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 할매(손진길 소설)

봉천 할매23(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10. 1. 05:45

봉천 할매23(작성자; 손진길)

 

내남 너븐들에서는 흔히 ‘보름 촌’, ‘한 일가’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 말의 뜻은 촌수가 ‘보름 촌’ 안이면 매우 가까운 친척이라는 의미이고, 보름 촌을 벗어나게 되면 먼 일가이지만 조상이 같으므로 ‘한 일가’로서 월성 손씨 집성촌 너븐들에서 아무런 차별이 없이 함께 어울려서 잘 살 수가 있다는 것이다.

전근대적인 시골마을에서는 보통 3대나 4대가 한 집에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촌수로 따지게 되면 아버지가 같으면 2촌, 할아버지가 같으면 4촌, 증조부가 같으면 6촌, 고조부가 같으면 8촌이 된다. 그에 따라 드물기는 하지만 한 집에서 8촌이 함께 살고 있는 경우가 있으므로 흔히 ‘한마당에서 8촌이 난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더 장수를 하여 고손자가 다시 아들을 낳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그때에는 5대조 할아버지가 살아서 10촌이 탄생하게 되는 것을 생전에 보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보통 6촌이 한 집안에서 자라나게 되면 집이 아무리 커도 비좁다. 그리고 무쇠밥솥에 쌀을 넉넉하게 씻어서 앉히고 밥을 많이 지어도 부족하게 된다. 따라서 장손이 어른들을 모시고 지차들은 분가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10촌이라고 하면 벌써 분가를 한 지 오래이다. 하지만 멀리 가지 아니하고 바로 이웃에 집을 지어 분가들을 한다. 그에 따라 작은 동네 가까이 살게 되는 촌수가 ‘보름 촌’이다. 세월이 흘러 마을이 커지게 되면 ‘보름 촌’을 넘어서는 일가들이 함께 살게 된다. 그때에는 ‘한 일가’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게 된다.

또한 ‘한 일가’라고 하는 말은 중시조나 파시조가 같은 경우에 곧잘 사용한다. ‘한 일가’는 같은 ‘족보 책’에 그 이름이 들어 있다. 같은 동네에 살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같은 ‘족보 책’에 그 이름이 등재가 되어 있으면 분명히 같은 혈통이다. 그러므로 어디에 살고 있든지 ‘한 일가’는 같은 혈족임을 부인할 수가 없는 것이다.

20세기가 되어 조선에서도 철도망이 갖추어지자 사람들의 이동이 수월해지고 있다;

 그리고 농촌에 대한 조선총독부의 쌀 수탈이 심해지자 농민들이 시골에서 농사를 지어도 먹고 살기가 힘들어진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고 있다;

그에 따라 여러 도시에서 살게 되는 친척들이 발생한다. 요컨대, ‘한 일가’의 개념이 전국적으로 확산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옛날에는 40년에 한번 족보책을 만들었다고 하면 이제는 20년에 한번 족보책을 증보해야만 하는 입장이 되고 있다. 그렇지 아니하면 누가 같은 일가인지 식별하기가 힘들어 지기 때문이다.

한편, 손영주의 가계를 살펴보면 한마디로 ‘외로운 집안’이다. 친가 쪽으로는 친형인 손영한이 있을 뿐이다. 손영주의 친부인 손찬에게는 본래 친동생 손상걸이 있었다. 하지만 손상걸은 자신의 큰 할아버지인 손선익의 양자 손성벽이 또 아들이 없자 그 대를 이어주기 위하여 일찍이 그 집에 양자로 들어가고 말았다;

그리고 손영주의 양아버지 서배 할배 손상훈은 천석지기 가주 손성규의 독자이다. 손성규에게는 일찍이 친형이 한사람 있었는데 그 이름이 손성벽이다. 손성규의 부친인 손성익은 자신의 장남 손성벽을 친형 손선익의 집에 양자로 주었다. 왜냐하면, 장자인 형의 집에 아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손성규가 본의 아니게 부친 손성익의 독자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러한 가계도를 참고하면 서배 할배 손상훈의 양자인 손영주가 봉천 할매 정애라와의 사이에 5남 1녀를 두고 있다고 하는 것은 그 집안에서는 유래가 없는 큰 경사이다. 먼 훗날 1960년대에 손영주의 자녀 5남 1녀가 모두 자녀를 생산하여 ‘29종반’을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너븐들에서 시작이 된 그 ‘29종반’을 보고서 모두들 부러워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래인 1960년대의 일이고 지금 1940년대의 일본 북해도에서는 그것이 아니다. 손영주의 3남인 손수석이 일본이름 ‘쯔끼모도’를 사용하면서 그곳 미쯔비시 석탄회사에서 경리로 일하고 있다. 그는 회사에 광부가 부족하자 조선인 광부라고 하더라도 일본인 광부와 똑같은 임금을 받게 되는 것을 알고서 자신의 고향인 내남 너븐들에서 젊은이들을 많이 데리고 와서 취업을 시켰다.

탄광과 삼판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고향사람들 가운데 자신의 식구는 누나인 손해선 부부, 작은 형인 손수상 부부, 그리고 바로 밑의 동생 손수권 뿐이다. 그 다음 친척에 있어서는 부친 손영주가 외로운 사람이므로 손수석은 재종간인 6 촌이 가장 가깝다. 그 재종형의 이름이 손수관이다. 그는 일찍이 종가에 양자로 간 작은 할아버지 손상걸의 족보에 뒤늦게 아들로 등재가 된 손영민의 아들이다;

손수석과 손수관은 증조부가 똑같이 손성곤이므로 그 촌수가 6촌 재종간이 된다. 따라서 손수석과 손수관은 북해도 탄광에서 가장 가까운 친척으로서 참으로 친하게 지내고 있다. 나이는 손수관이 손수석보다 12살이 많아서 소위 ‘띠동갑’이다.

손수관은 고향인 너븐들에 두 아들이 있는데 부모에게 맡겨 두고 아내 ‘삼산 뛰기’와 함께 돈을 벌겠다고 북해도까지 손수석을 따라왔다. 그러므로 손수석이 재종형인 손수관에게 각별하다. 자신을 믿고 두 아들까지 고향에 남겨 두고서 쫓아 왔으니 그 마음을 알 것만 같아서 잘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 가까운 손수석의 친척이 손수옥, 손수원, 손수호라고 하는 3형제이다. 그들은 손수석의 부친인 손영주의 생가로 보면, 손수석의 고조부인 손익채의 장손으로서 증손자인 손영로의 아들들이다. 손영주의 양부 서배 할배 손상훈으로부터 족보를 따지게 되면, 손영로의 부친인 손형이 손상훈과 재종간인 6촌이다. 그러므로 손영주와 손영로가 8촌이고 손수석과 손수옥 형제들은 10촌이 된다.

그런데 손수옥이 1908년생이고 손수원이 1915년생이므로 손수석의 형님이 된다. 반면에 손수호는 1925년생이므로 손수석보다 2살이 적은 동생이다. 그들 3형제가 모두 손수석을 따라 일본 북해도에 와서 고된 노동을 하고 있다.

그 가운데 손수석보다 15살이 많은 손수옥은 진작에 결혼하여 아들 손진경이 1940년 10월 당시에 벌써 8살이다 그 아들을 부모에게 맡겨 두고 아내 고을출과 함께 손수옥이 일본으로 온 것이다. 그러므로 손수석이 그 사정을 알고서 가까운 친척인 손수옥 형제들에게 얼마나 잘 대해주는지 모른다.

그리고 손수석과는 ‘한 일가’이며 항렬로 조카뻘이 되는 ‘손진동’이 있다. 그는 손수석보다 나이가 한참 많으므로 평소에 손수석이 그를 하대하지 아니하고 ‘현동 양반’이라고 부른다. 그는 세 아들과 부인을 전부 고향에 남겨두고서 손수석을 따라 일본에 왔다. 오직 돈을 벌어야 하겠다는 일념으로 그리한 것이다. 그 집념을 알고서 손수석이 각별하게 대해주고 있다.   

당시 1940년에서 1942년 사이에 일본 홋카이도 탄광과 삼판에서 노무자로 일하고 있는 조선의 시골 출신 젊은이들은 돈을 벌 수가 있어서 다행이다. 왜냐하면, 1944년이 되면 일본제국이 강제로 조선의 젊은 사람들을 징용하여 군수 산업체에서 노동자로 마음대로 부리게 되기 때문이다;

징용자들은 광부로 일하더라도 임금을 제대로 받지를 못한다. 그리고 전투지역 가까운 건설현장에서 인부로 일하게 되는 경우에는 목숨을 잃기도 한다;

그러한 비참한 시대가 도래하기 3년전에 손수석이 고향의 젊은이들을 북해도의 노동자로 데리고 갔으므로 그것이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이다.

이제 1942년이므로 1년 남짓 지나게 되면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인 인부들이 탄광에서 거의 돈을 받지 못하고 광부로 일하게 될 것이다. 그때에는 손수석은 자신이 먼저 데리고 온 고향사람들을 안전하게 일본 내 다른 도시의 취업장소로 옮겨야만 한다. 과연 어디가 좋을까? 적지를 발견하기 위하여 1942년 가을부터 손수석은 조선에 출장을 가고 오는 길에 유심히 일본의 지방도시의 사정을 살피고 있다.

동시에 손수석은 고향에서 모친인 봉천 할매 정애라로부터 최신의 고급정보를 듣고자 한다. 일본제국은 자신들이 중국대륙에서도 그리고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도 대대적인 승전을 하고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사람들을 단합시키기 위한 선전선동술에 불과한 것이다. 실제로 중국과의 전쟁과 미국과의 전쟁이 어떻게 전개가 되고 있는 것인지를 알아야만 한다.

그 소식을 가장 먼저 알고 있는 자들이 조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국의 선교사들이다. 그러므로 미국 선교사이며 의사인 ‘오하원’의 의붓딸인 ‘오예은’이 그 정보를 부친으로부터 얻고 있다. 오예은은 그것을 절친인 봉천 할매 정애라에게 은밀하게 전해준다;

정애라가 그 정보를 비밀리에 아들 손수석에게 계속 공급해주고 있다. 정확하게 알고 대처하지 아니하게 되면 자신들의 재산을 지킬 수가 없다고 하는 사실을 봉천 할매와 그 아들 손수석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그들 모자 사이에서는 정보의 흐름이 상당히 원활하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