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 할매(손진길 소설)

봉천 할매39(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10. 3. 02:59

봉천 할매39(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 정애라는 똑똑한 아들 손수석을 절친 오예은에게 소개를 시켜줄 수가 있어서 참으로 좋다. 그리고 참으로 오래간만에 아들 손수석과 함께 고향집까지 걸어가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어서 더 좋다. 그래서 그 좋은 기분으로 이것 저것을 물어본다;

그 가운데 손수석이 생각하기에 참으로 중요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모친 봉천 할매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수석아, 일전에 내가 오예은에게서 들은 이야기인데 우리 조선은 해방이 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군정이나 아니면 유엔의 신탁통치를 받도록 되어 있다고 하더라. 오래 조선을 지배하던 일제가 전쟁에서 지고 물러가게 되는데 어째서 조선은 또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게 되는 거니? 나는 그것이 이상하다. 너는 혹시 일본에 있을 때에 그에 대하여 들은 이야기가 있는 거니?”.

그 말에 손수석이 무심코 자신이 알고 있는 상식에 비추어 대답을 한다; “어머니, 그것은 조선이란 연합군들과 함께 일본군대와 싸운 우방이 아니기 때문이예요. 그 반대로, 태평양전쟁에서 조선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일본군의 일원이 되어 연합군을 상대하여 전투를 벌였지요. 그러니 조선은 ‘제2의 일본’이라고 연합군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자 봉천 할매 정애라가 알기 쉽게 요약을 한다; “그렇다면 조선은 연합국의 우방이 아니라 적국이구나. 전쟁에서 지면 무장해제를 당하고 승전국의 지배를 받는 법인데 이제 조선이 그렇게 되고 마는구나. 그러면 우리가 해방이고 광복이라고 좋아하는 것은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는 형국이구나. 장차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으냐?...”.

손수석이 답을 한다; “망명정부이기는 하지만 임시정부가 그 동안 일제와 맞서서 싸워온 사실이나 나중에 광복군을 재조직하여 태평양전쟁에 참전하려고 한 것 등을 연합국에게 주지시키고 또한 일제의 식민지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이 조선의 젊은이들이 징병과 징용으로 전쟁터에 끌려 나갔다는 사실을 조리 있게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미국과 영국의 시선을 온전히 바꾸기에는 역부족일 거예요…”.

그러자 봉천 할매 정애라가 참으로 유식한 발언을 한다; “내가 오예은에게서 들었는데 1943년 11월에 ‘카이로회담’이란 것이 있었는데 그때 중국의 장개석이 참석하여 미국과 영국의 지도자들에게 조선의 비참한 실상을 잘 설명하고 전쟁에서 이기면 독립을 시키기로 했다고 하더라. 그런데 어째서 그 약속이 이제는 지켜지지가 않는거니?”;

 

손수석이 그에 대하여 동경의 안춘근으로부터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대답을 한다; “미국과 영국 그리고 중국이 일본의 군국주의와 싸운 당사자들이지요. 그런데 나중에 소련이 참전하여 갑자기 전쟁을 끝내고 말았어요. 그러므로 가장 큰 발언권을 행사하는 나라가 이제는 미국과 소련입니다”.

그러자 봉천 할매가 말한다; “중국은 땅도 넓고 장개석은 지난 8년동안이나 일본의 관동군과 전쟁을 계속했는데 어떻게 갑자기 그렇게 발언권이 약해지고 만 것이니?”. 손수석이 알기 쉽게 설명을 한다; “소련군이 지난 8월 9일에 대규모로 남진하여 열흘 남짓만에 만주와 내몽고를 차지하고 또한 조선의 38도선 이북지방까지 점령하고 말았어요. 그러니 중국의 장개석은 소련군이 점령하고 있는 만주와 내몽고의 땅을 회수하기 위하여 소련의 스탈린의 말을 들어야만 해요”;

손수석이 잠시 숨을 쉬고서 이어 설명을 한다; “특히 조선의 장래를 결정하는 것은 38도선 이북지방을 차지하고 있는 소련과 그 이남지역을 차지하게 되는 미국이지요. 그러니 과거에 미국과 영국 그리고 중국이 어떠한 합의를 했든지 간에 그것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이제 소련의 스탈린의 동의가 필요하게 되었어요. 따라서 앞으로 미국과 소련이 어떠한 결론을 도출하는지 그것을 지켜 보아야만 해요”.

그러자 봉천 할매가 또 유식한 발언을 한다; “역시 오예은에게서 들은 이야기인데 소련은 공산주의 국가이고 미국은 자유 자본주의 국가라고 하더라. 그것은 완전히 반대가 되는 이념이라고 하던데 그렇다면 둘 사이에 합의가 되는 것은 애초부터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냐?”.

손수석이 모친의 유식함에 깜짝 놀란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어머니, 기본적으로 조선의 독립이나 정부수립이 그들 미국과 소련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은 사실이예요. 그들이 군정을 하겠다고 하면 그렇게 되고 국제연합의 신탁통치에 넘기겠다고 하면 그렇게 될 거예요. 하지만 조선도 인구가 이제는 3천만이나 되니 민족적으로 무엇을 원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할 수가 있어요. 다만 그것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이남과 이북이 하나의 목소리를 내야만 하지요. 그렇게 이념과 사상을 초월하여 조선민족이 하나가 되는 것이 자주독립의 문을 열게 되는 열쇠가 될 겁니다”.

봉천 할매 정애라가 아들 손수석의 친절한 설명에 이제는 고개를 크게 끄떡이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손수석은 불현듯 동경에서 안춘근과 헤어질 때 그가 마지막으로 신신당부를 하던 말이 생각이 난다. 그래서 길을 걸으면서 그때의 그 당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당시 안춘근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손수석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수석아, 나의 의동생 수석아, 이제 우리가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날 수가 있을지 기약할 수가 없구나. 마지막으로 나는 너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조선에 돌아가면 이것만은 꼭 명심하고서 행동하기를 바란다”.

손수석이 정신을 집중하자 그가 이어서 말한다; “며칠 전에 일본 천황이 미국을 위시한 연합국에게 무조건 항복을 한다고 방송한 이유는 사실 미국의 폭격기 B29가 8월 6일과 9일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투하하고 이어서 동경과 그 주변에 B29편대가 융단폭격을 계속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본사람들은 영국이나 중국 또는 소련에게 진 것이 아니라 오직 미국에게 졌다고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제국은 연합군이 아니라 오로지 미군에게 진 것이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고 있는 손수석에게 안춘근이 설명을 한다; “수석아, 그것은 중요한 차이가 있다. 일본은 역사이래로 전쟁에서 져본 적이 없는 나라이다. 그래서 자존심이 대단하지. 다만, 미국에게 졌기 때문에 패자가 된 일본사람들은 그들의 전통적인 사무라이 정신에 따라 깨끗하게 최종 승자인 미국에게 복종을 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과거 청일전쟁이나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했기 때문에 절대로 중국이나 소련에게는 패배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지배를 받아들이지 아니할 게야”.

손수석이 약간 고개를 끄떡이자 안춘근이 계속 설명한다; “그러므로 일제는 미국에게 항복문서를 전달할 게야. 그리고 미국의 군정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렇지만 만약 다른 연합국이 일본 열도에 들어온다고 하면 절대로 그것을 용납하지 못할 게야. 그 점은 일본에서 나고 자란 내가 잘 알고 있지. 그런데 일제의 식민지로 지내온 조선사람들의 생각은 다를 게야. 조선이 역사적으로 중국을 상국으로 섬기고 살았고 또 나중에는 고종이 러시아를 의지하고자 한 적도 있어. 그러니 미국이나 중국 또는 소련 가운데 누구나 힘이 있는 나라가 조선을 통치할 수가 있을 게야”.

그것도 그럴 것 같다. 그래서 손수석이 안춘근의 그 다음말에 귀를 기울인다; “내가 듣기로는 조선의 38도선 이북에는 소련군이 이미 들어와 있어. 이제 그 이남에는 미군이 들어오겠지. 그러면 조선은 허리가 잘려질 거야. 왜냐하면, 조선사람들이 중국, 소련, 미국 등 어느 나라의 군정이나 모두 받아 들일 것이기 때문이지. 그 결과 소련이 지배하는 이북과 미국이 지배하게 되는 이남 사이에 정치적인 갈등이 심각해질 거야. 내가 보기에는 그래”.

안춘근 형이 신기하게도 조선의 미래에 대하여 마치 예언자처럼 말하고 있다. 그리고 나서 손수석에 대한 당부의 말이 다음과 같다; “그러니 수석아, 너는 장차 조선에서 발생하게 되는 정치적인 문제에 절대로 개입을 하지 말아라. 조선사람들이 남북으로 갈라져서 서로 자기편이 되라고 말할 때에 거기에 귀를 기울이지 말도록 해라. 그것은 전부 누구를 주인으로 섬기는 것이 좋다고 하는 허울 뿐인 명분싸움에 불과해. 그 대신에 실질적으로 조선사람이 먹고 사는 문제의 해결에 매어 달리는 것이 중요해. 너는 그 일에 재능이 있으니 오로지 돈을 벌어서 너의 집안과 일가들을 먹여 살리는 일에 집중을 하도록 해라”.

그 말을 하면서 춘근이 형이 몇 번이나 꼭 명심을 하라고 당부를 했다. 손수석이 일본 동경에서 청소년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부터 항상 그를 지켜주고 돌보아준 춘근이 형이다. 그러한 춘근이 형이 수석이 자신을 위하여 마지막으로 당부한 말이니 허술하게 생각할 수가 없다.

그러한 안춘근의 당부를 새삼 생각하면서 손수석이 모친 정애라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머니 제가 일본에 있을 때에 미국과 영국 그리고 중국과 소련 등의 연합국이 일본제국에게 항복을 촉구하면서 모든 식민지를 내놓고 일본 열도로 되돌아가라고 주장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제 그들 연합국이 전쟁에서 이겼기 때문에 일제가 해외에 주둔하고 있던 자신들의 모든 군대를 철수하고 일본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거에요”.

손수석이 잠시 숨을 쉰 다음에 이어서 말한다; “그 결과 일본의 식민지들이 전부 연합국의 지배 아래에 일단 들어갈 거예요. 그 다음에는 점령군의 군정이 아니면 국제연합의 신탁통치가 있을 것이라고들 말하는데 그것은 앞으로 닥쳐보아야 알 일이예요. 물론 그들 점령국들 사이에 그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를 하겠지요. 그리고 조선백성의 지도자들이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지도 앞으로 중요하겠지요”.

그렇게 미래를 전망하면서 손수석이 자신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모친인 봉천 할매 정애라에게 말한다; “그런데 저는 그러한 정치적인 문제보다는 경제적인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당장 우리 가족과 고향의 일가들이 먹고 사는 문제가 더 급선무이기 때문이지요. 제가 일본으로 데리고 갔다가 함께 돌아온 일가들이 많잖아요. 고향 너븐들에 갑자기 식구가 엄청나게 늘어났으니 앞으로 그들을 전부 먹여 살리는 일이 보통 문제가 아니예요”.

손수석이 모친에게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한다; “한달 후에 추수를 해보아야 알겠지만 양식이 크게 부족할 거예요. 일제가 물러갔으니 공출이 없어져서 양식이 남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만주에서 들어오는 잡곡이 없어졌으니 오히려 양식이 부족할 거예요. 특히 조선이 근대화가 되면서 유아사망율이 현저하게 줄어들어 인구가 크게 늘어났고 또한 해외에서 돌아온 조선사람들이 넘쳐나니 자연히 양식이 엄청 부족하게 되고 말지요. 그러니 그것이 보통문제가 아닙니다. 이제부터 저는 그 문제의 해결에 매어 달려야 해요”.

봉천 할매 정애라는 아들 손수석의 설명을 들으면서 새삼 그의 얼굴을 쳐다본다. 정애라 자신은 그저 ‘천석꾼이 되었으니 이제는 살림이 넉넉하겠구나. 일제가 물러갔으니 공출이 없어져서 양식이 남아 돌겠구나’ 라고 편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들의 생각은 전혀 다른 것이다. 그는 너븐들 일가 전체의 살림살이를 걱정하고 있다. 어린아이들이 늘어나고 귀향한 사람들이 많으니 앞으로 그들을 먹여 살리는 일이 보통문제가 아니다. 그 일을 벌써 걱정하고 있는 아들 손수석이다.

그래서 봉천 할매는 그해 추수에 신경을 쓰게 된다. 그런데 10월초까지 추수를 끝내고 그 결과를 보니 엎친데 덮친 격이다. 유달리 그해 여름에 가뭄이 심해서 소출이 평년작을 한참 밑돌고 있다. 크게 풍년이 들어도 양식이 부족한 형편인데 보통 문제가 아니다. 그러자 손수석이 경주 읍내에 나가서 계속 양식을 사온다. 그가 일본에서 들고 온 돈가방 속에 들어있던 돈을 사용하여 우선 양식부터 급히 구해온다.

그 와중에 손수석이 봉천 할매에게 한 마디를 하고 있다; “어머니, 지금은 추수가 금방 끝났기에 이렇게 경주 읍내 싸전에서 양식을 살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곧 양식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모두가 깨닫게 되면 그때에는 돈이 있어도 양식을 구할 수가 없게 되고 맙니다. 그러니 최대한 조기에 양식을 많이 확보해야만 합니다”.

그 말을 듣자 봉천 할매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아들 손수석이 일찍 자신에게 맡겨 둔 그 돈으로 이웃 덕천과 이조마을에 가서 양식을 사온다. 그 일에 장남 손수정이 소달구지를 끌고가서 모친을 돕고 있다. 그렇게 손수석의 말을 듣고 일찍 양식을 확보하였기에 그해 농한기와 다음 추수때까지 봉천 할매의 가족은 물론 너븐들 일가들이 굶지 않고 한해를 지나게 된다.

그렇지만 전국적으로는 조선백성들이 양식이 부족하여 난리들이다. 그것을 보고서 공산주의 세력들이 다시 준동하기를 시작한다. 시골에서부터 그들의 지지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일제시대나 그들이 물러간 시대나 다르지가 않다는 주장이다. 여전히 노동자 농민들이 굶주리고 소수의 자본가들만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니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그러한 사태에 직면하자 미군정은 미국에서 밀가루를 대규모로 들여와서 조선사람들에게 양식으로 배급하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추곡도 공출로 거두어 들여서 배급제를 실시한다;

미국의 밀가루로 조선사람들은 주로 국수를 뽑아서 먹고 있다. 1945년에 부산의 국수공장에서 여성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는 모습이다;

1946년 서울의 국수공장에서 국수를 말리고 있는 모습이다;

 그것으로 부족한 양식을 가까스로 채우고 있는 해방정국이다. 조선의 경제적인 사정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지도자들의 생각이 그러한 현실을 중시하지 아니하고 있다;

 그들은 일제가 물러갔으니 이제는 소련과 미국이 물러가게 되면 조선의 대권을 자신들이 차지하고자 열심이다.

1945년 12월에 모스크바에서 열린 미 영 소 3국 외상회의가 조선을 향후 5년간 신탁통치에 맡긴다고 하는 결정을 했다고 동아일보가 급보를 전하고 있다. 워낙 급하게 보도를 하다가 보니까 그 내용에 있어서 미소의 주장이 반대로 보도가 되고 있다;

 그렇지만 그와 상관 없이 조선의 정치지도자들은 그에 찬성한다는 세력과 반대한다는 세력으로 나누어져서 그 투쟁이 보통이 아니다;

민족의 자존심으로 보자면 ‘신탁통치 반대’의 목소리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찬탁과 반탁의 갈등과 투쟁으로 조선의 백성들이 당장 허기가 진 배를 채울 수는 없다.

그렇다면 과연 언제가 되면 경제건설을 하여 조선백성들이 굶지 않고 살아가면서 자신들의 민주정부를 스스로 구성하여 제대로 자주 자립 자강의 정신을 실천할 수가 있을까? 그러한 때가 빨리 오기를 봉천 할매와 그녀의 아들 손수석이 고향에서 일가들과 함께 간절하게 염원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근본적인 바램과는 달리 자꾸만 정치적인 선전과 선동 그리고 패를 가르는 이념적인 투쟁의 목소리만이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자꾸만 높아지고 있는 해방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