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 할매(손진길 소설) 57

봉천 할매47(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47(작성자; 손진길) 이듬해 1951년 1월 4일에는 서울을 적에게 내주고 유엔군의 방어선이 오산과 제천 그리고 삼척의 선으로 구축이 된다. 전열을 정비한 연합군은 1월 9일부터 대대적인 반격에 나선다. 한겨울의 추위와 병참공급의 어려움을 겪게 되는 중공군과 북한군이 형편없이 밀리기 시작한다. 따라서 1951년 3월 14일에 서울을 다시 수복하고 5월에는 38도선까지 밀고 올라간다. 하지만 38도선 이북지방을 지키고자 하는 북한군과 중공군의 결의와 그 저항이 대단하다. 그때부터 전투가 38도선 근방에서 계속 진행이 되면서 전선이 자꾸만 굳어지고 만다. 그 사이에 손수석은 경주의 육군병원에서 발목부상을 치료하고 있다. 그때 그는 포항에서 들려오는 슬픈 소식을 접하게 된다. 공비들이 한밤중에 포항..

봉천 할매46(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46(작성자; 손진길) 1950년 12월 하순에 ‘공비’들이 포항경찰서를 야간에 습격한다. 평소에는 시골의 지서 정도를 공격하더니 이번에는 대담하게도 본서에 야간 기습을 감행하고 있다. 경비계장인 손수석이 일선에서 전투를 지휘하다가 그만 부상을 입고 만다. 큰 부상은 아니지만 발 뒤꿈치에 총상을 입어서 잘 걷지를 못한다. 여기서 ‘공비’라고 하는 말은 당시 빨치산 활동을 하고 있는 북한의 인민군 및 그들과 함께 행동하고 있는 남한의 공산주의 세력을 말한다. 북한 인민군이 ‘공비’로 변신하게 되는 까닭은 북한에서 오는 병참공급이 절단이 나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깊은 산에 숨어 있다가 밤에는 마을을 습격하여 양식과 기타 물자를 획득해야만 한다. 지난 9월15일에 맥아더 장군이 지휘하는 인..

봉천 할매45(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45(작성자; 손진길) 8.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봉천 할매의 셋째 아들인 손수석에게 있어서는 1950년의 비극이 아직 끝나지 아니하고 있다. 9월 11일 백부 손영한의 초상에 하루 다녀와서 천북지서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멀리서 장모가 급하게 찾아왔기 때문이다. 9월 15일에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이 있게 되지만 포항과 안강 사이에 있는 ‘비학산’에서는 9월 17일에 마지막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비학산 고지를 빼앗기게 되면 그 남쪽에 있는 경주가 위험하다. 그러므로 국군과 경찰은 학도병까지 동원하여 최후의 결전에 임하고 있다. 참고로, 비학산에서 멀리 동쪽의 포항과 그 남쪽의 경주를 내려다보면 그 풍경이 다음과 같다; 그러한 전운이 감돌고 있는데 멀리 경주 외곽 장매 마을에서 장모 전..

봉천 할매44(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44(작성자; 손진길) 1949년 3월 1일부로 손수석이 순경에서 한 계급 진급하여 경장이 된다. 그리고 보직이 ‘안강지서’ 차석으로 발령이 난다. 그곳에는 지서장과 차석의 관사가 있어 지내기가 편리하다. 아들이 경찰에 투신한지 1년 반이 되지도 아니하여 진급을 했다고 봉천 할매 정애라가 좋아한다. 봉천 할매는 이제 6개월이 된 손자 손진목도 볼 겸 안강으로 와서 한동안 아들 내외의 관사에 머물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에 식사를 마친 아들 손수석에게 물어본다; “수석아, 이승만 대통령의 정부가 수립이 된 지 이제 7개월이 지나고 있다. 그동안 ‘여순반란사건’도 있고 하여 참으로 세상이 시끄러웠다. 그런데 수석이 너는 이승만 대통령의 장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손수석이 솔직하게 자신의..

봉천 할매43(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43(작성자; 손진길) 1947년 11월에 유엔총회가 ‘한국’에 민간정부를 수립하고 외국군대를 철수하기로 의결하면서 ‘한국임시위원단’을 한국의 수도인 ‘서울’로 파송한다. 여기서 ‘한국’이라는 나라이름과 ‘서울’이라고 하는 수도의 이름이 아주 자연스럽게 사용이 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다음과 같다; (1) 국제사회에서는 진작부터 조선반도를 ‘Korean Peninsular’라고 부르고 있다. 조선의 마지막 왕인 고종이 스스로 1907년에 ‘대한제국’의 출범을 국제적으로 선포하면서 자신이 ‘태황제’로 즉위하였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Korean Peninsular’를 ‘조선반도’가 아니라 ‘한국반도’라고 표기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리고 ‘조선’을 ‘한국’으로 부르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서양의 ..

봉천 할매42(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42(작성자; 손진길) 7. 공산주의자들의 준동과 가정을 이룬 손수석의 선택 봉천 할매의 셋째 아들인 손수석은 1947년 11월에 고향 너븐들 부모님의 집에서 신혼생활을 즐기고 있다. 새 색시인 고복수는 아직 19세인지라 신랑 손수석의 품에서 오래 신혼의 단꿈을 맛보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이 어렵다. 아침 일찍부터 한집에 살고 있는 시 아주버님이 마당을 쓸고 손위 동서인 김옥순이 부엌에서 아침식사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시어머니인 봉천 할매의 목소리가 바로 방문 바깥에서 들려온다; “허, 신혼의 단꿈에 너무 오래 빠져 있으면 곳간에서는 도끼자루가 썩고 연장에 녹이 쓴다고 하는데 우리 똑똑한 아드님은 그것도 모르시는가?...”. 그 소리가 들려오게 되면 아무리 새 색시라고 ..

봉천 할매41(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41(작성자; 손진길) 경주의 시골인 내남 너븐들에서는 1946년 한해가 어느 해와 같이 그렇게 평범하게 지나가고 있다. 봄에 아기들이 여럿 태어나고 초여름부터는 모내기를 한 후에 논에 물을 끌어 대느라고 모두들 바빴다. 벼가 익어가는 늦여름부터는 허수아비를 세우고 참새를 쫓느라고 들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다. 그리고 아이들은 논두렁에서 메뚜기를 잡느라고 야단이다; 그 메뚜기를 조리하여 도시락 반찬으로 사용하는데 그것이 별미이기 때문이다; 결실의 계절인 가을이 찾아오자 추수가 시작된다. 그런데 작년에 이어 1946년에도 소출이 영 적다. 역시 가뭄이 심했던 것이다. 동네주민에 비해서 하곡과 추곡의 양이 모두 적으니 큰일이다. 그래서 봉천 할매 정애라와 아들 손수석이 작년 10월달처럼 1946년에도..

봉천 할매40(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40(작성자; 손진길) 1945년 10월 한달은 봉천 할매와 아들 손수석이 무척 바빴다. 너븐들의 일가들이 먹고 살 양식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손수석이 먼저 알고서 경주 읍내 싸전으로 가서 쌀을 사오기에 분주했던 것이다. 그것을 보고서 봉천 할매는 가까운 내남 덕천과 이조의 큰 농가를 방문하여 그들의 잉여 곡식을 사 모았다. 손수석이 그렇게 사 모은 곡식으로 내년 추수때까지 너븐들 일가들이 먹고 살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너븐들의 일가들 가운데 일본에서 돌아온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번 돈을 어떻게 했을까? 그들은 벌써 그 돈을 고향에 송금하여 착실하게 토지를 사 모으는데 사용하고 말았다. 따라서 그만 양식을 살 돈이 별로 없는 것이다. 그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 손수석은 자신이 지닌 현찰로 양식을 ..

봉천 할매39(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39(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 정애라는 똑똑한 아들 손수석을 절친 오예은에게 소개를 시켜줄 수가 있어서 참으로 좋다. 그리고 참으로 오래간만에 아들 손수석과 함께 고향집까지 걸어가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어서 더 좋다. 그래서 그 좋은 기분으로 이것 저것을 물어본다; 그 가운데 손수석이 생각하기에 참으로 중요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모친 봉천 할매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수석아, 일전에 내가 오예은에게서 들은 이야기인데 우리 조선은 해방이 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군정이나 아니면 유엔의 신탁통치를 받도록 되어 있다고 하더라. 오래 조선을 지배하던 일제가 전쟁에서 지고 물러가게 되는데 어째서 조선은 또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게 되는 거니? 나는 그것이 이상하다. 너는 혹시 일..

봉천 할매38(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38(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 정애라와 그녀의 아들 손수석이 천북을 방문하고 돌아온 지 이틀이 지나자 1945년 8월 26일에 손수석의 종매인 손자옥과 그 남편 장기동이 이사를 한다. 지난 22일에 장기동이 경주 사리에 있는 집과 전답을 사려고 계약하였는데 그것이 워낙 급한 매물이라 어제 벌써 잔금을 치룬 것이다. 오늘 그 집으로 장기동 부부가 이사를 들어가고자 한다. 그들 부부가 작년에 일본 북해도에서 혼인서약을 하고 함께 살기 시작했는데 일년만에 자기들 힘으로 조선에서 집과 농토를 사서 이사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손자옥의 부친인 손영한과 모친 이신자는 이제서야 마음이 놓인다. 그래서 손영한이 부인 이신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보, 농번기라 농사일이 바쁘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