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 할매40(작성자; 손진길)
1945년 10월 한달은 봉천 할매와 아들 손수석이 무척 바빴다. 너븐들의 일가들이 먹고 살 양식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손수석이 먼저 알고서 경주 읍내 싸전으로 가서 쌀을 사오기에 분주했던 것이다. 그것을 보고서 봉천 할매는 가까운 내남 덕천과 이조의 큰 농가를 방문하여 그들의 잉여 곡식을 사 모았다.
손수석이 그렇게 사 모은 곡식으로 내년 추수때까지 너븐들 일가들이 먹고 살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너븐들의 일가들 가운데 일본에서 돌아온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번 돈을 어떻게 했을까? 그들은 벌써 그 돈을 고향에 송금하여 착실하게 토지를 사 모으는데 사용하고 말았다. 따라서 그만 양식을 살 돈이 별로 없는 것이다. 그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 손수석은 자신이 지닌 현찰로 양식을 구하여 그들을 구휼하고 있는 것이다.
양식을 구입하는 일이 일단 끝나자 손수석은 1945년 11월 중순에 대구를 방문한다. 동인동에 살고 있는 고 장인식 교장의 미망인 최순옥 여사에게 귀국인사를 드리기 위한 것이다. 물론 일본 오사카에서 장화옥과 배인근이 자신에게 부탁한 안부를 그 집에 전하고자 한다;
대구에 살고 있는 장교장의 아들 장철민이 노모를 자기 집에 편하게 모시고 있다. 그런데 최순옥 여사가 참으로 고령이다. 89세의 몸인지라 손수석이 그 집을 방문해보니 최순옥 여사가 자리보전을 하고 병석에 누워 있다. 그래서 손수석이 병자 앞에서 절을 하려고 했더니 장철민이 그만 두라고 말한다.
장철민의 말인즉, 고령에 치매 기운마저 있어 모친이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니 병석에 계신 분에게 일부러 절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자 손수석아 조용히 반절을 하고 물러나온다. 그리고 장철민에게 일본 오사카에서 만난 장화옥 가족의 안부를 전해준다. 여동생 가족의 소식을 듣고서 67세의 노인인 장철민이 손수석에게 고맙다고 말한다.
그날 장철민은 하루 자신의 집에 묵으라고 손수석에게 적극 권한다. 저녁이 되면 자신의 아들 장호성과 손자 장경국이 집에 돌아올 것이니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놀다가 내일 고향인 내남으로 편하게 돌아가라는 권유이다. 손수석은 장경국이 자신보다 한살이 적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를 만나볼 겸 그렇게 하겠다고 말한다.
장호성과 장경국이 부자간에 나란히 퇴근을 하여 집에 온다. 장호성은 43세의 중년이고 그의 아들 장경국은 22살의 청년이다. 그러므로 손수석은 장호성 부부에게 절을 하고 장경국의 옆자리에서 함께 저녁식사를 한다. 식사가 끝나자 장경국이 자신의 방으로 가자고 한다. 비슷한 연령이므로 하룻밤 자기 방에 묵으면서 젊은이끼리 이야기나 실컷 하자고 하는 것이다.
그날 손수석은 장경국에게 물어본다; “장형, 부자간에 나란히 퇴근을 하여 집에 오던데 무슨 일을 하기에 그렇게 같이 다니는 거요?”. 그 말을 듣자 장경국이 웃으면서 말한다; “아버지와 저는 운수업을 하고 있어요. 대구역에는 마루보시도 있지만 일본군이 남기고 간 트럭을 구하여 운수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아버지는 운전을 하고 저는 조수 겸 일꾼으로 같이 일하고 있어요”;
그 말을 듣자 손수석이 물어본다; “수입이 어느 정도 됩니까?”. 장경국이 웃으면서 말한다; “생각보다 많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짐을 빠른 시간에 옮길 수가 있으니 그렇지요. 이대로 계속하면 아마 아버지는 큰 부자가 되실 거예요”. 손수석이 장경국의 그 말을 마음속에 담아 둔다. 그 참 좋은 사업거리이기 때문이다.
잠이 금방 오지 않는지 장경국이 손수석에게 묻는다; “손형, 일본 북해도에서 오래 일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그곳은 얼마나 추운 곳입니까?”. 손수석이 답을 한다; “만주보다 더 추운 고장이지요. 그런 지역에서 조선사람들이 광부일과 벌목일을 했지요. 제가 데리고 간 고향사람들은 그곳에서 정식 고용이 되어 일을 했기에 그나마 돈을 좀 벌었는데 나중에 징용으로 오신 분들은 전혀 그러하지를 못했지요”.
장경국이 말한다; “용하게도 손형은 고향의 젊은이들을 정식 일꾼으로 일찍 일본에 잘 데려가신 것입니다. 만약 늦었더라면 그들도 징용으로 끌려가서 고생만 하고 빈손으로 돌아올 뻔 했어요. 손형 덕분에 고향사람들이 징용을 면한 것이지요”. 그 다음에 장경국이 물어본다; “장차 조선과 일본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언제 저희들이 일본 오사카에 살고 있는 친척들과 내왕이 가능할까요?”.
지난 8월 15일에 일본 천황이 항복을 선언한 이후 조선에 머물고 있던 일본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갔다. 반대로 일본에 체류하고 있던 조선인들이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자 일본과 조선 사이에는 민간인 교류가 당국의 허가가 없이는 어려워지고 만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조선사람들은 이제 고향이 일본이라 조선으로 들어오지를 못하고 있다.
그러한 저간의 사정을 알고서 장경국이 손수석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손수석이 신중하게 답을 한다; “제가 일본 동경에 들렀을 때에 선견지명이 있는 안춘근 형이 제게 말씀을 하셨지요. 장차 조선에 정부가 서게 되면 정식으로 일본과는 교류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어요. 서로 상당기간 원수지간으로 지내다가 먼 훗날 다시 수교가 되고 민간교류가 가능할 것으로 그렇게 전망했지요. 저도 그렇게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장경국이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떡인다. 이제는 일본 오사카에 살고 있는 고모 할머니의 가족을 볼 수 있는 길이 막힐 것임을 그가 깨닫고 있는 것이다. 잠시후에 장경국이 다시 묻는다; “손형은 지금의 해방정국을 어떻게 보고 있어요? 미국이 군정을 실시하면서 조선의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그것이 좀 이상하지 않아요?”.
손수석이 답을 한다; “나는 정치에는 문외한이라 잘 모르지마는 동경의 안춘근 형이 말씀하신 내용만은 기억하고 있지요. 미국을 위시한 연합국은 조선을 ‘제2의 일본’으로 보고 있다는 거예요. 일제와 함께 자신들에게 총을 겨눈 적국이라는 인식입니다. 그러므로 조선에 군정을 실시하고 군국주의 일본의 잔재를 청산하는 정책을 최우선적으로 실시할 것이라고 춘근이 형이 본 겁니다”.
그 말을 듣고서 장경국이 말한다; “그것은 조선의 역사적인 배경과 동떨어진 인식을 연합국이 하고 있는 것이군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손수석이 간략하게 답을 한다; “제 생각으로는 조선의 지도자들이 무엇보다도 연합국에게 조선이 일제에 의하여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이 수탈을 당했으며 전쟁의 피해를 엄청 입었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말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빨리 조선사람들이 자신들의 정부를 수립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요청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들은 잠이 든다. 이튿날 손수석은 열차편으로 대구에서 경주로 온다. 그리고 팔우정 인근에 살고 있는 고민달의 집을 방문한다. 고민달은 부인과 함께 집을 깨끗하게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집에 딸려 있는 텃밭이 상당히 넓다. 그들은 그 밭에 그동안 채소를 많이 재배한 것으로 보인다;
부지런한 고민달은 소달구지로 남의 이삿짐도 실어주고 시장의 물건 나르는 영업도 하고 있다고 한다. 참으로 부지런한 고민달 부부이다.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 그들 부부를 만나서 그런지 집으로 돌아가는 손수석의 발걸음이 가볍다. 벌써 1945년11월 농한기이고 한달 남짓 지나면 새해가 밝아온다. 1946년에는 어떤 희망의 소식이 조선사람들에게 전해질 것인가? 손수석은 3천만 조선인이 하나의 정부를 구성하여 민주공화국으로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소망해본다.
그리고 좀더 구체적인 소망도 가지고 있다. 이제 조선은 인구가 많아졌으므로 농업생산만으로는 먹고 살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 도시에서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이제야 말로 산업화와 근대화를 조선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야 한다. 과연 그러한 일을 내년에는 시작할 수가 있을까? 염원을 하고는 있지만 역시 쉽지 아니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당장은 내년에 또 농사를 지어 식구들과 고향의 일가들을 먹여 살리는 일이 급하다. 대풍이 들면 모르겠지만 그러하지 못하게 되면 굶는 사람들이 많이 발생할 것이다. 그 일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젊은 가주 손수석의 고민이 깊어진다.
그런데 양식이 부족한 집에 식구가 자꾸만 늘어난다는 말이 있듯이 1946년 4월에 손영주의 장남 손수정 부부가 또 득녀를 한다. 그 이름을 봉천 할매가 ‘손화련’이라고 짓는다. 그 이름자가 예쁘고 좋다고 하여 그렇게 지었는데 실제로 불러보니 그러하다;
봉천 할매의 집만이 아니다. 일본에서 돌아온 너븐들의 젊은이들이 지난 농한기에 결혼들을 하고 또한 이미 결혼한 가정에서는 자녀들이 많이 태어나고 있다.
너븐들 일가들에게 식구가 많이 불어나는 것을 보고서 손수석은 그들을 모두 먹여 살려야 한다는 가주의 책임감 때문에 어깨가 무거워진다. 그것을 보고서 모친인 봉천 할매가 한마디를 한다; “사람이 부지런만 하면 모두들 먹고 살도록 되어 있어. 그러니 너무 걱정을 하지마라. 설마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어… 아기들이 제 먹을거리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옛날부터 어른들이 말하고 있으니까…”.
모친의 이야기를 듣자 손수석의 귀가 번쩍 뜨인다. 그렇다. 삼신할미가 생명을 이 세상에 점지하여 보내어 줄 때에는 먹을거리도 함께 보내어 준다고 한다. 그렇다면, 반드시 먹고 살 방도가 열릴 것이다. 하늘이 생명을 돌보고 있는 것을 그만 손수석이 잊어버리고 자신의 지혜와 능력으로 그들을 모두 먹여 살리는 줄 착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은 그저 생명을 돌보고 살리는 일에 조력자가 되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깨닫고 보니 마음이 편해진다. 너무 걱정을 하지 말자. 하늘과 하늘에 있는 상제가 하는 일을 왜 인간에 불과한 자신이 건방지게 모두 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손수석은 스스로 옷깃을 여미면서 장차 자신의 고향사람들에게 어떠한 살길이 열리는 지를 이제부터 겸허하게 한번 지켜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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