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 할매(손진길 소설) 57

봉천 할매17(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17(작성자; 손진길) 1940년 10월 중순은 농한기이므로 동네어른들과 청년들이 손영주의 집 사랑방에 몰려들고 있다. 일본에서 잠시 귀국한 손수석이 동네 어른들과 청년들에게 드릴 말씀이 있다고 광고를 했기 때문이다.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가? 40명 정도의 너븐들 사람들이 모였을 때에 손수석이 먼저 좌중에서 일어나 동네어른들에게 절부터 드린다. 부친 손영주의 연배가 되는 어른들은 그냥 앉아서 손수석의 절을 편하게 받고 있지만 청년들과 일부 어른들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반절을 하거나 완전히 맞절을 하고 있다. 청년인 경우 나이가 18세인 손수석보다 많아서 반절을 하고 있지만 그 가운데에는 나이를 떠나서 청년이거나 어른이거나 손수석에게 반드시 맞절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봉천 할매16(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16(작성자; 손진길) 3. 봉천 아지매가 봉천 할매가 되다. 1938년 가을걷이를 앞두고 봉천 아지매 정애라는 한가지 걱정이 앞선다. 그것은 며느리 김옥순의 배가 불러오기 때문이다. 김옥순은 추수시기가 다가오고 있으므로 불러오는 배를 천으로 칭칭 동여매고서 논으로 나오고자 한다. 그만큼 그녀는 농사일을 중시하고 있다. 하지만 시아버지 손영주와 시어머니 정애라는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둘 수가 없다. 귀한 손주를 임신한 며느리를 일꾼으로 계속 부리다가 유산이라고 하게 되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며느리 김옥순에게 간단한 집안일만 하고 뱃속의 애기를 잘 돌보라고 지시한다; 그 대신에 추수를 앞두고서는 아직 어리지만 넷째 아들 손수권과 막내 아들 손수태로 하여금 논으로 나와서 부모의 농사일을 도우라..

봉천 할매15(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15(작성자; 손진길) 1940년 5월경 손수석 곧 쯔끼모도는 탄광에서 경리일을 보고 있는데 그는 회사가 받침목을 대규모로 구입하고 있는 건에 대하여 자꾸만 관심이 간다. 광부들이 갱도에서 안전하게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굴이 무너지지 아니하도록 사전에 많은 받침목으로 벽과 천장을 만들어야만 하는데 그 작업에 엄청난 목재가 사용이 된다; 그리고 갱도의 바닥이라고 하여 그냥 맨땅이 아니다. 석탄을 캐내기 위하여 광부들이 막장까지 접근하기 위해서는 갱도바닥이 단단해야 한다. 그리고 캐낸 석탄을 운반용 궤도차에 실어서 바깥으로 내보내기 위해서는 갱도 바닥에 침목을 깔고 선로까지 설치해야 한다. 그러므로 갱도야 말로 그 침목까지 계산하면 마치 건물을 짓는 것과 같이 목재의 구입비용이 막대하게 소요가 되고..

봉천 할매14(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14(작성자; 손진길) 1937년 12월 27일에 손수석이 배인근 및 안춘근과 함께 일본으로 들어갈 때에 부산에서 탄 선박의 이름이 ‘관부연락선’인 ‘경복마루’이다. 그 배가 당시로서는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왕래하고 있는 정기노선의 여객선 가운데 하나이다. ‘관부연락선’이라고 부르고 있는 이유는 시모노세키가 한자로 ‘하관’이므로 그 ‘관’ 자를 따오고 ‘부산’의 ‘부’자를 따왔기 때문이다; 일본으로 가는 여객선을 조선사람들이 이용하자면 무조건 ‘도항증’을 제시해야 한다. 손수석은 ‘부산수상경찰서장’이 발부한 그 ‘도항증’을 사전에 품에 지니고 있었기에 승선이 가능하다; 그러하지 못한 사람들이 일본으로 들어가자면 밀항선을 이용해야 한다. 그것은 밀수 만큼이나 위험한 일이지만 조선에서 일자리를 얻지 ..

봉천 할매13(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13(작성자; 손진길) 봉천 아지매 정애라의 셋째 아들인 손수석은 1937년 12월 26일 오후 2시경에 부산역에 도착했다. 별세하신 할머니 이채령이 자신에게 준 편지에는 부산항 근처에 살고 있는 장인식 교장과 안성기 교장의 주소가 적혀져 있다. 주소를 보니 그들은 같은 지역에 서로 이웃하여 살고 있다. 어느 집을 먼저 방문할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 자신의 눈앞에 장인식 교장의 집이 먼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집 대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손수석이 대문 안으로 들어선다; 그런데 집안의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 안채와 사랑채에 어른들의 신발이 많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대충 세어보아도 양쪽을 합하면 12명 정도가 되는 것 같다. 무슨 날인가 싶어서 손수석은 사랑채 가까이 다가가서 큰 소리..

봉천 할매12(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12(작성자; 손진길) 1937년 7월 23일 내남 너븐들 손영주의 집에서 초상이 난다. 노마님 이채령이 향년 82세로 별세한 것이다. 부고를 들은 너븐들 사람들이 가장 먼저 문상을 온다. 그 다음에는 안심과 박달에 흩어져 살고 있는 월성 손씨 일가들이 조문을 온다. 비록 바쁜 농번기이지만 그들은 만사를 젖혀 두고 서배 할배 손상훈의 미망인인 이채령의 부고를 듣고 조문을 오지 아니할 수가 없다. 서배 할배 손상훈이 그들의 가주로서 그리고 대지주로서 그들 일가와 소작농들에게 베푼 은혜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1930년 1월 16일에 서배 할배가 운명을 하자 상주와 일가들이 그 산소를 너븐들 뒷산 선산에 섰는데 이제 7년반이 지나 1937년 7월 23일이 되자 부인 이채령의 묘소가 그 옆에 생기게..

봉천 할매11(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11(작성자; 손진길) 이채령은 기력이 많이 쇠하여 나들이를 자제하고 있다. 1937년에 들어와서는 주로 방에서 지낸다. 하지만 그해 6월이 되자 모내기가 한창인 들녘을 보고 싶어서 근력이 약해진 몸을 겨우 일으켜서 바깥나들이를 한다. 조선나이로 82세이므로 당시로서는 상노인 중의 상늙은이이다. 너븐들 앞산이 있는 남쪽을 바라보면서 그곳까지 넓게 펼쳐져 있는 농경지를 주시한다. 물이 들어와서 논이 되어 있는 그 전답에서는 동네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모내기를 하느라고 한창이다; 그 모습을 보니 자신이 건강하다면 그 논에 발을 담그고 함께 모내기를 하고 싶다. 그러나 자신의 노쇠한 육신은 이미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채령은 하늘을 우러러 보면서 탄식을 한다; “오, 하늘에 계시는 옥황상제님,..

봉천 할매10(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10(작성자; 손진길) 이채령은 육신이 자꾸만 쇠약해지자 자신이 이 세상에 남아 있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직감한다. 사랑하는 남편 서배 할배 손상훈이 기다리고 있는 세상으로 그녀가 가야만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전에 서배 할배가 부탁한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 서배 할배가 별세를 하기 한달 전에 사랑하는 아내 이채령에게 부탁한 일은 집안을 위하여 자신이 맡기는 논 10마지기의 돈을 요긴하게 사용해달라는 것이었다. 그 당부를 실천하기 위하여 이채령은 1935년말에 며느리인 봉천 아지매 정애라에게 그 돈의 절반을 주었다. 당시 며느리 정애라는 남편 손영주가 곳간의 곡식을 굶고 있는 이웃을 살리겠다고 마구 퍼준 결과 발생한 사태에 대하여 하늘이 무..

봉천 할매9(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9(작성자; 손진길) 1932년 10월에 손영한 부부는 큰딸 ‘손수자’를 내남 둥굴 마을에 살고 있는 최후술과 혼인을 시켰다. 1912년생인 손수자는 그때 21살이었다. 손수자는 이듬해인 1933년 12월에 아들을 낳았는데 그 이름이 ‘최해구’이다. 아들을 낳고 두 부부가 얼마나 사이 좋게 잘살고 있는지 모른다. 둥굴 마을에서는 ‘잉꼬부부’라고 소문이 다 나 있다; 1936년 1월 중순이 되자 손수자 부부가 4살짜리 아들과 함께 내남 너븐들로 오고 있다. 그녀의 바로 밑의 여동생인 손미자의 혼례식이 친정집에서 있기 때문이다. 언니 수자보다 6살이나 적은 손미자는 금년에 조선의 나이로 19살인데 벌서 결혼을 한다. 신랑은 월성 이씨인 이종대인데 청도에 살고 있다. 내남 너븐들에서는 결혼식이 있으면..

봉천 할매8(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8(작성자; 손진길) 2. 이채령의 안배와 봉천 아지매 정애라 이채령은 겉으로는 뒷방 늙은이처럼 지내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것이 아니다. 그녀는 나름대로 세가지 집안일에 신경을 쓰고 있다; 첫째가, 집안의 경제적인 문제이다. 둘째가, 손주들에 대한 교육의 문제이다. 셋째가, 손주들의 혼사에 관한 것이다. 간략하게 그 대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이채령은 아들 손영주가 경제적으로 자수성가를 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녀는 자수성가형의 인물 두사람을 살아오면서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는데, 한사람은 시아버지 손성규이고 또 한사람은 남편 손상훈이다. 그 두사람은 시간이 나는 대로 거랑가의 땅을 개간하여 전답을 늘려 나갔다. 그리고 한 푼이라도 아껴서 알뜰하게 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