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 할매46(작성자; 손진길)
1950년 12월 하순에 ‘공비’들이 포항경찰서를 야간에 습격한다. 평소에는 시골의 지서 정도를 공격하더니 이번에는 대담하게도 본서에 야간 기습을 감행하고 있다. 경비계장인 손수석이 일선에서 전투를 지휘하다가 그만 부상을 입고 만다. 큰 부상은 아니지만 발 뒤꿈치에 총상을 입어서 잘 걷지를 못한다.
여기서 ‘공비’라고 하는 말은 당시 빨치산 활동을 하고 있는 북한의 인민군 및 그들과 함께 행동하고 있는 남한의 공산주의 세력을 말한다. 북한 인민군이 ‘공비’로 변신하게 되는 까닭은 북한에서 오는 병참공급이 절단이 나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깊은 산에 숨어 있다가 밤에는 마을을 습격하여 양식과 기타 물자를 획득해야만 한다.
지난 9월15일에 맥아더 장군이 지휘하는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 한국군과 유엔군이 서울을 수복하고 38도선 지역을 거의 점령하고 만다. 그 때문에 허리가 끊어져서 이남에 진출하고 있던 북한의 인민군들이 병참지원을 받지 못하여 전투능력이 저하된다.
그때부터 인민군은 깊은 산을 타고서 대부분 북으로 도망을 치고 있지만 그러하지 못한 부대가 아직 이남에 남아 있다. 그들은 보급을 위하여 야간에 출몰하여 마을을 약탈하고 있으므로 ‘공비’라고 불리고 있다. 그 ‘공비’를 소탕하는 것이 후방을 지키고 있는 경찰의 주요한 임무이다.
공비들이 때로는 지서나 경찰서를 습격하고 있다. 그것은 두가지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빨치산 활동으로 적화통일이 가능하다고 믿고서 경찰이나 군부대를 습격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무기고를 습격하여 필요한 군수물자를 획득하고자 하는 것이다.
경비계장인 손수석이 다리를 쩔뚝거리게 되자 서장이 특명을 내린다; “경비계장은 그 몸으로 산악전투에 참여할 수가 없으니 동료들이 안심하고 전투를 할 수 있도록 그 처자식들을 인솔하여 후방인 경주로 가시오. 당분간 경주의 제18육군병원에서 부상을 치료할 수 있도록 내가 조치를 해주겠소. 그리고 손수석 경사는 다시 경주경찰서로 전출을 명하니 나중에 완치가 되면 경주경찰서장에게 전입신고를 하시오”.
경사 손수석은 서장에게 경례를 하고 쩔뚝거리며 경무과에 들린다. 그러자 경무과의 서무를 맡고 있는 경장이 말한다; “서장님의 지시에 따라 경찰가족들에게 지금 연락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레 오전 10시에 그들이 경찰서 마당에 모일 것입니다. 그들을 태워서 경주경찰서로 보낼 트럭이 그날 준비가 될 것이니 경비계장님께서는 그들을 인솔하여 경주경찰서로 가시기 바랍니다. 그날 서류를 함께 드릴 것이니 그대로 그곳 경무과에 인수인계를 해주십시오”.
자전거를 타고서 겨우 집에 돌아온 손수석은 아내에게 이사 갈 준비를 하라고 말한다. 부인 고복수는 경주로 다시 가게 되었다고 하니 좋아한다. 얼른 아들 손진목을 업고서 간단하게 짐을 꾸린다. 그리고 이틀 후에 트럭을 타고서 남편과 함께 경주경찰서로 향하는 것이다.
손수석이 경주경찰서 경무과에 들러서 자신이 인솔하여 온 경찰가족의 인적서류를 넘겨준다. 그러자 사전에 포항경찰서와 업무협조가 되어 있는지 미리 준비해둔 여러 채의 집에 포항에서 온 경찰가족들을 수용한다. 그곳에서 그들을 돌보아 주는 것이다.
그렇지만 손수석은 소속이 포항경찰서가 아니라 이제는 경주경찰서로 변경이 되었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거주할 수가 없다. 따라서 경주 제18육군병원이 가까운 북천내 인근에 방을 한 칸 얻는다. 그곳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면서 매일 병원에 들러 부상을 치료하게 된다.
그 사실을 알고서 내남에서 모친인 봉천 할매가 방문을 한다. 아들 손수석의 부상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걱정이 되어서 며칠 머물고자 한다. 모친의 생각을 들은 손수석이 이웃에 방을 한 칸 더 얻는다. 경주에 오시면 편하게 그곳에 묵으시라고 조치한 것이다.
그랬더니 며칠 후에 내남에 다녀온 모친이 갑자기 막내 아들 손수태를 데리고 온다. 자신과 함께 그 이웃집에 살면서 아들 손수석에게 말한다; “수석아, 네 막냇동생 수태가 이제 1951년이 되었으니 만으로 20세가 된다.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경주중학교에서 공부를 시켰으면 한다. 공부를 꽤 잘하니 그렇게 장래를 열어주어야 하지 않겠니? 그래서 내가 데리고 왔다”.
봉천 할매의 생각이 옳다. 그래서 손수석은 모친에게 말한다; “제가 다리가 불편해서 경주중학교까지 가서 교장을 만나기가 힘들어서 그러니 어머니께서 수태가 중학교에 편입할 수 있도록 조치를 좀 취해주십시오. 많은 학생들이 학도병으로 징집을 당했기에 결원이 많을 것입니다. 제가 돈을 좀 드릴 것이니 그것으로 입학금과 등록금을 미리 내시기 바랍니다”.
손수석의 판단이 맞다. 봉천 할매가 손수태를 데리고 가서 교장을 만났더니 그렇게 하시라고 선선히 허락을 한다. 그래서 아예 입학금과 수업료를 모두 지불하고 인적사항과 주소지까지 전부 적어 주었다.
게다가 학교에서 팔고 있는 교복과 교모, 책과 필기구 그리고 책가방까지 모두 구입을 했다. 봉천 할매 덕분에 막내 아들 손수태가 중학교로 진학한 것이다. 그리고 그 뒷바라지는 작은 형인 손수석이 모두 해주게 된다.
막내 아들이 경주에 머물고 있어서 그런지 봉천 할매가 자주 북천내에 들린다. 그리고 시내 중심지로 이사를 한 절친 오예은을 만나서 이야기 꽃을 피운다. 그래서 최근의 전쟁상황과 미국의 정책에 대하여 잘 듣고 와서 아들 손수석에게 소상하게 전해준다. 그러한 정보가 아들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손수석은 모친을 통하여 미국의 정책을 파악하게 된다. 혹시 미진한 대목이 있으면 아예 오예은 간호사를 만날 때에 좀 알아보아 달라고 부탁까지 한다. 그렇게 하여 손수석이 취득한 정보의 대강이 다음과 같다;
첫째로, 1950년 9월 28일에 서울을 수복한 유엔군은 그대로 동쪽으로 진군한다. 그렇게 중부전선을 점령하면서 38도선에 이르게 된다. 그때부터 유엔군은 더 이상 북진을 하지 않는다. 유엔군 사령관인 맥아더의 지시에 따르고 있는 한국군도 38도선을 넘을 수가 없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은 울분이 터진다. 그는 북으로 후퇴하고 있는 인민군을 추격하여 그들을 압록강과 두만강 바깥 만주로 몰아내고 이번 기회에 한반도를 통일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한 자신의 뜻을 맥아더에게 이야기했지만 그는 미국 국무성과 국방성의 뜻이 그것이 아니기 때문에 군인의 입장이라 어쩔 수가 없다고 답변한다. 상부의 지시만 아니라고 하면 진짜 군인인 맥아더도 아예 공산주의자들을 만주로 몰아내고 싶다고 말한다.
둘째로, 그 말을 들은 이승만은 미국의 국무성과 국방성 그리고 맥아더 사령관의 생각 사이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이승만 대통령은 그가 미국에 있을 때에 벌써 들은 정보가 하나 있다.
그 내용은 미국이 아시아 태평양 전쟁을 끝내기 위하여 소련의 참전을 요청하면서 일본군대의 무장해제를 위하여 미소 간에 어떻게 점령지역을 분할할 것인가에 대하여 국무성과 국방성의 의견이 달랐다는 것이다.
국무성은 소련군의 진입을 만주의 어느 지점으로 제한하고 그 이남을 미군이 직접 들어가서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받는 것이 소련의 팽창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며 전후에 외교적으로 유리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국방성은 그러한 주장은 현실성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오키나와가 한반도에서 1,0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으므로 현실적으로 미군이 한반도와 만주까지 진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군은 일본 열도만 점령하고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시키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그 두가지 의견을 종합하여 미국은 한반도의 허리에 해당하는 38도선을 소련군과 미군이 각각 분할하여 점령하는 경계선으로 책정했다는 것이다. 훗날 그러한 구체적인 내용이 딘 러스크 국무장관에 의하여 밝혀지게 된다.
그러한 여러가지 사항을 검토한 이승만 대통령은 1950년 10월 1일에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고서 한국군 최고통수권자로서 전군에 북진명령을 내린다. 38선을 단숨에 돌파하여 인민군을 압록강과 두만강 북쪽으로 밀어내라는 것이다. 한국군의 수뇌들이 대통령의 명령대로 충실하게 수행한다. 그날을 기념하여 대한민국은 훗날 ‘국군의 날’을 제정하게 된다;
미군을 위시한 연합군도 한국군의 뒤를 따르고 있다. 미국 대통령도 이제는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1950년 10월 26일에 한국군의 선봉대가 압록강에 발을 담그게 된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역사가 어떻게 진행되는 것일까?
1949년 10월에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우고 12월에 중국본토를 완전히 장악한 모택동이 1950년 10월에 최대의 위기를 느낀다. 미국을 위시한 유엔군이 만주로 쳐들어오게 되면 자신의 공산주의 정권의 안위가 큰일인 것이다. 소련의 스탈린이 일체 모르는 척 팔짱을 끼고 구경만 하고 있기에 더욱 안보상 위기를 느낀다.
따라서 모택동이 결단을 내린다. 1950년 10월 19일에 일차로 중공군 26만명을 압록강 지역으로 내려 보낸다. 그리고 10월 25일에는 압록강 남쪽 ‘강계’로 밀려나 있는 김일성의 인민군과 중공군이 ‘연합사령부’를 만들어 함께 산지를 타고서 밀고 내려오게 된다;
그 때문에 유엔군과 한국군이 다시 밀리게 된다. 특히 미군은 12월 14일에 함흥으로 후퇴하여 배편으로 대규모 철수작전을 실시한다. 그때 미군의 선박에 편승하여 함흥에서 월남한 북한 피난민의 수가 10만명에 달한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월남한 북한주민의 수는 실로 엄청난 것이다.
셋째로, 소련군이 유럽전쟁의 말기에 마치 독수리가 삽시간에 먹이를 채어가듯이 그렇게 빠르게 동유럽으로 진격하여 많은 동구권의 국가에 공산주의 정권을 세우고 만다. 그와 마찬가지로 소련군은 극동에서 1945년 8월 9일에 남으로 밀고 내려와서 삽시간에 만주를 집어삼키고 8월 12에는 한반도의 북쪽지역인 함경도까지 들어온다.
그 남침의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 다행히 미국이 한반도의 38도선을 분할선으로 통보하였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아니했으면 한반도까지 공산화가 되고 말 처지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 대통령 트루만은 유럽대륙에서 소련의 팽창과 주변국의 공산주의화를 막기 위한 구체적인 경제원조계획을 수립하라고 1947년에 재무장관 마샬에게 지시한다. 참고로 1945년 일본에 원폭투하를 승인한 바 있는 미국 트루만 대통령의 모습이 다음과 같다;
그러한 ‘트루만 독트린’에 기초하여 마샬 장관이 유럽을 원조하여 경제를 재건하기 위한 ‘마샬 플랜’을 수립한다;
소련은 그에 대응하기 위하여 1947년에 동구권 공산국가에 대한 경제원조계획을 세우는데 그것이 당시 소련 외무장관의 이름을 따서 ‘몰로토프 플랜’으로 불리고 있다;
유럽과 달리 트루만 대통령은 일본에 대해서는 별도로 경제원조계획을 세우지 아니한다. 그 대신에 일본의 군국주의를 뒷받침한 중공업을 해체하는 한편 경공업 위주로 산업구조를 재편하여 겨우 일본국민들이 먹고살 정도의 자립경제만을 만들어 주고자 한다.
그러한 경제구조의 조정을 현지에서 단행하도록 트루만 대통령은 1949년 3월에 ‘디트로이트 은행’ 총재를 지낸 닷지를 일본에 재정고문으로 파견한다. 그에 따라 닷지는 일본의 철강산업을 비롯한 국방산업을 완전히 없애고 일본의 민간산업이 자생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경제조정정책을 실시한다;
일본의 방위산업을 불허하는 이른바 ‘닷지 라인’이라고 하는 기준이 마련이 된다. 하지만 ‘닷지 라인’을 무력화시키는 외생적인 두가지 큰 사건이 천우신조로 1949년말에 중국에서 또한 이듬해 1950년 여름에 한국에서 발생한다;
(1) 하나는, 모택동이 1949년 12월에 중국본토에서 장개석의 국민군을 완전히 대만으로 몰아내고 중국을 공산화하고 만 것이다. 그에 따라 미국은 일본을 활용하여 소련과 중국의 팽창을 막으려고 생각한다;
(2) 또 하나는, 북한의 김일성이 사전에 소련의 군사원조를 받아 인민군을 무장하고 1950년 6월에 대한민국을 전면 공격하여 동족상잔의 ‘한국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미국이 전쟁물자를 미국에서 배로 한반도까지 보내는데 너무 시간이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든다. 그러므로 일본의 군수산업을 다시 재건하여 한국전쟁의 군비수요를 충당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그에 따라 일본경제가 1950년부터 5년간 폭발적으로 부흥한다. 그때 일본이 얻은 36억불의 이익은 일본의 2년치 예산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이다. 따라서 일본인들은 ‘한국전쟁’이야말로 일본의 수호신이 일본에게 선물한 ‘또 하나의 가미가재’라고 부르고 있다.
한국을 1910년에 강제로 병합하고 36년간이나 식민지로 압제한 일본제국이 다시 중공업과 방위산업이라는 날개를 달고 있다. 게다가 미국은 이제 일본을 앞세워서 팽창하는 공산주의 국가 소련과 중국의 세력을 견제하고자 한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참으로 이상한 국제관계가 형성이 되고 있다. 그 와류에 휩싸여 있는 대한민국의 장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손수석은 조국의 미래를 걱정하면서 당장은 경주의 제18육군병원에서 자신의 발목부상을 부지런히 치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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