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 할매52(작성자; 손진길)
1952년 12월에 들어서자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린다. 본래 ‘서라벌’인 경주와 ‘달구벌’인 대구는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내륙의 분지이다. 그러므로 여름에는 많이 무덥고 겨울에는 무척 춥다. 한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길에서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고 한낮에는 아스팔트가 녹을 지경이다. 반대로 한겨울이 되면 추위가 대단해서 마치 만주 벌판처럼 춥다고들 말한다.
그와 달리 해양성 기후를 가지고 있으며 더 남쪽에 자리를 잡고 있는 부산지역은 전혀 다르다. 겨울에 온난하여 얼음도 잘 얼기 않는 좋은 날씨가 많다. 그러한 지리적인 차이가 있어서 그런지 내륙에 위치하고 있는 분지도시 경주와 대구에 오래 살고 있는 사람들은 더 고집이 세고 남에게 꺾이기를 싫어한다.
경주 근교에 있는 모량은 건천에 가깝고 높은 산이 시작이 되고 있는 나름대로의 분지이다. 따라서 겨울에 춥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한파가 밀어닥치자 모량지서장인 손수석은 집에 돌아오면 부엌일을 도와주고 있는 연자에게 산모가 있는 방에 군불을 많이 때라고 말한다;
그리고 가을부터 싱싱한 잉어를 시장에서 사와서 계속 고아 먹이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지 산모인 아내 고복수를 잘 돌보아서 작년처럼 아기를 유산하지 아니하고 순산을 하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러한 손수석의 노력이 빛을 보았는지 그 추운 날 12월 21일 저녁에 아내 고복수가 남아를 순산한다.
우렁찬 아기의 고고의 소리가 모량지서장 관사에서 널리 울려 퍼지고 있다. 신라 손씨의 시조가 되는 문효공 손순의 묘역에까지 그 소리가 울려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손수석은 그것이 길조라고 여긴다. 2천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 넘어 다시 신라 손씨의 본래 고향에서 고고의 소리가 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월성 손씨는 신라를 건설한 육촌의 하나에서 비롯되고 있다. 원래 조상이 신라의 육촌 가운데 하나인 대수촌의 촌장 구례마인데 그가 한자로 ‘손’씨 성을 6촌이 옹립한 신라의 왕으로부터 얻게 된다. 따라서 ‘득성조’라고 불리고 있는데 그 구례마의 세력의 중심지가 이곳 모량인 것이다.
남편인 손수석이 아내의 말을 따라 안방에 하얀 천과 따뜻한 물 그리고 가위와 실 등을 미리 준비해 두었기에 고복수가 아기를 낳자 곧바로 탯줄을 잘라주고 실로 동여맨다. 그리고 따뜻한 물로 씻긴 다음에 아기를 산모에게 준다. 그런데 남자아기가 머리카락이 무성하고 새까맣다. 어째서 신생아가 저렇게 머리숱이 많고 새까만 것일까?
뱃속에 있을 때에 잉어를 비롯하여 영양분이 있는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손수석이 기분 좋게 웃는다. 그 모습을 보고서 아내 고복수가 참으로 새로 태어난 아들을 자랑스러워 한다. 남편에게 아들을 둘이나 낳아 주었으니 자신이 나이는 적지만 안방마님으로서 큰소리를 칠 만하다고 여긴다.
손수석은 새로 태어난 차남의 이름자를 생각해본다. 그는 2천년 전 대수촌장 구례마의 후손 가운데 역사책에 손씨 성을 가진 인물로 처음 기록이 되고 있는 족보상 시조의 이름이 ‘손순’이며 그 시조묘가 이곳 모량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한 유래를 지니고 있는 모량에서 자신의 둘째 아들이 태어난 것이다. 손수석은 그것이 아기에게나 자신의 집안에 있어서나 좋은 일이 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따라서 신생아에게 좋은 이름을 하나 손수석 자신이 직접 지어주고자 한다. 그것이 ‘좋은 길’ 자이다. 성씨인 ‘자손 손’ 자 그리고 항렬인 ‘나라 진’ 자와 합성이 되어 ‘손진길’이라고 하는 이름이 완성이 된다. 그렇게 이름을 지은 손수석이 며칠 후 산모와 아기를 보려고 들린 모친 봉천 할매에게 그 이름자를 말한다.
그 말을 들은 봉천 할매 정애라가 한마디를 한다; “수석아, 너는 어째 아기 이름에 ‘좋은 길’ 자를 사용하고 있니? 그 글자의 뜻과는 달리 고생스러운 인생을 살게 되는 수가 많다고 해서 그런지 옛날 어른들이 이름자로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애비인 네가 좋다면 사용하지만 그렇게는 알고 있어라…”.
그 말을 듣자 손수석이 말한다; “어머니, ‘클 석’ 자를 이름자로 사용하고 있는 저는 어땠나요? 큰 인물이 되는지는 몰라도 청소년 때부터 지금까지 엄청 고생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고난을 통하여 열매가 맺히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러니 둘째 아들에게 ‘좋은 길’ 자를 그냥 붙여주고자 합니다. 설마 저 만큼의 고난의 인생이야 살아가겠어요? 또 그러면 어때요? 그 고생을 이겨내야 비로소 아름답고 유익한 인생의 열매를 얻게 되겠지요…”;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줄 아는지 모르는지 갓난아기 ‘손진길’은 무럭무럭 한겨울의 추위를 이기며 잘 자라나고 있다. 봉천 할매 정애라는 자신의 집안에서 셋째로 태어난 손자를 보고 싶어서 그런지 자주 모량에 들린다. 해가 바뀌어 1953년 정월이 되자 모량에 들린 봉천 할매가 아들 손수석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가 다음과 같이 집안일을 말한다; “수석아. 네 동생 수권이가 이제 새해가 되니 나이가 28살이다. 그동안 부친상을 당하고 또한 한국전쟁이 계속되고 있어서 내가 혼사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수권이가 맏형인 수정이를 도와서 열심히 집안의 농사일만 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결혼을 시키고 집 가까이 분가를 시켜야 할 것 같다. 수석이 네 생각은 어떠냐?”.
손수석이 단번에 답을 한다; “어머니 말씀이 옳습니다. 수권이의 결혼이 많이 늦어지고 있지요. 이제 한국전쟁도 휴전회담이 계속되면서 전투가 38도선 주변에서만 전개가 되고 있으니 거의 안정적입니다 그러니 차제에 수권이를 장가보내도록 하지요. 어디 좋은 혼처가 있습니까?”.
봉천 할매가 웃으면서 말한다; “사실은 이웃마을 양삼에서 진작에 청혼이 들어오고 있다. 수권이가 성실하고 농사를 얼마나 열심히 짓는지 모른다. 게다가 일본에서 벌어온 돈으로 자기 농토도 십여 마지기 지니고 있지. 그러니 이웃마을 처녀들이 서로 시집을 오겠다고 야단들이다… 혼처는 아무 걱정을 말아라. 내가 되도록 빨리 이번 농한기에 수권이를 결혼시키고 색시를 집으로 데리고 오마”.
손수석은 모친이 그렇게 큰소리를 치시는 것을 보니 동생 손수권이를 장가보내는 일은 걱정을 안해도 될 것 같다. 그래서 더 이상 그 점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아니하고 모친 봉천 할매에게 전부 맡겨 둔다. 그랬더니 보름도 지나지 아니하여 모친이 손수석 자신의 집을 방문하여 참으로 좋은 소식을 전해준다.
기쁜 낯빛으로 봉천 할매 정애라가 아들 손수석에게 말한다; “수석아. 그리고 에미야, 수권이가 양삼마을에 살고 있는 그 처녀와 선을 보았는데 대번에 마음에 드는지 그 혼담을 진행시켜 달라고 했다. 그래서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어서 음력설을 지내자 마자 신부집에서 혼사를 치르고 정월 대보름을 지나서 바로 신행을 하여 시집으로 들어오기로 했다”.
그렇게 빨리 진행이 되는 혼사도 있는가 싶어서 손수석이 물어본다; “어머니, 도대체 그 처녀가 어떻게 생겼기에 수권이가 단 한번 선을 보고 그대로 결혼을 하겠다고 말했는가요?”. 봉천 할매가 웃으면서 답한다; “수권이 말로는 그 처녀가 얼굴도 길쭉하니 잘 생겼고 신체가 건강하여 참으로 일을 잘하게 보인다고 하는구나. 수권이는 색시를 구하러 간 것인지 아니면 머슴을 구하러 간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딱 마음에 든다고 한다. 그러면 됐지 않니?”;
그 말을 듣자 손수석과 그의 아내 고복수가 ‘하하’ ‘호호’라고 웃는다. 그것도 인연인가 보다. 그렇게 농사일을 잘하는 두사람이 부부가 되면 장차 그 집 재산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일이 빨리 진행이 되고 있으므로 봉천 할매는 장남인 손수정과 함께 동네 인부들을 사서 너븐들 집의 옆에 붙어 있는 밭에 집을 한 채 속성으로 짓는다. 넷째 아들인 손수권이 결혼을 하게 되면 곧바로 분가를 시켜서 그 옆집에서 살도록 조치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게 집을 짓고 있는 사이에 금방 음력설이 다가온다. 그리고 며칠 후에 너븐들 서쪽에 있는 안심의 양삼마을에서 전통 혼례식이 거행된다. 신부의 이름은 ‘김종출’인데 그 마을에 살고 있는 ‘수안 김씨’인 김재헌의 딸이다. 나이는 신부가 신랑 손수권보다 4살이 적다. 두사람의 생년월일을 가지고 진작에 사주를 본 봉천 할매의 전언에 따르면 천생연분이며 아주 잘 살게 될 좋은 궁합이라고 한다.
혼례식이 있는 날이 농한기이며 음력설과 보름 사이에 있는 명절기간이다. 따라서 양삼마을 혼례식 마당에 동네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축하객으로 몰리고 있는지 모른다. 한국전쟁으로 말미암아 그동안 농한기에 혼례가 없었고 온통 죽고 부상을 당하는 처참한 소식 밖에 없다가 모처럼 경사스러운 행사가 있게 되니 모두들 진심으로 즐거워한다;
그렇지만 잔치집에 뜻하지 아니한 손님들이 세 부류나 밀어 닥치고 있다; 첫째가, 멀리서 상이용사들이 어떻게 알고서 떼로 몰려오고 있다. 그들을 잘 대접해야 한다;
둘째가, 전쟁고아를 비롯한 거지들이 멀리서 찾아 오고 있다. 그들도 잘 거두어 먹여야 한다. 셋째가 평소에는 동네에 발걸음을 하지 않는 문둥병자들이 모처럼 결혼식이 있는 잔치집에 찾아들 온다. 그들을 괄시할 수가 없다.
전쟁통에 고생을 하기는 그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그날 혼례식을 거행하면서 혼주가 되는 김재헌은 부엌일을 도우는 아주머니들에게 그들을 차례로 잘 거두어 먹이라고 말한다. 그는 내남 너븐들과 안심 그리고 박달에는 그러한 몰골의 사람들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을 잘 대접해야 안심 동네의 인심이 좋다고 하는 소문이 널리 퍼지게 될 것이다.
그 세 부류의 사람들은 멀리 용장이나 노곡에서 온 것이 맞다. 그들은 하나같이 하루 배불리 얻어 먹겠다고 그 먼 길을 걸어서 온 사람들이니 홀대를 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신부의 아버지인 김재헌이 그들에게 음식을 많이 주라고 지시하는 것이다. 그렇게 크고도 경사스러운 동네잔치가 2월달에 벌어지고 전통혼례식이 빠르게 진행이 된다.
신랑 손수권은 신부집에서 3일간 지내고 너븐들로 돌아온다. 그리고 2주일이 지나자 처가로 가서 신부 김종출을 데리고 친가로 온다. 그것으로 신행을 대신하는 것이다. 새로이 탄생한 부부는 모친인 봉천 할매 정애라에게 큰절을 올린다. 그리고 손수권 부부는 큰형 손수정 부부와 맞절을 교환한다. 그 다음에는 백부집에 양자로 간 손수상 부부와 맞절을 한다. 마지막으로 셋째 형인 손수석과 맞절을 한다.
손수석의 아내인 고복수는 아기가 너무 어려서 이번 혼사에 너븐들로 발걸음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봉천 할매 정애라의 막내아들인 손수태는 형의 혼례식만 보고 다음날 바로 경주로 돌아갔다. 그는 경주고등학교에서 3년과정을 수료하면서 경북대학교 사범대학에 입학시험을 보았다;
그래서 손수태는 그 결과를 알아보기 위하여 경주에 들린 다음에 곧 대구로 간 것이다.
'봉천 할매(손진길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봉천 할매54(작성자; 손진길) (0) | 2021.10.05 |
---|---|
봉천 할매53(작성자; 손진길) (0) | 2021.10.04 |
봉천 할매51(작성자; 손진길) (0) | 2021.10.04 |
봉천 할매50(작성자; 손진길) (0) | 2021.10.04 |
봉천 할매49(작성자; 손진길) (0) | 2021.1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