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 할매(손진길 소설)

봉천 할매28(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10. 1. 11:38

봉천 할매28(작성자; 손진길)

 

청년 손수석이 환갑이 막 지난 안용운과 함께 부산항에 도착한 때가 1943년 12월 26일이다. 두사람이 곧장 안성기 교장의 집으로 들어갔더니 병석에서 안성기 교장이 매우 위독하다. 그 옆에는 부인 이다연이 병석을 지키고 있는데 의사분과 안용운의 형 안용환이 부인과 함께 환자를 보면서 걱정스럽게 서있다. 모두들 안색이 어둡다;

안교장의 장남인 안용환은 동생 안용운보다 4살 연상이며 1880년생이다. 그는 평생 교직에 몸담고 있었는데 여러 해 전에 퇴직하여 진주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부친이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곧장 부인과 함께 부산으로 달려와서 며칠째 병상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가까운 의원에서 의사가 정기적으로 왕진을 오고 있다. 벌써 병원에서 사용하는 침대까지 저택에 비치가 되어 있다;

의사는 병석에 누워있는 환자 안성기 교장의 장남인 안용환에게 눈짓을 한다. 그리고 옆방으로 함께 건너가서 환자의 상태에 대하여 안용환에게 알려준다. 그러자 안용환이 다시 방안으로 들어와서 부인은 물론 모친 이다연 여사와 동생 안용운 그리고 조카와 다름없는 손수석에게 조용하게 말한다; “이따 아버지가 잠에서 깨어나시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똑똑하게 들어 두라고 의사가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아세요…”.

그 말의 뜻은 마지막 유언이니 잘 들어 두라는 것이다. 이제 숨을 거둘 때가 된 것 같다는 의사의 소견을 장자인 안용환이 그렇게 가족들에게 둘러서 전하고 있다. 그 말을 듣고 모두들 침통한 표정으로 숨을 죽이고 환자만 내려다보고 있을 때에 마침 안성기 교장이 힘겹게 감았던 눈을 뜬다. 그 눈에 사랑하는 아내 이다연과 두 아들과 맏며느리 그리고 손주와 다름없는 손수석의 모습이 들어온다.

안성기 교장이 그 초췌한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띠우고 있다. 그러면서 가느다란 소리로 천천히 몇 마디를 한다; “너희들이 모두 모였구나… 고맙다. 멀리서들 왔구나… 여보, 겨울날씨가 추우니 애들에게 따뜻한 국물이라도 먹이도록 하세요…나는 당신과 함께 원없이 살았다오. 가고 싶은 곳은 다 가보고 88세까지 살았으니 여한이 없소... 그만 헤어져야 할 때요... 잘들 있으시오…”.

그 말을 하고서 스르르 눈을 감는다. 그리고 편안하게 숨을 멈추고 있다. 손수석이 보기에는 안교장이 자신의 생애를 만족스럽게 생각하면서 눈을 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남은 자신처럼 평생 교직에 있었고 차남은 일본의 수도인 동경으로 장가를 가서 잘 지내고 있으니 그것이면 되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 혼자 남겨두고 먼저 가게 되지만 이다연의 나이도 벌써 85세나 되니 부부가 백년해로를 한 셈이다.

누가 보아도 호상이라고 할 만하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남편을 여윈 아내의 슬픔과 자식들의 애통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손수석이 그 앞에서 마치 자신이 조부를 여윈 것처럼 슬퍼하고 있다. 안성기 교장이 평소에 손수석을 얼마나 아끼고 은근히 돌보아 주었는지 그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례를 지내면서 손수석이 상주의 복색을 하겠다고 말했더니 안용환과 안용운이 말린다;

그저 상주에 준하는 삼베 완장만 차라고 말한다.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상주들이 말리고 있으므로 손수석이 순종을 한다. 그러나 그 마음만은 친손자와 같다. 장례는 3일장으로 했는데 조문객들 가운데 안교장의 동년배로 보이는 지인은 없다. 고인이 워낙 고령이어서 그런 모양이다. 산소는 진작에 부산 근교의 산지에 마련을 해두어서 그런지 장례가 한결 순조롭다.

손수석은 3일동안 초상집에 머물면서 조문객들을 대접하는 일을 돕고 있다. 부엌에서 상을 차려주면 그것을 자리에 앉아 있는 조문객들 앞에 놓아 두는 일이다. 문상을 온 손님들이 천막 아래와 방안에 모여서 술상과 밥상을 받고 있다. 그러면서 고인에 관한 이야기와 요즈음 정세에 관한 이야기들을 서로 나누고 있다;

그렇게 나누고 있는 이야기들이 손수석의 귀에 들어온다. 모두들 일제의 전쟁 놀음 때문에 조선백성들이 절단이 나고 있다고들 말한다. 젊은이들이 징병을 당해서 일본의 군대에 끌려가 총알받이가 되고 있고 장정들도 징용으로 끌려가서 생고생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젊은 처녀들을 나라에 충성하는 ‘정신대’로 모집하여 방위산업체와 방직공장에서 급료도 없이 일을 시킨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은 그 정도가 아니라고 한다. ‘정신대’ 가운데 상당수를 강제로 병영에 끌고가서 ‘위안부’로 부리고 있다고 하는 소문이 자자하다. 천인공노할 일이다;

자신의 나라가 없으니 조선의 백성들이 일제의 노예로 살고 있다. 남자들은 그들의 머슴이고 여자들은 그들의 노리개가 되고 있다. 이제는 전장에서 종 노릇을 하고 그들을 대신하여 죽어 나가고 있다. 일제가 ‘대동아공영권’이 어쩌고 떠들고 있지만 모두가 헛소리라는 말이다. 그렇게 이웃나라를 침략하고 조선백성들을 계속 전장으로 내몰고 있으니 반드시 천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소리를 죽여가면서 문상객들이 은밀하게 일제를 저주하고 있다.

손수석은 문상객들이 비밀리에 나누고 있는 말들을 통하여 일제가 열 대여섯살 처녀까지 전장으로 끌고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것참 큰일이다. 자신의 고향인 내남 너븐들에도 가까운 친척 가운데 그 정도 나이의 처녀는 있다. 그러므로 빨리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그래서 손수석은 3일만에 발인과 매관이 모두 끝나자 그 다음날 일찍 고향 내남으로 출발을 하고자 한다.

그때 미망인 이다연 여사가 한마디를 한다; “수석아, 나도 나이가 많으니 언제 너를 다시 볼 수가 있을지 모르겠다. 이채령 언니의 손자인 수석아, 너는 나의 언니인 이가연의 질녀 봉천 할매 정애라의 아들이기도 하니 나와도 무관한 사이가 아니다. 부디 몸 건강하게 잘 살기를 바란다. 그리고 서배 할매 이채령의 부탁도 너는 훌륭하게 이행을 했으니 이제는 너의 인생을 살도록 해라. 좋은 아내를 맞이하여 다복하게 살기를 나도 그리고 이제 고인이 된 안교장도 바라고 있을게야. 명심해라 수석아. 내 손자같은 수석아…”;

참으로 정이 많은 할머니 이다연이다. 손수석은 마치 친할머니 이채령의 쭈글쭈글한 손을 만지듯이 그렇게 이다연의 손을 잡으면서 눈물로 이별을 고한다. 그때 마지막으로 이다연 여사가 한마디를 보탠다; “수석아, 나는 장남인 용환이가 진주에서 이 저택으로 이사를 와서 나와 함께 살기로 했다. 그러니 너는 다음에 부산에 오게 되면 이 집에도 다시 들려주기 바란다. 내가 야무지고 똑똑한 너를 다시 보고 싶구나”.

손수석은 부산에서 경주로 가는 열차 안에서도 이다연 여사의 그 마지막 모습과 당부를 다시 생각하고 있다. 안성기 교장 부부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아껴주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동경에 있는 아들 안용운과 손자 안춘근을 통하여 2년간 자신이 고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다. 그리고 안교장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손수석에게 많이 전수를 해준 것이다. 그러니 스승이고 멘토인 셈이다. 손수석은 자신도 장차 그러한 스승이 되어야 하겠다고 결심한다.

고향인 내남 너븐들에 들린 손수석은 부모님께 인사를 드린 다음에 친형인 손수정과 형수를 만난다. 장조카인 손진화가 벌써 5살이고 질녀인 손화순이 2살이다. 오늘이 1943년 12월 29일이니 이제 3일만 지나면 양력으로 새해가 되고 그들의 나이가 6살과 3살이 된다. 꼬마들이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그렇게 형의 아들과 딸을 귀여워하는 손수석을 보고서 형수 김옥순이 한마디를 한다; “도련님도 이제는 장가를 가셔야 하겠어요. 곧 22세가 될 것이니 결혼이 늦어지고 있어요”. 그 말을 듣자 손수석이 대꾸를 한다; “원, 형수님도. 저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어서 결혼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어요. 급한 일이 일단락이 되면 그때 가서 결혼을 생각할 거예요”.

김옥순이 시동생인 손수석이 말하고 있는 그 급한 일이 무엇인지 알지를 못한다. 그래서 말한다; “도련님도 참, 이 세상에 혼사보다 더 급한 일이 무엇이 있다고 그러세요. 결혼을 하고 자손을 번성하게 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인 걸요”. 그 말을 듣자 손수석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형수님 말씀도 맞아요. 그것이 그 다음으로 중요한 일이지요”.

하지만 손수석은 그 급한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결코 발설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고향에서 그 다음에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보게 되면 그것이 무엇인지 눈치를 챌 수가 있다. 손수석이 그날 부친 손영주의 친형인 손영한의 집에 들린다. 손영한과 그 부인인 이신자에게 문안인사를 한 다음에 북해도에 있는 형 손수상의 안부를 전해준다.

그리고 손수상 부부가 자신에게 맡긴 돈을 가방에서 꺼내어 그들에게 전한다. 그동안 모은 꽤 많은 돈이다. 당시 조선 농촌의 실정으로는 적지 않은 거금인 것이다. 그들 부부가 흐뭇해 하는 것을 보고서 손수석이 본론을 꺼낸다; “큰 아버지, 큰 어머니, 막내딸 손자옥이 금년에 몇 살입니까?”. 이신자가 즉답을 한다; “애도 싱겁기는… 네 동생인 수권이와 동갑이니 18살이지. 이제 해가 바뀌면 19살이 되고…”.

그 말을 듣자 손수석이 걱정스러운 듯이 말한다; “큰 어머니, 그렇다면 큰일입니다. 제가 오는 길에 부산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곳에서는 처녀들이 많이 징용을 당하여 전쟁터로 끌려가고 있다고 해요. 그래서 일찍 조혼을 시키고 있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19살이 다 되어 가는 딸을 그대로 두고 있다가는 어떤 봉변을 당할지도 몰라요. 부산 대도시에서 그러하다면 그 마수가 곧 이곳 시골까지 닥치게 될 거예요”.

그러자 이신자와 손영한이 동시에 말한다; “사정이 그렇다면 당장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 갑자기 자옥이를 아무데나 시집을 보낼 수도 없지 않느냐?”. 그 말을 듣자 손수석이 조용히 말한다; “큰 아버지, 큰 어머니, 당장 형편이 그러하니 차라리 제게 맡기시지요. 제가 북해도 삼판에서 일하게 되는 것으로 서류를 작성하여 자옥이를 형 집에 데려다 놓겠습니다. 그것이 안전할 거예요”.

좋은 생각이다. 잠시 떨어져 지내는 것은 서운하기 그지 없지만 그래도 일제에 의하여 끌려가는 것보다는 한결 나은 것이다. 그래서 망설임이 없이 당사자인 손자옥의 의사를 타진한다. 그랬더니 손자옥이 당차게도 그렇게 하겠다고 말한다. 생각보다 강한 구석이 있는 처녀이다. 그래서 손수석은 이틀 후에 일본으로 들어갈 것이니 가방을 잘 챙겨 두라고 거듭 당부를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돌아온 손수석은 모친 정애라에게 은밀하게 큰돈을 내놓는다. 그리고 말한다; “어머니, 이번에는 이 돈으로 우리 고향 말고 경주 교리 최부자가 가지고 있던 토지 가운데 팔려고 내놓은 땅들을 좀 사두시지요. 그들은 아마 천북 쪽에 상당한 전답을 가지고 있다가 일부 처분을 하고 있을 거예요”. 봉천 할매 정애라는 아들 손수석이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지 잘 몰라서 묻는다; “수석아, 어째서 관리하기가 편한 고향 쪽이 아니라 북쪽에 있는 천북의 땅을 사라고 하느냐?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

그러자 손수석이 웃으면서 말한다; “어머니, 나중에 혹시 필요해서 처분을 하고자 하면 일가들이 부치고 있는 전답은 손을 대기가 힘이 들어요. 그러므로 고향이 아닌 곳에 토지를 마련해두는 것이 때로는 필요하답니다. 그래서 그런 거에요. 그리고 요즘은 큰 지주들이 서서히 재산을 정리하여 대도시로 떠나고 있어요. 그러니 교리 최부자도 예외가 아니지요. 염려하지 마시고 그렇게 하세요. 그것이 나중을 위해서 좋은 거예요”.

봉천 할매 정애라는 자신이 아들 하나는 영특하게 잘 낳았다고 생각한다. 마치 제갈공명과 같은 아들이다. 어떻게 그 젊은 나이에 먼 미래까지 보고 있는지 모른다. 어려서부터 총명하더니 단신으로 일본 동경에 가서 그러한 놀라운 것들을 보고 배웠는가 보다... 봉천 할매는 그저 그렇게 생각을 하고 만다.

사실은 누구나 일본 동경에서 공부를 했다고 하여 다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뼈빠지게 고생을 하면서도 한가지 소원을 품고 있지 아니하면 어림도 없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손수석은 그러한 연단을 거친 인생이기에 그 젊은 나이에 그토록 영악하게 미래를 전망하고 벌써 대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그가 그 다음에는 일본으로 들어가서 과연 무엇을 할까? 이번에는 사촌 여동생인 손자옥까지 데리고 함께 일본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그는 부산에 있는 수상경찰서에서 손자옥의 ‘도항증’을 발부 받아 1944년 1월 2일에 시모노세끼로 가는 ‘관부연락선’에 자옥이와 함께 벌써 타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