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 할매45(작성자; 손진길)
8.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봉천 할매의 셋째 아들인 손수석에게 있어서는 1950년의 비극이 아직 끝나지 아니하고 있다. 9월 11일 백부 손영한의 초상에 하루 다녀와서 천북지서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멀리서 장모가 급하게 찾아왔기 때문이다.
9월 15일에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이 있게 되지만 포항과 안강 사이에 있는 ‘비학산’에서는 9월 17일에 마지막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비학산 고지를 빼앗기게 되면 그 남쪽에 있는 경주가 위험하다. 그러므로 국군과 경찰은 학도병까지 동원하여 최후의 결전에 임하고 있다.
참고로, 비학산에서 멀리 동쪽의 포항과 그 남쪽의 경주를 내려다보면 그 풍경이 다음과 같다;
그러한 전운이 감돌고 있는데 멀리 경주 외곽 장매 마을에서 장모 전혜숙이 어째서 자신을 찾아오고 있는 것일까? 손수석이 놀라서 급히 물어본다; “장모님, 이 먼 곳까지 그 위험한 길을 어째서 찾아오신 겁니까?”. 50대 중반의 전혜숙이 급한 숨을 약간 진정한 다음에 말한다; “손서방, 우리 집에 큰일이 났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그만 군대에 끌려 갔어…”.
전쟁 중이라 병력이 부족하다 보니까 학도병은 물론이고 청년들을 대거 징집하여 간단한 훈련만 시킨 후에 전방으로 내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나라의 명운이 걸려 있는 일이라 어쩔 수가 없다고 하지만 막상 자신의 아들이 그런 일을 당하게 되면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다. 살아서 돌아올 확률이 아주 적기 때문이다.
더구나 손수석은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처남인 고호달이 아직 20세가 되지 않았고 학생신분이 아니라는 사실까지 알고 있다. 게다가 처남은 외동아들이 아닌가? 이거 보통일이 아니다. 전사라도 하게 되면 처가의 대가 끊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모 전혜숙을 잠시 집사람에게 맡겨 두고 손수석이 직접 자전거를 타고서 경주에 주둔하고 있는 군부대를 방문한다.
전쟁 중이라 후방인 경주에서는 군과 경찰의 협조가 상당히 잘되고 있다. 따라서 지서의 차석이 직접 처남의 건을 알아보고 있는지라 바로 병사담당 하사관이 답변을 해준다; “아, 경주 장매 마을에 살고 있던 고호달은 지금 대구에 가서 훈련중입니다. 단기훈련이 끝나면 배편으로 북쪽으로 이동하여 서울 근방의 전방으로 배치가 될 것입니다. 그곳의 병력을 보충하기 위하여 이번에 저희 부대가 대대적으로 징집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거 보통일이 아니다. 지금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한 유엔군과 한국군이 서울을 수복하고자 진격 중이다. 중부전선을 지키려고 하는 인민군과 그들의 보급선을 끊고자 하는 국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발생하고 있다. 그 전선에 신병이 투입된다고 하면 생존할 확률이 낮다. 하나 밖에 없는 처남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
그와 같은 사실을 천북으로 돌아와서 장모에게 전달하는 손수석의 심정이 착잡하다. 자신에게는 그 일을 되돌릴 수 있는 힘이 전혀 없다. 그저 장모의 크나큰 탄식의 소리를 들어주는 것밖에는 수가 없다; “여보게, 손서방, 우리집은 이제 대가 끊어지게 생겼어.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군대에 가는 것이야 전란 중이라 어쩔 수가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전선으로 보내게 되었으니 이 일을 어떡하나?...”.
갑자기 늙어 보이는 장모의 그 다음말이 손수석 내외의 가슴을 더 아프게 한다; “나는 벌써 일제시대에 큰 딸 현숙이를 일본사람들 때문에 잃어 버렸어. 그들이 간악하게도 일본의 공장에 취직을 시켜준다고 하면서 그만 데려가 버리고 그 다음에는 소식이 전혀 없어. 조선이 해방이 되고 일본에서 귀향자들이 돌아오고 있지만 내 딸은 아직도 소식이 없어. 그런데 이번에는 아들마저 전쟁통에 징집하여 나라가 데리고 가버렸으니 이제 또 자식을 잃게 된 거야. 이 일 감당을 어떻게 하나?...”.
자식을 둘이나 잃어버린 어미의 슬픔이 가슴을 울린다. 그 옆에서 그 소리를 듣고 있는 손수석 내외는 어찌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선 장모를 진정시켜야 한다. 그래서 손수석이 말한다; “장모님, 전쟁에 나갔다고 모두가 죽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전투에 여러 번 나갔지만 아직 살아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마음을 진정하시고 좀 쉬도록 하십시오”.
그러나 별 소용이 없다. 전혜숙의 넋두리가 계속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동네에 젊은이들을 징집하려고 군인들이 왔다 갔다 하고 있어서 얼른 숨어 있으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호달이가 전혀 듣지를 않았어. 자신이 무슨 영웅이라도 되는지 기어코 군인들 앞에 나서지 않나?...자기는 비겁하게 숨지를 않고 전쟁에 나가서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우기면서 말이야. 그러다 죽게 되면 우리집은 대가 끊어지는데…하여튼 우리 고씨는 그 고집이 외고집이라 그것이 끝까지 탈이야. 이 일을 어떡하나?...”.
손수석의 아내 고복수가 나서서 모친을 살살 달랜다. 그리고 안방으로 모시고 가서 좀 누워서 쉬시게 한다. 그러자 손수석은 천북 화산에 살고 있는 손위의 동서인 손태호를 만나고자 한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경장인 손수석은 여전히 어깨에 칼빈 총을 매고 있다. 언제 적이 출몰할지 모르는 험악한 세월이다.
손수석 자신보다 한살이 많은 손태호는 경주 손씨가 아니라 평해 손씨이다. 물론 신라시대부터 내려온 손씨라 그 조상이 같다. 그렇지만 신라 손씨가 지금은 전국에 흩어져서 살고 있기 때문에 그 본을 따지자면 크게 보아도 6지파나 된다. 그러니 본이 달라지면 서로 항렬을 따지기가 어렵다.
손태호는 자신이 윗동서이고 또 한살이 많지만 손수석을 함부로 대하지를 못한다. 그 이유는 천북의 땅 특히 자신이 살고 있는 화산의 최대 지주가 바로 손수석이기 때문이다. 바로 아래의 처제가 결혼을 한다고 하여 혼례식에 갔다가 손태호는 지주 손수석이 신랑인 것을 보고 참으로 깜짝 놀랐다.
자신이 살고 있는 천북 화산의 전답을 대규모로 산 사람은 사실 내남에 살고 있다고 하는 봉천 할매 정애라였다. 하지만 해방이 되고 나서 그 봉천 할매가 진짜 지주인 자신의 아들을 데리고 화산을 방문한 것이다. 그때 손태호 자신의 집을 아들과 함께 들렀다. 왜냐하면, 그 500마지기의 전답을 손태호 자신이 마름으로 관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진짜 땅주인이 자신의 아래 동서가 되고 있으니 놀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자신의 아내인 고복자는 엄청 좋아한다. 3살 아래인 여동생 고복수가 남편복이 많으니 그것이 잘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손태호는 지주 손수석 앞에 서면 영 기가 죽는다. 그래서 손위 손 아래를 떠나서 아예 친구처럼 편하게 지내기로 마음을 먹고 있다.
그런데 그날 자신을 찾아온 손수석의 표정이 영 좋지가 못하다. 어깨에 맨 칼빈 총을 사랑방 한쪽에 세워 놓고서 손수석이 손태호에게 말을 꺼낸다; “형님, 오늘 장모님이 그 먼 길을 걸어서 저를 찾아 왔어요. 처남이 군대에 끌려갔으니 좀 알아봐 달라고 하시는 겁니다…”.
손태호도 깜짝 놀란다. 그래서 급히 물어본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손수석이 답한다; “벌써 대구로 이동하여 훈련을 받고 있다고 군부대에서 알려주더군요. 이번에 징집하여 훈련을 받게 되는 병사들은 인천을 통하여 중부전선에 배치가 될 모양입니다. 그곳 전투가 가장 치열할 텐데 참으로 걱정입니다…”.
두사람이 서로 걱정을 나누고 있다. 손수석이 그 소식을 손위동서에게 알려주는 것은 그것이 도리라서 그런 것이다. 시골에서 전답을 관리하고 있는 손태호라고 해서 무슨 뾰쪽한 수가 있겠는가?... 그저 함께 걱정을 하고 서로 위로를 나눌 따름이다.
생각해보면, 기본적으로 한국국민들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양 진영의 대결구도에 끼여서 동족상잔의 처참한 비극만을 맛보고 있을 뿐이다. 한국이 소련과 북한에 의하여 점령이 된다면 세계 양진영의 판도는 어떻게 될까? 다음 그림과 같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러한 결과를 초래하지 않기 위하여 미국은 대한민국을 도와서 소련의 지원을 받고 있는 북한의 인민군을 쳐부수고 있다. 하지만 동족 사이에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벌여야만 하는 한국사람들은 그 운명이 처참한 것이다. 그러한 비참한 운명은 애초에 자신들의 힘으로 독립을 얻지 못하고 미국과 소련의 힘으로 해방이 된 조선사람들이 치루어야 하는 대가인지도 모른다.
다음날 장모 전혜숙이 장매 마을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남편 고천석과 막내 딸 고순옥이 걱정이 되어서 다시 선덕마을 집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손수석은 달리 장모를 위로할 방법이 없어서 자신의 돈가방에서 현찰을 꺼내어 꼭 쥐어 준다. 적지 않은 금액이다. 그것으로 일단 곡식을 사서 한 계절을 버티어 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날 천북지서에 부음이 전해진다. 9월 17일 발생한 비학산 전투에 지원을 나갔던 지서의 순경 가운데 한 사람이 그만 전사를 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손수석은 차석이라 지서장을 모시고 지서의 살림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 전투에 직접 나가지 않았지만 신참인 순경들이 전투에 참여하여 그만 한 사람이 희생이 되고 만 것이다.
손수석과 지서장은 멀리 솟아 있는 비학산을 쳐다보면서 한숨을 쉬고 있다. 참고로 학이 날고 있다는 것과 같다는 비학산의 모습이 다음과 같다;
인민군들이 인천상륙작전으로 허리가 끊기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낙동강 지역에서는 상당한 공격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들이 빨치산이 되어 앞으로 경찰서와 지서 그리고 때로는 작은 군부대를 습격할 것이다.
그때에는 지서장과 차석인 손수석도 전투에 나서야 한다. 자신들의 안위도 장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데 며칠 후 갑자기 본서에서 손수석을 호출한다. 경사로 진급이 되었으니 빨리 본서로 들어와서 승진신고를 하라는 것이다. 손수석이 지서장에게 보고를 하고 10월 1일에 경주경찰서를 방문한다.
그동안 경찰서장이 바뀌어 있다. 새로운 경찰서장은 손수석의 진급신고를 받으면서 말한다; “손경장은 오늘부로 경사로 승진이 되었어. 그런데 한 계급 올라가는데 어떻게 1년 7개월이나 그렇게 오래 걸렸어? 그래서 언제 경위가 되고 간부가 되겠나? 내가 자네에게 빨리 승진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자 이번에 포항경찰서로 전보시켰네. 그곳 전투현장에 가서 전공을 세워 보게나”.
새로운 서장의 말은 포항경찰서의 인력이 비학산 전투로 말미암아 많이 희생이 되었으니 그곳 서장의 요청을 받아 들여서 손수석을 포항으로 보낸다고 하는 것이다. 당시 포항은 비학산 전투로 수복이 된 지역이라 전방이고 경주는 후방인 셈이다;
그러므로 그 전보발령은 손수석에게 엄청 불리한 것이다. 본서의 경찰들이 자원하지 않으므로 일선 지서에 나가 있는 손수석을 포항으로 보내고자 한 것이다. 그러한 내막을 짐작하면서도 손수석은 씩씩하게 경례를 하면서 대답한다; “네, 서장님 감사합니다. 열심히 전투에 참여하여 공을 세우겠습니다”.
서장은 얼른 마주 경례를 하고 손을 내리면서 말한다; “좋았어. 역시 젊은 사람이라 기백이 있어. 그러면 지서의 짐을 정리하여 일주일 내로 포항경찰서장에게 전입신고를 하도록 하게”.
경사가 된 손수석은 1950년 10월 두번째 주부터 포항경찰서에서 근무하게 된다. 맡은 직책이 경비계장이다. 본서의 무기고 뿐만 아니라 각 지서의 무기보관 상태를 전부 점검한다. 또한 무기고를 지키는 병력이 충분한가를 점검한다. 그 일을 순경 한사람과 함께 자전거로 매일 실시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다.
먼 곳에 있는 지서를 방문하여 무기고와 그 경비상태를 점검하게 되면 그곳 숙직실에서 잠을 자야만 한다. 1950년 11월 하순에 그렇게 지서 숙직실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바깥에서 총소리가 갑자기 들린다. 깜짝 놀라서 데리고 온 본서의 순경과 함께 서로 칼빈 총을 손에 쥐고서 바깥으로 뛰어 나간다.
지서의 담 사이로 칼빈 총을 겨누고서 바깥의 상황을 살핀다. 그러자 지서의 경찰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공비들의 모습이 보인다. 시가전이 야밤중에 발생한 것이다. 손수석의 눈에 멀리서 공비 한 사람이 막대기 수류탄을 손에 들고서 던지려고 하는 모습이 포착된다.
그 수류탄이 경찰 쪽으로 던져지면 큰일이다. 그래서 급히 그쪽을 겨냥하고 있는 칼빈 총의 방아쇠를 당긴다. 참으로 다행이다. 상대방이 푹 꼬꾸라지면서 잠시 후에 그 막대 수류탄이 적진에서 터지고 만다. 그것을 보고서 남은 공비들이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그날 천우신조로 그 지서의 경찰들과 손수석 일행이 목숨을 건지고 있다;
그와 같은 위기가 포항경찰서에서 계속이 된다. 과연 손수석 경사의 장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경찰서 가까운 민가에서 방을 하나 얻어서 생활하고 있는 부인 고복수는 이제 두 돌이 지난 아들 손진목과 함께 남편이 무사히 귀가하기만을 매일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놓고 하늘과 옥황상제에게 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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