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 할매(손진길 소설)

봉천 할매33(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10. 2. 01:19

봉천 할매33(작성자; 손진길)

 

1945년 6월말에 손수석은 북해도 미쯔비시 석탄회사에 돌아와서 경리일을 보고 있지만 그 머리속에서는 여전히 며칠 전 오사카에서 만난 모친 정애라가 자신에게 전해준 이야기가 맴돌고 있다. 모친이 오예은으로부터 얻은 최신정보에 따르면, 지난 4월에 벌써 미군을 위시한 연합군이 필리핀을 탈환했다는 것이다.

일본군이 결사항전의 각오로 방어를 했으나 제공권과 제해권을 전부 빼앗긴 상태에서 20만명 이상의 희생자만 내고 필리핀을 연합군에게 내주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제는 일본 열도 가까이 미군이 들어와 있다. 남쪽 바로 코 앞에 미군과 연합군이 들어와서 일본 열도에 상륙할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며칠에 한번씩 동경과 오사카 등 대도시에 미군의 거대한 폭격기 ‘B29’가 편대를 이루어 무수히 폭탄을 투하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의 도시에서는 야간에 완전히 소등을 하는 이른바 ‘관제등화’ 훈련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다행히 북해도에서는 인구가 별로 없어서 그런지 미군 폭격기의 출현이 아직은 없다.

그렇지만 손수석은 일본 열도가 미국을 위시한 연합군의 손에 떨어지는 날이 별로 멀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손수석이 결단을 내린다. 그래서 7월 첫째 주말에 오사카로 찾아가서 매형 이도성 부부와 친형 손수상 부부 그리고 종매 손자옥 부부를 먼저 만난다.

그 다음에는 고향사람들 가운데 연장자인 손수옥과 손수관을 만난다. 그들에게 아무래도 시모노세끼로 이사를 하여 일본이 항복을 하면 곧바로 고향으로 배를 타고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다. 패전한 일본인들이 집단 공황상태에 빠지게 되면 만만한 조선사람들에게 어떠한 해코지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모두들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일본인들이 동경에서 조선인들을 어떻게 살해하면서 자신들의 화풀이를 했는지 부모로부터 들은 바가 있다;

따라서 일본인들이 연합군에게 항복을 하는 경우에는 즉시 조선반도로 빠져나가고자 계획을 세운다. 사태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그들은 손수석의 말에 따라 1945년 7월 중순에 본섬인 ‘혼슈’의 서쪽 끝에 있는 시모노세끼로 집단적으로 이주를 한다. 만약의 경우에는 그곳에서 부산으로 가는 ‘관부연략선’을 타고서 급히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마침 시모노세끼 항구에서도 젊은 노동력이 부족하여 구루마로 짐을 옮기는 ‘마루보시’ 일꾼이 많이 필요하다;

덕분에 그들은 생활비를 벌어 쓰면서 그때를 기다리고 있다;

그 당시 필리핀에 주둔하고 있는 연합군의 사령관인 맥아더 장군은 어떻게 하면 가장 적은 희생으로 일본 열도를 점령하고 일본제국의 항복을 받아낼 수가 있는지를 깊이 연구하고 있다;

 그 문제는 미 국방성의 연구과제이기도 한다. 미국의 막강한 전투기들이 수없이 날아가서 일본의 도쿄와 오사카를 융단폭격해도 일본제국은 도무지 항복할 생각을 하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이다.

첩보에 따르면, 일본의 군대는 민간인들에게 죽창으로 사람을 찌르는 제식훈련을 대대적으로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만약 일본 열도에 연합군이 상륙을 한다면 일본인들이 하나같이 죽창을 가지고 가서 찔러 죽이겠다는 대단한 각오이다. 그렇게 인해전술로 ‘결사항전’을 외치면서 싸우다가 죽어가는 25만명의 일본군대를 맥아더 사령관은 이미 필리핀에서 보았다.

그러므로 미군이 일본 열도에 상륙하지 아니하더라도 일제가 무조건 항복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그 무엇이 필요하다. 그것이 무엇일까? 그 방법은 아무리 생각해도 세가지밖에 없다;

첫째로, 소련에게 요청하여 그들의 군대를 대규모로 남진하게 하는 것이다. 그 방법이 일본 열도 바깥에서는 크게 효력을 발휘한다. 1945년 8월 9일에 소련이 일본제국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대군 150만명을 동원하여 일시에 남으로 밀고 내려오기 때문이다;

70만명 이상의 일본 관동군이 소련의 대군을 만주와 내몽고에서 막아보려고 대항을 했으나 중과부적이다. 더구나 한창 전투를 하고 있는데 그만 8월 15일에 전격적으로 일본 천황이 방송을 통하여 미국을 위시한 연합국에게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고 만다. 따라서 2만명의 전사자만 내고 그 전투는 12일만에 끝나고 소련은 그 사이에 일제가 세운 괴뢰정권인 만주국과 몽강국을 모두 멸망시킨다;

소련군은 너무나 빨리 8월 20일까지 관동군의 항복을 받으면서 38도선 이북의 북한 땅까지 점령하고 만다. 나아가서 그들은 사할린과 쿠릴열도를 일본으로부터 되찾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일본 열도에는 발을 들여놓지를 못한다. 그 이유는 두가지이다;

(1)  하나는, 일본제국이 소련군에게 항복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게 항복하기를 끝까지 원했기 때문이다. 지난 1904년에 일제가 러시아와 전쟁을 친 바가 있기 때문에 금번에 소련에게 항복을 하게 되면 그 역사적인 앙갚음을 받게 될 우려가 큰 것이다.

(2)  또 하나는, 미국이 일본 열도를 온전히 자신들이 점령하고 소련에게는 조선의 38도선 이북지역까지 점령하도록 급하게 8월 14일 밤에 통보를 했기 때문이다. 만약 미국의 통보를 무시하게 되면 그때에는 소련이 미국과 전쟁을 해야만 하는데 스탈린에게는 그 정도의 무력이 없는 것이다.

둘째로, 대대적인 공습을 감행하여 동경과 오사카에 융단폭격을 계속하는 것이다. 정 항복을 하지 아니하면 천황이 살고 있는 황궁을 완전히 박살을 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위협에도 일본제국이 크게 동요하지를 아니하고 있다. 모두들 최후의 일인까지 옥쇄작전을 계속하면서 미국과 협상하기를 원하고 있는 모양이다.

셋째로, 원자폭탄을 빨리 개발하여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의 고향에 투하하는 것이다. 미국은 이제 세번째 방법을 사용하려고 한다. 유럽전쟁 동안에 독일 나치의 탄압을 피하여 아메리카로 피신해온 유태계 물리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미국은 급하게 1945년 7월에 몇개의 원자폭탄을 제조했다.

그런데 사막에서 시험을 해본 결과 그 위력이 너무나 가공스럽다. 특히 방사능이 엄청나게 방출이 되고 있어 향후 방대한 지역을 황폐화시키고 사람의 유전자까지 변형을 시키고 마는 것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인류가 만든 가장 저주스러운 무기이다. 그 무기를 사용한다면 신의 저주를 받을 것만 같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미군의 해병대를 앞세워서 일본 열도에 상륙을 시도하게 되면 연합군이 입게 되는 피해가 적어도 1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이 되고 있다. 국민의 여론에 의하여 움직이는 미합중국의 정치인들은 그러한 자국 젊은이들의 희생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다.

만약 그러한 사태가 발생한다면 정권을 내놓아야 할 뿐만 아니라 전쟁광으로 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 젊은이의 그만한 희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할 수밖에 없다. 핵폭탄보다 더 저주스러운 태평양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다고 하는 결론에 미국 국방성과 백악관이 다다르고 있다.

그래서 마침내 1945년 8월 6일에 일본의 본섬 서남쪽에 있는 병참도시 히로시마에 미국의 폭격기 B29가 원자폭탄을 하나 싣고 와서 그대로 투하한다. 그 우라늄235 핵폭탄 하나로 히로시마에서 14만명이 희생되고 만다;

 히로시마는 명치유신을 일으킨 죠슈, 사쯔마, 도사 , 히젠이라는 4개의 번 가운데 하나인 죠슈 번과 가장 가까운 도시이다;

그래도 일본제국은 항복을 하지 않는다. 그러자 미국은 3일 후인 8월 9일에 히젠 번에 속하는 도시 나가사키에 플루토늄239로 만들어진 핵폭탄을 또 투하한다;

 그 위력은 더 세지만 인구가 적어서 나가사키에서는 7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한다;

그제서야 일본의 천황과 원로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다.

전무후무한 대량살상무기가 일본의 도시에 떨어지고 있다. 이제 항복을 하지 아니하게 되면 또 하나의 핵폭탄은 천황이 살고 있는 동경 중심부에 떨어질 것이다.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나가사키 출신 정치지도자가 많은 일본제국이지만 신하들은 고향사람들이 희생되는 것은 감내하고자 한다;

그렇지만 미국의 핵폭탄에 천황이 희생이 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천황이 그렇게 사라지게 되면 일본제국은 그야말로 공중분해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일본제국은 천황을 신으로 섬기면서 일종의 광신적인 전체주의 신정국가로 운영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천황이 전후에도 살아 있어야 그나마 일본민족의 통합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한 정치적 계산으로 군국주의 일본이 마침내 미국을 위시한 연합국에게 무조건 항복하기로 8월 15일에 결정하고 만다. 그 사이에 미국이 원폭을 동경에 투하하게 되면 큰일이다. 따라서 곧 중대한 천황의 방송이 있을 것이니 부디 기다려 달라고 일종의 사인까지 먼저 보낸 것이다.

아시아 태평양전쟁의 종식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 1945년 8월 15일 정오에 히로히토 천황이 직접 라디오 방송으로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것이다;

 그에 따라 9월 2일에 미군의 함정 미주리가 동경항에 입항하고 미국 대통령을 대신하여 맥아더 장군이 일본제국의 항복을 문서로 받게 된다;

  그것으로 아시아 태평양 전쟁에 역사적인 종지부가 찍히고 만다.

그 방송을 일본 시모노세끼에서 마루보시 일을 하고 있는 너븐들 사람들이 듣게 된다. 그들은 이미 꾸려 놓은 간단한 짐보따리를 가지고 다음날 모두 함께 관부연락선을 타고 제1착으로 부산에 들어온다. 손수석과 자신들이 합의한 시나리오대로 신속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그들은 부산에서 열차를 타고서 경주로 이동한다. 그 다음에는 큰 트럭을 대절하여 곧바로 내남 너븐들로 들어가는 것이다.

한편 북해도 비바이에서 일하고 있는 손수석도 그 방송을 들었다. 그는 그곳에서 광부로 일하고 있는 조선인들에게 그 소식을 먼저 전해 준다. 그 다음에는 삿포로 근처 삼림지역에서 벌목일을 하고 있는 조선인 인부들에게도 그 소식을 전해 준다. 그러면서 한가지 당부를 꼭 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 힘으로 해방을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직 일본사람들이 힘을 지니고 있고 조선사람들은 힘이 없다. 그러므로 정면으로 충돌을 하게 되면 패전에 대한 화풀이를 일본사람들이 힘이 없는 조선사람들에게 하기가 쉬운 것이다. 그러면서 손수석도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서서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