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 할매47(작성자; 손진길)
이듬해 1951년 1월 4일에는 서울을 적에게 내주고 유엔군의 방어선이 오산과 제천 그리고 삼척의 선으로 구축이 된다. 전열을 정비한 연합군은 1월 9일부터 대대적인 반격에 나선다. 한겨울의 추위와 병참공급의 어려움을 겪게 되는 중공군과 북한군이 형편없이 밀리기 시작한다.
따라서 1951년 3월 14일에 서울을 다시 수복하고 5월에는 38도선까지 밀고 올라간다. 하지만 38도선 이북지방을 지키고자 하는 북한군과 중공군의 결의와 그 저항이 대단하다. 그때부터 전투가 38도선 근방에서 계속 진행이 되면서 전선이 자꾸만 굳어지고 만다.
그 사이에 손수석은 경주의 육군병원에서 발목부상을 치료하고 있다. 그때 그는 포항에서 들려오는 슬픈 소식을 접하게 된다. 공비들이 한밤중에 포항경찰서를 집중적으로 습격하였는데 그 때문에 수많은 경찰관이 순직을 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손수석 자신의 동료들이다;
경찰동료들이 그렇게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으니 후방인 경주에서 살고 있는 그들의 처자식들은 어찌하는가? 하늘이 무너진 것과 같을 것이다. 손수석은 동족상잔을 일삼고 있는 통일전쟁이라고 하는 것이 아무리 그 명분이 좋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민족에 대한 엄청난 배신행위라고 하는 사실을 새삼 되새기고 있다.
몇 달 후에 손수석은 발목부상을 완전히 치료하게 된다. 그 사실을 경주경찰서에 통보하고 새로운 보직을 받는다. 경주경찰서 관내인 ‘안강지서’에 지서장으로 발령이 난다. 그래서 안강지서에 근무를 하게 된 지서장 손수석이 매일 관내 순찰을 직접 실시한다. 칼빈 총을 어깨에 매고서 자전거를 타고 안강 시내는 물론 인근 지역을 빠짐없이 순찰한다;
1.4후퇴로 말미암아 서울에서부터 내려온 피난민 가운데 아예 안전한 경주 지역에 자리를 잡고 살고있는 자들이 많이 있다. 따라서 안강지서의 관내에도 피난민들이 상당수 거주하고 있다. 그 가운데 고향으로 돌아갈 수가 없는 자들도 있다. 전쟁통에 모든 재산을 잃어버린 경우가 그러하다. 그들은 시내에서 밥을 빌어먹으면서 외곽지역에 움막을 짓고서 살고 있다;
일부는 움막을 지을 엄두를 못 내고 다리 아래에 빈 공간을 의지하여 살고 있다. 그러한 우범지역까지 순찰을 하는 것이 지서장의 책무이다. 손수석 경사는 부지런히 그 일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참으로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중년으로 보이는 피난민 부부가 10살 가까이 되어 보이는 아들과 함께 움막이 있는 언덕배기에서 햇빛을 쬐고 있는데 그 모습이 영 거지의 몰골이다.
그런데 그 부인의 말씨가 귀에 익숙한 것이다. 어디서 그러한 음성을 손수석 자신이 들어본 것일까? 혹시 고향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러한 생각을 하고서 손수석 경사가 그들에게 접근한다. 계급장을 달고 정복을 입은 경찰이 칼빈 총을 어깨에 매고서 자신들에게 다가오자 그들 부부와 아이가 깜짝 놀란다. 그래서 멀뚱멀뚱 쳐다본다.
손수석이 그 부인에게 다가가서 말을 건다; “부인은 어디 사람입니까? 어디서 피난을 왔기에 여기 이렇게 궁색하게 살고 계십니까? 아들도 학교에 갈 나이가 되어 보이는데 좀 말씀을 해주시지요?...”. 그들 부부는 오래 손수석을 쳐다본다. 그리고 눈에 이슬이 맺히고 있다. 그들에게 그렇게 다정하게 다가와서 말을 걸어주는 경찰을 처음 만났기 때문이다.
남편이 고개를 떨구자 그 부인이 비로서 용기를 내어 입을 연다; “저희 부부는 일찍이 고향을 떠나서 서울에서 객지생활을 했지요. 가진 기술이 없어서 일용노동자로 품팔이를 하면서 살았어요. 그런데 전쟁이 났기에 서울서 살지를 못하고 남쪽으로 피난을 온 것입니다. 이곳에서 작년부터 살고는 있는데 이제는 거지꼴이 되고 말았지요. 아들이 나이가 10살이나 되는데 밥을 빌어 먹기도 힘든 지경이라 언감생심 학교에 보낼 엄두는 내지를 못하고 있어요. 부모를 잘못 만나서 아들이 고생만 하고 있지요…”.
손수석이 그 얼굴과 말씨가 전혀 생소하지가 않기에 그 고향을 물어본다; “부인은 본래 고향이 어디입니까? 그리고 남편분의 고향은 또 어디입니까?”. 그들 부부는 왜 그런 것을 묻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자신들의 신원조회가 필요해서 그런 모양이다 생각을 하고서 정직하게 답변을 하고자 한다.
이번에는 그 남편이 대답한다; “저는 이름이 이종태이고 본래 고향은 청도입니다. 제 집사람은 이름이 손미자이고 내남 상신 사람입니다. 그리고 우리 아들은 이름이 이인우이지요”. 손수석이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래서 급히 물어본다; “그러면 장인어른의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그 남자는 경찰이 별 것을 다 물어본다고 생각을 하는지 고개를 갸웃하면서 그래도 친절하게 답을 한다; “월성 손씨인데 함자가 영자 한자인 어른이시지요”. 그 말을 듣자 손수석은 그 부인에게 말한다; “그럼 부인이 내남 너븐들에 살다가 청도의 월성 이씨 집안으로 시집을 간 손미자가 맞군요. 친정엄마의 성함이 이신자이지요?...”.
그 부인이 너무 놀라서 ‘어머머’라고 말한다. 어안이 벙벙한 것이다. 자신의 정체를 정확하게 그 경찰이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그 경찰이 누구인지는 전혀 감이 잡히지가 않는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물어본다; “거지로 살고 있는 저의 전력을 알고 계시는 댁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저는 남의 것을 훔친 적이 없는데요…”.
그러자 손수석이 기가 막혀서 마치 독백처럼 말한다; “저의 사촌 누나인 손미자는 남의 것을 탐내거나 훔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지요. 어려서부터 착하고 정직하기로 너븐들에서 소문이 났지요. 그렇게 착한 누나가 객지에서 이 무슨 고생입니까? 어째서 고향 너븐들에는 한번도 걸음을 하지 아니했습니까? 저는 누나의 사촌동생 손수석이예요…”.
그 말을 듣자 손미자는 갑자기 두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그 두 손 사이로 눈물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흐느끼면서 말한다; “내가, 내가, 사촌누나 손미자가 맞기는 하지만 수석이 너나 고향 사람들 앞에 떳떳이 나설 수가 없어. 남편과 함께 서울로 가서 겨우 입에 풀칠을 하고 살다가 이제는 피난생활을 하면서 무일푼 거지꼴이 되고 말았는데 어떻게 고향을 찾아갈 수가 있나? 그저 모두의 기억에서 잊혀지기를 바랄 뿐이지…”.
그렇게 서럽게 울고 있는 부인을 그 남편 이종태가 두 팔로 껴안는다. 그리고 아들 이진우가 부모의 품으로 파고 든다. 그들 부자의 눈에서도 눈물이 나고 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손수석이 담담하게 말한다; “누나, 그리고 자형, 이제는 저를 만났으니 아들 진우를 데리고 짐을 챙겨서 나를 따라가요. 제가 이곳 안강지서장으로 근무를 하고 있어요. 관내에 방을 하나 얻어 드릴 테니까 거기서 생활을 하도록 해요. 그리고 저와 함께 이곳 안강에서 자립하여 살 수 있는 방법을 한번 찾아보도록 합시다”.
손수석도 속으로는 울고 있다. 그러나 그 눈물을 속으로만 삼킨다. 우선 그들 가족을 따뜻한 방으로 옮기고 건강회복을 하게 한 후에 살아갈 수 있는 방편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자신은 울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렇게 친척과 일가들에게 아직도 가주의 노릇을 하고 있는 손수석이다. 그 모습은 마치 그 옛날 서배 할배의 모습과 심히 닮아 있다.
마침 안강의 근교에 집과 넓은 밭이 급매로 나와 있는 것이 있다. 손수석이 자신의 돈으로 그 집과 밭을 산다. 그리고 그곳에서 손미자 부부와 당질 이인우를 살게 한다. 밭에서 농사를 지어 먹고 살 수가 있을 때까지 필요한 돈을 그들에게 먼저 준다. 그리고 이인우를 안강에 있는 학교에 넣어서 공부를 하도록 해준다;
손수석은 그들이 자립을 하고 스스로 떳떳하게 친척들 앞에 모습을 보일 때까지는 일체 비밀을 유지한다. 그것이 그들의 복지를 위해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직 시골 양반의 체면문화가 살아있는 시대이다. 그러므로 손수석이 무겁게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사려가 깊은 사촌동생 손수석 경사의 모습을 보고서 그때부터 그들 가족은 손수석을 의지하여 안강과 경주에서 삶을 일구어 가게 된다.
1951년 5월이 되자 한국군을 비롯한 연합군은 중부전선에서 북한군 및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일진일퇴를 되풀이하고 있다. 동부전선을 맡고 있는 한국군은 그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고군분투하여 엄청난 피를 흘리면서 조금씩 북진을 하고 있다. 그와 반대로 미군과 유엔군이 맡고 있는 서부전선에서는 개성을 빼앗기고 점점 서울로 가까워지고 있다. 그 모양이 마치 태극기의 문양을 보고 있는 것과 같다.
전쟁상황이 그렇다 보니까 서울사람들 가운데 아직 서울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있는 가정들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그 옛날 서울 인근 원당에 살고 있던 최경도의 아들 최민호의 가정이다. 최민호는 손수석보다 나이가 10살이나 많다. 그리고 세 아들이 있는데 벌써 10대 청소년들이다. 최민호는 생활이 넉넉하여 경주 팔우정 큰 길가에 상당한 규모의 저택을 소유하고 있다;
손수석은 경주경찰서에 근무하고 있을 때에 그 집에 더러 들렀다. 자신의 조부인 서배 할배 손상훈과 최민호의 조부인 선비 최사권이 재종 처남과 매부 사이로 그 옛날에 엄청 친했다는 사실을 그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최민호도 경주가 생소하고 외로운 처지라 공공기관에 필요한 일이 있으면 손수석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손수석이 경주 시내에 들리게 되면 또 방문하는 가정이 있다. 그는 경주 남천내 언덕 위 교촌에 살고 있는 외숙부 정한욱의 집을 더러 찾는다;
모친인 봉천 할매 정애라보다 3살이 적은 외숙은 1894년생이다. 그 슬하에 역시 3아들이 있는데 벌써 장골이 들이다. 정한욱 부부는 연령이 50대 중반이므로 이제는 서서히 경주 웃시장에 있는 식당일을 그만 두고자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일을 맡아서 대를 잇고자 하는 아들이 없다. 아들들은 대구나 부산으로 나가서 제 마음껏 살아보고 싶어한다. 외국으로 가는 큰 배를 타는 마도로스가 되고자 하는 꿈들을 많이 꾸고 있다;
그리고 돈을 많이 버는 사업가가 되고 싶어 한다;
전쟁통에 갑자기 부자가 된 사람들이 한국에서 발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영향을 젊은 사람들이 크게 받고 있는 그러한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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