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비 이야기(손진길 소설)

허굉필(許宏弼) 허선비 이야기33(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9. 3. 17:48

허굉필() 허선비 이야기33(손진길 소설)

 

허판관 일행은 이틀동안 다마끼상의 사숙에 머물면서 다음날 그가 생도들에게 훈육하는 모습까지 참관한다. 왜국 말을 모르는 허판관과 곽병방을 위하여 장통역이 친절하게 다마끼 훈장의 교육내용을 중계하여 준다.

오후 늦은 시간부터 다마끼상은 조선에서 온 곽생원 일행을 위하여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서양의 산업기술과 무기체계에 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실시한다. 그날 저녁에도 다마끼상이 인근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만들어온 5개의 벤또로 함께 식사를 나누고 있다.

식사가 얼추 끝나게 되는 시간에 친구사이인 곽생원다마끼상이 환담을 나누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허판관장통역에게 부탁한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다마끼상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통역을 해주세요”.

그 말을 듣자 장통역이 먼저 다마끼상에게 말한다; “다마끼 센세이, 시쯔레이시마스. 허상가 센세이니 씨쯔몽가 아리마스. 현령 나리, 이제부터 말씀하시면 됩니다. 제가 전부 통역을 하겠습니다”.

허굉필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조선말로 장통역에게 말한다; “다마끼상에게 부탁합니다. 제가 듣기로 일본의 서남번에서 비밀리에 부번강병책을 실시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 일을 담당하고 있는 실무자를 우리가 혹시 만나볼 수가 있을까요? 어려우시겠지만 부탁을 드리고자 합니다!... “;

장통역이 왜국말로 통역하고 있기에 그 말을 다마끼상이 알아들었다. 그가 고개를 끄떡이는 것으로 보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말을 장통역이 조선말로 통역한다; “좋은 생각입니다. 가능합니다. 사실은 저의 고향 후배 2명이 15년전에 청나라 마카오에 가서 그곳에서 무역하고 있는 포르투갈 사람들을 위하여 일을 했지요. 그런데… “.

흥미로운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다. 허판관 일행이 귀를 기울인다. 다마끼상의 설명이 계속되고 있다; “그들이 마카오에 가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가까운 친척 여성이 그곳의 포르투갈 사람의 부인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포르투갈 상인들은 일본과 조선과의 전쟁이 발생했던 당시 곧 16세기 말엽에 벌써 명나라에 매년 돈을 주고서 마카오 섬을 조차하여 사용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현지처로는 일본여성을 선호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마카오 항구에는 문제가 하나 있어요… “.

무슨 문제인 것일까?’,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에 허판관 일동은 멀뚱하니 다마끼상의 얼굴과 장통역의 입만 쳐다본다. 설명이 계속되고 있다; “바다가 얕아요. 그래서 1800년대에 커다란 증기선이 서양에서 들어올 때에 마카오 항구를 이용할 수가 없게 되었지요. 따라서 맞은 편에 있는 홍콩 섬을 영국사람들이 탐을 내고 그곳의 항구를 이용하기 시작했지요. 그러다가 “;

점점 흥미가 있는 이야기이다. 구체적인 설명이 이어진다; “1841년에 영국이 청나라 군대를 물리치고서 전쟁배상금 명목으로 그만 홍콩 섬을 조차하고 말지요. 그것을 보고서 나보다 10년이나 젊은 두 친구는 홍콩으로 건너가서 영국사람들을 위하여 일을 했어요. 그들 가운데 한사람이 머리가 좋아서 증기기관을 만드는 방법을 배워서 두사람이 고향으로 돌아왔지요. 그리고 이곳에서 죠슈번(長州藩)을 위하여 일하고 있어요. 그러므로… “.

긴 설명 끝에 다마끼상의 결론이 다음과 같다; “내가 내일 그들 두사람의 고향 후배를 이곳으로 불러서 여러분들의 질문에 대하여 구체적인 답변을 하도록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두들 내일의 명강의를 기대해 주세요. 일본 서남번의 부번강병책이 무엇인지 그 핵심사항을 능히 파악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

참으로 고마운 말씀이다. 따라서 허판관 일행이 동시에 박수를 친다. 다마끼상의 호의에 감사한다는 의미이다. 그날 저녁 다마끼상이 고향 후배 두명의 이름을 알려준다; “그들은 동갑내기인데 한사람의 이름은 사까다()이고 또 한사람은 아베()입니다. 기술자로 일하는 친구가 사까다이고 무역에 능한 친구가 아베이지요. 내일 만나보시면 알 것입니다”.

이튿날 오후 늦게 사까다와 아베가 다마끼상을 방문한다. 두사람이 오자 기분이 좋은지 다마끼상이 사께(일본식 맑은 술 ) 술을 내온다. 일행이 서로 인사를 나누고 사께를 한잔 씩 맛을 본다. 그 맛이 조선의 정종과 같다;

허판관이 빙그레 웃고 있다. 그렇지만 무인이며 호걸인 곽병방이 웃으면서 한마디를 한다; “하하하우리나라의 정종을 일본에서는 오사께라고 부르고 있군요. 곡주라서 그런지 맛이 좋습니다, 하하하… “.

그날 허판관이 정말 알고 싶은 내용을 질문하고 있다; “두 분이 젊은 시절에 청나라의 마카오와 홍콩에 가셔서 활동한 이야기를 어제 다마끼 선생으로부터 조금 들었습니다. 제가 궁금한 점은 사까다상이 서양의 증기기관을 만드는 법을 알고 있다고 하는데 그것이 어떠한 원리입니까? 그리고 이곳 죠슈번의 산업발전에 어떻게 도움이 되고 있는지를 알고 싶습니다”.

장통역을 통하여 질문내용을 확인하자 사까다상이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대답한다; “솥에서 밥을 지을 때에 뜨거워지면 물이 증기가 되어 빠져나가면서 솥뚜껑이 흔들리게 됩니다. 실제로 수증기의 힘이 매우 크므로 그 힘을 이용하여 기계를 돌리는 것이지요. 그것은 물레방아의 원리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물의 힘과 같은 것이 수증기의 힘입니다. 그런데… “.

잠시 일동의 면면을 살펴보다가 사까다상이 진지하게 설명한다; “먼저 솥에 불을 가하고 솥 안의 물을 수증기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수증기를 전부 모아 관을 통과시켜 일시에 수레를 돌리게 하는데 수레바퀴를 연속적으로 계속 돌리기 위해서는 한가지 비법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진공의 힘이지요… “.

처음 듣는 설명이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사까다상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설명이 계속 들려온다; “그것은 한번 수레바퀴를 밀고 나오는 수증기에 찬기운을 즉시 보내어 단번에 응축을 시키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진공구간이 발생하여 일시에 수레바퀴를 반대편으로 세게 당겨주게 됩니다. 그러므로 수레바퀴가 힘있게 일회전을 완성하게 되지요 “;

중요한 대목을 설명하였기에 사까다상이 숨을 잠시 돌린 다음에 계속 말한다; “그와 같이 밀고 당기는 작용이 반복됨으로써 수증기에 의한 수레바퀴의 회전운동이 연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어요. 그 원리로 모든 공장의 기계를 돌리고 있지요. 결국 사람의 힘으로 베틀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증기력으로 기계가 작동하여 베틀을 움직이고 직조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

그 다음으로 중요한 이야기가 시작이 된다; “그 생산력이 엄청나지요. 예컨대, 사람 100명이 하는 것을 직조기 한대가 기계의 힘으로 대신하게 되는 셈이지요. 그러므로 그때부터 문제는 그렇게 생산된 엄청난 물량을 어디에서 팔아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으로 즐거운 고민이지요. 만약에… “.

사까다상의 설명이 다음과 같이 마무리가 되고 있다; “우리 일본의 직조산업이 그러한 기계식 공장생산으로 미처 변화하지 못하게 되면 서양의 값싼 직물에 의하여 우리 시장은 점령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번에서는 제가 비록 하급무사 출신이지만 증기기관을 만들어 기계식 직조산업을 발전시키기에 여념이 없지요. 그것이 우리 번이 개항의 시대에 살아남게 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모두들 고개를 끄떡이면서 아무런 말이 없다. 허판관이 속으로 깊이 생각한다; ‘일본 서남번의 하급무사 사까다상이 참으로 애국 애족하는 인재이구만. 서양의 새로운 동력원인 증기력을 이용하는 법을 기계적으로 배워와서 그것으로 죠슈번에 산업혁명을 일으키고 있어. 이제 죠슈와 같은 서남번이 일본에서는 서양과 같은 산업선진국이 되는 것이지. 그러면 결국 그들이 쇼군의 바쿠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되지 않겠어!... ‘.

그와 같이 생각한 허판관이 이제는 아베상을 향하여 손을 들고서 한가지 질문을 한다; “아베상, 질문이 있습니다. 그렇게 사까다상이 직조공장을 만들어 생산품을 시장에 내다 팔아 큰 돈을 죠슈번에 안기게 되면 그 돈으로 아베상은 무슨 무역을 하게 되나요? 부번강병책을 위하여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를 묻고 싶습니다!... “.

장통역을 통하여 허판관의 질문내용을 파악하자 아베상이 싱긋 웃으면서 대답한다; “하하하, 저보다 나이가 많지 아니한 분으로 보이는데 질문내용이 예리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죠슈번에서 일종의 산업혁명이 발생하고 돈을 많이 벌게 되면 에도의 쇼군과 바쿠는 쇄국정책에 따르지 아니하고 있는 우리를 군사력을 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체 군사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그 방법이… “.

어느 사이에 아베상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그가 천천히 말한다;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마카오와 홍콩에서 신무기를 구입하여 몰래 반입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의 군대가 그 무기의 사용법을 익히고 그 다음에는 실전에 사용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지요… “.

아베상의 결론이 다음과 같다; “그것이 신식군대를 만드는 방법이고 에도의 쇼군과 바쿠의 간섭을 배제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와 같은 신식군대가 없다고 하면 우리 서남번의 산업선진화는 한갓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이겠지요!... “;

그날 두 사람의 설명에 허판관 일행이 얼마나 공감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 모습을 유심히 다마끼상이 바라보고 있다. 그가 속으로 생각한다; ‘이들을 잘 이용하면 우리가 산업선진국을 만들어 조선으로 진출할 때에 많은 편리를 볼 수가 있을 것이야. 그러므로 며칠간 우리 죠슈번이 얼마나 선진화가 되고 있는지를 내가 직접 데리고 다니면서 보여줄 필요가 있어. 이들이 압도를 당하게 되면 자연히 우리 일본을 섬기는 친일인사들이 되지 않겠어, 흐흐흐… ‘.

그와 같이 판단하고 있기에 이튿날부터 다마끼상이 직접 허판관 일행을 인솔하여 사카다상이 운영하고 있는 기계식 직조공장을 견학하게 한다. 게다가 참으로 비밀에 속하고 있는 죠슈번의 신식군대의 훈련장면도 보여준다. 허판관곽병방은 일본군대의 장총의 위력과 신식 대포의 위력을 보고서 벌린 입을 다물지를 못한다.

만약 그들이 완전무장을 하고서 조선에 상륙하게 된다고 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임진왜란 때에는 명나라의 도움을 받아 조선이 그들을 물리쳤지만 다음번에는 그럴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 지금의 청나라가 서양의 신식군대의 힘에 주눅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허판관이 속으로 한숨을 거듭 쉬고 있다.

그 다음에 그들은 어떠한 일정을 소화하게 되는 것일까?...