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 할매32(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 정애라는 본래 국제정세에 대하여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일본제국의 식민지가 되어버린 조선에서 오래 살다가 보니까 일제가 수년간 진행하고 있는 그 전쟁이 과연 승산이 있는 것인지 궁금하기 이를 데가 없다.
구체적으로, 1937년부터 중국대륙으로 일본의 군대가 진격을 했다고 했는데 7년의 긴 세월이 지나 1944년이 되었지만 아직 완전히 점령하지를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 옛날 1894년에 벌써 청국과 전쟁을 쳐서 승리한 바가 있는 일본제국이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것일까?
더구나 일제가 만주와 동 몽골까지 차지하고 있다고 자랑을 하고 있는데 어째서 전쟁물자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조선백성들의 숟가락과 놋그릇까지 모조리 징발해가고 있는가?
도대체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러한 모양새를 보면 분명히 일본제국이 조선백성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만 같다. 실제로는 전쟁에서 지고 있거나 큰 난관에 봉착해 있는데 그것을 거꾸로 연전연승을 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만 같다.
일본제국이 중국과의 전쟁이나 대동아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이 봉천 할매에게 있어서는 주요 관심사이다. 왜냐하면, 아들 손수석이 일본에서 벌어온 돈으로 엄청난 전답을 사모아 두었는데 그것의 향방이 그에 따라 큰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일부러 경주 오일장을 자주 방문한다. 그리고 절친인 오예은을 만나 미국의 소리를 들어 보고자 한다.
친구 오예은이 은밀하게 자신에게 알려주는 그 솔직한 국제정세가 봉천 할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고 있다;
그 가운데 봉천 할매 정애라가 자신의 머리속에 차곡차곡 잘 정리하여 넣어둔 것이 다음과 같은 지식들이다;
첫째로, 중국대륙에서 육군을 중심으로 침략전쟁에 열을 올리고 있던 일본제국이 갑자기 태평양에서 해군을 앞장 세워서 미국과 일전을 치르게 된 그 이유가 다음과 같다는 것이다;
(1) 1939년에 유럽의 독일이 이웃나라를 침략하기 시작했다. 독일의 히틀러가 나치당과 나치군대를 앞세워서 유럽전쟁을 일으킨 이유는 1918년에 끝난 유럽전쟁에서 독일이 무참하게 패배를 했기 때문이다. 그 설욕을 하겠다고 군사력만 키워서 다시 유럽전쟁을 벌인 것이기에 안일하게 대처를 했던 프랑스와 네델란드 등이 독일에게 점령이 되고 만다. 다행히 영국은 섬나라이므로 아직 점령을 당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독일의 공군과 해군의 공격으로 말미암아 그 피해가 막심하다. 영국은 미국의 병참지원을 받아서 겨우 버티면서 독일과의 전투를 계속하고 있다.
(2) 프랑스와 네델란드가 독일의 수중에 떨어지자 일본제국은 프랑스가 차지하고 있던 동남아와 네델란드가 차지하고 있던 인도네시아에 눈독을 들이게 된다. 그곳을 점령하여 일제가 자신들의 식민지로 삼게 되면 석유와 지하자원을 얻어서 계속 전쟁을 수행하고 하나의 자립적인 경제공동체가 형성이 될 것으로 본 것이다;
(3) 그런데 문제는 아메리카의 미국이다. 미국은 모국인 영국이 독일의 공격으로 말미암아 위험하므로 영국을 지원하면서 유럽전쟁에 한쪽발을 담그고 있다. 그렇다면, 일제가 독일과 동맹을 맺고 독일에게 힘을 실어주게 되면 어떻게 될까? 분명히 미국은 독일부터 해치우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미국이 강대국이라고 하더라도 동시에 유럽과 아시아에서 전쟁을 수행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일본은 동남아와 인도네시아 등을 손쉽게 점령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판단으로 일제는 1941년 7월에 소위 ‘남진정책’을 추진하게 된다. 그것을 보고서 미국은 자국내 일본인들의 자산을 동결하는 한편 일본에 대한 석유수출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하게 된다.
(4) 그렇지만 워낙 미국의 해군력이 막강하므로 한 2년 정도는 그 복구가 쉽지 아니하도록 선제공격을 하여 대대적으로 격파해버려야 한다. 그 방법이 1941년 12월 7일에 미국의 태평양사령부가 있는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는 소위 ‘도라 도라 작전’이다. 그러한 일제의 전쟁 시나리오는 사실 나무랄 것이 없다. 그 결과 일본은 미군이 주둔하고 있던 필리핀까지 점령하게 되고 아시아 태평양에서 거대한 제국으로 군림하게 되는 것이다.
(5) 하지만 먼바다에 나가 있던 미국의 항공모함이 모두 살아남고 잠수함부대가 건재하고 있다는 것이 일제에게 있어서는 큰 불행이다. 1942년 6월 하와이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미드웨이 미군기지를 일본해군이 공격하였으나 미국의 항공모함과 잠수함 때문에 패퇴를 당하고 만다. 당시 격침이 되고 있는 일본 구축함의 모습이 다음과 같다;
(6) 그때부터 일제의 전쟁 시나리오가 빗나가기 시작한다. 일본의 기습적인 선제공격으로 미국의 해군력을 크게 약화시키고 미국과 협상하는 것으로 시나리오를 짰는데 그것이 불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은 유럽에서 영국을 도와서 독일과 전쟁을 계속하는 한편 동양에서는 일본제국과 전쟁을 계속하고자 한다. 그 방법이 1941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강력한 경제제재와 전쟁물자 금지조치이다.
(7) 미국은 여전히 해군력으로 중동에서 일본으로 가는 석유수송을 완전히 차단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군이 호주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강력하게 방어선을 설치하고 만다. 그 때문에 일제는 철이 부족하다. 석유 에너지와 철광석이 8할이나 부족한 심각한 약점을 안고서 일제는 계속 전쟁을 수행해야만 한다. 그와 같이 미국은 일본제국의 군대를 엄청난 위기 가운데 몰아 넣고서 마치 고양이가 쥐를 다루듯이 그렇게 2년 동안 야금야금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한마디로 일본의 군부가 미칠 노릇이다.
둘째로, 1941년 6월에 독일의 히틀러가 소련을 2개월만에 점령하겠다고 ‘독소전쟁’을 일으켰으나 그것이 완전히 계산 착오이다. 그 전쟁은 3년간 계속이 되었으며 마침내 1944년 6월에 독일의 히틀러가 소련군에게 밀려서 전면 퇴각을 하고 만다. 그것을 보고서 연합군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유럽대륙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것이다;
이제 유럽전쟁은 연합군의 승리가 점쳐지고 있다. 그러자 미국은 연합군과 함께 그때부터 동양에서 일본제국을 다음과 같이 강력하게 응징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1) 1944년 6월 15일에 미군이 사이판 섬에 상륙하기 시작한다. 5월달부터 미군이 15척의 항공모함을 동원하여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하자 일제가 9척의 항공모함으로 이에 맞섰으나 패배하고 만다. 그로 말미암아 사이판 섬을 미군이 점령하면서 그때부터 동경까지 항공기로 폭격을 감행할 수 있게 된다;
(2) 1944년 10월 20일에 미군이 필리핀 민다나오 섬 북쪽 ‘레이테’ 섬의 해안에 상륙하게 된다;
1945년 1월 9일에는 루손 섬 클라크 공군기지까지 점령하게 된다. 일본군이 미군에게 밀린 이유는 제공권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석유가 부족한 상황에서 일본의 공군은 미군의 전투기 앞에 맥을 쓰지 못한 것이다.
(3) 1945년 2월 27일에 미군은 마닐라까지 수복하면서 필리핀을 되찾게 된다. 그때까지 일본의 육군이 ‘결사항쟁’을 외치면서 끝까지 미군을 저지하였는데 그 결과 25만명의 일본군의 80%가 전사를 하고 말았다. 참으로 비참한 것이 필리핀 전투인 것이다.
(4) 1945년 2월부터 4월까지 미군은 필리핀의 민다나오 섬까지 완전히 수복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 팔라우에 상륙하여 보르네오 섬을 점령하게 된다. 이제는 일본 열도에 어떻게 상륙할 것인가를 다시 필리핀 주둔 미군사령관이 된 ‘맥아더 대장’이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어떻게 하면 미군의 피를 적게 흘리면서 일본제국의 항복을 받아낼 수가 있는지 그 묘안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1945년 5월달까지 봉천 할매 정애라가 절친 오예은으로부터 들은 정보를 간추린 내용이다. 정애라는 이와 같은 정보를 일본 북해도에서 근무하고 있는 아들 손수석에게 알려주기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어렵다. 검열대상인 편지에 담을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1944년 정월 이후 지금까지 아들 손수석이 더 이상 조선에 출장을 오지 아니하고 있다. 그 이유는 조선총독부가 대대적으로 조선의 장정들을 강제 징용으로 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임금을 제대로 주는 조선인부를 구하는 일이 중지가 되었기에 이제는 손수석이 조선에 출장할 이유가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자신이 얻은 고급정보를 아들 손수석에게 무사히 전해줄 수가 있을까? 봉천 할매 정애라가 고민을 하고 있을 때에 마침 1945년 6월 초에 북해도의 손수석으로부터 편지가 온다.
그 내용인즉, 손수석이 6월말 주말에 오사카까지 여행을 하고자 하니 모친인 봉천 할매가 이 편지에 동봉하는 서류를 가지고 부산에 있는 ‘수상경찰서’에 가서 ‘도항증’을 발부 받아 오사카로 오시라는 것이다. 꼭 전할 말씀과 전할 물건이 있다는 기별이다.
봉천 할매 정애라는 당시 55세의 연세이다. 평생 해외로 나가본 적이 없다. 하지만 아들 손수석이 모친에게 일본여행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으므로 남편 손영주와 급히 상의한다. 그러자 손영주가 부디 몸 건강하게 잘 다녀오라고 말한다. 봉천 할매가 용기를 내어 6월말 주말 이전에 오사카까지 도착할 수 있도록 해외여행에 만전을 기한다.
아들 손수석이 보내어 준 서류를 부산에 가서 ‘수상경찰서’에 제출했더니 금방 ‘도항증’을 발행해준다. 그것 참 신기하다. 조선사람이 당시 일본에 들어가자면 그 ‘도항증’ 발급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한 것이다. 그 다음에는 ‘관부연락선’을 타고서 시모노세끼에 가서 오사카로 가는 열차를 갈아탄다. 오사카 역에 내려서 아들 손수석이 적어서 보내어준 주소대로 배인근이 경영하고 있는 ‘우동집’을 찾아간다.
초면이지만 자신이 손수석의 모친이라고 말했더니 배인근 부부가 얼마나 친절한지 모른다. 그들은 자신의 집에 하루 묵으시면서 내일 손수석이 북해도에서 오면 만나보시라고 말한다. 이미 손수석으로부터 전보를 받았다고 한다. 과연 그들의 말 그대로 하루를 지냈더니 아들 손수석이 나타난다. 이제 손수석은 23세의 훤칠한 청년이다.
봉천 할매는 손수석을 보자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1944년초에 고향을 다녀간 이후 일년 반 만에 아들을 다시 만나는 것이니 왜 그렇지 아니하겠는가? 그날 밤에 손수석은 은밀하게 모친에게 돈가방을 전달한다. 그 돈을 고향에 가지고 가서 절반은 천북의 땅을 사는데 사용하고 나머지 절반은 잘 보관해두라고 말한다.
아무래도 전쟁이 끝나면 그 돈이 필요할 것이라고 언급한다. 봉천 할매가 깜짝 놀라서 어떻게 전쟁이 미구에 끝날 것으로 보느냐고 물어본다. 그러자 손수석이 웃으면서 답한다; “요즘 석탄회사에게 군부가 물건을 가지고 가면서 전부 외상입니다. 한마디로, 국가재정이 파탄이 나고 군대에 돈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미국과 전쟁을 계속하겠습니까? 곧 일제가 미국에게 항복하겠지요. 그렇게 되면 저희들도 조선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서 봉천 할매는 그동안 절친 오예은에게서 들은 고급 정보 곧 미국과 일본 사이의 전쟁상황에 대하여 상세하게 말해준다. 손수석이 크게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어머니, 제가 어머니의 그 놀라운 기억력을 타고 났는가 봅니다. 고맙습니다, 어머니. 그 말씀을 들으니 일본군부가 감추고 있는 전쟁상황을 민경 알처럼 이해하게 되네요”.
봉천 할매는 자신의 정보가 아들에게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하니 참으로 기쁘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손수석은 모친 정애라에게 배인근의 부모인 배종성과 장화옥을 소개한다. 1882년생인 장화옥은 장인식 교장의 딸이며 내남 덕천에서 자라났기에 내남에서 온 1891년생인 봉천 할매 정애라에게 얼마나 다정한지 모른다. 마치 자신의 동생을 만난 것처럼 기뻐한다.
손수석은 모친 정애라를 오사카 역에 데려다 주고 그 열차가 시모노세끼를 향하여 출발하는 것을 보고서야 북해도로 돌아간다;
그렇게 뜻밖에 오사카에서 모자상봉을 하고 봉천 할매 정애라가 고향으로 돌아오자 1945년 6월달이 후딱 지나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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