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 할매(손진길 소설)

봉천 할매9(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9. 29. 12:49

봉천 할매9(작성자; 손진길)

 

1932년 10월에 손영한 부부는 큰딸 ‘손수자’를 내남 둥굴 마을에 살고 있는 최후술과 혼인을 시켰다. 1912년생인 손수자는 그때 21살이었다. 손수자는 이듬해인 1933년 12월에 아들을 낳았는데 그 이름이 ‘최해구’이다. 아들을 낳고 두 부부가 얼마나 사이 좋게 잘살고 있는지 모른다. 둥굴 마을에서는 ‘잉꼬부부’라고 소문이 다 나 있다;

1936년 1월 중순이 되자 손수자 부부가 4살짜리 아들과 함께 내남 너븐들로 오고 있다. 그녀의 바로 밑의 여동생인 손미자의 혼례식이 친정집에서 있기 때문이다. 언니 수자보다 6살이나 적은 손미자는 금년에 조선의 나이로 19살인데 벌서 결혼을 한다. 신랑은 월성 이씨인 이종대인데 청도에 살고 있다.

내남 너븐들에서는 결혼식이 있으면 그것은 한 가정의 행사가 아니라 완전히 동네행사이다. 월성 손씨의 세거부락이기 때문에 모두가 일가 친척들이다. 그리고 타성받이가 몇 가정 너븐들에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도 동네행사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 그 이유는 노동집약적인 벼농사를 짓고 있으므로 마을사람들의 단합과 협력이 참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남의 집 행사라고 모른 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손영한의 둘째 딸인 손미자의 혼례식이 있는 그날 신부의 집에 동네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함께 축하를 하고 있다. 백여명의 동네 주민들이 아이들과 함께 혼례집을 들락날락하고 있으니 그날은 마치 명절과 같다. 손수자는 그날 친정집에서 숙부인 손영주와 숙모인 정애라 그리고 사촌동생들을 모두 만나게 된다. 그 가운데 손영주의 장남인 손수정이 눈에 띤다;

손수정은 1936년이 되자 벌써 20살이다. 완연한 총각이다. 당시 시골에서는 그 나이이면 장가를 가는 때이다. 인물도 좋고 사람이 단단해 보인다. 그래서 손수자는 사촌 남동생 손수정에게 어울리는 신부감이 없을까?를 생각해본다. 그런데 마침 숙모인 봉천 아지매 정애라가 자기 옆에 있기에 슬쩍 물어본다; “숙모, 수정이가 이제 어른이 다 되었네요. 장가를 보내야 될 것 같은데요…”;

정애라가 빙긋 웃으면서 말한다; “글쎄, 금년에 스무살이 되기는 했지만 아직 결혼 이야기가 없어. 어디 시가 쪽에 좋은 처자라도 있는게야?...”. 손수자가 말한다; “숙모는 어떤 며느리를 보고 싶은데요?”. 정애라가 별 생각이 없이 말한다; “글쎄, 아무래도 자기들 밥벌이는 자기들이 해야 하니까 신체 건강하고 심덕이 착하면 되겠지. 신부 나이가 좀 들어도 나는 상관이 없어. 농사일을 잘 한다면 말이야…”.

그 말을 듣자 손수자가 속으로 생각을 한다; ‘숙모가 그런 말을 은연중에 하고 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부부간에 평소 안 하던 농사일을 하느라고 많이 힘이 드시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녀가 지나가는 소리로 한마디를 한다; “그렇게 천성이 착하고 일을 잘하는 처자라고 하면 제가 아는 데가 한군데 있기는 하지만, 수정이가 별로 안 좋아할 텐데요…”.

봉천 아지매 정애라가 반색을 하면서 말한다; “그래, 그런 처자가 주변에 있다는 말이지… 수자야, 그 처자가 어디에 살고 있는데?”. 손수자가 얼른 대답한다; “제 손위 시누가 비지에 시집을 가서 살고 있는데요. 그 집에 딸이 여러 명 있는데 그 중에 큰 딸이예요. 나이가 24인가 그런데 일을 그렇게 잘하고 심덕이 또한 순하고 착하데요”.

정애라가 정색을 하고서 자세히 묻는다; “수자야, 그러면 그 집 성씨가 어떻게 되는데? 그 처녀 이름은 무엇이고?...”. 손수자가 얼른 대답한다; “제 시누의 남편이 월성 김씨이고요. 그 처녀 이름은 ‘김옥순’이라고 해요. 신체가 건강한 처녀인데요. 그런데 어릴 적에 마마를 앓아서 약간 그 흔적이 얼굴에 살짝 남아 있어요. 그래서 아직 시집을 못 가고 있어요…”.

봉천 아지매가 캐묻는다; “마마 자국이 얼굴에 남아 있다면 보기가 흉하겠구나?”. 손수자가 손사래를 치면서 말한다; “그 정도는 아니예요. 그저 약간 표가 날 따름이지요. 요즘 어릴 적에 마마를 앓은 사람치고 그 정도이면 약과이지요…”. 정애가가 흥미가 있는지 말한다; “그래 알겠다. 그러면 언제 내가 그 처녀를 한번 만나볼 수 있도록 네가 주선을 해주겠니?”.

손수자가 쾌히 대답한다; “숙모, 그건 하나도 어렵지가 않아요. 여기 동생 혼례식이 끝나면 저희 부부는 어차피 정월이고 하여 그 시누 집에 잠시 들리기로 했어요. 그때 제가 숙모님 말씀을 전달하고 맞선을 보도록 주선을 할께요…”. 정애라가 말한다; “그래 고맙다, 수자야. 옛날부터 중신을 잘하면 두루마기를 얻어 입고, 못하면 뺨이 석대라고 하는데 너는 잘하면 옷 한 벌 얻어 입겠구나…”.

그런 일이 있고나서 한달 남짓 지나서 봉천 아지매 정애라는 그 처녀를 선보기 위하여 둥굴 마을 손수자의 집 안채로 들어선다. 그 처녀의 집에서 외삼촌의 집이 편하다고 하여 그곳으로 맞선 장소를 정한 것이다. 정애라가 그 처녀를 보니 참으로 건강하게 보인다. 그리고 얼굴의 마마 자국도 그렇게 흉한 것이 아니다. 그러한 흉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심성이 고와서 그런지 밉지가 않다.

자기가 보기에는 맏며느리감으로 괜찮은데 문제는 장남인 손수정의 마음이다. 우선 그 처녀 ‘김옥순’의 나이가 손수정보다 4살이 많다. 그리고 손수정이 그 처녀의 얼굴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마마 자국이 있다고 하여 무조건 싫어하면 그것이 큰일이다. 그것이 아니라 김옥순의 마음씨가 착하고 순하며 일을 잘하고 건강한 것을 장점으로 삼아 잘 보아준다고 하면 별로 나무랄 것이 없겠다고 정애라가 생각을 한다.

그날 그 처녀의 선을 보고 집에 와서 봉천 아지매 정애라는 장남 손수정과 남편 손영주을 안방에 불러 놓고 한참 이야기를 한다; “제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맏며느리 노릇을 잘 하겠던데요. 다만 나이가 수정이보다 4살 더 많고 그 얼굴에 어릴 적 마마 흔적이 약간 남아 있다고 하는 것이 흠인데, 그 점에 대하여 어떻게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군요…”.

그러자 손수정이 당장에 싫다고 말한다. 동네 창피하게 어떻게 마마 자국이 남아 있는 여자를 마누라로 데리고 살겠느냐?는 말이다. 그러자 손영주가 말한다; “그것은 사람을 겉모습만 보는 잘못된 사고방식이다. 여자는 자고로 심성이 착하고 신체가 건강해야 집안의 햇살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게야. 그리고 수정이 네가 요즘에 덕천으로 농사일을 하러 머슴처럼 다니고 있는데 그런 처지가 되면 누가 딸을 주려고 하겠니? 그러니 그 처녀하고 결혼을 하고 빨리 일가를 이루는 것이 좋겠다”.

평소 우유부단한 손영주가 그날은 어째서 장남 수정이의 의견을 묵살하고 그렇게 강하게 말했는지 모른다. 아마도 나이 53세에 안 하던 농사일을 하니까 몸이 고달파서 그런 것 같다;

모내기 철이 되면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것이 농부의 마음이라고 하는데 그 처녀가 신체 건강하고 일을 잘한다고 하니까 그 일손을 크게 빌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부모가 적극 권하시니 마음이 착하기만 한 손수정이 더 이상 반대를 못한다. 그래서 그만 ‘알아서들 하세요’라고 말하고 만다. 그후 진행된 혼사는 일사천리이다. 그해 1936년 가을걷이가 끝나자 10월 중순에 바로 손수정을 비지 마을에 보내서 신부집에서 혼례식을 올리고 3일간 신방에서 자도록 한다. 그리고 그해를 넘기지 아니하고 12월에 벌써 신부가 신랑집으로 들어와서 함께 살게 된다;

다만 하나의 문제는 새신랑인 손수정이 안채 옆방에 꾸민 신부의 방에 들어가려고 하지를 않는 것이다. 그는 사랑채 부친이 머무는 사랑방 그 옆방에서 잠을 자고 새벽 일찍 내남 덕천에 있는 논으로 일하러 나가버린다. 그렇게 일년동안 새 색시를 외면하고서 살아가고 있는 손수정이다. 그것을 보고서 뒷방 늙은이로 자처하고 있는 조모 이채령이 걱정을 한다.

하루는 이채령이 손부인 김옥순을 자신의 방으로 조용히 부른다. 그리고 말을 한다; “새 아기야, 남편이 원망스럽고 마음이 많이 아프겠구나. 이 할미가 대신 사과를 하마”. 그 말을 듣자 김옥순이 애써 흐르는 눈물을 닦으면서 대답을 한다; “할머니, 제가 남편 보기에 얼굴에 마마 자국이 좀 있어서 싫은 모양이예요. 제가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을 해보아도 그럴 것 같아요. 그렇지만 때로는 남편이 원망스럽고 외롭기도 해요, 할머니”.

참으로 솔직한 성품이다. 그래서 이채령이 조용히 옷감에 싼 봉투 하나를 손부 김옥순에게 내민다. 그리고 말을 한다; “맏손부인 너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이것 밖에 없어서 미안하구나 그렇지만 네가 조금만 더 견디면 분명이 네 남편이 너와 합방을 할 것이다. 내가 맏손자 수정이의 성품을 잘 안다. 그는 모진 사람이 절대로 아니다”.

이채령이 잠시 숨을 쉰 다음에 이어서 말한다; “수정이가 스스로 자기 마음을 다잡지 못해서 그런 것이지… 곧 지나가는 바람과 같은 것이야. 네가 마음 변하지 말고 꿋꿋하게 신방을 지키고 있으면 그는 반드시 네 방을 잦을 것이다. 그것은 이 할미가 장담을 하마. 그리고 이것은 내가 가진 비상금인데 이제는 이집의 맏손부가 되는 너에게 맡기마. 꼭 필요한 곳에 사용을 하도록 해라. 내가 이 세상을 떠나고 없더라도 나를 본 듯이 이 돈을 집안을 위하여 사용해다오”.

그 돈꾸러미를 받아 들고서 김옥순이 그만 ‘할머니…’라고 부르면서 이채령의 품에 몸을 던지고 만다. 그리고 울먹이는 음성으로 말한다; “할머니, 걱정 마세요. 할머니께서 저보고 집을 나가라고 말씀하시지 않는 한 제가 이 손씨 집안을 꼭 지키고 있을게요. 약속합니다. 그리고 저를 위해서라도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살아 주세요”;

그 말을 듣고서 이채령이 허허로운 목소리로 말한다; “나도 네 말대로 하고 싶다만 내 건강이 요즈음 하루가 다르니 자신이 없구나. 이제 맏손부도 보았으니 한두가지 일만 마치면 나를 기다리고 있는 남편에게로 돌아 가야지. 새 아가야, 부디 내가 없더라도 이 집안을 잘 지켜다오. 내가 며느리인 정애라와 손부인 너에게 그것만은 꼭 부탁을 하고 싶구나. 살다가 보면 반드시 지금보다 훨씬 좋은 날이 너희들 앞에 다가올 것이야. 나는 그것을 믿고 있다”.

이채령의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니면 헛된 희망인지는 나중에 알게 된다. 어쨌든 그날 이채령은 분명이 그녀가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이 한두가지가 더 있다고 했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