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 할매49(작성자; 손진길)
1951년 8월 20일경에 내남에서 봉천 할매가 경주 성동에 전세를 살고 있는 아들 손수석의 집을 방문한다. 마침 손수석이 방 둘이 있는 독채를 얻어서 여유롭게 살고 있기에 봉천 할매가 옆방에서 하루 푹 쉬게 된다. 봉천 할매 정애라는 처녀시절 경주 성동에서 자란 탓에 그 지역이 마음에 든다;
그래서 그런지 아들이 저녁에 경주경찰서에서 퇴근하여 집에 오자 봉천 할매가 아들과 겸상을 하면서 말한다; “수석아, 네 동생 수태가 네가 얻어준 북천내 셋방에서 자취를 하면서 경주중학교에 잘 다니고 있다. 그런데 한학기를 마치고 여름방학이 되자 잠시 집에 들렀는데 내가 보니까 막내라서 그런지 나이가 20살이 되었어도 영 힘이 들어 보이더라…”.
그 말을 하면서 봉천 할매 정애라가 아들 손수석의 눈치를 본다. 자신의 아들이기는 하지만 정애라가 손수석을 함부로 대하지를 못한다. 젊은 나이에 자수성가를 하여 벌써 내남 너븐들의 대지주이며 그곳 월성 손씨의 가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봉천 할매 자신의 남편인 손영주와 달라서 결코 만만한 성격이 아니다.
손영주나 손수석은 모두 생활이 어려운 친지들을 도와주고자 하는 선량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방법이 다르다. 손영주는 자신의 집안살림을 돌보지 아니하고 불쌍해 보이면 그냥 양식을 퍼주는 성격이다. 손수석은 전혀 다르다. 그 사람이 자립할 의지가 있는지를 먼저 파악한다. 도와줄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살피고 그에 맞게 조치한다. 가능하면, 자립이 되는 방향으로 도와주고자 한다. 그리고 남을 돕는다고 하여 결코 자신의 처자식을 희생시키고자 하지를 않는다.
그러한 손수석의 성격은 아무래도 조모인 서배 할매 이채령의 훈육에 따라 형성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채령은 양자인 손영주가 사람은 선하고 좋은데 상당히 우유부단하고 천석꾼 살림을 알뜰하게 살지를 못하는 것을 보고서 그 점을 걱정했다. 그나마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말미암아 천석꾼 살림이 반 토막이 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영주의 행동은 달라지지가 않는다.
그러자 이채령은 모든 기대를 영특한 손자인 손수석에게 걸고서 어린 그에게 철저하게 가르친 것이다; “수석아, 너는 재산을 지키지도 못하는 너의 부친처럼 살지 말고 자수성가를 한 조부 서배 할배처럼 살아라. 그리고 고생이 되더라도 일본으로 건너가서 고학을 하고 돈을 벌어라. 무너진 천석꾼 집안을 부디 되살려 다오. 그것이 이 할미의 소원이다. 수석아…”.
서배 할매의 유언을 끝까지 실천한 손수석이야말로 두려운 인물이다. 그러므로 손영주의 아내로 평생을 살아온 봉천 할매가 아들 손수석을 대할 때마다 그의 행동거지에서 문득 문득 시어머니 이채령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때마다 자신의 말과 행동을 조심하게 된다. 그래서 지금도 말을 하면서 아들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잘못하다가는 손수석으로부터 다음과 같이 한마디를 들을 것만 같다; “어머니,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이 세상에는 자취를 하면서도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그리고 돈을 벌어가면서 고학하는 사람도 있는데 집에서 대어주는 돈으로 공부를 하면서 자취를 하는 것이 무엇이 어렵다는 말입니까?”.
그런데 오늘따라 손수석이 그러한 말을 하지를 않는다. 어째서 그럴까? 봉천 할매는 손수석이 그저께 처가를 다녀왔다는 사실을 모르기에 아들의 생각을 모르고 있다. 손수석은 하나밖에 없는 손아래 처남이 그렇게 전사를 하고 마는 것을 보고서 젊은 사람에게 너그럽게 대하여 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모친인 봉천 할매가 막내 아들 손수태의 이야기를 꺼낼 때에 조용히 듣고만 있다. 그러자 봉천 할매가 본론을 말한다; “수석아, 그래서 이 에미 생각에는 마침 네가 여기 성동에 방 둘을 빌려서 쓰고 있으니 옆방에 수태를 살게 하고 네 집사람이 밥을 좀 해주면 좋겠는데… 그러면 수태가 더 열심히 학교에 다니고 공부에 전념하지 않겠니?...”.
그 말을 듣자 손수석의 아내인 고복수의 얼굴이 굳어진다. 자신보다 두 살 아래에 불과한 막내 시동생과 한집에서 밥을 해주고 함께 살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니 그것이 영 불편한 것이다. 손수석이 그러한 아내의 안색을 금방 파악한다. 그렇지만 모친 봉천 할매의 생각도 손수석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그렇게 틀린 것이 아니다.
손수석 자신은 서당에만 다니다가 심상소학교 5학년에 곧바로 편입하여 2년만에 소학교 6년 과정을 전부 마치느라고 어린 나이에 참으로 고생을 했던 것이다. 이제 20살이나 되는 동생이 중학교 공부를 따라가느라고 힘이 들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서 막내 동생 손수태를 도와주려고 한다.
손수석이 모친에게 선선히 말을 한다; “어머니 생각대로 그렇게 하지요. 우리 옆방을 비워 놓을 테니까 수태보고 이사를 하라고 하세요. 그리고 열심히 공부하여 중학과정을 빨리 마치고 대학으로 진학을 하라고 하세요. 학비는 제가 모두 대어 줄 터이니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말씀하세요”.
봉천 할매 정애라는 참으로 기분이 좋다. 이제는 자신이 머물고 있는 성동의 옆방에 막내 아들 수태가 함께 살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형수가 해주는 밥을 얻어 먹고서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면 한결 좋을 것이다. 그리고 봉천 할매 자신도 경주 오일장날에는 성동에 들러 아들 손수석과 막내 아들 손수태의 얼굴을 한꺼번에 볼 수가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손수석의 아내인 고복수는 영 마음이 불편하다. 북천내의 셋방을 정리하고 자신들이 살고 있는 옆방에 시동생이 중학교에 다닌다고 버티고 있는 것이 불편한 것이다. 더구나 막내 아들을 본다고 시어머니 봉천 할매가 자주 들리는 것도 상당히 불편하다. 그래서 한번은 친정에 간 김에 그 이야기를 친정어머니에게 말했다가 그 말을 전해들은 친정 아버지에게 혼이 난다.
꼬장꼬장한 선비 고천석이 딸을 혼낸 것이다; “너는 네 남동생 호달이가 전사한 것을 보고서도 그런 말을 하느냐? 손서방이 어떠한 심정으로 어린 동생을 뒷바라지하고자 하는지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았느냐? 나는 손서방의 마음을 알 것만 같은데 너는 어찌 네 남편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다는 말이냐? 그러니 조용히 손서방이 하는 대로 순종하면서 살아라. 그는 절대로 너를 힘들게 하지 아니할 것이다. 좋은 신랑을 만난 줄 알고 부디 조그만 불편은 이겨내고 남편을 도와주어라. 그리하면 모든 복이 너에게 돌아갈 게야”.
그래서 그런지 고복수는 막내 시동생 손수태의 밥을 일찍 잘 지어준다. 손수태는 새학기가 되자 경주중학교에 열심히 다닌다. 밤 늦게까지 백열등을 켜놓고 학과공부를 계속한다. 그러자 1951년 10월에 학교에서 좋은 소식이 온다. 지난 8월말에 교육법의 개정으로 4년제 중학교 과정이 중학 3년과 고교 3년 과정으로 분리가 되었는데 그에 따라 손수태가 경주고등학교 1학년으로 진학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자 봉천 할매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일부러 경주 성동 손수석의 집에 와서 하룻밤을 지내면서 며느리 고복수의 수고에 대하여 치하를 한다. 고복수는 자신의 노고를 알아 주는 시어머니의 칭찬을 듣고 모처럼 기뻐한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 아들 내외와 함께 식사를 끝낸 봉천 할매가 막내 아들 손수태가 옆방으로 공부를 한다고 건너가고 나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한다.
손수석 내외에게 처음으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수석아, 너의 큰 형수가 사실은 지난 7월 25일에 또 딸을 낳았다. 나는 그 이름을 ‘손화옥’으로 부르도록 좋게 작명을 해주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좀 서운하다. 왜냐하면, 그동안 아들 하나에 딸 둘을 낳았기에 은근히 이번에는 아들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며느리 고복수가 말한다; “어머니, 그것이 어떻게 사람의 뜻대로 되는 일인가요? 큰 형님이 수고를 하여 자녀를 낳았는데 그런 말씀을 들으면 서운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자 봉천 할매가 말한다; “나도 아이를 낳아본 여자이니까 산모의 마음이야 당연히 알지. 아들이나 딸이나 산고는 똑같은 법이지. 그렇지만 시가 쪽으로 아들이 없어 양자로 대를 이어온 경우가 많아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아들 둘을 원하고 있는 모양이야…”.
그 말을 듣자 고복수가 자신의 배를 만져본다. 지금 그녀의 뱃속에 두번째 아기가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아들을 낳아야 되겠다고 그녀가 생각한다. 무럭무럭 잘 자라서 득남의 기쁨을 온 집안에 선물해 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역시 사람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10월말에 하루는 손수석이 늦게 퇴근을 하여 집에 들어와서 보니 아내의 얼굴이 창백하다. 방안에서 이불을 펴고 가만히 누워있는데 눈물자국이 엿보인다. 아내 고복수는 평소에 방에 그냥 누워있는 법이 없다. 얼마나 건강이 좋은지 집안일을 부지런히 하기에 바쁜 아내이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가? 손수석이 놀라서 묻는다; “여보, 몸이 많이 아픈 거요? 얼마나 아프기에 눈물을 다 흘린 것이요?”.
그러자 아내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서 말한다; “여보, 시장하실테니 저기 한쪽에 차려 놓은 저녁밥을 드신 후에 말씀하시지요…저는 죽는 병은 아니니 괜찮아요. 제가 몸이 하도 안 좋아서 도련님 방에 식사를 차려주고 진목이를 그 방에서 놀도록 했어요. 이제는 당신이 식사를 하시고 아들을 좀 보아 주시구려. 제가 한숨을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그 말을 듣자 손수석이 어느 정도 짐작을 한다. 그래서 조용히 묻는다; “뱃속의 아기가 탈이 났는가 보군요. 혹시 유산을 한 것이요?”. 그 말을 듣자 이불 속에 가만히 누워있던 아내 고복수의 얼굴에서 눈물이 다시 흘러내리면서 ‘흑’하고 숨을 죽이며 흐느끼기를 시작한다. 이거 보통일이 아니다.
그래서 손수석이 말한다; “당신이 아직 젊으니 아기야 또 가지면 되지요. 너무 걱정을 하지 말고 몸을 잘 추스리시요. 며칠간 내가 밥도 짓고 집안일을 할 것이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부디 마음과 몸을 잘 돌보시오. 몸조리를 잘해야 해요…”. 손수석이 얼른 식사를 한 다음에 아내에게 물어본다; “내가 죽을 좀 쑤어서 가져다 주리다. 배가 고플 터이니… 무엇 따로 먹고 싶은 것을 말해 보시오”.
그러자 참으로 아내 고복수가 이상한 주문을 한다; “여보, 저는 죽이 싫어요. 이왕 제게 좋은 음식을 해주시려거든 경주경찰서 근처 중국집에서 팔고 있는 맛있는 짬뽕을 한 그릇 사다 주세요. 부엌에 큰 냄비가 있으니 그 그릇에 곱배기로 달라고 하면 될 거예요. 그렇게 매운 음식을 먹고 땀을 흘리고 한 잠 자고 나면 내일 아침에 제가 멀쩡하게 일어날 수 있을 거예요…”;
그 말을 들은 손수석이 속으로 ‘허허’라고 웃는다. 참으로 당찬 구석이 있는 아내 고복수이다. 아직 23세의 젊은 아내이다. 그래서 그런지 정말 곱배기로 짬뽕 한그릇을 먹고서 다음날 거뜬하게 일어난다. 그리고 여느 때와 같이 집안을 반들반들하게 청소하고 하루 세끼 식사를 준비한다. 음식솜씨가 장모를 닮아서 그런지 보통이 아니다. 그래서 손수석 경사는 점심을 집에 와서 먹고 경찰서로 다시 나간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아내 고복수가 평소에 하지 아니하던 이상한 행동 한가지를 한다. 그것은 한밤중에 조용히 일어나서 우물가에 나가서 정화수 한 그릇을 떠놓고 기도를 하는 것이다. 어스름한 하늘을 밝히고 있는 달과 별무리를 보고서 지성을 드린다. 그 내용이 부디 천지신명께서는 소녀를 불쌍하게 여기시고 아들을 하나 더 점지를 해달라고 하는 것이다.
하루는 손수석이 잠을 자다가 뒷간에 가려고 일어나서 보니 이불속에 아내가 없다. 깜짝 놀라서 두리번거리고 찾아보니 한쪽에 누워서 곤히 자고 있는 4살배기 아들 손진목 뿐이다. 그래서 살그머니 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니 우물 근처에서 정화수를 떠놓고 간절하게 복을 빌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언뜻 보인다;
손수석은 아내를 방해하고 싶지가 않아서 다시 문을 닫고 오줌을 참는다. 한참 후에 아내가 방에 들어온 다음에야 일어나서 뒷간을 다녀온다. 그렇게 아내를 배려하는 손수석이 언제 그 기도가 끝나는지 궁금하여 조용히 연일 지켜만 본다. 그런데 하루는 아내가 저녁에 남천내를 좀 다녀오겠다고 한다. 그 먼데를 어두워지는데 어째서 가려고 하는지를 물어보자 그 대답이 걸작이다.
아내 고복수가 참으로 진지하게 말한다; “제가 아들을 더 달라고 기도를 한지 이제 100일이 가까워져요. 그러니 나머지 며칠은 남천내의 물가에 가서 흘러내리는 시냇물과 그 수원지가 되는 남산을 바라보면서 기도를 하고 싶어요. 그곳에 가면 하늘의 달과 별들이 더 찬란할 거예요. 제가 나고 자란 서천내 장매 마을까지 가지는 못하지만 그 대신에 남천내 교리 마을 근처에 가서 그 남천내의 물을 떠놓고 저의 100일 기도를 마무리하고 싶어요”.
손수석은 반대를 할 수가 없다. 따라서 아들 진목이를 옆방 동생 손수태에게 맡겨 두고 아내 고복수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교리의 동네 앞 남천내를 찾아간다. 다행히 자전거의 ‘헤드라이트’가 밝아서 어두운 길을 갈 수 있다;
남천내의 남쪽 냇가에서 고복수는 한시간쯤 지성을 드린다. 그렇게 한주간을 보내자 고복수가 말한다; “여보, 수고했어요. 덕분에 이제 저는 다시 아들을 낳을 수가 있을 거예요. 잃어버린 아들 대신에 더 좋은 아들을 주신다고 하는 신비한 하늘의 위로의 빛을 제가 본 것 같아요. 그러니 한번 기대를 해보세요";
손수석은 아내 고복수의 그 말을 다 믿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두가지 점에서 그 백일기도가 끝난 것이 기쁘다; 하나는, 무엇보다도 아내가 평상심을 되찾고 다시 건강을 온전히 회복한 것이다. 또 하나는, 일주일간 아들 진목이를 동생 수태에게 맡겨 두고 남천내로 오는 그 수고를 이제는 덜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그 백일기도가 효험이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내 고복수가 다시 임신을 한 것이다. 1952년 봄부터 배가 불러오고 여름이 되자 제법 아기를 가진 티가 많이 난다. 그런데 그 시기에 있어서는 손수석의 아내인 고복수만 그런 것이 아니다.
1952년에 유달리 유부녀들이 임신을 많이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심히 간단하다. 한국전쟁으로 1950년과 51년에 많은 젊은이들이 전사를 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위기를 느낀 한국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아기를 많이 낳고자 한 것이다. 그 결과 1952년에 태어나는 아기가 참으로 많다. 그것도 한국전쟁으로 인한 빠른 ‘베이비 붐’이라고 부를 수가 있을 것이다;
봉천 할매는 큰집에 양자로 준 자신의 둘째 아들 손수상이 1952년 4월에 또 득녀를 했다는 소식을 손위 동서인 이신자에게서 듣는다; “글쎄, 동서, 내 얘기 한번 들어보게. 다른 집에서는 다들 득남을 잘들 하던데 우리 며느리는 어째서 벌써 딸이 둘인지 모르겠어… 도대체 아들은 언제 낳으려고 하는 것인지. 쯧쯧…”.
그 말을 들은 봉천 할매는 썩 마음이 좋지가 않다. 하지만 애가 쓰여서 한번 물어본다; “형님, 그런데 아기 이름은 무엇이라고 지었어요?”. 그러자 이신자가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첫째가 손영자이니 이번에는 ‘손영숙’이라고 지었지. 이름이야 나무랄 데가 없을 거야. 내가 잘 지었거든…”;
그 말을 하면서 이신자도 너무했다 싶은지 ‘호호’라고 웃고 만다. 아직 산모가 건강하고 젊으니 다음에는 아들을 낳겠지 싶었던 것이다. 그러니 봉천 할매도 웃고 만다. 그렇게 서로들 웃고 있는 사이에 1952년 여름이 서서히 지나가고 있다. 그리고 경주경찰서 병사계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손수석 경사가 1952년 8월말에 일선기관인 모량지서로 다시 발령이 난다. 이번에는 지서장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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