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 할매(손진길 소설)

봉천 할매21(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10. 1. 02:37

봉천 할매21(작성자; 손진길)

 

한편 내남 너븐들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봉천 할매 정애라도 바쁘다. 1941년 3월에 아들 손수석이 형수감 박재순을 일본으로 데려가기 위하여 고향을 방문했는데 그때 많은 돈을 맡기고 갔기 때문이다. 그 돈으로 너븐들에 있는 전답 가운데 팔겠다고 하는 매물을 모두 거두어 들였다;

 그리고 돈이 남아서 안심지역에 있는 매물까지 사들였다;

 그것으로 500석지기가 된 셈이다. 옛날 시댁이 가지고 있던 천석지기의 절반 재산을 되찾은 셈이다.

그것을 보고서 남편 손영주가 말한다; “당신과 아들 손수석이 참으로 대단합니다. 한사람은 일본에서 돈을 벌어오고 당신은 그 돈으로 잃어버린 재산을 되찾고 있으니 말이요. 분명 나보다 당신이 훨씬 낫소. 그런데 전답을 많이 사 모으면 무엇하오? 생산한 벼를 모두 총독부에 공출로 바치고 나면 땅이 많든지 적든지 겨우 먹고 사는 것이 매일반이니 말이요. 참 농사가 재미가 없어요. 그저 모두들 입에 풀칠이나 하려고 농사일을 놓지 않고 있을 뿐이지…”.

그러나 봉천 할매 정애라의 생각은 그것이 아니다. 그녀는 앙칼지게 한마디를 한다; “지금은 조선총독부가 우리를 못살게 굴고 있으니 분명 그러해요. 하지만 그 세월이 천년만년 가는 것은 아닐 거예요. 이렇게 조상들의 땅을 모두 다시 사 놓으면 나중에 좋은 날이 오게 되면 우리 자손들이 그 혜택을 누리게 될 거예요. 저는 그것으로 만족해요”;

그렇다. 손영주가 당장 비참한 조선의 현실을 보고 있다고 한다면 그 아내인 봉천 할매 정애라는 조선 땅에서 일제가 물러가는 그 다음 시대를 보고 있는 것이다. 경주 읍내의 중심지인 성동에서 그리고 경주 오일장이 서고 있는 그 시장터에서 자라난 정애라는 보통 여자가 아니다. 그녀가 요즈음 자주 경주 오일장에 나가고 그때마다 회생의원에 들러 소꿉친구 오예은을 만나고 하여 그런지 몰라도 봉천 할매가 상당히 유식한 것이다.

그 미국 선교사이며 의사인 오하원의 딸이 오예은인데 그녀가 과연 자신의 둘도 없는 동무인 정애라에게 어떤 이야기들 해준 것일까? 봉천 할매 정애라는 그 점에 대해서는 입을 꾹 다물고 남편 손영주에게 아무 언질이 없다. 하지만 정애라는 분명히 무슨 이야기를 따로 오예은에게서 들은 것만 같다. 그렇지 아니하고서는 어떻게 감히 일본이 망하게 되면 자신이 지금 사 모으고 있는 땅이 제 구실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그렇게 말할 수가 있겠는가?

손영주는 당장 그 의문을 해결할 수가 없어서 그저 고개를 갸웃하고 만다. 하지만 그 느낌만은 정확한 것이다. 사실 봉천 할매 정애라는 경주 읍내로 가서 친구 오예은을 자꾸만 만나고자 한다. 그 이유는 두가지이다; 하나는, 각박한 세상에서 어릴 때 순박하게 같이 뛰놀던 친구가 참으로 편하고 좋은 것이다. 또 하나는, 동무 오예은으로부터 신기한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미국의 이야기다. 오예은이 때로 대구에 가게 되면 부모님을 뵙게 된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의붓아버지인 오하원이 미국의 최신 소식을 그녀에게 전해주고 있다. 1941년이 되자 일본제국이 중국 대륙에서 안하무인이라고 한다;

 얼마나 많은 중국사람들을 살해하면서 일본의 관동군이 대륙의 좋은 땅을 강제로 차지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 때문에 서양의 열강들이 벼르고 있다.

그렇지만 유럽에서는 1939년에 독일의 히틀러와 이태리의 뭇쏘리니가 일으킨 큰 전쟁에 서구의 열강들이 휘말려서 일본제국을 중국에서 제어하지를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이 미국에게 계속 요청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디 일본제국을 중국 대륙에서 몰아내어 달라는 간청이다. 그 요구를 미국이 현재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해군이 우선적으로 일본제국이 중동에서 수입하고 있는 석유의 항로를 ‘말라카 해협’에서 봉쇄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적극적으로 참전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오하원 선교사는 한마디로 그 답을 하고 있다; “1900년이 되기 전에 미국의 산업생산력과 국력은 벌써 대영제국을 능가하여 세계최고이지요. 다만 미국은 유럽과 달라야 하며 제국주의 침략을 노골적으로 벌이는 그러한 나라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하는 국내 여론이 커서 일종의 ‘고립주의’를 고수하고 있지요. 하지만 때가 되면 영국에 이어서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는 패권국이 될 거예요. 그 시점이 바로 일본제국을 쳐부수는 그때이지요. 벌써 미국이 태평양에서 일본의 항로를 봉쇄하고 있으니 곧 미국이 전쟁에 개입하게 될 거예요. 그러면 일제는 반드시 패망하고 말 겁니다”;

그러한 이야기를 부친으로부터 듣고 있는 오예은 간호사가 절친인 정애라에게 그 정보를 은밀하게 전해준다. 그러면서 언제나 한가지 단서를 꼭 달고 있다; “애라야, 이 이야기는 너와 나만 알고 있어야 해. 다른 사람에게 말하게 되면 너도 나도 일본에 의하여 안전하지가 못해. 알았지, 애라야?”. 그 말끝에 애라는 예은이와 손가락을 걸고 서로 비밀을 지키기로 맹세를 했다;

 따라서 그녀는 남편 손영주에게도 아들 손수석에게도 일체 입을 떼지 아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1941년 12월 중순이 되자 봉천 할매 정애라는 은밀하게 친구 오예은으로부터 실로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것은 12월 7일에 일본의 해군이 해상전투기를 앞세워 미국의 태평양사령부가 있는 하와이의 진주만을 선전포고도 없이 대대적으로 공습을 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제 일본제국과 태평양전쟁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일본까지 들어오자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부서진 전함을 새로 만들어 일본의 군대를 치는데 아마 일년정도 시간이 소요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오예은이 부친에게서 들었다고 은밀하게 동무 정애라에게 전하고 있다.

그 말을 듣고서 봉천 할매는 일제가 망할 시간이 이제 2-3년 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이 소식을 일본에 있는 아들 손수석에게 은밀하게 전해주지?... 모친 정애라가 그렇게 벼르고 있던 차에 1942년 3월에 마침 그녀의 아들 손수석이 조선으로 출장와서 고향을 방문한다.

그때 봉천 할매는 남편 손영주에게조차 하지 아니한 그 최신 고급정보를 아들 손수석에게 은밀하게 말해준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손수석은 귀가 번쩍 뜨인다. 그는 모친의 그 이야기를 듣자 그제서야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회사에서 그동안 발생한 이상한 일을 확실하게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분명히 지난 1941년 가을부터 일본의 군부가 북해도의 광산에서 생산하는 석탄을 평소보다 엄청나게 많이 가지고 갔다. 그러더니 1942년에 들어서자 다시 평소대로만 가지고 간 것이다. 그러니 모친의 이야기가 정확한 정보이다. 그 사이에 일본의 해군이 제해권을 미국에게 빼앗기고 있었던 것이다.

진주만 기습공격을 통하여 일본제국은 겨우 태평양 항로를 확보하고 있다. 그들은 태평양전쟁에서 일제가 승리하고 있다고 엄청 선전을 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다시 함정을 건조하여 일년 후에 정식으로 쳐들어오게 되면 다시 제해권을 빼앗기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일제는 가장 중요한 전쟁물자인 석유를 얻을 수가 없어서 결국 패망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손수석 자신이 북해도에 노무자로 인도해간 고향사람들과 기타 조선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이제부터 그는 은밀하게 그에 대한 대비를 해야만 한다. 그때부터 일본에서 ‘쯔끼모도’로 불리고 있는 손수석은 일본제국의 중국전쟁과 태평양전쟁의 추이를 아주 관심있게 지켜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