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 할매(손진길 소설) 57

봉천 할매27(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27(작성자; 손진길) 1943년 가을이 되자 쯔끼모도는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미쯔비시 비바이 석탄회사’에서 이상한 현상이 은근히 발생하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자신이 조선에서 데리고 온 인부들에 대해서는 정상적인 광부의 급료를 지급하고 있는데 다른 인력회사에서 데리고 온 조선인 일꾼들에 대해서는 이중적인 임금지불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탄광촌인 ‘비바이’의 위치는 삿포로의 북동쪽 60km지점이다; 쯔끼모도가 회사에서 경리일을 보고 있으므로 그 사실을 일찍 눈치채고 있다. 그것은 중대한 일이다. 그래서 쯔끼모도는 은밀하게 다른 인력회사를 통하여 일본 북해도에 광부로 들어온 조선인에게 물어본다; “조선 어디서 이 먼 곳 일본 북해도까지 와서 험한 광부 일을 하고 계십니까?”. 그의 말..

봉천 할매26(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26(작성자; 손진길) 1942년은 봉천 할매 정애라에게 있어서 참으로 다사다난하면서 잊을 수가 없는 한해이다. 4월 20일에 맏며느리 김옥순이 해산을 했다. 딸아이를 순산한 것이다. 3년 전에는 맏손자 ‘손진화’를 낳더니 이번에는 맏손녀를 생산한 것이다. 집안에 경사가 났기에 모두들 기뻐한다; 조부모인 손영주와 정애라는 손녀의 이름을 무엇으로 지을까 상의를 한다. 봉천 할매 정애라가 먼저 말한다; “집안을 화목하게 하는 것이 최고이지요”. 그러자 손영주가 말한다; “우리 손녀가 순조로운 인생을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그 이름을 ‘손화순’으로 짓는다. 아기의 부모인 손수정과 김옥순도 그 이름자가 좋다고 한다. 봉천 할매 정애라는 1942년 가을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아들 손수석이..

봉천 할매25(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25(작성자; 손진길) 손수석이 1942년 9월 조선을 방문한 김에 부산에 살고 있는 안성기 교장 댁에 잠시 머물면서 해박한 노인 안교장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그 정도만이 아니다. 손수석이 지금 일본제국이 중국대륙에서 그리고 태평양에서 진행하고 있는 구미 열강과의 전쟁상황에 대하여 안성기 교장에게 질문을 하자 그가 실로 놀라운 견해를 피력한 것이다. 그때 손수석이 듣고서 그의 머리속에 체계적으로 입력하고 있는 전쟁의 불가피성에 관한 내용을 먼저 적어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것이다; 첫째로, 일본제국이 만주와 중국대륙으로 진출하여 군사력으로 계속 식민지를 확장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과도하게 외국 차관을 들여와서 단기간에 산업근대화를 이룬 부작용이라는 것이다. 명치원로들이 적극 외자를 유치하여 공장..

봉천 할매24(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24(작성자; 손진길) 4. 태평양전쟁과 너븐들 사람들 손수석은 1937년 12월 26일에 단신으로 15세의 어린 나이에 고향 너븐들 부모님의 집을 떠나 부산역에 도착했다. 그 다음날 그는 일본으로 들어가는 ‘관부연락선’을 타게 되는데 그때 고 장인식 교장의 집에서 일박을 했다. 그곳에서 그를 가장 반갑게 맞아 준 노인이 안성기 교장 부부이다; 안성기 교장은 서배 할배의 친손자인 손수석이 청운의 꿈을 품고 일본으로 떠나는 것을 보고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1856년생인 그는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1865년에 조선나이로 10세때에 일본으로 들어갔다. 안성기는 일본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1876년에 조선과 일본 사이에 강화도조약이 체결이 되어 조선이 나라의 문을 열자 비로소 부모님과 함께 ..

봉천 할매23(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23(작성자; 손진길) 내남 너븐들에서는 흔히 ‘보름 촌’, ‘한 일가’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 말의 뜻은 촌수가 ‘보름 촌’ 안이면 매우 가까운 친척이라는 의미이고, 보름 촌을 벗어나게 되면 먼 일가이지만 조상이 같으므로 ‘한 일가’로서 월성 손씨 집성촌 너븐들에서 아무런 차별이 없이 함께 어울려서 잘 살 수가 있다는 것이다. 전근대적인 시골마을에서는 보통 3대나 4대가 한 집에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촌수로 따지게 되면 아버지가 같으면 2촌, 할아버지가 같으면 4촌, 증조부가 같으면 6촌, 고조부가 같으면 8촌이 된다. 그에 따라 드물기는 하지만 한 집에서 8촌이 함께 살고 있는 경우가 있으므로 흔히 ‘한마당에서 8촌이 난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더 장수를 하여 고손자가 다시 아들..

봉천 할매22(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22(작성자; 손진길) 1942년 3월에 고향인 내남 너븐들에 들린 손수석은 맏형수 김옥순이 둘째 아기를 임신하여 배가 많이 불러 있는 것을 보았다. 여전히 사랑채 옆방에서 기거를 하고 있다는 큰형 손수정이 언제 안채 옆방에 있는 아내에게로 건너가서 아기를 가지게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손수석이 사랑채 사랑방에 가서 부친 손영주에게 문안인사를 드린 다음에 그 옆방으로 건너가서 큰형 손수정에게 말한다; “큰형, 형수님 배가 많이 불러 있습니다. 출산예정일이 언제인지 아십니까?”. 손수정이 동생 앞에서 여전히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한다; “다음달 20일경이라고 의원이 말한 것 같은데… 글쎄, 몸조심을 하지 아니하고 그 만삭의 몸으로 여전히 부엌일이며 빨래며 집안일을 혼자서 다하겠다고..

봉천 할매21(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21(작성자; 손진길) 한편 내남 너븐들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봉천 할매 정애라도 바쁘다. 1941년 3월에 아들 손수석이 형수감 박재순을 일본으로 데려가기 위하여 고향을 방문했는데 그때 많은 돈을 맡기고 갔기 때문이다. 그 돈으로 너븐들에 있는 전답 가운데 팔겠다고 하는 매물을 모두 거두어 들였다; 그리고 돈이 남아서 안심지역에 있는 매물까지 사들였다; 그것으로 500석지기가 된 셈이다. 옛날 시댁이 가지고 있던 천석지기의 절반 재산을 되찾은 셈이다. 그것을 보고서 남편 손영주가 말한다; “당신과 아들 손수석이 참으로 대단합니다. 한사람은 일본에서 돈을 벌어오고 당신은 그 돈으로 잃어버린 재산을 되찾고 있으니 말이요. 분명 나보다 당신이 훨씬 낫소. 그런데 전답을 많이 사 모으면 무엇하오? 생..

봉천 할매20(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20(작성자; 손진길) 흔히들 ‘춘삼월’에는 꽃바람이 분다고 말한다. 그 말은 일찍이 손수석이 조선에서 자라날 때 경주 월성 지역에서 많이 들어본 말이다; 그런데 손수석이 ‘쯔끼모도’라고 하는 일본성씨를 만들어 사용하면서 근무하고 있는 북해도에서는 추운 날씨로 말미암아 4월이 되어야 비로소 ‘춘삼월’ 꽃바람을 피부로 느낄 수가 있다; 그 꽃바람이 1941년 4월에 홋카이도 탄광과 삼판에서 조선인 청년들 사이에 거세게 불고 있다. 그 이유는 4월 초순에 22세의 손수상이 조선 내남에서 온 신부감 박재순을 맞이하여 간단하게 혼례식을 올리고 신혼생활을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신혼부부가 따로 생활하고 있는 작은 집 옆을 지나칠 때마다 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고 삼판에서 일하고 있는 조선인 젊은이..

봉천 할매19(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19(작성자; 손진길) 1941년 1월이 되자 손수석의 형인 손수상의 나이가 22살이다. 손수상은 손영주의 차남이다. 동시에 손영주의 친형인 손영한의 양자이다. 손영한은 자신의 아들이 된 손수상을 일본 북해도로 보내고 지금은 부인과 함께 딸 둘을 데리고 농사를 지으며 내남 너븐들에서 살고 있다. 손영한은 1880년생이므로 1941년 1월이 되자 그의 나이가 62세가 되었음을 깨닫는다. 자신과 부인 이신자와의 사이에 태어난 4딸 가운데 2딸은 이미 시집을 갔다. 이제 남은 두 딸 곧 손영옥이 1923년생으로 금년에 19세이고 막내딸 손자옥이 1926년생이므로 금년에 16세이다. 그러므로 셋째 딸인 손영옥을 금년이나 내년에 시집을 보내는 것이 딱 좋다. 당시 처녀나이 19세나 20세가 결혼 적령기이..

봉천 할매18(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18(작성자; 손진길) 북해도에 도착한 손수석은 30명의 일행 가운데 우선 자신의 형 손수상과 동생 손수권을 삼판의 벌목일꾼으로 분류한다. 그리고 남편을 따라온 젊은 부인 4명과 자신의 누나 손해선을 삼판에서 함박집을 운영하는 식당요원으로 삼는다; 그 다음에 23명의 남자들 가운데 석탄광부로 일할 사람과 벌목일꾼으로 일할 사람을 분류하고자 한다. 탄광에서 광부로 일하게 되면 중노동이다. 반면에 급료는 상당히 높다. 그 점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일단은 전원이 광부일을 하겠다고 지원한다. 그래서 손수석은 그들을 인솔하여 미쯔비시 석탄회사의 광부모집 담당관에게 데려 간다. 담당관은 우선 자원하는 23명에 대하여 체력시험을 실시한다. 그 시험에 합격을 하여야 갱도에 들어가서 작업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