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 할매(손진길 소설)

봉천 할매56(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10. 6. 00:17

봉천 할매56(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는 1953년 6월 2일 아침에 경주역에 도착한다. 전날 오후에 청량리역에서 경주를 거쳐 부산으로 가는 중앙선 열차를 탔는데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경주역에 도착한 것이다. 과연 서울이 멀기는 먼 곳이다;

절친 오예은과 함께 그 열차를 타고 오면서 밤늦도록 봉천 할매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경주역에 도착하기 전에 서로 포옹을 하면서 아쉬운 작별을 했다. 참으로 오랜 친구이다. 동네골목 소꿉친구이다. 그 친구와 이제는 헤어진 것이다. 따라서 경주역에 홀로 내린 봉천 할매 정애라는 한참을 역구내 긴 의자에 앉아 있다. 그녀의 마음은 망망대해를 이제 혼자서 마주하고 있는 그러한 막막한 심정이다;

마치 3년 전에 남편 손영주를 여윈 것과 같은 슬픔이 마음속에서 차오르고 있다. 봉천 할매는 5남 1녀의 자식을 두고 있는 자신이 어째서 그러한 쓸쓸함을 한없이 느끼고 있는지 모른다.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몸에서 생기가 자꾸만 빠져나가고 있어서 그런 것이다. 그녀는 스스로 그 점을 예민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봉천 할매 정애라는 더 늦기 전에 인생의 마무리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천천히 걸어서 노동동에 있는 아들 손수석의 집까지 간다. 마침 자전거를 타고서 경찰서로 출근을 하려고 대문을 나서던 손수석이 혼자서 걸어오고 있는 모친을 알아본다. 깜짝 놀라 자전거를 끌고 모친에게 다가간다;

손수석이 모친에게 묻는다; “어머니, 이 아침에 어쩐 일이십니까? 어디 다녀오시는 길이십니까?”. 아들의 말을 들은 봉천 할매가 쓸쓸한 표정 가운데에서도 한줄기 기쁜 마음으로 답을 한다; “수석아, 내 아들 수석아, 이 에미가 오늘은 너에게 할 말이 있으니 점심시간에 집에 들러 함께 식사를 하면서 내 이야기를 좀 들어줄 수가 있겠느냐?”.  

손수석이 즉시 답을 한다; “어머니, 걱정 마세요. 경찰서에 가서 오늘 급한 일만 빨리 처리하고 11시쯤에 일찍 집에 들릴게요. 그러니 아무 염려 마시고 집에 들어가셔서 편히 쉬고 계세요”. 손수석은 모친이 대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 방에 들어가시는 것을 보고서 부엌에 들러 아내에게 빨리 진지상을 올려 드리라고 말한다.

정확하게 그날 오전 11시에 아들 손수석이 자전거를 타고서 집에 온다. 약속 하나는 칼같이 지키는 손수석이다. 그는 안방에 들어 자리에 누워서 쉬고 계시는 모친에게 자신이 집에 왔음을 고한다. 그러자 봉천 할매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수석에게 말을 시작한다; “수석아, 너는 돈을 버는 데는 자질이 뛰어나고 아주 열심이지만 어째 홀로 남아 있는 늙은 에미에게는 효도를 할 줄을 모르는 것이냐?”. 

아닌 밤중에 홍두깨와 같은 모친의 꾸중에 손수석이 한동안 어리둥절해 한다. 그러자 봉천 할매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한다; “수석이 네가 하도 바빠서 이 에미에게 서울구경을 시켜주지 않길래 이번에 내가 친구 오예은이와 함께 서울나들이를 좀 하고 왔다. 물론 내가 여행경비는 전부 수석이 네가 나에게 맡긴 돈을 사용했다”;

그제서야 모친의 말뜻을 이해한 손수석이 웃으면서 말씀을 드린다; “어머니, 참으로 잘하셨습니다. 제가 경찰일이 바빠서 그만 어머니에게 꽃구경도 한번 시켜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불효자이지요. 그런 불효자가 번 돈이니 그것을 어머니 마음껏 사용하셔서 부디 조선 8도를 전부 유람하세오.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그 말을 듣자 봉천 할매 정애라가 진지하게 아들 손수석에게 말한다; “알겠다. 그러면 수석이 네가 나에게 맡겨 놓은 돈은 내가 전부 사용하고 이 세상을 떠나도록 하마. 그래도 이의가 없겠지?”. 손수석이 순순히 말한다; “어머니, 부디 그렇게 하세요. 제가 어머니께 맡겨 놓은 돈은 모두 어머니의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대로 사용하셔도 됩니다. 저는 돈을 또 벌면 됩니다”.

그 말을 들은 봉천 할매 정애라가 갑자기 눈에서 눈물을 흘린다. 손수석이 깜짝 놀라서 묻는다; “어머니, 어디가 많이 편찮으신 거예요? 어째 평생 흘리지 아니하시던 눈물을 이 아들 앞에서 다 비치십니까?”. 봉천 할매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조용하게 말한다; “수석아, 고맙다. 내가 아들 하나는 참으로 효자로 낳았구나. 그래 전답을 사도 백마지기는 너끈히 살 수가 있는 그 큰 돈을 이 에미에게 그냥 사용하도록 준다는 말이지…”.

잠시 말을 끊었던 봉천 할매가 이어서 말한다; “수석아, 그 돈을 나는 장남인 네 형 수정이에게 맡기고자 한다. 내가 없으면 수정이가 그 돈이라도 지니고 있어야 집안에서 장자 노릇을 하면서 아내와 동생들에게 형의 권위를 세울 수가 있을 것 같아서 그렇다”. 손수석이 모친의 말씀을 듣고 보니 이치에 맞는 말씀이다. 그래서 고개를 끄떡인다.

그것을 보고서 봉천 할매가 이어서 말한다; “그리고 내가 그동안 지니고 있던 전답문서와 장부는 전부 수석이 너에게 주마. 본래 네 것이니 네가 지니고 있는 것이 옳다. 그리고 장부는 내가 한 부를 더 만들어 두었다. 그것을 내가 수정이와 수권이에게 맡겨 두마. 그들이 내남에 있는 전답을 이제 나를 대신하여 너를 위하여 관리할 것이다. 내가 일을 그렇게 처리하고자 하는데 수석이 너의 의견은 어떠하냐?”;

그러자 손수석이 말한다; “어머니, 그 일은 그렇게 처리하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실로 정확하고도 확실하게 처리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한가지 궁금합니다. 그렇게 처리를 하시고 그럼 어머니는 어디로 가시고자 하시는 데요?”.

봉천 할매가 짐짓 노한 척 언성을 높인다; “수석아, 너는 도대체 언제까지 이 늙은 에미를 너의 비서로 부려 먹으려고 하느냐? 고얀 녀석 같으니라고… 나도 이제는 남들처럼 좀 편히 쉬고 싶어서 그렇다. 왜 이 에미는 그렇게 쉬면 안되는 사람이냐?”. 손수석이 깜짝 놀라서 ‘어어어’라고만 말한다.

그것을 보고서 봉천 할매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호호’라고 웃는다. 그러면서 말한다; “수석아, 너는 다 좋은데 어째 그리 사람의 말이 진심인지 꾸며서 하는 말인지 구별을 하지 않는 게냐? 이 에미가 농을 해도 너는 전부 진심으로 알아 들으니 그동안 어찌 내가 너에게 빈소리를 할 수가 있었겠느냐? 부디 앞으로는 농담도 하면서 그렇게 친화력이 있게 살아라. 그렇게 항상 긴장을 하면서 정확한 일처리만 고집하고 있으면 너무 힘이 들고 오래 살 수가 없어. 내 말을 부디 명심해라”;

손수석이 모친의 말씀을 알아들었다. 그래서 말한다; “잘 알겠습니다, 어머니. 앞으로는 제가 융통성을 발휘하여 사람들을 대하겠습니다. 모두 저처럼 살아가라고 말하지 않을 게요... 상대방이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그렇게 알고서 야단을 치지 않고 잘 대해 줄게요. 그렇게 너그럽게 대하면 되는 거죠?”.

그 말을 듣자 봉천 할매 정애라가 말한다; “그래 맞다. 그리고 이번에 내가 오예은이와 함께 서울에 갔다 왔다. 내 오랜 친구 오예은이가 이제는 경주를 떠나 서울에서 살겠다고 해서 내가 따라간 게야. 오예은이는 서울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는 아들네 집에서 손주들을 돌보면서 살겠다고 하더라”.

봉천 할매가 숨을 한번 쉰 다음에 이어서 말한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서울에 가서 보고 느낀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을 수석이 너에게 차제에 말해주고 싶다. 서울의 종로와 명동 근처를 가보니 이번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곳이 너무 많더라. 그것을 전부 복구하는데 아마도 십년이상이 걸릴 것 같애…”;

말을 일단 끊은 다음에 다시 말한다; “그런데 건물복구는 건설공사를 통하여 복구가 되겠지만 전쟁통에 이북에서 월남한 사람들이 많으니 이제 대한민국은 장차 먹고 사는 문제가 보통문제가 아니겠더라. 그러하니 수석이 너는 사업에 수완이 있으니 앞으로 경제를 건설하는 일에 한번 매진을 해보아라”.

손수석이 그 말을 듣자 말한다; “그러면 어머니께서는 제가 경찰공무원보다는 장차 조국의 경제건설을 위하여 사업가가 되는 것이 더 낫다고 말씀하시는 것이군요?...”. 그 말에 봉천 할매가 대답 대신에 고개를 크게 끄떡인다. 그 다음에 더 구체적인 말을 하고자 한다.

봉천 할매의 당부가 이어진다; “수석아, 너는 그동안 내남 고향에서 일가들이 밥을 굶지 않도록 했으니 이제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서 돈을 벌어 또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니?... 그리고 똑똑한 자식이 태어나거든 너의 뒤를 이어서 우리 한국백성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게 하는 것이 옳을 것이야… “;

손수석이 들어보니 모친의 말씀에 일리가 있다. 그래서 계속 귀를 기울인다; “내가 이번에 서울에 가서 보니 아무리 폐허가 되어 있어도 역시 한국의 중심은 수도인 그곳인 것 같더라. 이곳 외떨어진 경주나 내남은 결코 아니야. 그 점을 부디 명심해라. 결론적으로, 우리 집안도 마치 교리 최부자들처럼 그렇게 지역사회와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도움이 되도록 살아가야 하지 않겠니?...”;

봉천 할매가 다음과 같이 당부의 말을 전부 끝내고 있다; “이제 이 에미가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부 다했다. 그러니 이번 일요일에는 나와 함께 내남 너븐들 집에 좀 가자꾸나. 내가 너의 명의로 되어 있는 전답문서와 그동안 관리한 대장을 전부 너에게 주마. 다쿠시라도 불러서 이 에미를 편하게 고향으로 데려다 주면 참 고맙겠다”.

손수석이 기분이 좋게 말한다; “어머니, 그렇게 제가 명심 또 명심하여 시행할 것이니 저와 함께 이제 점심식사를 하시지요. 그러고 오늘은 제가 경찰서에서 일찍 조퇴를 하고 왔으니 건강이 괜찮으시면 식사 후에 저와 함께 다쿠시를 타고 너븐들로 가시지요…”. 봉천 할매가 말한다; “그래 내가 좀 쉬었더니 이제는 괜찮다. 그럼 그렇게 하자꾸나”.

그날 오후에 봉천 할매가 아들 손수석과 함께 다쿠시를 타고서 내남 너븐들로 들어서자 동구 입구에서부터 어린아이들이 ‘우우’하고서 차량의 뒤를 따라온다. 봉천 할매가 아들 손수석과 함께 집으로 들어서자 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던 큰 며느리 김옥순이 마당으로 나와서 반긴다.

봉천 할매는 얼른 손수석을 자신의 방으로 불러 들인다. 그리고 벽장에서 전답문서와 장부 하나를 꺼내어 보자기에 꽉 사서 쥐어 준다. 그것을 받고서 손수석은 형수에게 인사를 한 다음에 다시 다쿠시를 타고서 경주 읍내 노동집으로 돌아온다;

아들을 떠나 보내면서 봉천 할매는 한시름을 놓았는지 ‘후유’하고 다시 큰 숨을 한번 쉰다. 그러면서 속으로 아들 손수석에게 긴 이별을 고한다; “수석아, 이 에미는 오래 살지를 못할 것 같다. 이렇게 내 몸이 자꾸만 천근만근으로 무거워지고 있다. 나는 똑똑한 아들인 수석이 네가 있어서 참으로 말년에 행복했다. 네가 조부모의 재산을 모두 찾아 주었으니 나는 이제 조상을 만나더라도 할말이 있겠구나”.

늙은 봉천 할매의 눈에 눈물이 비친다. 그러면서 그녀는 다시 속으로 중얼거린다; “수석아, 너의 할머니인 서배 할매에게는 내가 너의 성공담을 확실하게 전해주마. 서배 할배의 천석지기 재산을 수석이 네가 조모의 유언을 따라 전부 되찾았다고 말이다. 그러니 수석아, 이제는 집안 걱정을 너무 하지 말고 부디 네 길을 가거라. 그리고 이 에미를 잊지 말아라”;

마당을 지나 자기 방으로 들어오면서 봉천 할매가 마치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다시 속으로 중얼거린다; “내 사랑하는 아들 수석아, 나는 너와 같은 좋은 아들을 나에게 주신 하늘에 감사한다. 그리고 이제는 편히 눈을 감으려고 한다. 잘 가거라, 그리고 잘 살아라, 내 사랑하는 아들아…”. 그렇게 속으로 영원한 작별을 고하고 있는 봉천 할매 정애라이다. 도대체 그녀는 몸의 상태가 어떠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