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 할매(손진길 소설)

봉천 할매38(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10. 3. 02:48

봉천 할매38(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 정애라와 그녀의 아들 손수석이 천북을 방문하고 돌아온 지 이틀이 지나자 1945년 8월 26일에 손수석의 종매인 손자옥과 그 남편 장기동이 이사를 한다. 지난 22일에 장기동이 경주 사리에 있는 집과 전답을 사려고 계약하였는데 그것이 워낙 급한 매물이라 어제 벌써 잔금을 치룬 것이다.

오늘 그 집으로 장기동 부부가 이사를 들어가고자 한다. 그들 부부가 작년에 일본 북해도에서 혼인서약을 하고 함께 살기 시작했는데 일년만에 자기들 힘으로 조선에서 집과 농토를 사서 이사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손자옥의 부친인 손영한과 모친 이신자는 이제서야 마음이 놓인다.

그래서 손영한이 부인 이신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보, 농번기라 농사일이 바쁘기는 하지만 내일은 당신이 수상이와 함께 자옥이 부부의 이사를 하루 도와 주시구려. 이삿짐이야 별것이 없지만 자옥이가 임신하여 몸이 무거우니 그곳까지 30리길을 걸어서 가기가 힘들 것이요…”;

이신자가 남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 들었다. 그래서 양자인 손수상에게 말한다; “아범아, 내일은 소달구지에 자옥이 부부의 짐을 싣고 나와 함께 경주 읍내에 다녀 와야 되겠다. 자옥이가 몸이 무거우니 달구지에 타고서 사리까지 가야할 것 같애”. 손수상은 노동에 이골이 난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 정도의 일은 일거리도 아니다. 그래서 시원하게 대답을 한다; “어머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무 염려 마세요. 제가 어머니까지 편하게 소달구지에 태워서 가겠습니다”.

손수상은 양어머니인 이신자가 벌써 환갑인 노인임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함께 소달구지에 태워서 경주 사리까지 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한 수상이의 효심을 알고서 이신자가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말한다; “아범아, 고맙다. 그러면 내일은 이 에미가 참으로 편하게 경주 나들이를 할 수가 있겠구나”.

이신자는 저녁에 이웃에 살고 있는 아래 동서인 봉천 할매 정애라를 만나서 말한다; “동서, 내일 바쁜 일이 없으면 나하고 함께 경주 읍내에 나들이를 한번 하지 않겠나?”. 내일은 8월 26일이라 경주 오일장이 서는 날이 아니다. 그리고 요즘은 농사일에 농부들이 모두 바쁘다. 그런데 어째서 내일 경주 읍내에 가려고 하는 것일까?...

그래서 봉천 할매가 물어본다; “형님, 어째서 내일 일부러 경주 나들이를 하려고 하세요? 농사일이 바쁘실 터인데…”. 그러자 이신자가 기분 좋게 빙그레 웃으면서 말한다; “글쎄, 우리 장서방이 경주 사리에 사둔 집으로 내일 이사를 나가겠다고 하는구먼… 그러니 내가 가서 집청소도 해주고 자옥이가 살림 장만하는 것도 좀 도와주려고 해. 그런데 나 혼자 가면 심심해서 그렇지 뭐…”.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이신자는 동서인 봉천 할매에게 좀 미안하여 말꼬리를 흐리고 있다. 그 이유는 일본에서 제멋대로 혼인을 하고 배가 불러서 고향에 온 자옥이를 이신자 부부가 크게 꾸중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 봉천 할매가 나서서 자옥이와 그 남편 장서방을 감싸주고 자신의 집에서 지내도록 했다. 그리고 일본에서 돌아온 손수석이 장기동과 함께 경주에 가서 그 사리의 집과 전답을 사는 일을 도와주었다.

일이 그렇게 잘 풀려나가자 이신자 부부가 마음이 어느 정도 풀려서 막내딸 자옥이 부부를 친정집에 들어오게 하여 이사를 갈 때까지 며칠 지내도록 했다. 그러니 고생은 봉천 할매와 그 아들 손수석이 하고 열매는 이신자 부부가 맛보게 생겼으니 괜히 미안한 것이다.

그렇지만 봉천 할매는 그 정도 일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그녀는 통이 큰 여장부이다. 아마도 경주 읍내 중심지 성동에서 자라서 그런 모양이다. 그래서 활달하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형님, 축하 드립니다. 자옥이 부부가 벌써 경주 읍내에 집과 전답을 사서 이사를 나가게 되니 우리 너븐들 사람으로서는 처음 있는 경사입니다. 그러니 제가 당연히 형님과 함께 가서 그 일을 도와주어야 하지요”.

이신자는 자기보다 5살이나 어린 동서 봉천 할매가 참으로 든든하고 고맙다. 그래서 진심으로 말한다; “동서, 내가 동서 복이 많아. 아들을 우리집에 양자로 주고 또한 우리 막내 딸 자옥이 정신대에 끌려 나가지 않도록 수석이를 통하여 도와주어서 고마워. 그리고 이제는 20살에 불과한 자옥이가 벌써 남편과 함께 경주 읍내에 자기들 힘으로 집과 농토를 사서 이사를 하게 되었으니 그것이 모두 동서와 수석이가 도와준 덕분이지. 그러니 내가 내일 경주 읍내에 가면 한턱 크게 내겠네”;

그 말을 듣자 정애라가 말한다; “형님, 그러면 내일 크게 한턱 사시는 것으로 알고 제가 기대를 엄청 하고 동행하겠습니다. 그리고 함께 수고한 수석이도 제가 데리고 갈게요. 호호호…”. 이신자가 그 말을 듣고서 역시 호탕하게 말한다; “좋지 좋아, 내가 조카 수석이에게도 크게 한턱을 내야 하고 말고… 그 조카 덕택에 우리 집이 잘 되고 또한 너븐들 일가들이 모두들 부자가 된 것이 아닌가? 그러니 내가 자네와 조카를 잘 대접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 그렇고 말고”.

봉천 할매 정애라는 이신자의 그 말이 진심임을 안다. 평소 헛된 약속을 하는 법이 없는 이신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한다; “형님이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저희들도 이제야 자옥이를 일본에서 잘못 돌보았다고 하는 죄책감을 벗을 수가 있게 되었으니 말이예요. 형님, 그러면 내일 아침에 뵙겠습니다”.

손수석은 내일 아침에 자옥이 부부가 경주 사리로 이사를 나가게 되었으니 함께 경주 읍내에 가서 도와주자고 모친이 말하자 선선하게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한다. 사실 손수석은 벌써 종매제인 장기동으로부터 내일 이사를 나간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손수석은 내일 자신이 장기동 부부와 동행하기로 이미 작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손수석은 부친 손영주를 닮아서 그런지 친지를 한번 도와주면 끝까지  도와주는 그러한 성품이다. 그 성품 때문에 짧게 보면 세상적으로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길게 보면 그것이 아니다. 조선사람의 심성은 은혜를 입으면 대체로 그것을 꼭 갚고자 한다. 그래서 그런지 결국 손수석은 그 보답을 크게 얻고 있는 것이다.

8월 25일 저녁에 장기동은 너븐들 동네를 한바퀴 돌면서 두루 인사를 한다. 그가 방문하는 집에는 대부분 일본에서 함께 돌아온 동지들이 살고 있다. 그들이 이제는 장기동의 인척들이다. 한 순배 동네인사가 끝나자 장기동은 아내 손자옥과 함께 장인 장모에게 큰절을 올린다. 그리고 손수석의 집에 들러 손영주 부부에게도 큰절을 한다.

그 다음날 26일 아침식사를 일찍 끝내고 장기동 부부는 경주 읍내로 이사를 간다. 장기동과 손수석이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신작로를 앞서 걷는다. 그 뒤에서는 손수상이 소달구지에 짐과 사람을 태우고 따라가고 있다. 그 소달구지에는 이신자와 봉천 할매 정애라 그리고 산모인 손자옥이 타고 있다;

8월 26일의 여름날씨가 아침나절에는 먼 길을 가기에 딱 좋다. 그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천천히 3시간을 걸어서 경주 사리 동네에 들어선다. 장기동이 사 놓은 집이 다시 보니 상당히 넓은 기와집이다. 그리고 집 앞의 문전 옥답에서는 벼가 잘 자라고 있다. 그 넓은 집과 풍성한 논을 바라보면서 장기동과 손자옥은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것만 같다.

경주 인근의 그 집과 논을 처음 본 이신자와 정애라는 탄복을 한다. 그러자 그 옆에서 손위 처남이 되는 손수상이 한마디를 한다; “참으로 집이 넓고 쓸모가 있구나. 그리고 논이 평평하고 토질이 좋아 보여. 장서방은 이제 농사만 지어도 먹고 사는데 걱정이 없겠어... 그동안 일본에서 나하고 같이 일하고 돈을 버느라고 참 고생을 많이 했지. 그렇지만 이제는 그 보람이 있네 그려…”;

그 칭찬을 듣자 장기동이 자신의 머리를 긁으면서 쑥스러운 표정으로 그냥 서있는데 그 옆에서 손자옥이 톡 한마디를 한다; “어머니 그리고 숙모님, 사실은 저도 일본 북해도 함바 식당과 오사카에서 1년 6개월이나 일하고 절약하여 크게 보탠 거예요. 그러니 이 집과 논 구입비의 3분의 1은 제 돈이라구요…”.

그 말을 듣자 이신자와 정애라가 배꼽을 잡고 웃는다. 너븐들 고향에서는 마치 죄인처럼 지내더니 여기 경주 사리 자기 집에 이사를 오니 이제는 살판이 난 것이다. 평소 얌전해 보이는 손자옥이 제 몫을 착실하게 챙기는 앙칼진 면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한편으로는 귀엽기도 하다.

이사를 왔다고는 하지만 살림살이가 별로 없다. 그것을 보고서 이신자가 사위인 장기동에게 말한다; “오늘은 먼 길을 왔으니 여기서 점심식사 준비를 하지 말고 경주 읍내에 다같이 나가서 식사도 하고 살림살이를 좀 사 오도록 했으면 좋겠어. 내가 한턱 크게 쓸 테니까 그렇게 하도록 하자구”. 이신자 여사가 참으로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그래서 집안에 짐을 들여놓고 모두들 30분정도 걸어서 경주 웃시장 근처로 간다. 손수상은 소 달구지를 끌고 왔는데 그 이유는 이신자가 자옥이와 함께 살림살이를 사게 되면 그것을 운반하기 위한 것이다. 모두들 시장입구의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식사가 끝나자 봉천 할매가 이신자에게 말한다; “형님, 저는 수석이와 함께 오래간만에 친정에 좀 들렀다가 바로 너븐들로 가고자 합니다. 새집 청소를 못 도와주어서 미안해요”.

그러자 이신자가 말한다; “집을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팔아서 그런지 별로 손댈 데가 없어. 그러니 동서는 아무 염려하지 말고 그렇게 하시게나”. 손수석이 백모인 이신자에게 먼저 인사하고 그 다음에는 둘째 형인 손수상과 종매제 장기동에게 인사를 한다.

마지막으로 사촌 누이인 손자옥에게 말한다; “자옥아, 그동안 마음 고생이 많았다. 이제는 사리 집에서 자식을 낳고 장서방과 함께 즐겁게 살아가도록 해라. 축하한다”. 그러자 갑자기 손자옥이 울먹이면서 말한다; “오빠, 참으로 고마워요. 저를 일본까지 데려가시고 또 이렇게 좋은 남편 만나게 해주시고… 이렇게 좋은 집으로 이사까지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셨으니 그 은혜에 감사해요. 경주 읍내에 오시면 저희 집에 꼭 들러 주세요. 제가 따뜻한 식사대접을 해 드릴께요…”.

아내 손자옥이 그렇게 울먹이면서 말을 하자 장기동이 손수석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 말한다; “수석 처남은 제가 일본 홋카이도에 살고 있는 동안 늘 나의 우상이었어요. 나이는 나보다 적어도 그 도량과 지혜가 남달랐지요. 그래서 나는 그 인척이 되어 이렇게 가까이에서 살고 싶었답니다. 그러니 자옥이의 말처럼 자주 들러 주세요. 저는 그렇게 함께 살아가고 싶습니다”.

손수석은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그 추운 북해도에서 함께 살아온 동지이다. 그러므로 힘껏 포옹을 한 다음에 헤어진다. 봉천 할매 정애라는 그 장면을 보면서 아들 손수석이 그들에게 어떠한 신뢰와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인지를 새삼 깨닫고 있다. 이제 23세에 불과한 셋째 아들 손수석이다. 그러나 그 도량과 지혜와 용기가 보통이 아니다. 어둡고 캄캄한 일제 강점기에 일가친척들에게 살길을 인도해준 인물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봉천 할매 정애라는 그날 아들 손수석을 데리고 그 웃시장 돼지국밥 골목으로 들어간다. 동생인 정한욱 내외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하여 몰려 오는 손님으로 인하여 한창 바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생 내외에게 아들 손수석이 일본에서 해방을 맞이하여 돌아왔다고 말한다. 손수석은 식당일에 바쁜 그들에게 간단하게 인사만 하고서 나중에 교리집으로 찾아 뵙겠다고 말한다.

그 다음에 봉천 할매는 아들 손수석을 데리고 사정에 있는 회생의원을 찾아간다. 그곳에 근무하고 있는 절친 오예은에게 아들을 인사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그 의원건물이 그날은 좀 이상하다. 손님은 별로 없고 입원실에 일본인 여자들이 많이 기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여자들이 일본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니 분명히 일본 사람들이다.  

봉천 할매 정애라가 간호사방에서 손수석과 함께 기다리고 있으니 10여분이 지나자 오예은이 나타난다. 55세의 나이에 여전히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그녀이다. 오예은이 동무 정애라를 오래간만에 보았는지 방에 들어서자 마자 ‘어머머’하고 기뻐한다. 그러자 정애라가 말한다; “얘는 며칠 못 보았다고 내가 그렇게 보고 싶던… 그래 잘 지냈어, 예은아?”.

오예은이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와락 정애라를 껴안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손수석은 참 구김살이 없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자 정애라가 오예은에게 말한다; “예은아. 오늘은 드디어 내가 아들 수석이와 함께 너에게 왔다. 며칠 전에 일본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내 아들이야… 벌서 알고 있지. 예은아?”.

오예은이 손수석을 쳐다보다가 손을 내민다. 손수석이 악수를 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사이에 그녀가 손수석의 손을 잡으면서 말한다; “내 친구 정애라가 얼마나 네 칭찬을 많이 했는지 내가 귀에 딱지가 생겼다. 이렇게 직접 보게 되니 참으로 기쁘구나. 내가 너의 모친과 한동네에서 자란 소꿉친구이니 앞으로 나를 이모라고 불러라”.

손수석이 깊이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하면서 말한다; “제가 어머니로부터 제일 말씀을 많이 들은 분이 바로 오예은 간호사님이세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앞으로 이모님으로 잘 모실 게요. 잘 부탁합니다. 이모님”. 그 말을 듣자 오예은이 말한다; “어머머, 애라야, 너의 아들이 말하는 것 좀 봐라. 내가 딸이 있다면 금방 사위로 삼고 싶구나”. 그러자 봉천 할매가 웃으면서 놀리듯이 말한다; “예은아, 너는 딸이 없지 않니? 그러니 마음 놓고 그렇게 말하는 거지…호호호”.

그 말을 듣자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오예은이 깔깔거리고 웃는다. 그러자 정애라가 불쑥 물어본다; “그런데 예은아. 너의 병원이 오늘은 좀 이상하다. 손님이 별로 없고 입원실에는 일본여자들이 가득 차 있다. 무슨 일이 있니?”. 오예은이 말한다; “그래, 의사인 오빠 오예준이 이제 62세의 늙은이야. 그래서 의사일을 관두려고 해…”.

봉천 할매와 손수석이 그 말에 귀를 기울이자 오예은이 이어서 말한다; “오빠는 경주 시내 중심지에 큰 집을 하나 구입했어. 그 집은 도로변에 사무실이 딸려 있어. 그곳에서 오빠는 한약을 취급하려고 해. 그리고 안채에서는 여기에 모여 있는 일본여자들을 돌볼 생각이야. 그녀들은 일본에 돌아갈 곳이 없는 불쌍한 분들이야…”.

그날 오예은 간호사의 말이 그러하다. 그녀의 의붓아버지인 미국선교사 오하원이 조선에서 위기에 처한 일본여자들을 구하고 돌보는 사업을 대구에서 벌써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서 오빠 오예준이 큰 결심을 하고서 의사일을 접고 경주에서 그 일을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자 봉천 할매가 묻는다; “그러면 경주사람들은 앞으로 어디 가서 의사의 진료를 받게 되니?”. 오예은이 답한다; “그 점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동안 이 병원에서 근무를 하던 실습생 두 사람이 경주시내에 곧 의원을 차릴 거야. 그러니 별 문제가 없어”;

그날 내남 너븐들로 돌아오면서 봉천 할매 정애라와 아들 손수석은 깊은 생각에 잠긴다. 미국 선교사이며 의사인 오하원이 그동안 조선사람들을 돌보아주었는데 이제는 위기에 처한 일본사람까지 돕고자 나서고 있다. 그의 아들도 그러하다. 그들이 믿고 있는 기독교는 조선사람 일본사람 차별하지 아니하고 모두 치료하고 돌보아 주고자 하는 종교인가 보다. 하기야 경주 사리에 이사를 한 장서방도 그러한 천주교의 신자가 아닌가.

봉천 할매와 손수석은 잘 알지 못하지만 일찍이 최제우가 시작한 동학도 그러한 사상을 전파한 것이다. ‘시천주’의 개념이라고 하는 것이 천주를 모시면 모든 사람이 인종과 국적을 떠나서 다 평등하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만민평등사상’이 동학이나 천주교나 기독교나 다 마찬가지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