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 할매54(작성자; 손진길)
손수석은 1953년 5월초에 경주 읍내 노동동으로 이사한다. 그리고 5월 중순에 간단하게 집들이를 한다. 그 자리에는 모친인 봉천 할매 정애라가 멀리 내남 너븐들에서 일부러 와서 참석을 하고 또한 경주 장매 마을에 살고 있는 장인 고천석과 장모 전혜숙 그리고 처제인 고순옥이 참석하고 있다.
봉천 할매 정애라는 아들 손수석이 경주 읍내 중심지에 주택을 사서 살게 되니 그것이 참으로 좋다. 그동안 자주 근무지가 바뀌어 셋집과 관사를 전전하던 아들이 경주 읍내에 정착하게 되니 이제는 다소 안심이 된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안사돈의 얼굴을 보니 반갑고 즐겁다.
처제 고순옥은 언니 고복수보다 나이가 10살이나 어리다. 그래서 아직 15살이다. 한창 꿈이 많은 소녀이다. 이제는 언니가 경주 중심지 노동에 자리를 잡고 살게 되니 그녀는 자주 놀러 오려고 생각한다. 그래서 부엌일을 하고 있는 연자와 함께 집들이 음식을 같이 준비하고 상을 내온다;
그녀는 연자와 나이가 비슷하니 서로 동무가 되어 부엌에서 이야기 꽃을 피운다.
그날 장인 고천석이 사위인 손수석에게 말한다; “사위, 이틀 후에 팔우정 황오동에 살고 있는 내 친척 고병대의 집에서 우리 충청도 고향 출신 제주 고씨 일가들과 그 최각들이 모처럼 함께 모여서 계모임을 한다고 연락을 받았어. 이제 자네도 경주 읍내에 집을 사서 안착을 하게 되었으니 부부간에 그 계중에 참석을 하면 좋겠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손수석이 대답을 하기 전에 그 옆에 앉아서 아기를 보고 있던 아내 고복수가 남편에게 먼저 말한다; “여보, 일전에 민달이 오빠가 일부러 저희 집에 찾아와서 저에게 그 일가 계중 이야기를 했어요. 당신에게 말하여 그 계중에 참석하게 해달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제가 미처 말씀을 못 드렸네요. 미안해요”.
그 말을 듣자 손수석이 아내에게 고개를 끄떡이면서 조용히 묻는다; “당신 생각은 어때요? 함께 그 계모임에 참석을 하고 싶소?”. 고복수가 얼른 대답한다; “네, 저는 당신과 함께 꼭 참석하고 싶어요. 일년에 두차례 모이는 계중인데 그곳에 가면 친척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가 있거든요. 진작부터 참석하고 싶었지만 전쟁 중이고 또 당신 근무지가 자주 바뀌어 그렇게 하지를 못했어요”.
아내의 의견을 듣자 손수석이 빙그레 웃으면서 장인 고천석에게 말한다; “장인어른, 집사람이 좋다고 하니 저도 함께 이틀 후에 참석을 하겠습니다. 나중에 제게 그 고병대 어르신의 집주소와 모임시간을 좀 알려주십시오”. 고천석이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어 손수석에게 곧바로 주면서 말한다; “벌써 내가 집에서 그 집주소와 모임시간을 적어 왔어. 이틀 후가 일요일이니 그날 점심시간부터 모임이 시작되네”.
집들이가 끝나고 손수석의 장인과 장모는 장매 마을로 돌아가고 처제 고순옥은 남는다. 그녀는 읍내에 온 김에 언니집에서 한 이틀 묵으면서 시내구경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봉천 할매도 남는다. 며칠 아들네 집에서 푹 쉬면서 친구 오예은과 하나 뿐인 친정 남동생을 만나고자 하는 것이다.
그날 밤에 손수석이 아내 고복수에게 묻는다; “그 민달이 오빠가 바로 일본에서 나와 함께 귀국을 한 그 고민달을 말하는 것이요?”. 고복수가 대답한다; “네, 민달이 오빠가 그렇다고 제게 말했어요”. 손수석이 묻는다; “허, 그 참 신기한 일이요. 그래 촌수가 어떻게 되는거요?”. 고복수가 즉시 답한다; “우리와는 가장 가까운 촌수예요. 민달이 오빠의 부친과 저의 아버지가 종반간인 걸요”.
손수석이 혼잣말처럼 말한다; “허, 참, 기이한 인연도 다 있구만. 그렇다면 고민달이 어째서 우리 결혼식에는 참석하지를 못한거요?”. 고복수가 대답한다; “민달이 오빠는 그동안 경주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도 충청도 고향에 살고 있는 가족들은 물론 경주에 살고 있는 친척들과 별로 내왕을 하지 않았다고 해요. 그만큼 돈 벌기에 바빴던 모양이지요”.
고복수가 남편의 얼굴을 보면서 이어 말한다; “나중에 고병대 아재를 통해서 저희들 이야기를 들었대요. 특히 내남 너븐들의 지주 손수석이 저의 남편이라는 말을 듣고서는 너무 반가워서 곧바로 경주경찰서에 물어서 우리집을 찾아왔다고 그랬어요. 당신이 근무중이라 저에게 그 계모임 이야기를 전해준 거예요. 그리고 그 계중에서 당신을 꼭 보자고 말하던데요…”.
손수석이 역시 혼잣말처럼 말한다; “허, 그것 참, 고민달 그 사람 자기 살기에 바빠서 고향사람이나 일가들을 돌아볼 여유가 전혀 없었구만. 경주경찰서에 왔으면 나를 만나고 갈 것이지 구태여 일가 계중에서 나중에 만나자고 하다니. 정말 그 속을 알다가도 모르겠구만…”. 그렇다. 그것이 고민달의 성격이다. 그는 남의 일에 간섭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꼭 필요한 이야기만 하고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일체 아무 말도 안 하는 그러한 사람이다.
다음날 손수석은 모친 봉천 할매와 함께 교리에 살고 있는 외삼촌 정한욱의 집을 방문한다. 손수석이 운전하는 자전거 뒤에 타고서 남천내까지 함께 가게 되니 정애라는 한결 편하다. 생각 같아서는 그 자전거 뒷자리에 타고서 너븐들 집까지 가면 좋겠지만 경찰공무원인 손수석이 바빠서 그렇게 하지를 못한다.
정한욱 내외는 저녁에 누나 정애라가 아들 손수석과 함께 찾아오자 무척 반긴다. 이 세상에 형제라고는 누나인 봉천 할매 뿐인데 그 누님이 오래간만에 방문을 한 것이니 그럴 만도 하다. 손수석도 오래간만에 외삼촌과 외숙모를 만났는지라 절부터 한다. 그러자 봉천 할매가 손수석이 경주 노동에 집을 샀으니 읍내에 나오면 더러 들리라고 동생내외에게 말한다. 그 말을 듣자 정한욱 내외가 축하를 한다.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자리에서 손수석이 외삼촌 정한욱에게 교리 최부자의 가주인 최준 어르신이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그 근황을 물어본다. 그러자 정한욱이 자신의 아내인 최순미의 얼굴을 한번 본 다음에 말한다; “그 손위 처남은 1947년에 대구대학을 설립한 다음부터 그 재정과 운영문제에 매어 달려서 바쁘게 지내고 계시지”;
정한욱이 처가 집안의 자랑스러운 일인지라 좀더 설명을 한다; “가주 최준 선생은 일제시대에는 안희제 선생과 함께 부산에서 백산상회를 경영하면서 상해임시정부에 은밀하게 자금을 지원하고 이제 해방이 되어서는 나라의 인재를 양성한다고 그렇게 애국 애족운동을 전개하고 계시는 거야”. 참고로, 백산무역회사를 운영하면서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제공한 문파 최준과 백산 안희제의 모습이 다음과 같다;
정한욱의 아내인 최순미가 촌수로 따지면 가주인 최준의 가까운 일가 여동생이다. 그러므로 정한욱이 교리 최부자의 가주인 최준을 손위 처남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경주 교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교리 최부자의 집안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영남지역에서는 보기가 드문 만석꾼 부자 집안이면서 그 생활이 검소하고 이웃사람들을 많이 구휼하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제시대에도 은밀하게 독립자금을 제공하고 해방후에는 교육사업에 투자를 하고 있으니 존경하지 아니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참으로 깨끗한 부자의 길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귀감이 되고 있다. 그러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에 경주경찰서 보안계장인 손수석이 외삼촌에게 거듭 확인을 해본 것이다. 그리고 내심 자신도 나중에 그러한 좋은 일을 사회적으로 하는 깨끗한 부자가 되어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그날 저녁식사 후에 이야기를 서로 나누다가 보니 시간이 늦어지고 있다. 그러자 정한욱의 아내인 최순미가 손위 시누인 봉천 할매에게 말한다; “언니, 오늘은 저와 이야기를 더 나누시면서 저희 집에서 하룻밤 주무시고 내일 밝은 낮에 움직이세요. 오래간만에 저희 집에 발걸음을 하셨으니 그렇게 하세요”.
최순미는 63세의 손위 시누 봉천 할매 정애라가 이제 떠나가면 언제 또 자기 집을 찾아줄지 몰라서 안타까운 마음에 하루 머물다 가시라고 권한다;
그러자 봉천 할매는 손아래 올케인 최순미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본다. 최순미도 벌써 56세의 할머니이다.
‘이제 봉천 할매 자신이 살아 생전에 올케의 얼굴을 몇 번이나 더 보게 될까?’ 그러한 생각이 들자 정애라가 고개를 끄떡이면서 아들 손수석에게 말한다; “수석아, 오늘은 네가 혼자서 집에 가야할 것 같다. 나는 이집에 하루 묵고 내일 낮에 친구 오예은이를 만난 후에 너희 집으로 가마”.
그 말을 듣자 손수석이 말한다; “어머니 내일은 저와 집사람이 제주 고씨들 계중에 갔다가 저녁에 돌아올 거예요. 하지만 저희 집에 연자가 진목이와 함께 있으니 식사를 차려줄 겁니다. 그러니 걱정 마시고 내일 저희 집에 오셔서 편하게 쉬시도록 하세요”. 봉천 할매가 아들에게 먼저 가라고 손을 흔든다. 손수석이 외삼촌 내외에게 인사를 하고서 집에 돌아온다.
다음날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손수석 내외가 경주 팔우정 인근 황오동에 있는 고병대의 집을 찾아간다. 그는 부자이므로 저택이 상당히 크다. 그 큰집에서 이번에 경주에 와서 살고 있는 충청도 고향사람들 곧 제주고씨 일가들이 계모임을 가지는 것이다.
손수석의 아내인 고복수는 둘째아들 손진길이 아직 태어난 지 5개월에 불과한 갓난아기이므로 등에 포대기와 띠를 둘러서 잘 업고 있다. 5월 중순의 좋은 날씨이므로 그다지 춥지가 않아 아기가 엄마의 등에서 잘 자고 있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에 잠을 깬다;
그 집의 주인인 고병대는 손수석의 장인인 고천석의 재종동생이다. 그러므로 고복수가 깍듯이 7촌 숙부인 고병대에게 인사를 한다. 그러자 고병대는 고복수의 등에 업혀 있는 아기를 본다. 그리고 한마디를 한다; “허, 그 녀석 눈이 똘망똘망하고 머리카락이 유달리 검구만. 총기가 있어 보여. 나중에 크면 머리가 좋겠는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에 이웃에 살고 있는 고민달 내외가 온다. 고민달이 손수석을 보자 왈칵 껴안는다. 그리고 말한다; “대장이 나의 6촌 여동생과 결혼한 줄을 내가 미처 몰랐어. 알았으면 진작에 찾아가서 축하를 했을 터인데. 미안해요”. 그러자 손수석이 말한다; “옛날 일본 북해도에서 함께 고생하던 동지를 만나니 기쁘기 한량 없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손위 처남이 되었으니 내가 잘 모셔야지요”.
그러자 고민달이 손수석에게 자신의 부인을 소개한다; “나는 그동안 소리 소문도 없이 결혼하여 가정을 꾸몄지요. 제 집사람입니다. 그리고 여보, 이분이 내가 말하던 그 유명한 젊은 지도자 손수석이지요…”. 그 부인이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한다; “처음 뵙겠습니다. 하지만 남편으로부터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택호가 ‘사일 댁’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손수석이 깍듯이 인사를 하면서 말한다; “일본에서 민달이 형의 도움을 많이 받은 손수석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친하게 지내겠습니다. 그리고 이쪽은 제 아내 고복수입니다”. 고복수가 얼른 사일 댁에게 인사를 하면서 말한다; “6촌 오빠의 부인이시니 제게는 손위 올케가 되시는 군요. 언니,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그 집 마당으로 장매 마을에 살고 있는 고천석 내외가 도착한다. 집주인 고병대가 얼른 마중을 한다; “아이고 재종형님, 그 먼데서 오셨군요. 형수님 잘 오셨습니다. 여기 따님과 사위분이 처음으로 참석을 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사이에 천북에 살고 있는 손태호 내외가 대문으로 들어선다. 그들은 얼른 장인 장모에게 인사를 한다.
그 모습을 보고서 집 주인 고병대가 일동에게 말한다; “모두들 방으로 들어가셔서 식사를 하시면서 인사도 하고 말씀도 나누시지요. 오늘 아주 푸짐하게 계중 음식을 차렸습니다”. 그 말을 듣자 여자들은 안채로 향하고 남자들은 바깥채로 향한다. 방들이 크고 넓어서 이 삼십 명씩 앉아도 크게 비좁지가 않다. 그리고 마루가 넓어서 큰 모임을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날 계중에 참석한 인물 가운데에는 두 가정이 더 있다; 한 가정은 역시 황오동에 살고 있는 ‘고중달’ 부부이다. 그리고 또 한 가정은 경주중학교 북쪽에 살고 있는 ‘고병달’ 부부이다. 그들은 모두 ‘달’ 자 항렬이므로 손수석의 아내인 고복수와는 같은 항렬의 오라비들이다. 손수석은 그들과도 인사를 나누기에 바쁘다.
그날 그 제주 고씨 일가들의 계중은 참으로 흥겹고 재미가 있다. 함께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춘다. 그리고 푸짐한 음식과 막걸리를 서로 권하며 함께 건배를 한다;
그렇게 함께 하루를 즐기면서 좋은 친구들이 된다. 특히 딸네들과 사위들이 함께 어울려서 계중으로 모이고 있으니 그것이 즐거운 것이다. 더구나 한국전쟁으로 그동안 자주 모이지를 못했기에 이번 계모임이 각별하다.
그들 계모임의 일가들이 더 단합이 잘 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그들이 모두 충청도 음성과 괴산의 고향 집성촌을 떠나 경주에 이주한 제주 고씨 친척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러한 계모임을 통하여 단합을 하고 서로 도와가면서 경주지역에 단단하게 자리를 잡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이번 계중에는 최각으로 손수석이 참여하고 있다. 그는 내남 너븐들의 대지주일 뿐만 아니라 경주경찰서의 보안계장이기도 하다. 그러니 충청도 고향을 떠나 타향인 경주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그들 제주 고씨들에게 있어서는 꼭 필요한 인물이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관청일을 도와줄 수 있는 손수석이 바로 그들의 사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흥겹게 정오부터 하루를 즐기고 있는데 어느덧 오후 4시가 지나고 있다. 그러자 집이 먼 사람들부터 인사를 하고서 길을 나선다. 손수석 부부도 오늘은 교리에서 모친 봉천 할매가 집으로 오시는 날이라 일찍 떠나는 사람들과 함께 대문을 나선다. 그들이 걸어서 노동의 자택에 도착을 하니 벌써 하루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봉천 할매(손진길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봉천 할매56(작성자; 손진길) (0) | 2021.10.06 |
---|---|
봉천 할매55(작성자; 손진길) (0) | 2021.10.06 |
봉천 할매53(작성자; 손진길) (0) | 2021.10.04 |
봉천 할매52(작성자; 손진길) (0) | 2021.10.04 |
봉천 할매51(작성자; 손진길) (0) | 2021.1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