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 할매(손진길 소설)

봉천 할매37(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10. 3. 02:39

봉천 할매37(작성자; 손진길)

 

1945년 8월 16일에 일본 시모노세끼에서 부산을 통하여 고향인 내남에 돌아온  너븐들 사람들은 사실 그 다음날부터 모두들 바빴다. 그 이유는 논에서 벼가 한창 익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새벽 일찍 일어나서 논으로 나가 물꼬를 살펴보아야 하고 벼가 잘 자라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낮에도 여물어가고 있는 벼 이삭을 새가 날아와서 까먹지 아니하도록 새를 쫓아버리고 허수아비를 만들어 세운다. 5년전에 일본으로 떠나기 전에 했던 농사일을 그들이 다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제는 보람이 있다. 왜냐하면, 조선총독부가 더 이상 벼를 공출하라고 강요하지 아니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탄광과 삼판 등지에서 중노동을 하여 그들 너븐들 시골의 젊은이들이 벌어온 돈으로 나름대로 저축하여 논을 마련했다. 그러므로 내남 너븐들의 월성 손씨들이 이제는 거의가 자기 논을 가진 중농들이다. 그에 따라 봉천 할매가 아들 손수석의 돈으로 구입해 놓은 천석지기 논을 소작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안심과 박달에 살고 있다;

그렇게 농사일에 다시 바빠진 그들은 먹고 사는 일에 분주하여 일본에서의 일을 자꾸만 잊어가고 있다. 봉천 할매는 아들 손수석이 8월 21일에 귀향을 하여 한 이틀간 바쁜 일을 처리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이 되자 아침 일찍 봉천 할매가 아들 손수석에게 묻는다; “오늘도 급히 처리해야하는 일이 남아 있는가?”.

손수석이 공손하게 모친 정애라에게 대답한다; “어머니, 며칠 후에는 일이 있지만 오늘은 아닙니다. 어쩐 일이십니까?”. 그러자 봉천 할매 정애라가 ‘호호’라고 웃으면서 아들에게 말한다; “수석이 너는 천석꾼 살림을 부모에게 맡겨 놓고 어떻게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않는 게냐? 내가 모두 팔아서 써버리면 어떡하려고 그러는 게야?”.

그러자 손수석이 ‘하하’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아이구, 어머니, 아침부터 아들에게 무슨 그런 이상한 말씀을 다 하십니까? 이 세상 조선천지에 아들이 일본에서 벌어다 준 돈으로 사 놓은 논을 다시 팔아서 낭비를 하는 그런 부모가 어디에 있습니까? 세상사람이 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우리 어머니 봉천 할매는 절대로 그럴 분이 아니시지요”.

그 말을 듣자 봉천 할매가 기특한 듯이 아들 손수석을 바라보면서 말한다; “그 녀석 이 에미 속을 아예 꿰뚫고 있구나. 그래 어린 네가 피눈물을 흘리며 벌어다 준 돈을 어찌 내가 허탕에 사용을 하겠느냐? 그래서 오늘은 이 에미가 어떻게 그 재산을 늘이고 있는지를 너에게 보여 주고자 한다. 그러니 아침식사를 하고서 이 에미를 하루 종일 따라다니도록 해라. 저기 서쪽 먼산아래 박달 끝까지 천마지기의 논을 모두 돌아보자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게야”.

  그날 하루 봉천 할매는 자랑스럽게 너븐들에서부터 안심을 거쳐 박달까지 그 드넓은 전답을 아들 손수석에게 보여주면서 그 경작지를 누구에게서 샀으며 전부 손수석의 이름으로 개인등기를 해 놓았다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한 말씀 덧붙이신다; “수석아, 너의 전답의 규모는 옛날 서배 할배가 소유했던 천 마지기보다 더 큰데 그 전에 팔아 치운 그 경작지가 아닌 것이 많이 포함이 되어 있어. 왜냐하면, 너븐들 사람들이 일본에서 벌어온 돈으로 고향의 가족들을 먹여 살리면서 도리어 논을 더 사고 있어서 옛날 자신들이 서배 할배에게서 물려받은 논들을 전혀 팔지를 않기 때문이야”.  

그 다음에 봉천 할매는 아들 손수석을 데리고 다시 너븐들로 온다. 그 다음에는 동쪽으로 진행하여 덕천으로 들어선다. 그러면서 그곳의 논을 바라보면서 아들에게 말한다; “나는 네가 보내준 돈으로 이곳 덕천에도 논을 사 놓았다. 그것이 한 500마지기가 된다. 대부분 그 옛날 지주 최사권이 지니고 있던 그 논들이지. 그것을 교리 최부자가 판다고 하길래 얼른 거간을 내세워서 한꺼번에 구매를 한거야”;

그 말을 들으면서 덕천의 논을 살펴본 다음에 손수석이 모친인 봉천 할매에게 묻는다; “어머니, 그러면 천북 쪽에는 사 놓은 전답이 없습니까?”. 봉천 할매가 빙그레 웃으면서 답한다; “나중에 네가 준 돈의 절반으로 천북 쪽에 500마지기 남짓 전답을 사 놓았다. 더 사고 싶었지만 그 나머지 돈은 네가 앞으로 사용할 곳이 있다고 하여 내가 손을 대지 아니하고 보관을 잘하고 있다. 집에 가서 그 돈을 네게 주마”.

그러자 손수석이 말한다; “아닙니다. 어머니, 그 돈은 그냥 어머니께서 보관을 해두세요. 그것은 일종의 비상금이니까요. 만약에 내남에 큰 물이 지게 되면 그 돈으로 일가들을 먹여 살려야 됩니다. 그때를 대비한 돈이니 어머니께서 가지고 계시다가 그러한 때에 사용을 하시면 됩니다”.

그 말을 듣자 봉천 할매는 손수석의 의도를 알 것 같다. 아들은 서배 할매 이채령의 당부를 잊지 아니하고 있는 것이다. 그 옛날 1925년 을축년에 대홍수가 발생하여 서배 할배의 천석지기 논이 삽시간에 절반이 날라가 버린 적이 있다. 그러므로 이채령은 어린 손자인 손수석에게 나중에 서배 할배의 천석지기 재산을 되찾게 되면 반드시 홍수와 가뭄을 대비하여 비상금을 마련해 두라고 당부를 하신 것이다.

봉천 할매는 시어머니 이채령의 화신이 자신의 아들 손수석인 것만 같아서 괜히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 붉어진 눈을 감추기라도 하려는 듯이 봉천 할매가 아들에게 말한다; “수석아, 그러면 언제 나와 함께 천북으로 가서 너의 명의로 되어 있는 그 논들을 보면 좋겠느냐?”. 손수석이 즉답을 한다; “어머니만 괜찮으시면 저는 내일이라도 좋아요. 사실은 천북에서 제가 한 군데 들러야 할 곳이 있거든요”.  

봉천 할매는 순간 고개를 갸웃한다. 아들이 천북에 아는 집이 있다고 하니 그것이 신기한 것이다. 그렇지만 나중에 알게 될 것으로 생각하고서 말한다; “그러면 내일 아침식사를 하고나서 바로 경주를 통하여 천북으로 가자구나. 하루만에 다녀오려면 많이 발품을 팔아야 할 게야”. 그 말을 듣자 손수석이 말한다; “어머니, 내일은 절반만 발품을 파시면 됩니다. 제가 경주에 도착하면 나가시로 천북을 왕래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할 겁니다”.

그 말을 듣자 봉천 할매가 속으로 읊조려 본다; “나가시를 대절하여 경주에서 천북까지 왕래를 한다. 그것참 내일은 대단한 호사를 누리게 생겼구나”. 실제로 그 호사를 다음날 봉천 할매는 누리게 된다. 경주에 도보로 도착을 하자 손수석이 경주역에서 나가시를 하루 대절한다. 그리고 모친을 태우고 천북으로 향하는 것이다;

기차역 차량을 이용하여 나가시로 천북을 갔기에 별로 힘들이지 않고 봉천 할매가 사 놓은 500석지기 전답을 손수석이 둘러볼 수가 있다. 벼가 양지바른 논에서 잘 자라고 있다. 그리고 천북에는 물이 좋아서 정말 좋은 경작지들이다;

 그렇게 전답을 둘러본 다음에 손수석이 운전기사에게 종이에 적혀 있는 주소를 말한다. 운전기사는 금방 그 위치를 파악하였는지 곧장 나가시를 몬다. 천북 화산을 지나 더 들어간 마을에 도착을 하자 손수석이 동네사람들에게 ‘유촌 댁이 어디냐?’고 묻는다. 그 모양을 봉천 할매가 이상한듯이 지켜보고 있다.

동네사람이 가리키고 있는 집이 크게 멀지가 않다. 따라서 손수석은 운전기사에게 여기서 대기를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 다음 손수석은 모친 봉천 할매에게 함께 그 집으로 들어가자고 말한다. 봉천 할매가 이상하여 나가시에서 내린 다음 아들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러자 손수석이 말한다; “어머니, 사실은 일본 동경에서 일하고 있는 선배의 고향집입니다. 그 부인이 ‘유촌 댁’이고요. 제게 무엇을 좀 전해 달라고 동경에서 부탁을 하였기에 오늘 일부러 들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제서야 봉천 할매가 아들의 이상한 행동을 이해하고서 ‘아’하고 반응을 한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한다; “그 녀석 어째 사전에 미리 언질을 해주는 법이 없을까? 꼭 나를 닮아서 그런지 어찌 그리 비밀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는 게야. 선배 식구를 만나는 것이니 무슨 다른 일이야 있을려고…”.

봉천 할매와 손수석이 그 집에 들어서서 주인장을 찾는다. 부엌에서 아낙네가 나오는데 그 모습이 5년전에 부산에서 한번 마주친 적이 있는 손철호 선배의 신부 이유미이다. 그때는 아가씨였는데 5년동안이나 시집에서 시부모를 모시고 살아서 그런지 이제는 시골아줌마가 되어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 자태가 곱다; 

이유미가 처음에는 누군지 몰라서 어리둥절한다. 손수석이 먼저 유촌 댁에게 인사를 하면서 말한다; “저는 일본 동경에서 일하고 있는 손철호 선배의 후배가 되는 손수석입니다. 5년전 부산에서 선배와 함께 있는 부인을 뵌 적이 있습니다. 기억하십니까?”. 그 말을 듣자 유촌 댁이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어머머’라고 말한다. 그녀가 기억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손수석이 말한다; “손철호 선배가 부인에게 전해달라고 하는 편지와 물건이 제게 있습니다. 방에 잠시 들어가시면 제가 먼저 전달을 해드리고자 합니다. 저도 심부름을 온 몸이라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제 옆에 계신 분은 저의 어머니이십니다”. 이유미가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그래서 조용히 두사람을 안채 건너방으로 인도한다. 그 방에 들어오자 손수석이 품에서 편지 한통과 두툼한 서류봉투 하나를 꺼내서 이유미에게 건네 준다.

‘유촌 댁’으로 불리고 있는 이유미가 그 편지를 읽고서 갑자기 눈물을 흘린다. 옆에서 봉천 할매와 손수석이 보고 있지만 상관하지를 않는다. 봉천 할매는 무슨 일인가 싶어서 의아해 한다. 그러자 이유미가 손수석에게 확인을 한다; “이 편지에 기록이 되어 있는 내용 그대로 제 남편이 조선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하는 말이 사실입니까?”.

손수석이 정확하게 답을 한다; “제가 지난 8월 19일 동경으로 가서 손철호 선배를 만났을 때에 이 편지와 돈을 받았습니다. 선배는 그것을 부인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을 하면서 자신은 일본 동경에서 돈을 더 벌고 싶다고 하더군요. 나중에 조선에 그 돈을 가지고 들어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이유미가 탄식조로 말한다; “저는 이 돈보다 남편을 보고 싶어요. 제가 일본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손수석이 조용하게 말한다; “조선사람이 일본으로 들어가자면 지금도 ‘도항증’을 수상경찰서에서 발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은 불가능합니다. ‘도항증’ 자체가 발부가 되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일본인이라는 신분증이 없는 이상 일본으로 가는 배를 탈 수가 없답니다 ”.

이유미가 그 말을 듣자 장탄식을 하면서 말한다; “저는 고향으로 가도 이제는 친정에 아무도 아니 계셔요. 꼼짝 없이 남편도 없는 여기 시집에서 살아야만 하는데 연로하신 시부모님과 손위의 시누가 있어요. 저는 아직 애기도 없어요. 그런데 조선사람이 일본에 갈 수가 없다고 하니 저는 남편이 일본에서 돌아오지 아니하게 되면 그대로 청상과부가 되고 마는 군요. 제 신세가 처량합니다”.

그러자 손수석이 큰 서류봉투 속에 들어 있는 돈을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확인을 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첨언한다; “손철호 선배는 그 돈이면 시집식구를 모시고 부인이 살아가는데 경제적으로 별로 불편함이 없을 것이라고 제게 말했습니다. 그 말이 맞는지 제가 있는 자리에서 확인을 해주십시오. 저도 그 액수를 모릅니다”.

신세한탄을 하던 이유미가 손수석의 말을 듣고 정신이 나는지 그 서류봉투에서 여러 뭉치의 돈다발을 꺼낸다. 그리고 하나씩 찬찬히 세어본다. 엄청난 액수의 돈이다. 대충 손수석이 계산을 해보니 시골 논 백마지기는 너끈히 살 수가 있는 금액이다. 그것이 거금인 것을 알았는지 이유미의 얼굴에 생기가 돈다. 그리고 그 금액이 얼마라고 말해준다.

손수석이 그 액수를 자신의 수첩에 적는다. 그 다음에는 이유미에게 부탁하여 그 금액 아래에 자필로 이름과 날자를 적어 달라고 한다. 그것이 일종의 영수증이다. 손수석은 훗날 손철호 선배를 만나게 되면 그것을 증거로 제시하려고 하는 것이다.

가깝고 친한 사이일수록 그렇게 정확하게 증거를 가지고 일을 처리해야 그 관계가 오래 지속이 될 수가 있다고 하는 사실을 손수석이 너무나 잘 알고서 그렇게 매사 실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옆에 앉아 있는 봉천 할매는 그토록 일처리에 있어서 철두철미한 손수석이 바로 자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있다.

손수석이 웃음기를 회복하고 있는 이유미에게 묻는다; “시부모님과 손위 시누는 어디에 계십니까? 제가 인사를 드려도 괜찮을까요?”. 그러자 이유미가 답을 한다; “시누는 옆방에 있습니다마는 시부모님은 잠시 동네를 한바퀴 돌아보고 오겠다고 나가셨답니다. 제가 옆방에서 시누를 잠시 불러 오겠습니다”.

이유미가 손위 시누를 불러오자 손수석이 인사를 하면서 자신의 신분을 밝힌다. 그리고 모친 봉천 할매를 그녀에게 소개한다. 서로 수인사가 끝나자 이유미가 시누에게 그 편지와 돈을 보여준다. 편지를 읽고나서 시누가 올케 이유미에게 말한다; “올케, 내가 미안해요. 동생이 조선에 있다면 내가 멱살이라도 끌고 와서 올케 앞에 무릎을 꿇게 하겠는데 그렇게도 할 수가 없으니 내가 정말 죄송해요. 나를 나무라고 가능하다면 동생을 용서해 주시구려…”.

그 말을 듣자 유촌 댁 이유미가 말한다; “제가 남편 복은 없어도 시누 복은 있나 봐요. 언니, 그런 말씀 마세요. 시부모님과 언니가 제게는 가족인 걸요. 그러니 용서고 무엇이고 말할 필요가 없어요. 우리 함께 살면서 제 남편이 돌아올 그때를 함께 기다리도록 해요…”.

그 말을 옆에서 듣고 있는 손수석과 봉천 할매는 천사가 따로 없다고 생각한다. 유촌 댁과 그 시누가 모두 양심가들이다. 그러한 선한 사람들만 살고 있다면 이 조선이 하늘의 복을 많이 받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서 그들은 유촌 댁이 살고 있는 집을 떠나온다. 동네 어귀에서 나가시와 운전기사가 기다리고 있으므로 오래 지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날 경주역에 돌아와서 나가시 대절요금을 손수석이 운전기사에게 지불한다. 그러면서 묻는다; “경주역에서 내남 너븐들까지 30리길을 왕복하자면 얼마나 더 지불하면 되나요?”. 그 운전기사가 기분 좋게 말한다; “오늘 운이 좋아서 천북까지 왕복하여 벌써 하루 일당을 벌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절반 값에 내남 너분들까지 모셔다 드릴께요”.

그 말을 듣자 손수석이 다시 모친 봉천 할매를 나까시에 태운다. 그날 두사람은 나가시를 타고서 고향까지 돌아온다. 마치 3일전에 손수석이 나가시를 타고서 귀향을 했을 때와 같다. 그렇게 봉천 할매는 아들 손수석 덕분에 하루 호사를 누려본다.

그날 사실은 천북으로 가기 전에 손수석이 경주 읍내에서 맛있는 숯불구이 불고기를 사준 것도 그녀에게는 좋은 추억거리이다;

 그렇게 아들 복을 누리고 사는 봉천 할매 정애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