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 할매42(작성자; 손진길)
7. 공산주의자들의 준동과 가정을 이룬 손수석의 선택
봉천 할매의 셋째 아들인 손수석은 1947년 11월에 고향 너븐들 부모님의 집에서 신혼생활을 즐기고 있다. 새 색시인 고복수는 아직 19세인지라 신랑 손수석의 품에서 오래 신혼의 단꿈을 맛보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이 어렵다. 아침 일찍부터 한집에 살고 있는 시 아주버님이 마당을 쓸고 손위 동서인 김옥순이 부엌에서 아침식사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시어머니인 봉천 할매의 목소리가 바로 방문 바깥에서 들려온다; “허, 신혼의 단꿈에 너무 오래 빠져 있으면 곳간에서는 도끼자루가 썩고 연장에 녹이 쓴다고 하는데 우리 똑똑한 아드님은 그것도 모르시는가?...”. 그 소리가 들려오게 되면 아무리 새 색시라고 하더라도 계속 잠자리에 들어 있을 수가 없다.
고복수는 얼른 옷을 갖추어 입고 방을 나가 시어머니 봉천 할매에게 인사를 드린다. 그리고 빠르게 세수를 하고서 곧바로 윗동서인 김옥순을 도와 함께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그 모습을 지긋이 지켜보고 있던 신랑 손수석은 기지개를 켜면서 바깥으로 나가 차가운 우물물로 세수를 한다. 그리고 여느 때와 같이 너븐들 마을을 한바퀴 돌아본다. 골목에서 만나는 일가들에게 인사를 하기에 바쁜 것이다.
그러한 일상이 흘러가고 있는 고향 너븐들의 한가로운 농한기이다. 그런데 11월 중순 어느 날 저녁 늦은 시간에 갑자기 서쪽 산골 박달에 살고 있는 타성바지 젊은이 두사람이 내남 월성 손씨의 가주인 손수석을 만나고자 은밀하게 찾아온다. 그들의 이름이 이준수와 최종대이다. 나름대로 그 산골마을에서는 유식한 체 하는 청년들이다.
이준수의 말이 다음과 같다; “손형은 해방이 되고 지난 3년간 사재를 털어 양식을 구하여 가뭄으로 굶고 있는 고향사람들을 살린 의로운 사람이요. 그러한 성품을 지니고 있는 지주이기에 오늘 우리 두사람이 고향사람들을 대표하여 한가지 청을 하고자 찾아 왔오”.
‘무슨 뚱딴지 같은 말인가?’ 손수석은 자신이 너븐들과 안심 그리고 박달 마을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은 모르고 있는 것이 없는데 그들 타성바지 두사람이 갑자기 마을대표라고 하면서 말을 꺼내고 있으니 그것이 영 이상하다. 그렇지만 나이가 자신과 비슷하고 또한 객지에서 오래 생활을 하다가 고향에 돌아온 인사들이라 그냥 참고서 그들의 말을 한번 들어보고자 한다.
이번에는 최종대가 말한다; “작금의 해방정국을 손형은 어떻게 보시요? 우리 두사람은 미국과 소련이 이미 합의한 5년간의 신탁통치안을 끝까지 반대한 인물들은 하나의 조선을 원하지 아니하고 있는 분리주의자로 규정하고 있오. 그들은 민족을 둘로 쪼개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이남에서 대대로 지키고자 하는 반 민족주의자들이요. 따라서 우리는 그들의 기도가 성공하지 못하도록 노동자와 농민의 힘을 합쳐서 떨치고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오. 손형은 비록 지주이지만 그러한 우리의 뜻에 찬성을 하고 또한 우리와 힘을 합쳐 주리라 생각하여 오늘 우리가 찾아온 것이오”.
일장 연설을 하고 있는 최종대의 말은 영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손수석이 생각한다. 왜냐하면, 신탁을 반대한 사람들은 5년후가 아니라 즉각적인 조선인의 자치정부를 조선반도 전체에 만들고자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을 마치 조선반도를 두 동강내고 지주와 부자들이 이남에 모여서 대대로 잘 살아보겠다고 하는 의도로 말하고 있으니 그것이 거짓선동이다. 진실을 말한다면, 그들 공산주의자들은 이북에서 벌써 인민위원회를 만들어 지주와 부자들의 재산을 전부 빼앗고 말았지 않는가?
손수석은 일본에서 1937년부터 발생한 사회적인 소요와 공산주의자들의 책동을 지켜보았다. 그로 말미암아 일제는 군국주의 시대로 넘어가고 만 것이다. 일본이 그러하듯이 공산주의자들이 날뛰게 되면 민간정부가 사라지고 군부가 사회적인 폭동을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정권을 장악하고 만다.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손수석이기에 그들 두사람이 소련과 북쪽의 노선을 따르고 있으며 더 구체적으로는 김일성과 박헌영의 사주를 받고 있는 인물들임을 정확하게 간파한다;
따라서 손수석은 좋게 말하여 그들을 그냥 돌려보내고자 한다; “이형과 최형의 말씀이 무엇인지 잘 들었습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아직 정세를 좀더 지켜보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저도 두 분의 말씀을 한번 깊이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러니 그만 돌아들 가시지요. 밤이 깊어 오고 있습니다”. 그날 밤에 그들은 순순히 물러간다.
그러나 이틀이 지나자 그것이 아니다. 이번에는 5명의 청년들이 패거리로 늦은 밤에 손수석을 찾아온다. 그들의 주장은 고향의 젊은이들이 하나로 힘을 합쳐서 농민과 노동자들이 주인이 되는 그러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손수석의 집안이 사재를 털어서 고향사람들을 구휼하지 않더라도 국가가 다 먹여 살린다고 하는 일종의 회유책이다. 그러나 손수석은 그것이 거짓선동임을 금방 눈치를 채고 있다.
미군정이 미국에서 잉여농산물을 들여오고 또 손수석 자신이 사재를 털어 추곡을 미리 사들여서 구휼을 했기에 모두들 굶지 않고 계속 농사를 짓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처지에 폭동을 일으키고 미국의 원조마저 물리치게 되면 누가 부족한 양식을 채워준다는 말인가?
38도선 이북의 사람들도 근근이 먹고 살고 있는데 그들 김일성의 정권이 어떻게 이남의 백성들을 먹여 살릴 수가 있겠는가? 어림도 없는 이야기이다. 그들 산골 박달의 청년들이 순진하게도 공산주의 사상을 지니고 있는 타성바지 이준수와 최종대의 꼬임에 넘어가서 그와 같이 집단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들 순진한 산골청년들은 마치 공산주의자들이 민족주의자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잘못을 그 자리에서 그대로 지적했다가는 손수석 자신이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 그래서 이번에도 손수석은 좋게 말하고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명분으로 그들을 모두 돌려보낸다.
손수석은 그날부터 이틀동안 참으로 깊은 생각을 한다. 자신은 일 개인에 불과하다. 상대방은 무리를 지어서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들 공산주의사상을 가진 청년들에게 자신이 맞서겠다고 하여 일가청년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하게 되면 어떠한 불미한 사태가 발생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이다. 손수석 자신이 그들과 맞서고 있는 집단이나 조직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 결과 손수석은 당분간 고향집을 떠나서 처가집에 가서 머문다. 그러면서 자전거로 매일 경주 읍내에 들린다. 그곳 경찰서에 들러 일제하의 경찰과 미군정하의 건국경찰이 무엇이 다른지 그리고 경찰을 모집하는 제도와 절차에 관하여 상세하게 알아본다;
그 다음에 서류를 갖추어 전격적으로 순경모집에 지원을 하고 만다. 손수석은 건국경찰에 참여하여 그 일원이 되는 것이 일본에서의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자신과 집안 그리고 고향을 살리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자신이 경찰에 순경으로 합격을 하였다는 사실을 통보 받자 손수석이 그때서야 잠시 고향에 들린다. 그리고 부모님과 형제들 그리고 아내에게 말을 한다; “제가 고향집에 그대로 있게 되면 산골 공산주의 청년들에 의하여 어떤 해코지를 당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경찰에 투신합니다. 당분간 훈련과정과 직장배치의 절차를 거치게 됩니다. 제가 훈련을 마치고 정식으로 경찰서나 지서에 배치가 되면 그때 다시 와서 집사람을 데리고 가겠습니다”.
부친 손영주가 고개를 끄떡인다. 맏형인 손수정 부부도 알겠다고 말한다. 아우 손수권도 자신이 열심히 농사를 지을 것이니 집안 걱정을 하지 말라고 말한다. 17살인 막냇동생 손수태도 22살인 형 손수권과 함께 농사를 짓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봉천 할매가 아들 손수석을 잠시 따로 보자고 한다.
안방에서 봉천 할매가 아들 손수석에게 말한다; “수석아, 네가 산골 공산주의자들 때문에 기어코 고향을 떠나게 되는구나. 이 에미는 수석이 네가 여기 고향에 있는 것보다는 경주 읍내로 나가서 더 큰일을 하기를 진작부터 바랬던 사람이다. 이제 경찰에 들어갔다고 하니 그것이 차라리 잘된 일이야. 여기 걱정은 일체 하지 말고 네가 앞으로 처자식을 거느리고 일가를 이루어 살 그 일만 생각해라. 나머지는 이 에미가 수석이 너에게서 배운 대로 그렇게 처리를 할 것이니 더 이상 염려하지를 말아라”.
참으로 고마운 모친 봉천 할매의 말씀이다. 손수석은 모친이 일찍이 경주 읍내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이곳 내남 출신과는 그 행동이 다르다고 하는 사실을 알고 있다. 더구나 절친 오예은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그런지 정세판단도 상당히 정확하다. 그러므로 고향의 일은 전부 모친에게 맡기고자 한다. 그래서 손수석이 말한다; “어머니만 믿고 저는 경찰서에 가서 훈련을 받을 게요. 집사람을 잘 돌보아 주세요”.
그렇게 25세의 손수석은 1947년 10월말에 결혼을 하고 11월말에는 경찰에 투신하고 만다. 그리고 열심히 경찰이 되는 훈련을 받는다;
그 다음에는 고향에 가까운 ‘모량지서’로 발령을 받는다. 손수석은 그 지서의 관할에 자신의 조상인 문효공 손순의 시조묘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참으로 좋아한다;
그리고 12월에는 고향에 있는 아내를 데리고 와서 모량에서 신접살림을 다시 시작한다. 그렇게 다사다난한 1947년이 저물고 조선의 3천리 강산에 1948년이 힘차게 밝아 온다. 과연 1948년에는 어떠한 일들이 발생하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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