 그래서 바쁜 농사절이지만 봉천 아지매 정애라가 내남 노곡까지 그 매파를 찾아가서 혼담을 받아 들인다는 말을 전한다.

그 결과 손해선과 두동의 노총각 최지훈 사이에 농한기를 맞이하여 혼례가 있게 된다. 추운 날씨이지만 11월 중순에 너븐들에서 혼례식을 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신행은 양력으로 해를 넘기자 말자 1월 중순으로 잡는다. 신랑이 노총각인 점과 독자인 점을 고려하여 일찍 신부를 시집으로 보내어 준 것이다;

그러한 손영주 집의 개혼인 혼례식이 있기 2달 전에 막내아들 손수태가 9월 9일에 두돐을 맞는다. 막내아들이 조선의 나이로 3살이 되자 이제는 봉천 아지매 정애라가 조금 운신이 자유로워진다. 손수태가 젖이 아니라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맏딸 손해선이 시집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막내아들을 딸에게 맡기고 정애라는 가장 편하고 좋은 시간을 보낸다. 신행을 가기 전에 손해선이 막내동생을 얼마나 열심이 지극정성으로 돌보아 주는지 모른다. 그렇게 손해선은 착한 딸이며 누나이다. 그러한 딸 손해선이 해가 바뀌어 1934년 1월 중순에 그만 시집으로 들어가고 나자 봉천 아지매 정애라는 참으로 허전하다;

사람은 든 것은 몰라도 난 것은 크게 안다고 했던가? 그 말이 사실이다. 정애라가 온 집안을 헤매어 보아도 사랑스럽고 믿음직한 딸 손해선이 보이지를 않는다. 22살이 된 과년한 딸을 친정에 계속 붙들어 둘 수가 없어서 세월 따라 두동으로 시집을 보내기는 했지만 딸이 없는 집이 이렇게 허전할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던 정애라이다. 그래서 44세가 된 그녀가 때로는 세월의 무심함에 눈물을 비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