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 할매29(작성자; 손진길)
손수석은 1944년 1월 2일 당일에 ‘관부연락선’으로 시모노세끼 항에 도착한다;
사촌 여동생 손자옥을 데리고 인근 식당에서 늦은 점심식사를 한 후 시모노세키 곧 하관 역으로 가서 오사카로 가는 열차를 함께 탄다;
그는 오사카에 살고 있는 배인근을 만나고자 하는 것이다. 손자옥은 생전 처음 일본을 방문하고 있는 중이라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평소 일년에 두세 차례 고향을 방문하는 사촌 오라비 손수석을 통하여 일본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자신의 눈으로 보는 것은 처음이다. 조선의 시골 내남 너븐들에서 자란 그녀이기에 일본의 대도시 오사카를 보자 입이 떡 벌어진다. 그러나 성격이 차분하고 호들갑을 떨 줄 모르는 그녀인지라 그저 ‘어머머’하고 한번 탄성을 지르고는 조용하게 주위의 도시모습을 유심히 살피고 있다.
종매 손자옥을 보자 손수석은 자신이 6년남짓 전에 처음으로 일본으로 건너와서 대도시 오사카를 보았을 때가 생각이 난다. 그때에 손수석의 옆에는 배인근 형과 안춘근 형이 함께 있어서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른다. 이제는 손수석 자신이 종매 손자옥에게 그러한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야 할 때라고 생각이 든다.
먼저 오사카에 있는 배인근의 우동가게부터 들린다. 오후 늦은 시간이므로 가게가 한가한 편이다;
배인근 부부가 손수석과 손자옥을 반기면서 좌석을 권한다. 손수석이 그들 부부에게 동행하고 있는 손자옥을 소개한다; “제 고향에서 함께 일본으로 온 사촌 여동생 손자옥입니다. 이번에 제가 북해도 삼판에서 일하고 있는 수상이 형 내외에게 데려다 주려고 합니다”.
손수석이 종매 손자옥에게 이미 열차를 타고 오면서 오사카에 살고 있는 배인근 가족과 동경에 살고 있는 안춘근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해두었기에 그녀는 스스럼이 없이 다소곳하게 배인근 부부에게 고개를 숙여 절을 하면서 말한다; “처음으로 일본에 온 손자옥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녀를 보고서 배인근 부부가 진심으로 환영한다.
그 자리에서 배인근이 손수석에게 말한다; “수석아, 우리 부모님은 그저께 구랍에 조선에 볼일이 있어 잠시 들어 가셨어. 갑자기 외할머니가 위독하다고 대구에 살고 있는 장철민 외숙부로부터 전보가 와서 급하게 들어가신 거야. 외할머니가 1944년 올해 연세가 88세가 되신다고 하더군”.
그 말을 듣자 총기가 있는 손수석이 말한다; “맞아요, 인근이 형. 작고하신 장인식 교장 선생님이 1854년생이시고 그 부인 최순옥 여사가 1857년생이라고 제가 옛날에 들었어요. 그리고 최순옥 할머니는 저의 조부 서배 할배의 재종 매형인 최사권 선비의 가까운 일가 질녀라고 했어요. 그러면 장인식 교장 선생님이 별세하시고 난 후 최순옥 할머니께서는 대구에 있는 아들네 집에서 여생을 보내고 계신 것이겠군요”.
배인근이 놀랍다는 듯이 말한다; “허어, 동생은 참 기억력이 좋아. 맞아, 맞고 말고. 할머니는 외삼촌의 도움을 받아 부산에 있는 재산을 정리하고 대구 아들네집에 가서 잘 살고 계셨지. 대구 동인동에 있는 저택이 넓어서 살기가 좋다고 하더군. 나는 한번도 가본 적이 없지만 그 사이 부모님은 더러 가 보신 적이 있어. 아버지는 재작년에 어머니가 환갑이 되자 가게 일을 거의 우리 부부에게 맡겨버리고 좀 한가하시거든…”.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가게 문을 닫을 시간이 되었는지 배인근이 손수석과 손자옥을 보고서 이제 자기 집으로 가자고 한다. 마침 부모님이 조선에 가시고 집이 넓으니 손수석이 하룻밤 신세를 지려고 손자옥을 데리고 그 뒤를 따라간다;
집에 도착하자 마자 손수석이 배인근에게 묻는다; “형님, 요즘 하숙을 치지는 않으시는 모양입니다?”. 배인근이 즉시 답을 한다; “맞아. 요즘은 조선에서 개인적으로 건너오는 노동자들이 별로 없어. 모두들 징병과 징용으로 끌려가고 있으니 그러한 거지…”.
그날 저녁식사를 함께하면서 손수석이 질문한다; “형님, 요즘은 북해도 탄광에서도 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인 광부들이 대세가 되고 있어요. 그래서 오래 광부로 일하고 있던 조선인들이 제 임금을 받기가 힘이 들어요. 저는 가능하면 제가 북해도로 데리고 간 노동자들을 이곳 오사카로 데리고 와서 새로 먹고살 방도를 마련해주고 싶은데 그것이 가능할까요?”.
그 말을 듣자 배인근이 즉답을 한다; “동생 생각이 맞아. 지금 일본제국이 일본의 젊은이들을 대거 징병하여 군대로 끌고 가버렸기에 대도시에서 젊은 인력이 많이 부족해. 그러니 좋은 일자리는 아니더라도 육체노동으로 먹고 살 자리는 충분해. 그러니 아무 걱정 말고 인부들을 데리고 와. 우리집에서 당분간 함께 지내면서 시내의 일자리를 알아보면 되니까…”.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손수석은 손자옥과 함께 동경으로 간다. 오사카에서 동경으로 가는 열차는 상당히 속도가 빠른 편이다. 그래서 동경 역사 주변에서 제시간에 점심식사를 할 수가 있었다;
식사를 마친 두사람은 안춘근이 경영하고 있는 쌀가게에 들린다. 여전히 장사가 잘 되는 가게이다. 안춘근 부부가 반갑게 맞이하면서 손수석이 손자옥을 소개하자 마치 어린 누이동생을 보듯이 그렇게 좋아한다.
안춘근이 손수석에게 말한다; “동생, 아버지는 어저께 부산에서 안용환 백부님을 모시고 함께 동경으로 오셨어. 할머니께서는 연로하셔서 함께 오지를 못하시고 큰 어머니께서 잠시 부산에서 모시고 있는 모양이야. 온 김에 집에 들러 두 분을 뵙고 가시지”. 그러자 손수석이 말한다; “그러면 먼저 집에 가서 어르신들을 뵙겠습니다. 그리고 저녁에 형님과 좀 상의할 것도 있고요…”.
안춘근이 고개를 끄떡인다. 손수석은 자옥이를 데리고 안용운이 살고 있는 저택을 찾아간다;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안용운과 그 부인 박미자 그리고 부산에서 이미 만난 적이 있는 안용환이 손수석을 얼마나 반기는지 모른다. 그러면서 안용운이 웃으면서 한마디를 한다; “수석이 자네는 60이 넘은 늙은이를 부산에 팽개치고서 혼자 고향으로 가버리면 어떻게 하는가? 이 아가씨를 데리고 오느라고 나를 부산에 그냥 두고 떠난 게야?...”.
손수석이 안용운의 그 짓궂은 농을 받고서 급히 대답을 한다; “어르신은 저보다 부산과 동경 사이를 더 잘 아시잖아요. 그 옛날 혼자서 현해탄을 건너와서 동경에서 결혼까지 하신 용감무쌍하신 전력을 가지고 계시는데 제가 무엇을 걱정하겠어요… 이 처녀는 제 사촌 여동생인 손자옥입니다. 이번에 북해도에 있는 형님과 형수님께 데려다 주려고 함께 왔지요…”.
손자옥이 얼른 세분의 어른들께 인사를 드린다. 그제서야 안용운이 모두들 거실의 소파로 가서 앉아서 천천히 차나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권한다. 자리에 앉자 손수석이 안용환에게 묻는다; “제가 듣기로는 진주에서 부산으로 이사하여 이다연 할머니를 모신다고 하던데 어떻게 동경을 방문하실 시간이 되셨던 모양입니다?...”.
그 말을 듣자 안용환이 빙그레 웃으면서 답을 한다; “허, 역시 젊은 사람이 총기가 넘치는 구만. 맞아, 나는 여기 며칠간 머물다가 조선에 들어가면 그렇게 조치를 해야만 하네. 이제는 우리 부부가 부산에서 늙으신 어머니를 편히 모셔야지. 그러니 수석이 자네도 부산에 오면 앞으로 더러 들리게나. 어머님이 자네를 친손주처럼 무척 아끼시더구만…”.
손수석이 이다연 여사의 그 다정한 모습을 생각하면서 ‘꼭 그렇게 하겠다’고 말한다. 사실 안용운이 벌써 자신의 형인 안용환에게 말을 했다; “형님,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는 손수석을 친손주처럼 아끼시면서 저희 부부에게도 그렇게 돌보아주라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손수석의 조부인 서배 할배와 저희 아버지는 평생을 동지로 살아오셨기 때문이지요…”.
안용환은 부친의 그러한 당부가 있었기에 동생 가족이 그토록 손수석을 잘 돌본 것으로 이해를 했다. 손수석을 동경에서 집에 데리고 있으면서 그가 고학을 하고 사환으로 쌀가게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온갖 배려를 해준 것이다. 그리고 그 덕으로 동생 집안의 쌀가게가 엄청 번창하고 있다. 손수석이 그 보답을 크게 하고 있는 것이다.
손수석은 안춘근 부부가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서 식사를 하고 나자 그를 조용히 딴 방으로 불러서 한번 물어본다; “형님, 이곳 동경에서는 조선인에 대한 일본인들의 감정이 어떻습니까? 이제는 크게 반감이 없겠지요?”. 안춘근이 말한다; “일본에 온지 금방인 조선인에 대해서는 어떤지 몰라도 우리같이 오래 일본에서 살거나 아니면 일본풍습을 잘 알고 있는 조선사람에 대해서는 별로 반감이 없지”.
그러자 손수석이 말한다; “지금 북해도 탄광에서는 근래 조선에서 온 광부들이 자꾸만 많아지고 있습니다. 신참인 그들에게는 회사에서 아주 임금을 조금밖에 주지를 않고 있지요. 그러므로 곧 조선에서 대대적으로 강제 징용제가 실시가 될 것으로 전망이 됩니다. 따라서 저는 제가 고향에서 데리고 온 조선인 광부들을 이곳으로 좀 옮겼으면 합니다. 이곳 동경에서 먹고 살 만한 구석이 있습니까?”.
안춘근이 크게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그래, 동생 사정이 그렇다면 그들을 우리집으로 일단 데리고 오게. 이곳 동경에서는 젊은이들이 거의 군대로 끌려가서 젊은 일손이 많이 필요해. 그러니 손으로 벌어먹고 살기에는 아무 어려움이 없네. 언제쯤 그렇게 조치를 할 건가?”.
손수석이 말한다; “제가 이번에 북해도로 올라가면 바로 조치를 취할 생각입니다. 그대로 있다가는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몰라요. 회사에서 분명히 급료를 왕창 깎자고 할 거예요. 그러니 급하지요”. 그리고 손수석이 덧붙여 말한다; “광부들에 대해서는 임금을 줄이겠지만 전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으므로 군부에서 석탄은 더 필요할 것입니다. 광부들이 먹는 쌀은 그대로 공급해주기를 원하겠지요. 그러니 형님 쌀가게에는 아무 영향이 없어요”.
안춘근이 고개를 크게 끄떡인다. 손수석의 사업수완이 대단해서 안춘근의 쌀가게가 북해도에 있는 여러 탄광에 쌀을 대대적으로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익을 손수석과 함께 나누고 있는데 그것이 대단한 수익이다. 조선에서 자신의 쌀가게로 정기적으로 쌀을 보내어 오고 있는데 그 루트를 뚫고 관리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젊은 손수석인 것이다.
안춘근은 자신의 집안이 손수석과 같은 인재를 일찍 돌보고 도와준 것이 참으로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총명하고 뛰어난 인물을 어려서부터 잘 키우게 되면 여러 집안이 융성하게 되는 것이다. 안춘근은 그것이 조부인 안성기 교장의 평소 지론임을 잘 알고 있다. 그 말이 맞다고 하는 사실을 안춘근은 손수석의 경우를 보면서 분명하게 깨닫고 있는 것이다.
손수석은 그 집에서 일박을 하고 다음날 종매 손자옥을 데리고 북해도로 들어가는 열차를 탄다. 본섬 곧 ‘혼슈’ 끝에 있는 ‘아오모리’에서 북해도 남단에 있는 ‘하코다테’까지는 배로 갈아타고 간다;
그 다음에 다시 열차를 타고서 ‘삿포로’까지 손자옥을 데리고 간다. 당시 삿포로가 북해도에서 가장 큰 도시이므로 그곳에 도청이 있다;
그곳 인근 삼판에서 일하고 있는 친형 손수상과 형수 박재순에게 손자옥을 인계해주고 손수석은 ‘비바이’에 있는 자기 회사로 돌아온다;
이제는 회사에 출장보고를 하고 급한 대로, 조선인 광부들에 대한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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