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 할매(손진길 소설)

봉천 할매57(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10. 6. 00:27

봉천 할매57(작성자; 손진길)

 

봉천 할매는 내남 너븐들 집에 돌아온 다음날 곧 1953년 6월 3일 아침에 맏아들 손수정을 방으로 불러서 말한다; “수정아, 내가 대구에서 공부하고 있는 네 막냇동생 수태가 무척 보고 싶구나. 그러니 주말에 아무리 공부가 바쁘더라도 꼭 한번 고향에 와서 내 얼굴을 보라고 그렇게 전보를 쳐다오. 아니면 전신전화취급소에 간 김에 네 동생에게 전화를 해도 좋고…”.

맏아들 손수정이 아침식사를 하고나서 모친의 말씀을 실천하려고 멀리 용장으로 가는 것을 보고서 봉천 할매가 이번에는 맏며느리 김옥순을 잠시 방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다가 젖은 손을 앞치마에 문지르면서 방으로 들어온 김옥순은 시어머니 앞에 조용히 앉는다. 그 모양을 보다가 봉천 할매 정애라가 자신의 이불 아래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어 며느리에게 내민다. 김옥순이 공손하게 두손으로 받는다;

그것이 무엇일까? 궁금해 하는 김옥순에게 봉천 할매가 말한다; “옥순아, 네가 이집에 맏며느리로 들어와서 참으로 수고가 많다. 그래서 이 시어미가 고맙다는 인사로 돈을 너에게 주려고 그 봉투에 넣었다. 그런데 그 액수가 상당히 크다”.김옥순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말한다; “어머니 갑자기 왜 돈을 주시는 거예요? 그리고 얼마나 많은 액수인데요?”.

봉천 할매 정애라가 빙긋 웃으면서 다정하게 말한다;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너에게 가용으로 사용할 돈을 주는 것이다. 그러니 그 액수가 상당하지, 옥순이 네가 자식들을 위하여 평생 사용해도 되는 금액이다. 그 돈으로 문전 옥답을 산다고 해도 아마 5마지기는 넉넉하게 살 수가 있을 게야…”;

김옥순이 깜짝 놀란다. 그래서 얼떨떨한 눈으로 시어머니를 쳐다본다. 그러자 봉천 할매가 부연설명을 해준다; “내가 살아보니까 여자도 자기 시재를 지니고 있어야 하겠더라. 그래야 집안에 우환이 들었을 때에는 나름대로 대처를 할 수가 있고 또 자식들이 돈이 필요할 때에는 내놓을 수도 있겠더라. 그러니 그 돈을 잘 지니고 있다가 그러한 용도로 사용하면 된다. 이제 나가 보도록 해라”.

그날 봉천 할매는 천천히 걸어서 윗동서 이신자가 양아들 손수상 가족과 같이 살고 있는 집으로 찾아간다. 그날 점심을 함께 하면서 정애라가 자신이 서울을 다녀온 이야기를 말해준다. 이신자가 참으로 재미가 있는지 귀를 기울여서 경청을 한다. 그렇게 한참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는데 손수상이 잠시 쉬려고 집에 들린다. 그것을 보고서 봉천 할매가 아들의 방으로 들어가서 따로 그를 만나고자 한다.

손수상은 생모가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그러시는가?’ 궁금해하면서 자리를 권한다. 그러자 봉천 할매가 조용하게 자신의 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어 아들의 손에 건네 준다;

손수상이 모친이 있는 자리에서 그 봉투에 있는 것을 꺼내 보니 한국은행권 고액 지폐가 수두룩하다. 그래서 깜짝 놀란다.

그 모습을 보고서 봉천 할매가 아들 수상에게 다정하게 말한다; “수상아, 너희 내외는 일본에서 돈을 벌어 오고 또 고향에서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서 벌써 논을 20마지기나 가지고 있어 먹고 사는 데에는 별로 부족함이 없는 줄 내가 알고 있다”;

봉천 할매가 이어서 말한다; “그런데 내가 곰곰 생각을 해보니 그래서 그런지 내가 평생 수상이 너에게 용돈을 제대로 준 적이 없는 것 같더라. 이제 가리 늦게 내가 너에게 용돈을 좀 주려고 한 게야. 논 한 마지기는 살 수가 있는 제법 큰 금액이니 이 에미의 성의로 알고 잘 사용하도록 해라”.

그날 집에 돌아온 봉천 할매는 일부러 옆집에 살고 있는 넷째아들 손수권의 집을 찾는다. 마침 오후 늦은 시간이라 부부가 함께 논에서 일을 하다가 집에 돌아온다. 그러자 정애라가 방으로 아들 손수권을 불러서 말한다; “수권아, 그래 일 잘하는 아내하고 같이 논밭에서 일을 해보니까 어떠하던?...”. 손수권이 웃으면서 말한다; “어머니, 집사람이 밭에서는 저보다 일을 더 잘해요. 물론 논에서는 제가 더 잘 하고요…”.

그 말을 듣자 봉천 할매가 아들에게 말한다; “그래 그것 참 잘 되었다. 너희 내외는 그렇게만 열심히 일하면 고향에서 제일 가는 부농이 될게야. 수권이 너는 일찍이 네 형을 따라 일본에 가서 벌어온 돈이 상당하지. 벌써 전답이 20마지기나 되니 앞으로 자식을 많이 낳아도 먹고 사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겠구나…”.

손수권이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떡이자 봉천 할매가 품에서 봉투를 하나 꺼내어 아들의 손에 쥐어 주면서 말한다; “그래도 이 에미가 너에게 용돈을 좀 주려고 봉투에 넣었다. 나중에 한번 꺼내서 세어 보거라. 그 돈이면 논 한 마지기는 더 살 수가 있을 게야…”;

그날 하루 동안에 봉천 할매가 상당히 바쁘다. 왜냐하면, 저녁식사가 끝나자 자신의 방으로 맏아들 손수정이를 다시 불렀기 때문이다. 손수정이는 모친이 낮에 전신전화취급소에 다녀온 일을 물으시는 줄 알고 얼른 말씀을 드린다; “어머니 당부대로 제가 용장에 가서 대구로 전화를 냈어요. 수태가 준 그 부잣집 전화번호인데 마침 동생이 전화를 받았어요. 이번 주말에 반드시 고향에 오겠다고 하는 답변을 받았어요”;

봉천 할매가 말한다; “그래 수고했구나. 그러면 됐다. 그러고 아범아, 내가 이제 너에게 현찰이 들어있는 상자를 하나 줄 것이니 그것을 너 혼자 잘 간직했다가 전답을 사고 일부는 대소가에 급한 일이 생기면 사용하도록 해라. 네가 이집의 장남이니 앞으로 돈이 필요할 것이야…”. 그 말을 하면서 봉천 할매가 벽장 속에서 꺼내어 아들 손에 큰 상자를 하나 쥐어 주는데 상당히 묵직하다;

손수정이 놀라서 물어본다; “어머니, 도대체 얼마나 되는 현찰이기에 이렇게 두툼하고 무거워요?”. 봉천 할매가 진지하게 맏아들에게 답을 한다; “수정아, 그 돈은 이 에미가 너의 동생 수석이의 재산을 관리해주고 그 수고비로 받은 엄청난 금액이다. 자그마치 전답을 80마지기나 살 수가 있는 거액이지. 그러니 그 돈으로 너는 내남 덕천이나 이조의 땅을 사도록 해라. 그리고 매년 소작료를 받으면 수정이 네가 네 자녀를 건사하는 것은 물론이고 온 대소가가 필요한 일에 충분히 사용할 수가 있을 게야. 그렇게 하도록 해라”;

손수정은 모친에게 참으로 감사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공손하게 큰절까지 한다. 자신에게 물려준 그 재산이 너무나 큰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감격해 하는 아들에게 봉천 할매가 말한다; “오늘은 늦었으니 수정아, 내일은 네 동생 수권이와 함께 잠깐 내 방에 들리거라. 내가 너희 둘에게 따로 부탁할 일이 하나 있다”.

다음날 급한 농사일을 대충 끝내 놓고서 손수정이 동생인 손수권과 함께 모친의 방을 찾아온다. 그러자 봉천 할매가 장롱에서 장부 하나를 꺼내 와서 설명을 한다; “이 장부에는 셋째인 손수석이 이곳 내남에 소유하고 있는 전답의 각 지번은 물론 그 토지의 비옥한 정도 그리고 소작자 및 소작료 등의 내용이 상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다. 내가 그동안 오래 그 장부를 기록하면서 꼼꼼하게 소작을 관리하였는데 이제는 내가 힘이 들어서 그것을 너희 두사람에게 맡기고자 한다”.

봉천 할매가 그 장부를 장남인 손수정에게 주면서 말한다; “이 장부의 보관은 맏이인 수정이 네가 하고 거기에 기록하는 일은 수정이 네 앞에서 동생인 수권이 네가 하도록 해라. 그리고 너희들 형제인 손수석의 전답에 대한 소작의 일은 반드시 너희 두사람이 함께 상의를 해서 처리를 해라. 그래야 일이 확실하고 나중에 증거의 능력이 있다. 너희들은 같은 형제이지만 손수석이 얼마나 치밀하고 그 일처리가 빈틈이 없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러니 너희들도 정확하게 그 전답을 관리해야 할 게야”.

그 다음에 봉천 할매가 웃으면서 두 아들에게 말한다; “그리고 매년 수석이는 자신의 전답을 관리해주는 나에게 수고비를 넉넉하게 주었다. 내가 그 일을 너희들에게 넘기겠다고 벌써 수석이에게 말했으니 앞으로는 너희 두사람에게 그 수고비를 줄게야. 그러니 형제인 손수석에게 손해가 가지 아니하도록 전답과 소작을 성실하게 관리해주도록 해라. 알겠지?”.

모친의 그 당부를 듣고서 두사람은 공손하게 그렇게 하겠다고 말한다. 그들도 형제인 손수석 덕분에 자신들이 고향에서 잘 살게 되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당연히 그렇게 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그 두 아들이 물러가자 봉천 할매가 혼자서 중얼거린다; “이제 막내인 수태만 만나면 일이 다 끝나는 것이군…”.

그렇게 기다리던 막내아들 손수태가 다음날 오후에 고향집에 들린다. 봉천 할매가 그를 방으로 불러 역시 돈이든 봉투 하나를 주면서 말한다; “수태야, 네가 대구에서 대학교 공부하랴, 부잣집 아들을 가르치랴 바쁠 게야. 그리고 네 형 수석이가 학비를 모두 대어준다고 하더라도 언제까지나 그 돈을 받아 쓸 수는 없지 않겠느냐? 그래서 내가 돈을 좀 준비하여 그 봉투에 넣었다. 그 돈이면 수태 네가 넉넉하게 공부하고 또 앞으로 결혼하고 생활을 꾸려갈 수가 있을 게야…”;

손수태가 깜짝 놀라 그 봉투에서 눈을 떼지를 못한다. 그것을 보고서 봉천 할매가 말한다; “수태야, 너는 평생 네 형 손수석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아무리 그가 일본에서 성공하여 많은 돈을 벌어왔다고 하더라도 동생을 중학부터 대학까지 공부하도록 뒷받침을 하고 있으니 그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부모라도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내가 이 세상에 없으면 네 형 손수석이를 부모 대신으로 알고서 그렇게 따르도록 해라. 알겠지?”.

손수태가 ‘네’라고 대답을 하자 봉천 할매가 이어서 말한다; “그 액수는 논을 열 마지기나 살 수가 있는 거금이다. 그러니 잘 관리를 하여 앞으로 네가 공부도 하고 결혼도 하도록 해라. 그리고 내일은 다시 대구에 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잘 살아라. 이 에미의 당부는 그것 뿐이다”.

봉천 할매는 다음날 막내 아들 손수태가 내남 너븐들을 떠나는 모습을 보고서 동구 바깥에서 손을 흔들어 준다;

 손수태는 그것이 모친의 모습을 보는 마지막인 줄 모르고 큰돈을 얻었기에 마냥 기뻐서 휑하니 집을 떠나고 만다. 그 다음날 봉천 할매는 장남인 손수정과 함께 너븐들 뒷산에 있는 남편 손영주의 산소를 찾는다. 볕이 잘드는 남향이다. 그 옆에는 자신이 묻힐 가묘가 벌써 조성이 되어 있다.

봉천 할매가 그것을 보고서 빙그레 웃는다. 그녀는 지금이라도 6월 따뜻한 태양 아래 양지바른 그 무덤에 들어가고 싶은 것이다. 봉천 할매 정애라는 그렇게 며칠간 매일같이 남편의 무덤에 올라가서 한낮을 지내고 내려온다. 그러다가 6월 11일이 되자 그녀가 산에서 내려오지를 않는다. 걱정이 되어 손수정이 동생 손수권과 함께 선친의 묘소에 올라가본다.

그랬더니 모친 정애라가 남편의 무덤 앞에 쓰러져 있다. 깜짝 놀라서 두사람이 모친을 업고 산을 내려와서 안방에 눕히고 이조에 가서 한의사를 데리고 온다. 그 한의가 진맥을 하더니 말한다; “맥이 너무 약합니다. 도저히 살아 있는 사람의 맥이 아닙니다. 그러니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것입니다”.  

의원은 아무런 처방도 약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이미 생기가 전부 빠져나가고 겨우 마지막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남 손수정이 바로 밑의 동생인 손수상을 찾는다. 손수정의 아들인 손진화가 벌써 13살이라 그가 재빠르게 삼촌집에 뛰어가서 큰 숙부를 모시고 온다. 그래서 손수정과 손수상 그리고 손수권 등 3형제와 며느리 3사람이 모두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봉천 할매 정애라는 감은 눈을 한번 떠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운명을 하고 만다.

다음날 아침에 손수권이 용장에 나가서 경주경찰서 보안계로 손수석에게 전보를 치고 대구에 있는 손수태에게도 전보를 친다. 그리고 경주 교리에 살고 있는 외삼촌 정한욱에게도 전보를 친다. 그 결과 다음날 그들이 도착한 가운데 봉천 할매는 3일장으로 장례가 치러지고 그 선산 가묘로 들어가고 만다.

1953년 6월 13일에 집에서 발인을 하여 그 가묘를 파고서 매관을 하고 나서 보니 그 묘택이 얼마나 따뜻하고 양지가 바른 곳인지 모른다. 그날 따라 하늘에는 구름이 한점도 없고 날씨가 맑기 이를 데가 없다;

그래서 너븐들 일가들이 그 산소 주위에 모여서 한마디씩 한다; ‘봉천 할매는 평소에 덕을 많이 베푸셨는가 보다. 어쩌면 이렇게 날씨가 좋고 태양이 빛나고 있을까? 분명 좋은 곳에 가셨을 것이야…”.

봉천 할매 정애라의 일생은 결코 길지가 않다. 그러나 그녀가 한평생 살아온 세월은 참으로 험악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36년을 지냈고 또 어수선한 해방정국과 한국전쟁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험한 세월을 온몸으로 견디면서 그녀는 5남 1녀를 낳아서 모두 장성하게 키워낸 것이다. 그야말로 봉천 할매가 바로 그들 6남매의 고향이며 모태인 것이다.

 

(이상으로 ‘봉천 할매’ 편이 끝나고 그 다음 이야기는 ‘선더말 아재’ 편에서 계속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