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 할매(손진길 소설)

봉천 할매8(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9. 29. 12:37

봉천 할매8(작성자; 손진길)

 

2. 이채령의 안배와 봉천 아지매 정애라

 

이채령은 겉으로는 뒷방 늙은이처럼 지내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것이 아니다. 그녀는 나름대로 세가지 집안일에 신경을 쓰고 있다; 첫째가, 집안의 경제적인 문제이다. 둘째가, 손주들에 대한 교육의 문제이다. 셋째가, 손주들의 혼사에 관한 것이다. 간략하게 그 대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이채령은 아들 손영주가 경제적으로 자수성가를 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녀는 자수성가형의 인물 두사람을 살아오면서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는데, 한사람은 시아버지 손성규이고 또 한사람은 남편 손상훈이다. 그 두사람은 시간이 나는 대로  거랑가의 땅을 개간하여 전답을 늘려 나갔다. 그리고 한 푼이라도  아껴서 알뜰하게 재투자를 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아들 손영주는 그러한 자질과 근성을 전혀 지니고 있지 않다. 그는 애초에 재산을 늘리려는 생각이 없다. 혹시 그러한 생각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의 신체가 그렇게 강건하지를 못하고 약골인 것이다. 그리고 그는 윗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착실하게 지키고자 애를 쓰지도 않는다.

예를 들면, 손영주는 끼니를 거르고 있는 이웃을 보면 앞뒤 생각이 없이 먼저 자신의 곡식을 퍼주는 것을 좋아하는 그러한 성격의 사람이다;

그 결과 손영주는 1935년말에 마지막 남은 400석의 재산마저 지키지 못하고 만다. 소작료를 제대로 걷지를 못하고 어려운 소작농들에게 계속 인심을 쓰다가 그만 적자를 메우지 못하여 자신의 전답을 전부 날리고 만 것이다.

그러한 남편을 그냥 믿고 살다가 정애라가 곳간이 빈 것을 1935년말에 보고서 깜짝 놀란다. 그때서야 그녀는 자신들의 전답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확인한다. 그 결과 몇 마지기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서 망연자실한다. 맏이인 딸 손해선이야 1934년 정월에 시집으로 보냈다고 하더라도 자신에게는 미혼의 어린 5명의 아들이 남아 있다.

아들들에게는 이제 무엇으로 먹이고 입혀야 하는가? 자신의 아들들은 천석지기 집안의 손자로 태어났는데 무능한 아버지 때문에 끼니걱정을 하게 생겼다. 뒤늦게 남편으로부터 텅 빈 곳간의 열쇠를 받아 챙기면 무엇을 하는가? 봉천 아지매 정애라는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을 안고서 통곡을 하게 된다.

1935년말에 집안에서 그러한 소동이 발생하는 것을 이채령이 뒷방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어떻게 하면 좋은가?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경제적인 방법은 남편 손상훈이 죽기 전에  자신에게 맡겨 놓은 비상금 가운데 절반을 몰래 며느리 정애라의 손에 쥐어 주는 것 뿐이다.

하지만 그것은 적은 돈이 아니다. 옛날에도 좋은 논 5마지기를 넉넉히 살 수가 있는 큰돈이다. 지금은 농지 값이 형편없이 떨어져 있으므로 옛날에 비하여 절반 값이다. 따라서 봉천 아지매 정애라는 그 돈으로 논 열 마지기를 산다. 그것으로 직접 농사를 지어 당장 식구들을 먹여 살리고자 한다. 봉천 아지매 정애라가 이제는 농사꾼이 되고 만 것이다.

둘째로, 이채령은 손자들의 교육문제에 신경을 쓰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들 손영주는 집안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인물이 못된다. 그 부친 서배 할배 손상훈과 비교하면 금방 그 사실을 파악할 수가 있다.

이채령 자신은 함께 살아오면서 남편 손상훈이 자랑스러웠다. 젊은 시절 손상훈은 부친 손성규를 도와 거랑가의 자갈 땅을 개간하여 논으로 만든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러한 개척정신과 자립의식을 가진 자손이 없을까? 이채령은 손자들 가운데 그러한 재목이 있는지를 유심히 살피고 있다.

그러한 손자가 있다면 이채령은 자신이 가진 남은 비상금을 사용하여 그 뒷바라지를 하고 싶다. 그래서 그녀는 양삼마을에 있는 서당을 자주 찾는다. 그곳은 그 옛날 이채령의 부친 이덕화 선비가 평생 훈장일을 한 곳이다. 이제는 이덕화의 제자들이 몇 사람 돌아가면서 재능기부형식으로 훈장일을 맡아보고 있다;

1934년 1월달에 손녀 손해선이 시집으로 들어가고 나자 집안에는 5명의 손자들이 남아 있다. 그 나이가 18살, 15살, 12살, 9살, 그리고 4살이다. 그러므로 장손인 손수정은 벌써 서당을 졸업했고 둘째와 셋째 그리고 넷째 손자가 사이 좋게 서당을 다니고 있다. 막내인 손수태는 아직 어려서 서당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서당에 다니고 있는 세 손자 가운데 누가 머리가 좋고 자신의 앞날을 개척할 수 있는 자질이 있을까? 이채령은 그 점을 알기 위하여 시간이 나면 양삼마을 서당에 가서 훈장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최근에 늙은 이채령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에 웃음꽃이 피고 있다. 그 이유는 셋째 손자인 손수석 때문이다. 9살에 불과한 손수석이 서당에서 괄목할 성적을 내고 있다. 서당훈장들은 돌아가면서 생도들에게 한학을 가르치고 있는데 모두들 손수석의 영특함에 놀라고 있다. 따라서 하나같이 이채령에게 셋째 손자가 참으로 똑똑하고 장래가 촉망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채령은 손수석의 교육에 투자를 하고자 한다. 그래서 1936년경 내남 상신에 설립이 된 ‘심상소학교’를 찾게 된다;

 교장선생은 일본인이다. 그리고 교감이 조선사람이다. 그 교감이 이조에 있는 소학교에서 장인식선생의 뒤를 이어 교장을 맡은 바가 있는 최인배 교장의 아들이다. 교감 최수종은 81세의 할머니인 이채령이 소학교로 자신을 찾아오자 깜짝 놀란다.

노인 이채령의 말이 최수종 교감을 더욱 놀라게 한다. 자신의 손자인 손수석을 서당에서 심상소학교로 전학을 시키고 싶은데 가능하냐? 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의 나이를 물으니 올해 조선의 나이로 14살이라고 한다. 그 나이는 소학교를 졸업하는 나이이다.

따라서 교감 최수종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할머니께서 학교까지 오셔서 손자의 편입을 요청하시니 그 성의로 보아 6년제 소학교에서 5학년 정도에 편입을 시켜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큰 문제는 1학년부터 4학년까지의 전과정을 건너뛰어 과연 5학년으로 바로 들어와서 공부를 따라갈 수가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이 걱정이지요…”;

그 말을 듣자 이채령이 웃으면서 말한다; “교감선생님, 그 점은 걱정을 아니하셔도 됩니다. 제 손자는 넉넉하게 따라갈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최수종 교감이 ‘허허’라고 웃는다. 그것은 참으로 학문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하시는 말씀으로 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교감이 정식으로 말한다; “할머니께서 손자를 푹 믿으시는가 봅니다. 하지만 이곳 심상소학교 공부는 어렵습니다. 처음 몇 년간은 일본어를 배워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일본어로 신학문의 기초를 모두 배워야 합니다. 그러한 경험이 전혀 없는 손자분이 과연 5학년에 바로 들어와서 따라갈 수가 있을까요? 어쨌든 좋습니다. 2년간 학비를 미리 선납하신다고 하시니 받아는 주겠습니다”.

셋째로, 이채령은 손주들의 혼사문제에 신경을 쓰고 있다. 그래서 겉으로는 아들 내외가 맏이인 손해선을 시집 보내는 문제를 가지고 부부간에 논의를 하고 있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묻지를 아니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그것이 아니다. 어떻게 혼담이 진행이 되고 있는지를 은근히 살핀 것이다. 그래서 아들 손영주가 이채령 자신의 의견을 물었을 때에 정확하게 조언을 해준 것이다.

이제는 손자들의 혼사문제가 줄줄이 있게 될 것이다. 집안이 일어서려면 며느리들이 잘 들어와야만 한다. 그 점을 알고 있는 이채령이기에 손주며느리를 얻는 일에 그녀는 미리 신경을 쓰고 있다. 하지만 1936년이 되어도 손자들의 나이가 20세, 17세, 14세, 11세 그리고 막내는 6살에 불과하다. 아직 손주며느리를 보자면 몇 년을 더 기다려야만 한다.

그래서 이채령은 81세의 늙은 나이이지만 오래 살기 위하여 건강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과연 그녀의 소원대로 손주며느리를 볼 수 있을지는 앞으로 시간을 두고서 지켜 보아야 할 문제이다.

시어머니인 이채령 여사가 그러한 일에 신경을 쓰고 있는 줄 봉천 아지매 정애라는 전혀 짐작조차 못하고 있다. 그녀는 이제 5아들을 굶기지 않기 위하여 농사일에 남편과 함께 직접 매어 달리고 살림을 살기에 무척 바쁘기 때문이다. 1936년이 되자 손영주는 53세이다. 그리고 정애라가 46세이다. 적지가 않은 나이이지만 아직 농사를 지을 수는 있는 나이이다;

그들 부부는 이제 열심히 농사를 지어야 한다. 그래야 공출을 대고 남는 것으로 식구들을 먹여 살릴 수가 있는 것이다. 당시에 일제는 만주에서 들여오는 잡곡과 옥수수를 조선의 농민들에게 배급하고 있다. 그것이라도 얻어 먹기 위해서는 쌀농사를 부지런히 지어서 공출을 대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한 비참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정애라의 가정에 과연 희망의 빛이 나타날 것인가? 사방을 둘러보아도 전부 캄캄한 시대이므로 조선의 백성들은 하나같이 절망 가운데 죽지 못하여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미륵사상에 심취를 하고 있고 또한 애기장수가 나타나기를 꿈꾸고 있다;

과연 미륵은 어디에서 오며 애기장수는 어디서 태어나고 있는 것일까? 그 점을 알기 위해서는 그 이후의 시대를 살아 보아야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장차 국제정세의 변화를 통하여 그리고 인재의 양성을 통하여 그러한 일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