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 할매(손진길 소설)

봉천 할매36(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10. 2. 09:56

봉천 할매36(작성자; 손진길)

 

다음날 곧 1945년8월 22일에 아침식사가 끝나자 손해선은 딸 이문자와 남편 이도성과 함께 친정부모님께 하직인사를 올린다. 그 자리에서 손영주가 한마디를 한다; “이서방, 나는 자네가 듬직하고 또 학문이 높아 사위로서 내 맘에 들어. 하지만 고향에 이미 처자식이 있다고 하니 그것이 참으로 걱정이야.  자네는 이렇게 조선이 해방이 되고 고향으로 돌아갈 줄을 미처 모르고 일본에서 내 딸과 백년해로를 하겠다는 각오로 살림을 차렸지만 자네의 생각대로 일이 그렇게 안된 것이니 이제는 어찌할 것인가?”.

이미 모두들 알고 있는 말씀을 왜 또 하시는가 했더니 장인 손영주의 말씀은 이제부터 그것이 아니다; “이서방, 자네야 참으로 오래간만에 고향을 방문하는 것이고 또한 오랜 세월 일본에서 중노동을 하여 돈을 벌어 그것을 송금하여 고향의 가족들을 먹여 살렸으니 그 공로로 나름대로 대접을 받겠지만 내 딸은 그것이 아니지 않는가? 천만뜻밖에 하늘이 무너지듯이 이제는 한집에서 첩살림을 하게 되었으니 그 구박과 설움이 오죽하겠는가? 자네는 그에 대하여 어떻게 처신을 하고 또한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가? 한 마디 확실한 답변을 주고 내 딸을 데려가게”.

그 말을 듣자 이도성이 자신의 머리를 방바닥에 붙이고 피맺힌 한마디를 남긴다; “장인어른 그리고 장모님, 별안간 해방이 되고 조선으로 오게 되어 저 역시 청천벽력입니다. 제 신분이 이중결혼이 되어 있습니다. 선비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지요. 그 모든 책임은 제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죽기 살기로 그 책임을 지고자 합니다.  결혼한 시간과 장소가 다를 뿐 저에게는 두사람이 모두 조강지처입니다. 누가 본처이고 첩이고 차별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명백한 사실에 입각하여 제가 고향에서 생활을 하겠습니다. 그 약속을 못 지키게 되면 제가 따님을 데리고 스스로 고향의 본가를 떠나겠습니다”.

사위인 이도성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약속이 그것이다. 그 약속을 장인 손영주와 장모 정애라가 받아들인다. 그리고 손영주가 아들 손수석에게 말한다; “수석아, 네 누나와 질녀 그리고 매형을 데리고 경주역까지 가서 예천으로 가는 열차표를 끊어주도록 해라. 또한 네가 이번에 그곳에 가지를 못한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나를 대신하여 한번 방문을 하여야 할 것이니 이서방 고향의 주소를 확실하게 받아 두도록 해라”.

손수석이 그렇게 하겠다고 ‘예’라고 대답을 하는 사이에 이도성은 옆방으로 건너가서 얼른 큰 처남 손수정과 서로 맞절로 하직인사를 대신한다. 그때 부엌에서 큰 며느리 김옥순이 주먹밥 세 덩어리를 싼 보퉁이를 얼른 손위 시누 손해선의 손에 쥐어 준다. 그렇게 일이 진행이 되는 것을 보고서 손수석은 안채 건너방에서 기다리고 있는 장기동에게 함께 경주로 가자고 말한다.

손해선과 이도성 가족의 짐보따리를 손수석과 장기동이 나누어서 들고서 함께 경주로 간다. 30리 먼 길이지만 8월 하순 더운 날씨라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원하게 길을 가니 별로 먼 것 같지가 않다. 4살배기 딸 이문자는 손해선과 이도성이 번갈아 업어주자 칭얼거리지 않고 길을 잘 가고 있다.

그렇게 정오 무렵에 경주역에 도착을 하자 손수석이 부친의 말씀대로 기차표를 끊어서 이도성에게 준다. 경주에서 예천으로 바로 가는 열차가 없기에 일단 대구에서 노리까이를 해서 간다. 상당히 먼 길이다. 오늘 중으로야 도착을 하겠지만 몇 번 갈아타자면 엄청 고생을 할 것이다.

손수석이 이도성에게 말한다; “매형, 이제 주소를 제게 적어서 주셔야지요”. 그랬더니 이도성이 자신의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서 준다. 그곳에는 이도성의 예천 고향집의 주소와 약도가 잘 그려져 있다. 벌써 어젯밤에 작성을 해 둔 모양이다;

그것을 받으면서 손수석이 이도성에게 말한다; “매형, 제가 매형이라고 부르기 전에 저와 일본에서 동지로 살아간 형과 동생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서로 의를 배신하지 않고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 누님과 질녀를 안심하고 맡겨 드립니다. 또 뵙겠습니다”.

 이도성이 갑자기 손수석을 꽈악 껴안는다. 그러면서 말한다; “처남 그대는 처남 이전에 내게는 혈육보다 피가 더 진한 동지이며 동생이야. 동생이 나를 배신하지 아니하는 한 내가 처남을 배신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 내 신세가 지금 처량하게 되어 선비 체면에 못할 노릇을 하고는 있지만 모든 일이 정상으로 돌아가는 날이 반드시 있을 것이야. 그리고 꼭 한번 들리게나. 그리고 내가 준 그 종이에는 내 아들들의 이름도 적혀 있어…”.

포옹을 풀면서 이도성이 한마디를 덧붙인다; “수석이, 내가 이국 땅 일본에서 수년간 지내면서 얻은 가장 값진 것이 자네를 알았다는 것이야. 그 추운 북해도에서도 자네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나는 청운의 꿈이 되살아나고 열기를 얻을 수가 있었어. 내 인생에 그러한 젊은 시절이 있었으니 어찌 내가 자네 누나와 질녀에게 소홀하게 하겠나... 고향 예천의 마누라가 호랑이라고 해도 결코 매서운 홋카이도 날씨만 하겠는가? 너무 염려하지 말고 잘 들어 가시게나…”.

이도성과 손해선 그리고 이문자는 그렇게 북쪽 예천으로 가기 위하여 열차로 길을 떠났다;

그러자 갑자기 장기동이 손수석에게 ‘몇시냐?’고 묻는다. 손수석이 12시 50분이라고 말했더니 갑자기 그가 서두른다. 그러면서 말한다; “종처남, 사실은 부산에서 경주로 올 때 나는 고민달과 단단히 약속을 했어. 무슨 일이 있어도 그날 8월 16일에서 일주일이 되는 22일부터 열흘이 되는 25일까지 오후 1시에 경주 역전 앞에서 만나기로 말일세…”;

그러면서 경주 역전 앞 광장을 장기동이 열심히 훑어본다. 그 모습을 보면서 손수석이 생각한다; “그래,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구만… 이미 장기동과 고민달은 경주 읍내에서 살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서로 가까이 살도록 내가 방도를 마련해주면 되겠구만…”. 그때 광장 한쪽에서 ‘와’하고 두사람의 감격에 넘치는 소리가 들린다. 보나마나 고민달과 장기동이 서로 만나고 있는 것이다.

더운 날씨라 경주 역전 앞 시원한 광장 한 켠에서 세 사람이 신문지를 깔고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맞은 편에서는 마루보시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수레를 곁에 두고서 서로 말을 나누거나 아예 수레에 기대어 오수를 즐기기도 한다. 그때 고민달이 먼저 말한다; “나는 마침 경주 읍내에 살고 있는 고향 아재를 만났네. 그래서 그 집 근처의 동네에 집을 사려고 하네. 여기서 멀지 않으니 기동이 자네도 손수석과 함께 한번 그 동네에 가보겠나?”.

그러자 손수석이 묻는다; “민달이 형, 그 동네 이름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곳에 전답이 좀 있습니까?”. 고민달이 즉시 답한다; “그곳은 여기 경주역에서 멀지가 않아. 불국사 쪽으로 가는 남쪽으로 10여분 걸어가면 나타나는 곳이지. 흔히 ‘팔우정 로타리’라고 말하네. 그리고 그곳에는 약간의 밭이 있지만 전답은 없어. 이미 집들이 들어차고 있거든…”;

두사람은 고민달과 함께 그 주위를 돌아보고자 한다. 10분쯤 걸어가니 고민달의 말과 같이 ‘큰 삼거리’가 나타난다;

 그곳이 ‘팔우정’이 있는 곳이다. 세사람이 시장기를 느끼고 있는데 마침 그 주변 신작로 가에 음식점이 몇 군데 있다. 그들은 그곳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그리고 나서 주변의 동네를 한바퀴 돌아본다. 역시 주택에 딸려 있는 텃밭 외에는 별다른 농토가 없다. 이른바 경주의 읍내 지역인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그곳에서 감포로 가는 동쪽 신작로를 타고서 교외지역으로 진행을 해본다;

 20분 정도 걸어가니 마침내 전답이 나타난다. 평평한 땅에 햇빛이 좋다. 그 동네의 이름을 물으니 ‘사리’라고 한다. 장기동은 그 땅을 보고서 그 자리에서 꼼짝을 하지 않는다. 엄청 그의 마음에 든 것이다. 그래서 동네에 들어가서 매물로 나와 있는 집을 물어본다;

그것도 인연인가? 괜찮은 넓은 기와집 한 채가 매물로 나와 있다. 일본사람과 함께 살던 조선인 가족이 그 집과 함께 전답을 모두 팔아 달라고 이웃 친척에게 부탁을 하고서 타지로 급히 떠나갔다는 것이다. 아마도 일본인 지주에게 과도하게 충성을 한 조선인 마름의 집으로 보인다. 어쨌거나 급매로 나온 싼 매물이다. 장기동이 얼른 전답과 주택을 한꺼번에 싸게 계약을 한다.

그것을 보고서 고민달은 손수석과 장기동을 데리고 함께 다시 팔우정 황오리 동네를 찾아간다. 그도 역시 보아 둔 집과 텃밭이 그 동네에 있는 것이다. 고민달은 손수석과 장기동 두 사람에게 그 주택과 텃밭의 매도가를 이야기하면서 ‘어떠냐?’고 묻는다. 상당히 싼 가격에 급히 나온 물건이다. 좋은 기회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빨리 계약을 체결하라고 말한다;

 그 결과 고민달과 장기동은 각각 경주 읍내에서 살 거처를 그날 하루에 전부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훗날에는 일본사람들이 조선을 떠나면서 남겨놓은 주택들을 ‘적산가옥’이라고 부른다. 그것을 정부는 민간인에게 싸게 불하를 하는데 ‘연고자 우선주의’이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연고권을 주장하면서 적산가옥을 싸게 불하 받거나 드물게는 어떻게 사전에 작성하였는지 형식적인 ‘매매계약서’를 증거로 제출하여 공짜로 차지하기도 한다.

주택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일본사람들이 조선에 남겨두고 간 기업과 공장 그리고 선박 등의 재산도 그렇게 처리가 되고 있다. 그 결과 조선사람들 가운데 그 방면으로 비상하게 머리를 쓴 사람들이 횡재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본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그러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언젠가 일본사람들이 조선에 와서 당당하게 자신들이 남기고 간 재산에 대하여 반환청구를 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날 어둡기 전에 손수석과 장기동은 내남 너븐들로 돌아온다. 손수석은 부모님께 누나 가족을 경주역에서 열차에 태워서 잘 보내 주었다고 보고한다. 그리고 장기동은 아내인 손자옥에게 먼저 오늘 경주 사리에 있는 주택과 농지를 매입하기로 계약을 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이어서 어른들께 그 말씀을 드린다.

그 사이에 손수석은 너븐들에 돌아와 있는 손수옥과 손수관을 한꺼번에 만난다. ‘현동 양반’의 ‘일본체류 건’에 대하여 인솔자인 그들에게 묻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현동 양반이 사전에 두사람에게 고향의 처자식에게 전해달라고 하면서 엄청난 돈을 맡겼다는 것이다. 그리고 손진동은 오사카에서 알게 된 집안이 있으므로 그 집에 머물면서 계속 돈을 벌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현동 양반’이 준 편지를 손수석에게 내민다. 그 글을 읽어보니 크게 두가지 내용으로 되어 있다; 하나는,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여 무지하게 미안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이제 만약 조선으로 들어가게 되면 다시는 일본땅을 밟지 못할 것이므로 자기 평생에 도시에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이다. 마침 오사카에서 알게 된 여인과 그 집안이 있으므로 ‘현동 양반’은 그 집에 살면서 계속 돈을 벌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나중에 조선과 일본 사이에 다시 교류가 되면 그때에는 자신이 번 돈을 전부 고향에 투자를 하고 싶다는 내용이다.

손수석이 그 편지를 통하여 족질인 ‘현동 양반’의 야심을 읽게 된다. 그는 조상들처럼 가난하게 시골에서 살기가 싫은 것이다. 그가 그동안 북해도에서 벌어 고향에 보내어준 돈이면 처자식이 밥을 굶지는 아니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신은 일본땅에 남아서 억척스럽게 돈을 한번 크게 벌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 돈을 나중에 고향으로 보내는 그때를 기다리면서 그는 그렇게 하기로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살아오면서 얼마나 돈에 한이 맺혔으면 그러한 선택을 했을까?...’. 손수석은 ‘현동 양반’에 대하여 한없는 연민을 느낀다. 그렇다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을까? 손수석은 그날이 지나가기 전에 ‘현동 양반’의 집을 방문한다. 그리고 ‘현동 뛰기’와 그의 아들들에게 손수옥이 맡아서 내놓은 ‘현동 양반’이 준 그 돈과 함께 그 편지를 전해 준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장차 어떻게 할지 결심을 말해보라고 한다. 그랬더니 그들의 답변이 뜻밖이다.

‘현동 양반’의 부인이 세 아들과 함께 단호하게 한마디로 말한다; “가장이 돈에 눈이 멀어서 저희들을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희들은 더 이상 가장이 돌아오기를 이곳에서 기다리지 않겠습니다. 가장이 훗날 고향으로 돌아오더라도 이곳 너븐들에서는 저희들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재산을 정리하여 타지인 도시로 떠나려고 한다;

 가장이 일본에 남아서 살겠다고 하면서 고향에 있는 자신들을 버렸으니 창피하고 수치스러워서 일가들이 살고 있는 집성촌인 너븐들에서는 더 이상 살지를 못하겠다는 것이다. 손수석은 그들을 말릴 수가 없다. 그래서 그들의 소원대로 일처리를 도와주면서 훗날 ‘현동 양반’으로부터 연락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이사를 가는 그곳의 주소만은 파악을 해두고자 생각한다.

  그렇게 저녁 늦게까지 몇가지 급한 일을 처리하다가 보니까 또 하루가 완전히 저물고 만다. 비록 젊은 나이라고는 하지만 동네일을 하는 것이 참으로 피곤한 것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자신이 모두 데리고 일본에 갔다가 또한 데리고 온 일가들이니 그들의 사후처리도 도와주어야 마땅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